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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폭풍의 탑-2-

2010.10.26 03:15

azelight 조회 수:520

라니아가 다가오자 영의 형체가 부정확해지면서 바르르 떨렸지만 사라지진 않았다.

 

이봐요. 당신,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오오, 물러나라. 두렵다. 그대는 어이하여 이리도 강렬하고 뜨거운가. 그런데. 그런데 떠나고 싶지 않구나. 떠나고 싶지 않아. 오오오오오오.”

 

마법사의 영이 격렬하게 반응하자 라니아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돌아봤다. 베이커드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면서 자신이 이 일에 그다지 지식이 많지 않다는 것을 표정과 몸짓으로 피력해보였고, 라니아는 별 수 없이 마법사의 영을 향해 다가갔다.

 

물러나라. 그대 같은 존재가 있을 곳이 아니다. 느끼지 못하는가? 고귀한 자여. 이미 이 곳은 아가리 속이다. 늦기 전에…ㅅㅓ… ㅁ.”

 

마법사의 영이 점차 흐릿해지기 시작하더니 목소리까지 잦아들기 시작했다. 영은 몇 번 흐릿하게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했다. 마치 환영마법이 다른 술자에게 관섭받기라도 한 듯 마법사의 영은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일렁였다. 그러면서 마법사의 영의 표정은 급격히 일그러지더니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리 없는 절규만이 내뱉어질 뿐이니 솔드도 베이커드도 라니아도 영이 외치는 소리는 한 점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더니 수많은 손이 올라와 마법사의 영을 붙잡았다. 그 손들 또한 로브자락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면 또 다른 아르키아난의 마법사들인 듯 보였다.

 

? 뭐지?”

 

끌려가고 있다네. 막아야 해!”

 

당황한 라니아와 달리 베이커드는 허리에 메인 밧줄을 풀어냈다. 머리에 갈고리가 달린 밧줄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마냥 꾸불텅 거리더니 탄성있게 튀어나갔지만 공격은 성공하지 못했다. 투명한 장애물에라도 가로막힌 듯 갈고리가 튕겨 나온 것이다.

 

역장인가?”

 

베이커드가 놀라 소리쳤지만 솔드는 개의치 않고 돌진했다. 위치상 별수 업시 라니아가 어울리지도 않게 세검을 꺼내드는 사이 솔드는 이미 봉을 꺼내들고 그녀를 지나쳐 손들에게 찌르기를 감행한 것이다.

 

타압!”

 

투기력과 회전력이 잔뜩 실린 찌르기가 역장을 말듯이 빨아들이더니 그대로 관통했다. 그리고 진로에 있던 손들을 모조리 파괴하고 동시에 마법사의 영의 일부마저 소멸시켰다.

 

조심해.”

 

역장을 파괴하려면 별 수 없다고.”

 

라니아가 경고하자 솔드는 불평했지만 사실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역장을 꿰뚫은 그의 판단은 옳았다. 역장이 깨지자 라니아의 정순함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던 손들이 움츠러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 틈을 노려 솔드는 빠르게 팔방 찌르기를 넣었다. 방금 전의 압도적인 일격과는 달리 이번에는 정교하게 제어된 공격이 마법사의 영을 붙잡은 팔들을 공격했다. 그러나 손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웅얼거리는 소리와 함께 손 중 하나가 솔드를 가리키자 솔드는 뒤로 퉁겨나갔다.

 

라니아는 놀라운 민첩함으로 퉁겨져 나오는 솔드를 즉시 피했지만 베이커드는 피하지 못하고 솔드의 몸뚱아리에 얻어맞았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둘 모두 바닥을 나둥굴었다.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무시하고 라니아는 세검을 빼들고 나아갔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빨리 허공에서 커다랗고 시커먼 손이 나타나더니 마법사의 몸뚱이를 붙잡아 집어 삼키는 것이었다.

 

당혹감을 느끼며 라니아는 공격했지만 그녀의 공격은 검은 손에 흠집도 내지 못했다. 재빨리 수인을 맺으며 뒤로 뛰어 올랐을 때는 이미 검은 손은 도르륵 말리더니 소용돌이치면서 사라졌다. 마법사의 영 외에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사라졌군. 저게 뭐라고 생각하지?”

 

라니아는 솔드가 일어나는 기척을 느끼며 질문했다.

 

밤의 정수. 강력한 음적 존재로 악몽을 낳고 영혼을 먹어치우지. 탐욕스럽고 강력한 놈들이야. 몇 번 싸워본 적 있지만 그때마다 동료를 한두 명씩 잃었었지.”

