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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Drivethru RPG와 Rpg Now의 통합 사이트에서 첫 구입을 했습니다. 그중 하나인 '팬티폭발 (Panty Explosion)'이라는 당황스러운 제목의 규칙책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제목이 상당히 파격적이어서 많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던 이 규칙책이 다루는 기본 내용은 놀랍게도(!) 외설이나 미성년자 선호증, 속옷 페티시즘과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물론 원한다면 위와 같은 내용을 넣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규칙의 방향성은 (이미 표지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듯)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과는 반대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팬티폭발(..)의 기본 내용은 어떤 것일까요? 그 점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규칙을 간략하게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팬티폭발은 기본적으로 일본 여고생들을 플레이하는 규칙으로, 모든 주인공은 여고생입니다. 여고생 주인공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우선 혈액형, 띠, 친구, 가족, 취미에 따른 특성치를 지정합니다. 그리고 오행을 능력치로 사용하고, 판정시 특성치를 사용해 성공율을 높이는 방식이지요. 예를 들어 혈액형 (O형) 특성치로 '쾌활하고 동기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는 것이 있다면 이 특성치를 발동해서 반 아이들이 자기 편을 들어준다고 얘기하면서 주사위를 한단계 큰 것으로 굴리면 됩니다.

여담이지만 다른 문화권을 (이 경우 서양에서 동양을) 볼 때 생기기 쉬운 작은 왜곡들이 보이는 게, 오행이 '물, 불, 땅, 공기, 무(無)'라거나 띠가 태어난 달에 따라 결정된다거나 하는 얘기는 좀 당황스러웠죠. 원래의 화수목금토 오행으로 고치고 띠 대신에 별자리점으로 대체하면 쉽게 수정할 수 있겠지만요. 아마 별자리점 대신 띠를 넣은 것은 '동양적' 색채를 더하기 위한 결정이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린 여학생들이 십이지신을 알게 뭡니.. 그리고 아무리 그렇다 해도 달마다 띠가 달라진다는 건 참..(..)

어쨌든 이런 식으로 특성치와 오행을 정한 후 또 중요한 것은 주인공의 단짝과 라이벌, 그리고 목표입니다. 이 목표란 다음 시험에서 성적을 올린다든지, 좋아하는 남학생과 가까워진다든지, 새로 전학온 학교에서 친구를 사귄다든지 하는 것들입니다. 시나리오가 진행되는 내내 진행자는 학생들의 목표를 엮어넣으며, 이 목표를 달성했을 경우 새로운 특성치를 받습니다. 반면 시나리오가 끝날 때까지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을 경우 그 시나리오의 보스에게 추가 주사위를 쥐어주게 되지요.

팬티폭발은 또한 등장인물간의 질투, 인기 등 관계를 활용한다는 점에서도 특이합니다. 위에서 말했듯 모든 주인공에게는 단짝과 라이벌이 있는데, 주인공의 성공은 단짝의 참가자가 서술하고 실패는 라이벌의 참가자가 서술하거든요. 따라서 일단 실패하면 그 실패의 서술이 가차없이 망신스러울 수 있다는 점에서도 여학생들 사이에서 나타나기 쉬운 감정적 가혹함을 본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세션 시작 때마다 하는 인기투표도 이 RPG에서 미세한 감정관계의 중요성을 잘 보여줍니다. 학생들은 지난 세션에 있었던 일들을 고려해서 익명투표로 이번 세션에서는 누가 가장 인기인일 것 같고, 누가 가장 인기가 없을 것 같은지 정합니다. 이렇게 해서 가장 인기있는 학생으로 뽑힌 학생은 그 세션 동안 판정을 d10을 굴리고, 가장 인기없는 학생으로 뽑힌 학생은 d6으로 굴리며, 나머지는 d8로 굴립니다. 따라서 판정의 성공율과 학생이 얼마나 유능한지는 인기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죠.

이와 같이 팬티폭발은 평범한 여학생들의 삶과 고민, 감정을 다루고 있지만 (자꾸 팬티폭발 소리 하려니 미치겠..), 여기에 한가지 차원이 더해집니다. 바로 심령소녀의 존재이죠. 심령소녀는 다른 학생과 마찬가지로 제작하지만 추가로 기묘한 영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영적 현상이나 음모조직에 대해 완전히 무방비 상태는 아닙니다. 반면 그 능력 때문에 악령이나 비밀결사, 정부기관의 표적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심령소녀에게는 뭔가 기묘하고 꺼림칙한 데가 있기 때문에 인기투표에서 인기인으로 뽑힐 수 없습니다. (언더월드 3기 11화에 처음 등장한 무당 딸 지연처럼 말이죠)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진 주인공들을 한 일행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팬티폭발은 버피나 앤젤, 위치크래프트 같은 에덴 RPG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일종의 제한적인 클래스 개념으로도 생각할 수 있고 말이죠.

