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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오늘 부터 드림 하트에서..."

그렇게 베풀어 준다는 표정 하지 말란 말이다. 어차피 너희들은

'내가 곁에 있는게 두려워서 그러는 것 아니야? 그렇기에 그 곳에 보내는 것 아냐?'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키기 힘들었다. 그저 가만히 알겠다는 말과 함께 그 곳을 벗어났다.

'지구인도 아닌 사람에게 우리의 목숨을 맡겨도...'

'쉿! 듣겠어.'

다 들린다우. 살만 뒤룩뒤룩 찐 돼지들 같으니라고. 대체 이런 능력이 있는 것이 어째서 지구
인이 아니라는 증거가 되는거지? 내가 우주인이라는 증거도 없잖아. 분명히 부모님은 지구인이
셨고...

밖으로 나가다 말고 멈춰선다. 등 뒤에서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지만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
았다. 다만 가만히 내 두 손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손. 분명히 저 들도 나와
같을텐데. 나와 같은 사람일텐데. 어째서...

순간 긴 머리칼이 솟구친다. 마치 누가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과 함께 위로 솟구쳤던 머리카락
이 내려 앉을 때 이미 나는 완전히 문 밖에 나와 있었다. 두꺼운 문을 닫았지만 저 들의 목소
리가 똑똑히 들린다.

'어쨌든 그 A.I도 없는 게슈펜스트가 이상하게 다른 사람이 탑승 시에는 동작조차 하지 않으
니 별 수 없지 않소.'

'확실히 초기형 게슈펜스트니까 다른 녀석들과는 다르지.'

결국 그 것이다. 자신이 가지자니 싫고, 그렇다고 남 주자니 아깝고... 그렇기에 아예 눈에 띄
지 않는 드림 하트라는 곳에 보내려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 곳에서도 비슷할 것 같은데. 인
간이란 녀석들은 어차피 거기서 거기니까.

단지 내 의지만으로 내 몸의 기능을 몇배로 향상시키는 힘. 어깨 뒤로 손을 넘겨 흘러내린 머
리를 잡아 앞으로 가져온다. 새하얗게 변해버린 머리카락. 그 머리카락을 잠시 바라보다가
기분이 나빠져서 다시 뒤로 넘긴다. 그리고 힘의 제어를 풀고 원래 상태로 돌린다.

"대체... 겨우 이런것 때문에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거냐고..."

알고 있다. 자신들과는 다른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녀석들을... 이미 알고 있었
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부터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10년도 더 지났는데 아직도 미련을
가지고 있다니... 조금 우습다는 생각도 든다. 어차피 이런 나를 받아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텐데 말이야...





"... 나... 한테 온거니?"

눈 앞에 서 있는 커다란 로봇을 보고 검은 머리카락의 소년이 묻는다. 하지만 그 로봇은 아무
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다만 중세의 기사가 생각나는 듯한 모습으로 소년의 앞에 무릎 꿇었
을 뿐이다.

"신기하네. 사람이 조종하지 않으면 로봇은 움직이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소년은 자신의 눈 앞에 있는 검은 로봇에게 그렇게 말하며 자신에게 내민 손 위에 올라탔다.
그 이후 그 검은 로봇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지만 왠지 몰라도 자신은 이상한 사람들에 의
해 어디론가 끌려갔고, 얼마 뒤에 몇몇 사람들에게 붙들려 이런 저런 훈련을 받으며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샌가 자신은 군 소속이 되어 자신에게 왔던 검은 기
체 '게슈펜스트'를 조종하고 있었다.






"어째서... 나에게 온거지?"

가만히 게슈펜스트에게 물어본다. 하지만 그 때 처럼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있다. 수송
담당자가 불편해 할까봐 아예 게슈펜스트의 콕핏 내부에서 이동하겠다고 자처했다. 물론 그
사람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던 것이 기억난다. 버려지는 존재. 버림받는 존재. 오로지 이
게슈펜스트만이 나를 따라주고 있다.

"이런 내가... 무슨 특별한 녀석이라고..."

다시 한 번 힘을 개방시킨다. 그 힘을 개방 시키자 마자 저 멀리에서 수송 운반자들이 나에
대해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다시 그 힘을 잠재우려 했지만 순간 일어난 게슈펜스트의 변
화에 놀라 잠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제네레이터까지 분리시켜놓아 기동이 완전히 불가능할 게슈펜스트가 기동되고 있었다. 콕핏 내
부의 기기들에 불빛이 들어오며 스크린에 무언가가 출력되기 시작되었다.

[ELG - 001 Hwergelmir Ready]

"뭐.. 지?

순간 놀랐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그 아래에는 연속해서 글이 출력되고
있었다. 초당 몇십줄씩 올라가는 빠른 속도였지만 내 눈은 그 것을 모조리 읽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것을 모조리 읽었을 땐...

울고 있었다.

"아버지..."

아버지가 이 말을 들을리 없다. 힘이 사라지자 게슈펜스트의 기동도 멈춘다. 하지만 나는 계속
해서 울고 있었다.

"정말입니까? 단지 어머니를 사랑했다는 이유만으로..."





정신을 차리고 콕핏을 열었을 때는 이미 드림 하트의 격납고 안이었다. 콕핏을 열자 차가운
공기에 기분이 좋아진다. 주위를 살피자 저 멀리 몇 명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것이 보인다.

"그래서?"

"네?"

"그게 무슨 상관이 있지? 내가 보기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같은데?"

"히로님! 하지만 저 자는 인간이 아니란 말입니다. 상부에서도 말 했지만 저 자는..."

"입 다물어. 데미노스라는 녀석이 해삼이건, 말미잘이건 내 밑에 들어온 이상 내 부하다. 녀석
에 대한 일은 모두 내가 맡는다. 상부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냐."

이... 이봐.... 해삼이니, 말미잘이니 하는 것은 좀 심하잖아...

"게다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지구인이 아니라는 보장이 어디있나? 그럼 그 수많은
염동력자들은 뭐지?"

"!"

난 순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뭐야... 저 사람... 그런 어처구니 없는 생각은... 염동
력이야 이미 수세기 전부터 확인된 힘이고 나는...

"됐어. 저 녀석은 염동력자. 끝. 수납 끝났으면 가봐."

... 뭐야... 저 사람은... 순진한거야 뭐야... 이런 염동력자가 존재할 리 없잖아. EOT를 가
진 게슈펜스트가 스스로 내게 다가온 것을 보면 알 수 있잖아. 게슈펜스트에 보관중인 아버
지의 편지를 읽어보면 알잖아...

하지만 말하지 못했다... 너무나도 듣고 싶은 말이었기에...

난... 인간이다.





언젠가 게슈펜스트의 내부에서 내 힘을 개방하고 그 글을 보여줬을 때 히로님의 반응은 너무
나 예상외의 것이었다. 단지 '헤에. 우주인이네?' 라는 말을 했을 뿐 달라진 것은 전혀 없었
다. 그 때... 정말 마지막으로 울었다. 이렇게... 기댈 곳이 있었구나... 내가 머물 공간
이 남아 있었구나...

"그렇기에..."

차가운 바람이 들어온다. 콕핏 앞의 장갑까지 깨져버려 훤히 노출된 조종석. 완벽히 날아가
버린 상반신. 팔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일어나게 하는 것은 상당한 고역이었지만 어떻
게든 일으킨 것 같다.

"그렇기에..."

녀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가고 있다. 이대로 저 녀석을 살려보낼 경우 그 곳이 부서진
다. 저 녀석이 부술 것이다. 내가 기댈 공간을...

"그렇기에! 난 그들을 지킨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난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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