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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진심~six~

크크큭 2006.08.24 22:50 조회 수 : 386

핸드폰을 열고 여러가지 문자가 쓰여있는 번호판을 몇개 누르면서 글자를 조합해 나갔다.

-히로시, 미안한데 먼저 가. 중요한 일이 생겨버렸다.-

전송버튼을 눌렀으니 이제 답장이 오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분명 히로시 녀석은 완전히 이해 해주거나, 완전히 화를 내거나, 둘중 하나의 반응으로 문자를 보낼 것이다. 전자의 경우

-알았어. 그럼 내일 보자구~-

그리고 후자의 경우

-내일 보자.-

어느 누가 봐도 같은 내용이지만 누가 판단해도 확실히 다른 뉘앙스인 내용.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 녀석 문자를 기다릴수 만은 없었다. 앞에 미나미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데이트 안갈거야?'라는 눈빛을 계속해서 쏘아댔기에 나는 5분내로 답장이 없으면 그냥 미나미와 함께 그토록 염원하던 길거리 데이트를 가기로 했다.

-우우우우웅.

그렇게 생각한 찰나 핸드폰에서 둔탁한 진동음이 들려왔다. 미나미를 한번 쳐다보니, 여전히 똑같은 자세에 똑같은 눈빛이다. 있는 힘껏 얼굴 근육을 사용해 그녀에게 웃음 지어보이고는 곧장 핸드폰을 열어봤다.

-그래~ 내일 보자 ^ㅡ^-

어울리지않게 이모티콘을 보낸 히로시였다. 하지만 그다지 기분 나쁜것 같진 않아보이니 이제 안심하고 미나미에게 들어온 데이트신청을 받아들일때다.

"어디 갈거야...?"

"밥먹으러."

당연할걸지도 모른다. 학교의 수업이 모두 끝날때면 5시 반은 족히 지날 때고, 게다가 오늘은 경계의 상담이 길어지는 바람에 그녀를 만나기 위해 교실에 들어간건 대충 7시가 다 되어갈 무렵이었다. 우리학교의 점심시간이 12시 30분으로 타 학교보다 20분정도 일찍 시작되니 지금 시간이면 누구라도 밥먹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거다.

"하긴, 배고프겠...."

-꾸르르륵.

붉은얼굴의 히데키다. 지금 내 상태는 분명 붉은얼굴의 히데키다. 이 빌어먹을 생리적인 현상은 시간과 장소, 심지어는 상대방을 불문하고 일어나고 있다. 필사적으로 내 배를 움켜쥐고 벌개진 얼굴을 겨우 들어올려 그녀를 힐끗 보는것으로 내 행동은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우훗..."

제기라아아아알!

"우, 웃지마! 너도 배고프니까 밥먹자는 얘기 꺼냈을거 아냐."

"맞아. 하지만 히데키 반응이 너무 웃긴걸. 이미 교실 전체에 울려퍼진 소리를 감추려고 배는 움켜쥐고 있질 않나, 얼굴은 빨개질대로 빨개졌지, 또 그걸 신경쓰면서 내 눈치를 보고...."

내 표정따위는 신경도 안쓰고 속사포처럼 내뱉는 말들은 하나같이 전부 내 가슴을 찌르고 있었다. 왼손으로 배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교탁을 부여잡은 채 계속해서 웃고있는 미나미를 보고 있자니, 슬쩍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대로 가다간 분명 바보 취급받고

"하지만, 그런 모습이 귀여워."

이미 어둑어둑해진 창문 밖으로 하나둘씩 별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        ☆













그녀와의 데이트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귀여워'라는 말을 듣고 또 한번 돌이 되어버린 내 손을 붙잡고 유유자적히 교실을 빠져 나왔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교문 앞이었다. 미나미를 향해 내리고있는 가로등 불빛은 평소에 항상 보던 누런색이 아니라 화사한 봄빛깔을 하고 있었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같은 물건도 그렇게 달라보일수 있다는걸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만큼 미나미는 나에게 있어서 여신 그 이상의 존재였다.

그 뒤로는 누구나 다 할수 있는 이성친구와의 식사한끼가 전부였다. 교문을 빠져나와 5분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시내에서 운영하고 있는 스파게티 전문점에서 그녀는 크림스파게티를 먹었고, 나는 그냥 토마토 스파게티를 먹었다. 둘다 배가 고팠는지 먹는 동안에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다 먹고나서야 비로소 대화를 시작했다. 이번 새 학기땐 같은 반이 되어도 좋았을걸 하고 푸념을 늘어놓으니, 그녀는 아직 1년 남아있는게 아니냐며 울상이었던-사실 그렇게 보이려고 일부러 인상을 찡그리고 있던-나를 달래주었다. 조용히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그녀를 보니, 더 이상 미소를 참을 수 없어서 씨익 웃으며 그런거냐고 대꾸해줬다. 그녀는 작년에 놓쳤던 교내수석을 이번에 되찾고 싶다며 이번에는 부모님께 부탁해서 잘 가르치기로 소문난 학원에도 등록을 했다고 했다.

밥을 먹고 나오니 그녀는 곧 학원갈 시간이라면서 나에게 손을 흔들며 등을 돌렸다.


















☆        ☆        ☆





내 존재를 다른사람에게서 지워간다는건 어떤 기분일까.

더 이상 생각하는것도 지겨워 그녀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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