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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 막간 - 메로메로 마고 (13)





눈을 떴을 때, 햇살이 커튼처럼 나를 비춰내리고 있었다.

몸 전체가 뻐근해서 스스로에게 이유를 묻다가, 갑자기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마고를 안았다.
뿌듯했다. 그 생각을 하는 순간 뿌듯해서 견딜 수 없었다.

갑자기 불안함이 밀려온다.

갑자기 마고라는 소녀가 이 세상에 사라지면 어쩌지, 만약 내가 봤던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어쩌지 하고.
태양이 떠 있었지만, 세상에 어둠이라는 물방울이 떨어져서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 불안을 떨쳐버리고 싶어서 손으로 마고가 누워있을 곳을 찾는다.

그 짧은 시간, 마고의 온기가 너무도 그리워서 견딜 수 없었다.

마고는 그곳에 없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구겨진 교복 차림에 맨발로 방을 뛰쳐나서서 그리운 그 검은 색을 찾는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시선이 머문 곳에서, 내 시선을 빨아들이는 검은 색을 찾았다.
갑자기 섬뜩한 기분이 들면서, 나는 멈추고 말았다.

왜지? 왜 손가락 조차 움직일 수 없는 걸까.

마고의 긴 머리가, 복도를 휘감은 바람을 따라 떠오른다.

나는 왜 눈치채지 못한 것 인가.

먀고 퍙~☆ 을 할때도, 내게 안겨 들때도, 웃을 때도, 화낼 때도, 울면서 고백할 때도, 마지막에 눈물에 젖은 미소를 지을 때도.

마고는 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언제까지 계속 할 거야? 마고."

"... 무슨 소리야."

마고는 자신에게 향한 태려의 안타까운 표정에서 눈 돌린다.

"이런 거짓말은, 영웅씨에게..."

"시끄러워! 네가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야!"

"모르긴 뭘 몰라. 나도 잘 알고 있어, 마고가 얼마나 영웅씨를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어. 도저히 '이것'을 끝낼 수 없게 되어 버린 거잖아?"

"닥쳐! 백여우! 혹시나 이 이야기가..."

일갈을 터트리던 마고의 눈이 나와 마주친다.

그 순간, 세계가 회색으로 정지한다.

"... 거 봐, 마고... 붕괴하기 시작했어."

태려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들린다. 마고는 커다랗게 뜬 눈으로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한 걸음 두 걸음 뒤로 걸어갔다.

"마, 마고 도대체 무슨 이야기야? 거짓말이라니? '이것?' 그건 또 도대체..."

"영웅씨... 저, 이건..."

"시끄러워! 말 하지마!"

마고가 태려의 말을 방해한다, 나는 온 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느낌을 받으면서, 마고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간다.
마고는 내가 한 걸음 다가갈 때마다, 두 걸음씩 물러선다.
마침내 뒤돌아, 달려간다.

"가지 말아요."

뒤쫓아가려는 나를, 태려가 막아선다.

"지금 잡으러 가면, 마고에게 큰 상처를 주게 될 거에요."

"하, 하지만..."

"적어도, 지금 상황 정도는 내게 들어요. 적어도 마고를 상처입히지 않을 말 정도는 준비하고 가라구요!

사랑하잖아요? 진심으로."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선다.
마고라는 존재가, 내 마음에서 그런 위치에 속해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녀가 연관되어 있다는 말 하나로, 내 몸은 이리도 쉽사리 움직이는 것이다.

"... 어디서 부터 말해야 할지..."

태려는 평소 답지 않게 우물 거린다.

"많이 혼란스럽고, 가슴이 아파질 수도 있지만, 꼭 들어주셔야 해요. 왜냐면... 마고는 지금 모든 것을 정리하고 끝내버릴 생각이니까요."

머리가 띵해져 온다.

커다란 해머로 머리를 맞아버린 것 처럼,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린다.
내가 가볍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태려는 초연하게 이야기를 강행한다.

"미안해요 영웅씨. 지금 이 상황. 마고와 당신이 사랑하게 된 이 세계는

... 가짜입니다."





그것은, 마고가 자신의 주술 연구실에서 강령한 주술의 힘인 뉘누리에게서 자신의 힘을 내려 받는 비나리를 행한 직후에 시작됐다.

마고의 주술적 능력은 이미 세계창조를 행할 수 있을 정도로 아찔하게 높은 경지, 마고는 새롭게 얻은 능력을 사용할 만한 주체로 나를 선택했고, 자신이 만든 세계로 나를 복사해 집어 넣은 것이다.

"당신도, 물론... 가짜에요. 이 세계가 사라지면, 함께 사라질..."

태려는 우울한 표정으로 주저 앉은 나에게 독소같은 말을 하나 하나 풀어주었다.

"마고는 지금, 한계입니다. 더 이상 이 세계를 지탱할만한 영력이 부족해요. 지금 제가 어떻게든 보태주고 있고, 마고는 뉘누리의 제제를 무시하고 잊혀진 고대 영령의 힘까지 빌려쓰고 있는 것 같지만... 더 이상은 무리입니다.

마고가 왜 그렇게까지 무리하는지는, 당신이 가장 잘 알 거라고 생각해요.

마고는 외로움쟁이에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제가 예상했던 것 보다 더더욱. 당신의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에, 당신을 지탱하기 위해서 세상의 모든 것을 잘라내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이 존재하는 우주 하나만을 지키기위해서...
 
곧 마고는 자신의 생명을 지탱할 힘까지 끌어다 쓰고 말 거에요."

나는 완전히 무너져서 태려를 올려다 본다.

"나쁜 역할을 떠맏았으니 끝까지 말할게요..."

"아뇨,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 영웅씨...?"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상하게 몸에서, 어디서 올라오는지 알 수 없는 힘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마고가 너무나 소중해요. 이 세상 무엇보다. 심지어는 제 자신보다 더."

"... 아... 당신은 도대체... 그럼 당신은 사라지고 만다니까요?"

"무슨 말이에요 그게, 그래서. 마고의 생명까지 갉아먹어 가면서 제가 살아있길 바라시나요? 저를 시험하실 생각이라면 그만두세요."

태려는 가만히 나를 바라본다.

순수한 동경의 눈빛, 그리고 부드러운 미소.

"부럽다... 나, 살짝 마고에게 질투 느끼기 시작했어요."

"하핫... 죄송해요. 전 곧 사라질 거라서요."

마고가 달려간 방향으로 달린다.

생각해보니, 머리가 납득하기 시작한다.

난, 이 세계에서 단 한번도 풍월을 만난 적이 없다.
아니, 심지어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마고가 잘라내 버린 세상의 편린들은, 내 머릿 속에서 지워져 더 이상 떠오르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이다.

남아있는 시간은, 얼마만큼일까.

적어도 내가, 나보다 마고를 먼저 잊어버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자기가 만들어 낸 가짜와 사랑에 빠진 바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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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역경.

어때, 좀 가슴 아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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