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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진심~ten~ [完]

크크큭 2006.09.16 14:50 조회 수 : 431

'용기있는 자가 쟁취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부모님이 해외로 가지 않고 한 집에서 같이 살며 지내던 그 때, 아버지는 퇴근하시고 늦은 저녁 얼큰히 취하셔서 들어와서는 자고 있는 나를 깨워 항상 하시던 말씀이었다. 용기가 있는 사람은 뭐든 쟁취하기 마련이라고, 앞으로의 일도 용기를 가지고 해 나가라고, 그렇게 2시간을 똑같은 말만 반복하시다가 마지막에는 항상 나를 침대로 안아들고 재워주셨다. 부모님이 해외로 장기 출장 가시던 그 날 공항에서도 아버지는 내 손을 꼭 붙잡으시며 '용기를 가져라.' 라는 말씀만 남기시고는 뒷 모습을 보이셨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아버지의 말씀을 지금은 혼자서 지내고 있는 단칸방의 침대에 누워서 머릿속으로 곰씹고 곰씹어서 너덜너덜해질때 까지 되뇌어봤다.

용기를 가져. 쟁취해.

100번쯤 생각하고니까 비로소 아버지가 나에게 뭘 말씀하고 싶으셨던 건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에겐 항상 감사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번만큼 뼈저리게 느꼈던 적은 처음이었다.

용기를 가져. 쟁취해.

정말이지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용기를 가져. 쟁취해.

속으로만 끙끙 앓던 문제들, 고민들, 걱정들. 수십가지의 그것들을 이제는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용기를 가져. 쟁취해.

사랑에 있어서도 똑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용기를 가져. 쟁취해.

그녀를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Pipipipipipip...

머리맡에서 우는, 동물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일정한 리듬의 울림이 몽롱한 의식을 단번에 깨우는 듯 했다.

"우우움..."

자리에서 겨우 일어나 머리맡에 놓여진 전자 자명종의 버튼을 틱 하고 가볍게 쳐내렸다. '딸깍'하는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피피거리는 기계음이 멈췄고, 나는 그제서야 몸을 쭈욱 펴 기지게를 켜기 시작했다.

7시 27분.

나는 냉장고를 열어 5개 정도 남은 식빵봉지에서 2개를 꺼내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동고동락을 함께 해온 붉은색 토스트기에 집어 넣었다. 달랑 팬티 한장만 입은 채로 아직 닫지않은 냉장고에서 1000ml짜리 우유를 꺼냈다. 가벼운걸 보니 슬슬 하나 새로 살 때가 된것 같았다. 아무래도 우유회사에 전화를 해서 배달을 신청해야할 것 같았다. 매번 편의점에서 비싼 돈 주고 사먹기도 슬슬 부담스러워질 지경이었다. 조금 남은 우유를 깨끗이 비우고 나는 곧장 욕실로 향했다.







☆        ☆        ☆





교문을 들어서니 아직은 이른 시간인 듯, 학생주임도, 선도부원들도 교문에 서 있지 않았다. 운동장에는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부활동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저렇게 열심히 하는 이유도 기록을 깰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지. 교문 앞에서 멍하니 서서 운동장을 보고 있는 내 모습을 생각하니 왠지 멋쩍어져서 뒷머리를 긁으며 피식 하고 웃어버렸다. 그러고보니 이제 슬슬 히로시가 올 시간인데...

"여어, 히데키!"

잠깐. 분명 그 녀석이 올 시간이긴 하지만 나는 계약을 분명히 성사시켰을텐데..

나는 정말로 내가 생각하는 그 히로시가 맞는건지 상당히 삐걱거리는 움직임으로 뒤를 돌아봤다. 멀리서부터 '여어~'하는 포즈로 걸어오는 그는 분명히 히로시였다. 그것도 내 이름을 아주 활기차게 부르면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나는 나를 가리키며 고개를 갸우뚱 해봤다. 저쪽에서 두 손으로 크게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분명히 나를 가리키는 거였다. 근데 왜 갑자기 히로시가 땅으로 꺼지는거지? 아니, 그게 아니라 세상 자체가 아래쪽으로 핑그르르 도는 것 같은데. 게다가 그렇게 푸르던 하늘은 왜 또 갑자기 노란색인거야?

"...데키!! 히데키!!!"

-털썩.






☆        ☆        ☆







"놀랬냐?"

"그래 이 자식아. 정말 내가 죽는구나 하고 생각했을 정도니까. 어째서 내가 자주가는 사이트를 알아낸거야?"

"다 방법이 있지."

운동장에 쓰러져 있는 나를 부축해서 양호실까지 데려와서 병간호씩이나 해주고 있는 앞의 이 총각은 바로 나의 절친한 친구 히로시였다.

"그러니까 니 말인 즉, 미나미 때문에 끙끙 앓고있던 나에게 기회를 주고자 이런 짓을 벌였다는 거냐?"

"엄청나지 않냐? 나는 네녀석이 이메일주소를 썼을때가 가장 긴장됐다고. 너네 집 앞에서 줄기차게 기다리고 있다가 타치바나 녀석한테 연락이 오자마자 초인종을 누르고 편지를 바닥에 내려놓은 다음에 잽싸게 숨었단 말이지. 혹시나 들킬까봐 얼마나 조마조마 했는데."

나와 히로시는 네녀석이 나를 아는척 하지 않았을때 정말 놀랬었다는둥, 그 땐 정말 가슴 졸였다는둥  그때 있었던 일을 하나씩 이야기하며 박장대소 하기에 바빴다.

"그나저나, 미나미랑은 어떻게 됐어?"

".........상상에 맡길게."

"에에? 그게 뭐야."

"........."

나는 양호실 침대 왼편에 뚫려있는 창문을 바라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 했다. 창문의 오른쪽 끝편에는 제 2 버드나무가 한껏 자신의 자태를 뽐내며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자신의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을 쏟아내고 있었다.

"히로시, 너 그거 아냐?"

"뭐?"

창밖을 바라보면서 말을 걸었기에 히데키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건 소리만 안 질렀지 양호실의 구석구석을 오도방정 떨며 뛰어다녔다는 것. 그리고 그 뒤에는 내 어깨에 팔을 터─억 걸치며 '마음 고생 시켜서 미안해.' 라고 말해 줬다는 것.

"미나미의 입술은 사과맛이었어."

'축하해.' 라는 말도 잊지않고 해 줬다는 것.











Fin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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