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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 그네 초승달 그네..(8)

오얏나무 2006.04.08 18:23 조회 수 : 428

#13

'내가 뭘 어쨋다고, 쳇! 타나베자식."

슈지는 투덜거렸다. 타나베가 연습실을 나가버린 후, 자신도 연습실에서 뛰쳐나와 버렸다. 그리고 곧장 버스 정류장으로 가 아무 버스나 탔다. 한적한 버스에 빈자리는 많았고 슈지는 그 빈자리 중 창가 쪽으로 아무자리에나 앉아버렸다. 그러고나선 계속 저렇게 툴툴거리고 있는 채였다.

부우우웅
저음의 엔진 소리를 차체 내부에 울리며 버스는 잘도 달려댔다.

'목소리가 안나오는데 나보고 도대체 어쩌란 말이야! 빌어먹을!'

슈지는 있지도 않은 타나베를 향해 툴툴거리며 차창으로 시선을 가져갔다. 버스 창 너머로 교복을 입은 두 남학생이 나란히 걸으며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젠장, 고삐리들!'

애꿎은 학생들을 욕하는 슈지, 타나베 일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 슈지에게 자신 이외의 모든것이 못마땅하게  보였다.

'대체 내 진짜 목소리가 뭔데,타나베? 그런게 있기나 하다면 내가 더 알고싶다.'

눈 앞에 들어오는 창 밖의 두 학생들에게 슈지는 자신과 타나베를 어느 사이엔가 투영하고 있었다.

슈지에게 타나베의 첫인상은 최악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고, 빛더미에 올라 앉은 가정을 버티다 못해 도망간 엄마. 고등학생이었던 슈지는 엄마가 집을 나간 그날 이후부터 머리를 기르고 염색을 했다. 모든것을 포기하고 술만마셔대는 아버지와 집안 곳곳에 붙어있는 차압 딱지가 보기 싫어 신경질적으로 집을 나왔다. 그런 상태로 며칠간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툭하면 싸움질이었다.
세상따위 망해버렸으면 했다.

"형편없어, 이 따위...."

그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돌아다니던 슈지.
그가 학교에서 문제아로 찍히는 데 한달이면 충분했다.
친구라고 믿었던 녀석들은 자신을 외면했고 선생들은 무슨 쓰레기 보듯 자신을 쳐다보며 심지어 자신의 존재를 무시하기도 했었다. 너 같은 거 학교에 없는게 낫다고.... 그래서 쳤다. 그 말을 내뱉었던 담탱이를...

정학을 먹었고 아버지가 학교에 와 무릎을 꿇고 빌었다. 그 모습이 보기 싫어 또다시 집을 박차고 나왔다. 이번에는 다신 들어가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세상따위 망해버려.....

집을 나오기는 했지만 이제 막 열여섯인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배고픔에 도둑질을 하고 의미없는 싸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 결국 마지막으로 앉아있었던 곳이 경찰서의 의자였다.
또, 한번의 정학. 재미없어, 라는 그의 말처럼 지루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슈지는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다. 출석일수가 모자라 유급이 되었다. 그렇게 학교로 돌아왔지만 이미 자신은 학교 안에서 공포의 대상이 되어있었다.

친구도 없었고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먼저 말을 걸기도 귀찮았다. 어차피 친구라는것 껍데기 뿐이니까.
그러다 그 녀석을 만났다.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이상한 녀석.
타나베였다.

타나베는 전학생이었다. 어긋난 곳이라고는 한군데도 없는, 뭐랄까 모범생의 표본을 만들어보라하면 저런 모습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 그런 녀석이었다. 아버지는 의사에 어머니는 잘나가는 디자이너. 화목하고 여유있는 가정. 슈지에게 없는 것을 타나베는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녀석을 볼때마다 배알이 꼻리고 재수가 없었다.

