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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 그네 초승달 그네..(完)

오얏나무 2006.04.11 09:22 조회 수 : 606

#에필로그

"...가 되는거지, 알겠지. 그럼 다음시간까지 페이지 122쪽까지 모두 읽어 오기로 하고, 오늘은 이상!"

늙은 교수의 꼬장꼬장한 목소리가 부채꼴 모양의 강의실 전체에 울여퍼졌다. 교수가 칠판 오른쪽에 나있는 문으로 강의실에서 빠져나가자, 부채꼴 모양의 계단 강의실에 앉아있던 학생들도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학생들 중에는 종은도 끼어있었다.

"...아아, 대체 무슨 말씀인지.."

종은은 한숨과 함께 책을 덮었다. 책꺼풀에는 회계학개론이란 금박 한문이 꼼꼼이 수놓아져 있었다.

"어이. 종은? 밥먹으러 가자!"

종은이 일어나 강의실을 빠져나가려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종은을 불러 세웠다. 목소리만 듣고서도 종은은 목소리의 정체를 알아버려서 뒤돌아 보지도 않고 대답해 주었다.

"주혁이냐? 이 시간에 밥이라니? 너 연강이지 않았냐?"

"여어, 자식. 당연히 대.출. 크크, 아무래도 딱딱한 수업보다는 오랜만에 한국 땅 밟은녀
석 얘기가 더 끌리는 법 아니겠냐."

"자식.."

종은은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한 달도 더 지난 일이었다.
고쿄 디즈니 랜드에서의 콘서트가 끝나자마자 미호는 드세 보이는 누님(나나세라고 불렸던것 같다, 좌우지간...)에게 끌려가 곧바로 헬기에 태워져 날아가 버렸고 그 아이와는 그렇게 어이없고 갑작스런 이별이 마지막이었다.

다음 날, 하루종일 자신이 보이지 않자 걱정이 되었던지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온 여행사 가이드 덕분에 종은은 관광객들과 무사히 합류할 수 있었다. 그리고나서 종은은 모든 패키지 일정을 죄다 취소해 버린 다음 바로 한국 행 비행기를 타고 돌아와 버렸으니 그의 일본 여행기는 길어야 2박 3일 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짧은 시간.....
그 짧은 여행에서 남은 것이라고는 일본에서 쓴 카드값의 고지서와 몸 여기저기의 생채기들, 스트레스와 피곤으로 인한 어깨결림 정도 일까? 아, 하나 더 있었다. 지금 종은의 손에 쥐여진 모자.

종은은 모자를 바라보았다. 챙이 조금 튿어진 청모자. 그것만이 꿈같은 그 날의 일이 꿈은 아니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빙긋, 미호를 떠올리며 종은은 작게 미소지었다.
한국에 돌아와 무심코 신문을 집어 들었을때 그녀의 기사가 실려있었다.

'2집 홍보 게릴라 콘서트!! 타이틀 곡은 초승달 그네!'

기사 어디에도 종은 자신의 이야기는 실려 있지 않았다. 조금 눈길을 끄는 점이 있었다면,

'지나스가 유괴된 상황을 연극. 경찰은 실제 상황인 줄 안 팬의 신고에 정말 출동하기도....'

유괴범역인 고토다케 타쿠미씨와의 인터뷰 내용이 그 아래 실려 있었고 밴드와 함께한 이번 공연은 성공적인 홍보였다는 내용으로 기사는 마무리되어 있었다.  

"그래도, 일본 최고의 스타였다니, 세상에...."

종은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것 같았다.

"다시...... 만날 수 있으려나? 아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역시나 무리겠지?"

그가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는데,

"야,야. 만나기는 뭘 만나. 근데 너 어제 티비봤냐? 장난 아니었어! 완전 특종! 내가 소스 떠왔지롱, 밥먹으러 가면서 보여 줄게. 이거 대박이야, 대박. 이게 뭐냐면..."

"뭔데?"

호들갑 떠는 주혁을 어이없이 바라보다 종은은 그의손에 들려 있던 PMP를 뺏어 들었다.

"어? 어, 야!"

막무가네로 뺏어가는 종은에게 당황한 주혁. 종은은 그런 그에게 아랑곳하지 않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재생되는 동영상에 종은은 하마터면 PMP를 떨어뜨릴 뻔 했다.
종은의 그 모습에 주혁은 놀라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야,야! 잘좀들고있어. 그게 얼마 짜린데.. 아직 할부가 3개월이나 남았다구."

"나,나카시마상?"