 

그 정도야?”

 

너나, 애던, 발락이 있으니 그때처럼 그렇게 되진 않겠지만 이 녀석은 불안하군.”

 

라니아가 돌아서자 솔드에게 깔린 덕에 기절해버린 베이커드의 모습이 보였다.

 

이로써 행동불능 상태에 빠진 사람이 둘이 되었네.”

 

그렇군. 골치야.”

 

발랄한 라니아의 말에 솔드는 눈쌀을 찌푸렸다.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진짜 석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발락과 대우림의 민요를 흘엉거리며 난로에 불을 붙이고 있는 루시엔의 모습이 보였다.

 

애던은 이제 방수포와 갑옷으로부터 해방되어 깔개 위에 담요를 덮고 누워 있었다. 화상과 자상의 흔적이 가득한 오른쪽 반신. 특히 얼굴은 심하게 뭉개져 있고 오른쪽 귀는 아예 날아가고 없는데다가 그렇다고 왼쪽 몸뚱아리가 멀쩡하다면 결코 그런 것도 아니었다.

 

만약 직접 본다면 절로 동정심이 일고 대다수의 이에게 비위 거슬리는 혐오감을 주기에 충분한 흉터들. 또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의심스럽게 만드는 흉터들이었다.

 

어땠어요? 싸우는 소리가 들리던데.”

 

불쏘시개로 장작을 헤집던 루시엔이 솔드들이 내려오는 것을 발소리로 알았는지 고개를 들었다. 그러곤 베이커드가 기절한 것을 보곤 꽤나 고전했나보네요.”라며 빙긋 웃었다.

 

고전한 것 치고는 전툰 짧았지. 적이 그냥 돌아갔거든.”

 

솔드는 베이커드를 애던 옆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심각한 얼굴로 위층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 설명했다.

 

밤의 정수라면 에리크립스의 마귀로군요. 장막 너머에서 발견된 환경들 중 현세의 존재들에게 가장 가혹한 장소들 중 하나지요. 그리고 그 중에서도 밤의 정수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것들 중 하나에요. 만약 사실이라면 결계를 쳐 둬야겠어요. 밤은 그들의 무대니까요.”

 

그런 게 가능했었나?”

 

솔드의 물음에 루시엔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슬쩍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러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임시에요. 베이커드가 기절하지 않았다면 제대로 된 결계를 쳤겠지만 지금 저 꼴이니 아쉬운 대로 임시방편이라도 만들어둬야죠. 저라도 주문서서를 읽는 것 정도는 가능하니까요. 그리고 이제부터 언니를 가르쳐야죠.”

 

루시엔은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라니아에게로 고개를 돌리자 라니아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르친다고?”

 

. 라니 언니. 베이커드로부터 주문을 배우고 있었죠?”

 

, 그렇긴 한데.”

 

라니아는 뺨을 긁적이며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표정하지 말아요. 사실 처음부터 라니 언니의 실력은 베이커드 이상이었어요. 학습은 단지 언니가 기억과 함께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기 위한 것에 불과했어요. 이제 슬슬 느낌이 오지 않나요?”

 

으응.”

 

라니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루시엔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그렇게 겁먹을 것 없어요. 주문은 언니 몸의 일부에요.”

 

알아.”

 

라니아는 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주문은 자신의 몸과 같다. 옳은 비유는 아니지만 틀린 비유도 아니다.

 

낮에 해두는 편이 낫겠지. 솔직히 나도 그건 보고 좀 오싹했어.”

 

에리크립스의 마귀들은 생자들의 오감에 영향을 미치니까요. 게다가 결단코 좋은 영향은 아니죠.”

 

팔짱을 끼고 혼자서 납득하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루시엔은 이번엔 발락을 돌아보았다. 시선을 느낀 발락은 느릿하게 고개를 움직여 루시엔과 눈을 마주쳤고 루시엔은 발락이 완전히 자신을 볼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그러면 발락 아저씨는 호위역이에요. 괜찮죠?”

 

발락은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했다. 어차피 여기 있어봐야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인 것 같았고, 밤의 정수의 기습을 미리 감지할 수 있는 감각을 소지한 이는 발락뿐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솔드에게도 경보기라고 할 수 있는 발락의 존재는 필요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모험가로서 경험도 많고 대처능력도 뛰어난 솔드를 기억상실로 어리버리한 라니아와 잠재력은 있지만 아직 어린 루시엔과 비교하는 것은 많은 문제가 있었다.