녀석이 말을 걸어오는게, 자신이 정해놓은 경계 안으로 서슴없이 들어오는게 싫어서 슈지는 일부러 차갑게 대했다. 타나베가 슈지에게 말을 걸때면 도리어 같은반 다른 녀석들이 더 긴장하곤 했었다. 그만큼 그때의 슈지는 날이 서있었다.

그런데도 녀석은 포기하지 않았다.
슈지가 상대해주지 않아도, 심한 말로 쫓아내도, 타나베는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은듯 다시 말을 걸어주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 녀석은......
그러다가 그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며칠전 오락실에서 손봐줬던 인근 고등학교 놈들이 길가던 슈지를 습격한 것이었다. 자신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던 타나베도 얄궂게 휩쓸려 버렸다.
둘은 흠씬 두들겨 맞았다. 이 쪽은 둘, 그 쪽은 여덟. 당해낼 숫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슈지, 자신보다 더 많이 맞았을 그 샌님은 어떻게 된것인지 계속 두들겨 맞으면서도 시체처럼 뻗은 자신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만해! 더이상은 안돼! 이 녀석의 목은 백만불짜리라고! 다치면 늬들이 책임질거야!"

녀석이 날 가로막고선 그 일당들에게 내뱉었던 말이었다. 녀석들은 기가찼던지 허허 거렸지만 어이가 없는 것은 오히려 슈지 쪽이었다.

백만불이라니..... 이 따위것 백엔을 쳐줘도 아무도 안사가.

결국 경찰이 출동해 그놈들은 도망쳤고 자신과 타나베는 나란히 병원신세를 져야했다.

그 다음은 난리도 아니었다. 녀석의 부모가 학교로 찾아와 난동을 부렸고 선생이란 작자들은 슈지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웠다. 퇴학이 불가피해져 버렸다.
안그래도 모든게 재미없어져 버린지라 슈지는 담담히 퇴학을 받아들였다. 이미, 자신을 포기하고 있었던지 아버지도 아무 말씀을 안하셨다.

퇴학 수속을 밟기 위해 마지막으로 학교를 찾았던 날, 서류를 던져 놓고 교무실을 나오는 자신을 타나베 자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일이 있었던지 녀석은 귀를 뚫고 머리도 노랗게 물들인 채였다. 그 꼬락서니를 어이없이 바라보다 슈지가 먼저 말했다.

"어이, 범생이. 미안했다. 괜히 나때문에 말려들어서. 나 이제 학교 관두니까 앞으로 괜
히 따라다녀서 그런 일에 휘말리는 일 없을거다. 그러니까 학교생활 잘해라. 염색같은거 하지 말고, 뭐냐 그게? 하나도 안어울려."

자신의 비꼬는 말투에 녀석이 대답했다.

"아, 나도 미안. 학교 생활 잘하라는 니 부탁 못들어 줄것 같아. 나도 방금 자퇴하고 나왔거든. 안다녀, 이 학교."

"너..미쳤.....?"

"어, 아무래도 그런것 같아. 미친것 같아. 미치지 않고서야 집 나와서 널 따라다닐 생각을 할 리가 없지."

"너 가출까지?"

정말 어이가 없는 놈이다 싶어 슈지는 등을 돌려 버렸다.
뚜벅 뚜벅, 복도를 걸어가는 내 뒤로 뚜벅 뚜벅 녀석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크큭, 이거 나만큼 어이없는 놈일세...

슈지는 씁쓸히 미소를 짓고선 천천히 걷는 속도를 줄여갔다. 자연히 얼마후 녀서과 자신은 나란히 복도를 걷고 있었다. 마치 친구처럼.
서로 아무말도 없이 그렇게 걷다, 학교를 빠져나오고서야 슈지가 입을 열었다.

"야, 내가 왜 백만불짜리냐?"

녀석이 답했다.

"들었거든. 아무도 없는 방과 후 도서관에서."