종은은 액정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PMP안에 저장 되어 있는것은 그녀의 인터뷰 동영상이었다.

"나카시마상은 개뿔! 임마. 넌 지나스도 모르냐? 얘, 이번에 .. 아풉풉! 야! 최종ㅇ.."

종은은 주혁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아버렸다. 잡음은 그만 넣어 달라고!....
PMP 안에서 미호가 말하고 있었다.

"..이번 내한 목적은 한국에서의 2집 홍보활동과 앞으로 한국 진출에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분위기도 알아보고자해서..."

사회자가 물었다.

"한국 진출을 계획하고 계시는군요. 언제즘 지나스양의 활동을 한국에서도 만나볼 수 있게 되는 건가요?"

"아마, 여름 즘이 되지 싶어요.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활동할것 같네요. 그때는 많은 사랑 부탁드려요."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며 웃어보이는 그녀. 종은은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입가에 걸어 놓고 있었다. 사회자가 다음 질문을 던졌다.

"이번 타이틀곡 '초승달 그네'는 밴드와 함께 하고 있어서 더욱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데요, 한간에는 지나스씨가 밴드에 속해버린것은 아니냐는 우려도 있습니다. 그건 어떻게...."

"하하, 그런 일은 없어요. 그 밴드는 도쿄 몽키즈라고 같은 소속사의 밴드에요. 이번 초승달 그네의 녹음을 공동으로 했었죠. 그 밴드의 보컬인 슈지군과 같이 노래를 부르는게 곡의 분위기를 맞추는데 더 좋겠다고 그러시더라구요. 참, 올 여름에 도쿄몽키즈의 1집도 발매되요. 한국에서는 만나 볼 수 없으시겠지만, 이미 일본에선 며칠전 발매된 싱글이 엄청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실력파 밴드죠."

"아아, 그렇군요. 그럼 마지막으로 가벼운 질문 하나. 모자 수집이 취미라고 하셨는데."

"네, 셀 수 없이 많이 있어요. 모자만 놔두는 방이 따로 있을 정도인걸요?"

"그럼 지금 쓰고 있는 것도?"

사회자는 지나스가 쓰고 있는 갈색 비니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이거요? 이건.. 흠."

"친구가 된 기념일까나? 뭐 그런거에요."

대답하는 그녀의 볼이 조금 빨개져 있었다.
강의실은 어느새 텅비어 있었다. 모두들 다음 수업의 학과장으로 뿔뿔이 흩어지거나 밥을 먹으러 가거나 한것 같았다. 강의실 계단식 의자 셋째줄에 서서 PMP 액정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종은과 그런 종은을 노심초사 바라보고 있는 주혁, 그 둘만이 아직까지도 텅빈 강의실에 우두커니 남아있었다.

주혁은 종은이 아무말도 못하게 자신의 입을 가로막고 있었기에 조용할 수 밖에 없었고, 그가 조용해지자 강의실 안에는 지나스의 인터뷰 음성만이 또렸이 메아리쳤다.
그 강의실 전체에 내려진 정적을 깨뜨리며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여자아이.
주혁은 다음 수업 학생인가?하고 생각했지만 오늘 이 강의실에서의 수업은 이전 수업이 마지막이었다. 아무튼, 상관없지 하며 PMP를 돌려 받으러 손을 휙휙 내젓는데,

"얼래?"

언제 다가왔는지 그 여자 아이는 종은의 뒤에서 그가 손에 들고 있었던 PMP를 빼앗아 들고 있었다.
종은의 시선은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난 PMP를 따라 움직였고,

"우으, 그어 애거아..(그거 내거야..)"

주혁의 틀어막은 입을 내팽겨 칠때 종은은 그녀를 자신의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 순간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없어 눈을 부볐다가 다시 그녀를 확인했다.
진짜 그녀였다.

.....말도 안돼...

"토모다찌.."

하고 웃으며 종은의 갈색 비니를 수줍게 내미는 미호가 앞에 있었다.

"이거 돌려주러 왔어요."

지나스, 아니 나카시마 미호는 언젠가처럼 종은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후의 햇볕이 따사로이 창을 너머 스며드는 강의실 안. 그 따스한 햇볕보다도 빛나는 미소를 지닌 소녀가 종은의 앞에서 웃고있었다.

종은에게 있어 그것은,

생애 최고의 미소였다.

내밀어진 미호의 손을 비니와 함께 슬며시 붙잡았다. 지금 잡은 이 손을 다시는 놓치지 않을거라고다짐하면서..........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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