 

그럼, 결계에 대해선 너희들에게 맡기지. , 나는 여기서 남정네 둘이나 지켜봐야겠군. 칙칙한데.”

 

우훗. 그럼 한 명 덮쳐서 분홍빛 공간으로 만들어봐.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치네.”

 

농담조로 말하는 라니아의 말에 솔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실제로 그도 소름끼치는 듯 표정이 매우 안 좋아졌다. 마치 좋지 않은 장소를 맞은 듯한 표정이었다.

 

생각해도 소름끼친다는 광경에 분홍빛이라고 표현하지 말지 그래.”

 

하지만 관점은 상대적인걸. 내가 그렇지 않더라고 누군가 그럴지 어떻게 알아.”

 

적어도 나는 아니다.”

 

솔드는 단호하게 부정했다.

 

그래요. 남자끼리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렇지 않단다. 루시. 세상에는 많은 기호가 있는 법이거든.”

 

라니아의 말에 루신엔은 갸우뚱한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더 파고들어 봤자 이해할 수 없는 세계라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그 한마디로 다 이해한 것인지 고개만 몇 번 끄덕이더니 방수포를 들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이해한 걸까?”

 

솔드가 나가는 루시엔의 등을 보며 불만스러운 얼굴을 해보였다.

 

애 교육애 안 좋은 소리나 하다니. 그보다 네 지식은 너무 편향되어 있는 거 아니냐? 20년 동안 대체 뭘 배운 거냐?”

 

“20년 동안 편행된 것 만 배웠지. , 그럼 나가 볼까.”

 

깔깔깔 웃으며 라니아는 루시엔을 뒤따라 나갔다. 명랑한 것은 좋지만 너무 긴장감 없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 솔드였다. 지금까지 별다른 실수가 없었기 때문에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조만간 한 마디 해줘야 할 때가 올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라니아가 일어서자 발락도 몸을 일으켰다. 단단한 바위로 된 2미터짜리 몸뚱이가 움직이는 것은, 그것도 몸에 가시 같은 강철 미늘이 난 몸뚱이가 움직인다는 것은 아군이 보기에도 위협적이었다.

 

부탁하지.”

 

맡겨라.”

 

발락은 간단히 대답했다. 하지만 그 간결한 대답이 몹시도 믿음직스럽게 들리는 것은 발락의 저력을 알기 때문이다.

 

픽픽 쓰러지는 리더에, 실력에 비해 주문이 빈한 반쪽자리 마법사, 기억상실 엘드린, 이제 십대 중반이 되려는 소녀로 이루어진 이 불안정한 일행에서 안정된 전투능력과 인격을 지닌 발락은 제법 위안이 되는 정도였다. 생긴 게 좀 무섭긴, 아니 좀 많이 무섭긴 했지만 그 정도는 단점은 충분히 넘어가줄 수 있다고 해야할까? 아니, 단점을 언급하는 것도 무섭다. 솔직히 말하자면 평범한 엘루에게 노르위펜의 육체는 그 자체로 흉기라고 할 수 있었다. 두들겨 맞을 필요도 없이 저 쇳조각투성이의 가슴에 부딪치기만 해도 솔드는 단숨에 저세상이 가버릴게 틀림없다.

 

하아.”

 

발락이 나가고 난 후 솔드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일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인지. 그는 그저 지금껏 모은 돈으로 한적하게 살고 싶었을 뿐이었지만 아직도 모험가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돈이 한 명이 살기에는 그럭저럭 충분한 돈이었지만 두 명이 살기에는 부족한 돈이었다는 것이다. 좀 더 가난하게 살고, 좀 더 절약했다면 모르지만 너무나도 가난하고 비참한 삶이 될 것 같았기에 솔드는 감히 그런 선택을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것은 타고났다고 해도 좋을 루시엔의 재능을 깎아내는 일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런 가난한 삶 속에서 그녀가 정령술을 가다듬고 마법을 배우며 성장할 수 있을 가능성은 없었다.

 

적어도 루시엔에게 자신의 재능을 개화할 수 있는 기회정도를 줘야한다고 솔드는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 모험가로 사는 기간을 영장하는 것은 그리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게다가 모험은 루시엔이 지닌 소질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적어도 솔드는 그렇게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한 동료들이 견실한 자들이길 원했다. 어쩌다가 이런 어정쩡한 일행의 일원이 되었는지.