이러한 인물제작 규칙의 좋은 점이라면 학생들의 생활기록부 (시트)를 보면 그 인물의 포괄적인 모습이 나오고,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엮어가야 할지도 어느정도 보인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학생 하나에게 '유도부 부원' 특성치가 있고 목표는 '유도부 주장으로 선출되는 것'이라면 학교 유도부가 등장하는 게 좋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다른 학생이 유도부에 소속되어 있는 선배를좋아하고 그 선배가 주장이 되도록 도울 생각이라면 충돌하는 목표 때문에 플레이는 더욱 입체적이 될 수 있겠죠. 다만 학생을 제작하는 단계에서 충분한 협의가 필요하다는 점은 어려움일 수 있습니다.

갈등 판정은 오행 주사위로 하는데, 주사위를 가져다 쓸 때마다 그 판정에 한해서는 소모되는 것이기 때문에 단일 판정이 지나치게 오래 끌 일은 없고, 자원 관리의 문제 또한 도입한다는 면이 흥미롭습니다. 판정 방식은 뭐랄까...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려운데 결과적으로 매우 이야기 중심적이 될 것 같더군요. 모두가 장면에 영향을 줄 수 있게 되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식입니다.

수미와 지영은 둘다 6반의 도현이를 좋아합니다. 그 때문에 가시돋힌 말을 주고받다가 수미의 참가자는 갈등판정을 시작할 것을 선언하지요. 화가 난 수미는 지영의 뺨을 때린다고 선언하고 적대적인 행동이니까 화(火) 주사위로 판정합니다. 성공하면 수미의 단짝인 혜정의 참가자가 결과를 서술하고, 실패하면 수미의 라이벌인 지영의 참가자가 서술하지요. 수미는 실패하고, 지영의 참가자는 수미가 지영을 때리려고 했지만 지영이 수미의 손을 확 붙잡아서 수미가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고 서술합니다.

다음 지영의 차례. 지영은 여전히 수미의 손목을 붙잡은채 차분하고 냉정한 태도로 수미를 겁에 질리게 한다고 서술하고 토(土) 주사위를 굴려서 성공. 따라서 지영의 단짝인 미경의 참가자가 서술합니다. 이때 혜정은 싸움 얘기를 전해듣고 헐레벌떡 교실로 달려오고, 목(木) 주사위를 굴려서 싸움을 말리려고 합니다. 실패한 관계로 혜정의 라이벌인 미경의 참가자가 아무도 혜정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다고 서술을...

뭐 대충 저런 식으로 진행됩니다. 모든 판정이 참가자들이 이야기를 자기 방향으로 끌어오려고 노력하는 형태가 되지요. 단짝과 라이벌 관계에 따라 서술권이 주어지고, 동맹과 적대의 선이 그어지는 것이 재미있어 보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메기 베이커의 천일야화가 (소개글) 떠오르기도 하더군요. 다만 서술권이 적당히 분배되도록 단짝과 라이벌 관계를 안배해야 할 필요는 있겠지만요.

이 규칙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공포가 점점 엄습해 오다가 마지막에는 그 공포의 실체와 맞선다는 식의 진행이 되도록 되어 있어서, 하나의 완결된 시나리오를 장려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끝도 없이 이야기를 끌고가는 대신 깔끔하게 마무리짓는 쪽으로 끝낼 수 있어 보이고요. 학생들이 해소하지 못한 목표가 있거나 심령소녀가 영능력을 쓸 때 보스에게 주사위가 굴러들어가고, 충분히 쌓였을 때쯤 보스와 대면하는 형식으로 될 것 같습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꽤 흥미로운 규칙이라고 생각됩니다. 비단 일본 고등학교 뿐만 아니라 어떤 성격의 사회이든 좁고 폐쇄적인 사회에서의 인간관계와 경쟁을 다루기에 좋아 보이는군요. 한국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해서 시나리오 한개 정도 돌려보면 재밌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출처 : http://blog.storygames.kr




확실한건... 제목이 일단 압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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