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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 그네 초승달 그네..(9)

오얏나무 2006.04.10 11:00 조회 수 : 430

#15

'어라?'

나쁘지 않은 노래라 슈지는 생각했다. 자신들의 노래 'Mad Monday'를 부르고 있는 지금, 여태까지 연습했던것보다 훨씬 나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그였다. 그럼에도 관객들의 호응은 작아져만 가고 있었다.

'대체... 제기랄! 여길봐! 노래를 들어줘! 이 기회가 마지막이라구!'

연주는 계속되고 있었고 슈지는 노래를 멈출 수 없었다.
자신의 뒤에, 기타를 들고서 한음한음 최선을 다하고 있는 타나베가 있었으니까. 자신을 믿어주는 유일한 사람이 있었으니까.
슈지는 고개를 돌려 타나베를 바라보았다. 연주는 하고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카구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와중에도 무대 앞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만 갔다.

공연은 실패인가.... 이대로 끝나는 건가.
아니, 이대로 끝내긴 싫었다. 끝낼 수 없었다. 자신과 타나베 음악을 위해 집을 뛰쳐나온지 10년째였다. 끼니를 굶은 적도 많았고 먹고 살려고 노래를 그만두려 했었던 적도 있었다.
둘이서 필사적으로 기어오다시피한 그들이었다.

너무 힘들었지만, 돈이 없어 길에 나 앉으면서도, 쥐꼬리만한 공연 수입의 라이브카페에서 잘리면서도, 수없이 넘어지면서도 노래를 부르기 위해 참아왔던 10년이었다. 병신이 되어버린 다리를 질질 끌고 온것 같았던 지난날.
지칠대로 지쳐버린 둘은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올해가 마지막이 될 것임을 예감하고 있었다.

지금 이 무대 이후, 또다시 노래부를 기회를 잡을 수나 있을까?
한번 더 둘이서 같이 할 수 있을까?

'그 아이는 내 뒤를 이어 의사가 될걸세. 지금은 잠시 빌려주는 것 뿐이야. 조만간에 데리러 가겠네. 강제로라도 데려가겠어.'

몇달 전 걸려왔었던 타나베 아버지의 전화. 타나베에겐 알리지 않았지만 슈지는 생각하고 있었다.
녀석은 나와 달리 보장된 미래가 있는 놈이라고. 이번에 안되면 녀석을 위해서라도 이제 그만 놓아 주자고..........

하지만 그의 마음은 놓아주기 싫다고 말하고 있었다. 언제나 함께 무대에 서고 싶다고, 그래서 지금 이 무대는 포기 할 수 없었다. 단 한사람이라도 듣고있다면 피를 토할때까지 부르리라,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슈지는 혼신의 힘을 짜냈다. 여기야! 노래를 들어줘!
그의 간절함은 목소리를 타고 흘렀다. 그리고 뒤이은 곡의 클라이막스, 슈지는 혼신의 목소리를 뱃속에서 짜내었지만 정말 운이없게도 마이크는 그의 목소리를 외면해 버렸다.

끼이이이이잉!
스피커에서 고주파수의 기계소리가 튕겨져 나왔다. 쇳소리와도 같은 그것은 끔찍한 느낌이었다.

아......
마지막으로 무대 앞에 서있던 사람이 떠났다.

아..........
슈지는 뒤를 돌아 보았다.

아.............
연주소리가 멈추었다.

아.................
물 비슷한것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제기랄,,, 제기랄!
악을 내지르듯, 고래고래 부르고 있는 슈지의 노래 소리 만이 정적속에 잠긴 무대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더이상 노래인지 울부짖음인지 알수없게 되었을때, 슈지의 등뒤로 타나베가 다가와 슈지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래도 슈지는 멈추지 않았다. 타나베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으며 슈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다.. 끝났어, 임마............. 이제 그만해도 돼, 슈지."

그제야 슈지의 노래가 잦아들었다. 그리고나서 얼이 빠진듯 털썩 주저앉은 슈지는 거친 숨소리만 내뱉어 댈 뿐이었다.

허억....헉......

".......가자."

타나베는 그렇게 말하며 뒤돌아 섰다. 그의 볼에도 슈지의 것과 같은 액체가 흘러 내리고 있었다. 어느새 스틱을 놓쳐버린 카구라의 코 끝도 빨개져 있었다.
끝. 끝난건가.......

"하하.."

슈지는 작게나마 웃었다. 너무나 가볍게 날아갈듯, 하지만 자조적인 슬픈 웃음. 한번 웃고나니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를 향한것인지 알 수 없는 분노만이 가슴 속에서 치솟아 올랐다.
그래서 일어섰다. 그리고 슈지는 관객석으로 뛰어내렸다.