녀석은 사람좋게 미소지었고 슈지는 뺨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과 후, 6시가 넘어 다들 학원이다 과외다 학교를 마치고 빠져나가 버리면 아무도 없는 텅빈 도서관에 앉아 불렀던 흥얼거림같은 노래,

...........Mother Of Mine...........

그리고나서 많은 일이 있었고, 슈지와 타나베는 밴드를 결성하였다.

"백만불.....짜리 목인가.."

버스 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옛 생각에 잠겨있다가 슈지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벨을 눌렀다. 내려야겠다.
자신의 목에 백만불이란 감정서를 내려준 엉터리 감정사를 실망시킬 수야 없지 않은가.....
지금 출발하면 아슬아슬 하려나?


◆                                       ◆                                        ◆


헉..헉..
슈지는 죽어라 달려 디즈니 랜드 안 공연장소를 찾았다.
무슨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 도착하는 도중 네번정도 부딫힐 뻔하고 두번정도 넘어질 뻔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공연장에 도달할 수 있었다. 덕분에 슈지의 꼬락서니는 말이 아니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슈지는 숨을 골랐다.
건너편에 보이는 무대는 이미 공연 준비를 위해 분주해보였다.
거대한 스피커와 조명장치가 설치되고 있었고, 공연팀들은 자신의 악기를 제각각 연주해보며 악기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늦지는 않아서.....
타나베와 카구라는 무대 뒤쪽 왼편에 있었다.
슈지가 다가가자 자신의 기타를 조율하고 있던 타나베는 슈지를 거들떠 보지도 않은채 얘기했다.

"5분 늦었다, 임마. 보컬이란 놈이 목도 안풀고 할 수 있겠냐?"

시니컬한 자식, 그래도 저것이 나름대로 녀석의 사과이자 자신을 걱정해서 하는 말임을 슈지는 알고있었다. 고맙지만 왠지 이쪽도 넙죽 받아주기는 싫었다.

"그러는 너는? 그렇게 박차고 나가서마무리 연습이나 해봤냐?"

"박차고 나가긴, 뭘? 화장실 다녀왔더니 휑하니 없어진것은 너였잖아. 오버하기는.."

푸훗
카구라가 웃었다.
슈지는 카구라에게 찌릿하고 따가운 시선을 한번 보내고 나서 타나베를 쳐다보았다.
백만불짜리 목이야.....그렇게 말해주던 녀석.
슈지가 타나베에게 무슨 말을하려 입을 떼었다. 그때 시끄러운 공연 준비를 한순간에 불식시키는 확성기의 소리가 들려와 슈지는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을 다시 삼킬 수 밖에 없었다.

"10분 뒤에 시작합니다. 모두 스탠바이해주세요!!"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확성기의 소리를 듣고선 주위는 더욱 분주해졌다. 타나베도 자신의 기타를 주워들고 어깨에 둘러메었다. 그리고 슈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가자, 망치지마라. 슈지."

"너야 말로다, 타나베."

둘은 서로의 주먹을 맞부딫히며 무대 뒤편, 대기장소로 돌아갔다. 6개의 인디밴드가 참가한 이번 공연에서 그들의 순서는 두번째였다.
조명이 비춰지는 무대와 달리 대기장소는 어두웠다. 누가 누구를 보고있는지 확실히 구별할 수 없는 그 어둠 속에서 타나베는 슈지에게 물었다.

"근데, 아까 하려던말 뭐야?"

"응? 아니, 아무것도 아냐."

"뭐야, 싱거운 녀석."

슈지는 응..이라고 작게 읊조리며 입을 닫았다. 그리고 행여나 누군가에게 들릴새라 속으로 작게 말했다.

..고마워..
처음으로 말을 걸어 줬을때도,
자신을 쫓아 집에서 나왔을때도,
함께 밴드를 결성해 주었을때도....또, 방금 전에도.
말하지 못한 그 한마디.

첫무대인 '스켈 인 더 핸드'의 노래가 무대 뒤편에 메아리처럼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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