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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 그네 초승달 그네..(3)

오얏나무 2006.02.27 08:41 조회 수 : 437

#6.
'들어오지 마세요.'란 간단한 플라스틱 경고문구가 문고리에 걸려있었다.
그 경고를 무시하고 나나세는 문을 열었다. 방과 복도를 경계지어주던 문이 활짝 열리자 방 안의 풍경이 나나세의 눈에 들어왔다.

"아주 장관이네..."

즐겨입는 검은 정장의 소매를 움켜쥐며 나나세는 자신의 감상을 피력했다.

"50평짜리 방을 이렇게 어지를 수 있는 재능은 아마 흔치 않을거다, 요 꼬마 아가씨야. 대체 어디로 간거야?"

벽을따라 거대한 장롱들과 수납장, 방 한가운데엔 전신거울이 배치되어 있을 뿐인 이 방. 넓디 넓어 횡뎅그렁한 느낌마저 주었던 이 방에 장롱 속 정리되어있던 모자들이 무슨 원폭이라도 맞은 듯 온 사방에 널려있었다. 전혀 횡하지 않았다. 오히려 빈틈없이 쏟아져 방바닥을 나뒹구는 모자덕에 발디딜 틈이 없었다.

모자들을 모두 토해낸 수납장들은 하나같이 문짝을 열어 자신의 내부를 자랑하고 있었고, 무슨 일인지 전신 거울은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방에 왔다 간 것 같기는 한데...... 결국 여기도 없나? 도대체 얘는 아침 스케줄 다 빵꾸내고 어딜 간거야! 핸드폰도 안받고!"

일본 최고의 아이돌 '지나스'의 매니저인 나나세는 신경질적으로 발에 걸리는 모자들을 걷어차며 방 한가운데로 걸어가 거울 앞에 섰다.
원폭 피해현장같은 방 안을 빙 둘러보다 그녀는 땅이 꺼질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후...
다정리하려면 한 2박 3일... 아니야, 3박 4일은 족히 걸릴지도......
어지름쟁이 아이돌 덕분에 일본 최고의 정리가가 되어버린 나나세, 그녀가 전문가의 눈으로 뜯어본 이 방의 감정 결과였다.

"에라! 이 녀석, 잡히기만 해봐!"

그녀는 프로 정리사의 습관에 따라 널부러진 모자 두어개를 주워들며, 그녀 담당인 지나에게 들리지도 않을 호언을 내뱉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손 길로 주위 모자들을 스타일데로 분류하여 정리한 다음, 청장을 비추고 있던 거울을 바로 잡는데,

"응?"

거울 정면, 포스트잇같은 메모지가 붙어있는 것을 그녀는 발견했다.

"뭐지, 이거?"

그녀는 메모지를 뜯어 눈가까이 가져갔다. 그녀의 동공이 메모지 위를 훑는가 싶더니 이내 손이 덜덜 떨리고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숨도 가빠졌다. 결국 메모의 마지막까지 읽어내린 나나세는,

"이..이이이.."

하며 부들부들 떨다가 그 메모지를 북북 찢어버렸다.
찢어버린 메모를 바닥에 던져버리곤 나나세는 잠시 3초간 호흡을 가다듬었다. 진정하자.. 진정..
관자 놀이를 엄지로 꾹꾹눌러 표정을 냉정하게 가다듬은 다음 나나세는 거센 발걸음으로 빠르게 방 밖을 향해 걸어나갔다.

쾅.
나나세가 방을 나서며 문을 닫았고,

"&%#$@!!!!!!!!!"

뒤이어 방 문너머로 들려오는 맹수의 포효같은 소리.
아래층, 사무원 나카타씨는 들고있던 커피를 떨어뜨릴뻔 했단다.

'언니 미안, 나 목소리가 안나와서 며칠 쉬었다올게. 오래 걸릴지도 몰라. 그때까지 스케줄 뒷처리랑 사장님 블럭 부탁할게. 부탁해~'

마지막에 붙은 윙크 이모티콘에 하트 낙서는 지나스의 애교로 봐주어도 되는것일까?
어쨋든 이것이 나나세가 읽은 메모의 내용이었다.
이와같은 오전의 상황을 요약해서 말하고는 나나세는 회의실 의자에 털썩, 쓰러지듯 앉았다. 일본 최고 인기 아이돌의 매니저인 그녀, 다른건 몰라도 그녀가 받는 스트레스는 일본 최고임에 틀림없었다.