 

어디까지나 이들은 애던이 주워왔다고 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발락은 애던에 의해 목숨을 구했고, 베이커드는 죽였어야 하는 모습을 살려줬다고 한다. 라니아는 우연히 그가 추적하는 조직에게 붙잡혀있는 것을 탈출시켜줬고, 자신과 루시엔은 산적으로 부터 구해줬다.

 

솔드를 포함해 모든 이들은 우연이었건 아니건 애던이 본의 아니게 구해준 이들이었고 각자의 목적으로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의 적이 용의 조락이라고 불리는 강력한 비밀결사라는 것을 안 순간에도.

 

모두의 목적이 다르듯이 솔드의 경우 애던을 따라다니는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어째서인지 애던은 아르키아난과 연줄이 있었고 용의 조락의 추적에는 그들의 지원이 있었다.

 

솔드가 쓸만한 모험가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아르키아난의 마법사들은 애던을 돕는 것을 조건으로 그에게 큰돈을 약속했다. 그 금액이라면 어디서든 풍족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솔드는 애던을 돕기로 약속한 것이다. 물론 그에 대해서 애던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귀찮다고 생각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긴 했지만 아르키아난의 조치에 거부하진 않은 것이다.

 

그에게 거부감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뿐인지는 알 길이 없다. 애던은 거의 입을 열지 않았고 언제나 용의 조락을 추적하는 일에만 모든 힘을 쏟고 있었다.

 

확실히 그 흉터를 만든 것이 용의 조락이라면 그가 그렇게 집착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건 단순히 원한을 지는 정도로 끝날 상처가 아니었다.

 

분명 무슨 마법적 조치로 연명시키며 짧으면 수개월, 길면 몇 년에 걸쳐 고문한 흔적이었던 것이다.

 

그 비밀 결사라는 것들이 사교에 해당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생각 이상으로 끔찍한 희생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가족이라던가, 친구라던가. 가까운 누군가가.

 

?”

 

솔드는 작게 느껴진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루시엔들이 돌아온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이 나간 지 아직 얼마의 시간도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가 마법에 대해 문외한이긴 하지만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모험가로 먹은 밥이 제법 되었고 경력만 30 년째인 그였다. 마법이 뭔진 몰라도 뭐가 어떤 건지 정도는 알 수준은 된다는 말과 같았다.

 

그렇다면 누군가? 적인가? 아니면 장난?

 

라니아를 생각하면 있을 법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일단 부정해두기로 한 솔드는 몸을 일으키며 조심스럽게 봉을 빼들었다.

 

일단 경계를 하며 주변을 살핀 솔드는 시야에 잡히는 것이 없다고 해서 안심하지 않았다. 음적 존재들 특유의 냉기와 악취가 느껴지지 않는지 솔드는 주의를 기울였지만 그런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장막 너머의 존재들은 육체를 지니지 못한 것들이고 대부분이었고 그들은 대부분 기척을 내는 일이 없었다. 어차피 현세와 다른 이질적인 존재들이기에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스스로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생각하는 순간 정면에서 뭔가가 휙하고 움직였다. 잔영도 남지 않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에 솔드는 움직임을 눈치 채고도 시야에서 놓쳐 버렸다.

 

.”

 

한 순간 평정심을 잃을 정도의 동요.

 

그러나 둥지를 지키는 어미새와 같은 심정으로 솔드는 베이커드와 애던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움츠렸다. 언제라도 뛰쳐나갈 수 있도록 몸 전체를 긴장시키는 것을 잊지 않는다.

 

“!”

 

또 다시 기척에 몸을 돌리자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갈수록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유효거리 안에서 어디까지 가까워질 수 있는지 실험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날렵하게 상대는 마치 어둠 그 자체인 듯 빛에서 어둠으로 다시 빛에서 어둠으로 몸을 숨겼다. 마치 정글의 그림자 속에 숨은 팬서를 상대하는 것 같았다. 위험도는 팬서 이상일 것 같다는 위기감이 풀풀 풍기지만 그 역시 백전의 용사. 단 일격에 승부를 가르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고 온 힘을 끌어 모으는 순간!

 

기회가 왔다.

 

어둠 속에서 검은 덩어리가 정면으로 튀어나온 것이었다.

 

회전력을 실은 내찌르기. 아까 2층에서 손들을 상대하기 위해 사용했던 그 기술이었다.

 

푸확! 하는 소리와 함께 봉은 검은 덩어리를 그대로 관통했다.

 

이겼다! 그렇게 믿는 순간.

 

둔탁한 타격이 뒤통수에 느껴졌다.

 

두 마리?’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솔드는 마지막으로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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