"어딜가는거야, 슈지!"

등 뒤에서 카구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굴보러."

슈지가 읊조렸다. 카구라에게는 닿지 않을 목소리였다.
그렇게 슈지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는 곳을 향해 걸어나갔다. 방금 전 까지만해도 무대 앞에서 공연을 보고있었던 사람들이었다. 무엇때문에 그들이 공연을 보다가 죄다 그곳으로 몰려갔던 것인지 슈지는 확인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자신들의 공연을 망쳐버린 그것에게 시원하게 한 방 갈겨주지 못하면 속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슈지는 걸어갔다. 개미떼처럼 몰려든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록 시끄러움은 더해져만 갔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쉬 같은데 것이 터져댔다.
그리고 슈지가 사람들 속에서 걸음을 멈추었을때, 그는 '왈라키아 공포 체험' 이라는 이름의 공포 체험관 앞에 서있었다.





#16
사립 탐정 타쿠미는 7년 만에 찾아온 놀이동산을 3시간이 넘도록 배회하다가 갑자기멈춰섰다.
그는 멈춰선 그 자리에서 허리를 굽혀 모자 하나를 주워 들었다.
여러 사람들에게 밟혀서 더러워진 청모자였다. 그 모자의 챙에 가죽이 튿어진 듯한 부분이 보였다. 밟혀서 그렇게 된것 같지는 않았다.
조금더 그 모자를 들여다 보자 모자 안쪽에 영어 이니셜로 M.H.라고 쓰여진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흠, 하며 모자를 챙겨 들고서 타쿠미는 고개를 들었다. 주위를 살피자 더 멀리 왈라키아 공포 체험관 앞에 족히 수백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혼잡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말 그대로 사람의 파도. 출렁이는 인파였다.
그 인파 뒤로 몇개의 케이블 TV 방송국들이 취재 차량을 세워 두고 있었고,

부다다다다다
하는 큰소리와 함께 NHK의 취재 헬기도 하늘에 그 모습을 나타내었다.

"저긴가. 쓰읍, 이거 조용히는 힘들겠는데."

그렇게 말하며 그는 핸드폰을 열었다.

"어, 나나세? 어, 그래. 지금 막 찾은것 같애. 어디냐고? 지금 온다고? 아냐, 아냐. 그럴것 까진 없어. 그냥........ 음, 그래. 지금 NHK틀어 볼래? 사무실에 TV있었잖아. 아니, 왜 그런지는 묻지 말고 그냥 틀어봐 그럼 자연히 알게돼. 알았지? 그럼 끊는다. 데려갈 수 있으면 데려갈게."

딸각
타쿠미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그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데려 갈 수 있으면 말이지...."

어느덧, 소란스런 디즈니 랜드의 하늘을 석양빛이 발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                        ◆                          ◆


타쿠미와 나나세의 통화가 끊어진 뒤 정확히 30분. 수많은 방송사와 신문사의 취재진들 앞에서 J.ROK의 대표이사는 공식 발표를 시작했다. 어느 익명의 제보자가 핸드폰으로 찍은 종은과 미호의 사진이 인터넷에 나돌기 시작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있었다. 지나스의 옆에 있었던 괴한(?)의 정체와 그리고  지나스와의 관계에 억측들이 난무하고 그로부터 숨겨둔 남자 친구와의 밀회, 지나스 염문설, 열애설 등이 시시각각 튀어 나오자 J.ROK 측에선 손을 써두지 않을 수 없었던것 이었다.

이 떄다 싶어, 평소 J.ROK을 탐탁지 않게 여겨오던 신문사들은 화보집과 방송의 펑크 사태, 연락 두절 등의 공격적인 기사로 지나스와 J.ROK을 깎아내리기 사작했고, 어떤 경로로 입수한 정보인지 모신문의 특간 일면에는 J.ROK 측이 지나스의 행방 불명 사태를 알면서도 방관하고 있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J.ROK의 홈페이지는 트래픽 초과로 이미 예전에 마비 상태였고 사태는 조용히 무마 시킬 수 없는 수준으로 발전해버렸다.
수습할 길 없는 그 혼란 속에서 더욱더 큰 혼란을 가져다 준것은 대표이사의 한마디 였다.

".......입니다. 불미스런 이번 사태에 대해 다시한번 반성하고 깊게 사죄 드립니다. 허나, J.ROK측은 그 어느것도 숨긴것이 없으며 이는 그 괴한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일본의 스타 지나스를 유괴한 것으로 보여.........."

대 여섯대의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도쿄 디즈니 랜드를 향해 출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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