타원형 테이블을 가득 메운 16명의 J`ROK사(社) 간부들은 모두 아무말도 없었다. 간혹, 으흠.흠 헛기침을 해대는 사람이 두어명 있었을 뿐 회의실엔 싸늘하고 적막한 정적이 이어졌다.

사고야,사고.... 그것도 대형이야, 이건.
나나세는 항상 구비하고 다니는 위장약을 안주머니에서 꺼내며 중얼거렸다. 지익,하고 포장지를 조금 뜯어내어 약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요즘 들어 두어개 더 들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매년 일본 아이돌의 40%를 배출 해내는 J`ROK. 쇼, 영화, 드라마, 가요 등의 연예계에서 그들의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4년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4년 전, 어디서나 승승장구하며 연예계라는 트랙을 독주하던 그들 앞에 안티 J`ROK을 표방하며 ,'실력있는 인디밴드의 발굴'을 모토로 나타난 경쟁사 '인디 재팬'

인디 재팬은 J`ROk과는 전혀 반대의 컨셉과 라이브 콘서트 위주의 활동으로 당시 굉장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길거리 공원에서 2만이라는 숫자를 불러 모으며 인디 재팬의 이름을 세간에 알린 "신주쿠 게릴라 콘서트".
그 공연을 기점으로 인디 재팬은 J`ROK을 위협하며 급격히 성장했다.

덕분에 이제 쇼와 드라마, 영화에서는 다소 뒤쳐지는 감이 있었지만 가요  쪽에서 만큼은 둘 중 어디가 위라고 단정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아니, 최근 들어선 인디 재팬 쪽으로 힘이 쏠리는 듯한 모습도 보여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시점에서 이런 일이 터지다니.........
2집 발매를 코 앞에 두고 J`ROK의 메인 지나스가 잠적. 그야말로 신문 일면 감이었다. 아니, 만에 하나 이 일이 매스컴에 들어가는 날엔..........

휴....
나나세의 위가 다시 쑤셔왔다. 먹다 남은 위장약의 반을 계속해서 들이키려는데,

탕!
탁자 끝자락에 앉아있던 사장이 탁자를 사정없이 내려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덕분에 나나세는 위장약이 식도를 잘 넘어가다말고 놀래 역류하는 현상을 겪어야만 했다.

"컥, 쿨럭!"

"무슨 일이 있어도 지나스를 찾아내십시오. 갈 만한 곳 다 뒤져보고 사내 모든 인력을 동원해서라도 가장 빠른 시일 안에! 찾아내서! 내 앞에 데려오십시요! 당장!! 절대 매스컴에 이 일이 노출되어선 안됩니다. 2집 발매 일정도 연장없이 계획대로 밀고 나갈 겁니다. 만에 하나 이 일이 잘못되는 날엔 전원 30%봉급 삭감할테니 그리 알아두세요! 이상!"

흰색 정장을  구김하나 없이 차려입은 엘리트 풍의 젊은 사장은 그 말만을 남기고 성큼성큼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사장의 모습이 문 밖으로 사라지자 회의실 여기저기서 드르륵, 의자 굴리는 소리와 함께 간부들이 일어났다. 삽시간에 회의실은 정적대신 웅성거림으로 가득 채워졌다.
누군가는 이 일의 책임을 추궁하였고, 또 누군가는 이런일이 언젠가 터질 줄 알았다고 비아냥 거렸다. 모두들 서로에게 지지 않으려는 듯 한마디씩 던졌다.

하지만 그 많은 웅성거림 중에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지나스를 찾아서 데려올 것인가에 관한 영양가있는 내용이라곤 전무했다.
소모적인 시끄러움 속에서 정작 사건의 가장 중심에 서있는 매니저 나나세는,

쿨럭!
목에서 코로 역류하는 지독한 위장약 냄새를 맡으며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7.
쿨럭!
입 속에 있던 라면을 뱉어내며 나카시마 미호는 컥,컥 거렸다.

"우에.. 뜨겁잖아, 이거..."

라며 볼멘 목소리로 중얼거리다 아차!싶었다. 이른 아침부터 장사를 시작한것 같은 포장 마차 안, 자신의 옆자리에서 라면을 먹고있는 저 남자....... 봐,봤을까? 아마도 본것 같았다. 그는 약간 미간을 찌푸리며 애써 미소짓고 있었다. 볼이 화끈거렸다. 아냐, 부끄러워서가 아냐. 단지... 아까 뺨맞은것 때문에 그런거야...
부끄러워 발개진 볼을 다른 탓으로 돌리며 미호는 자신을 보고있을까, 흘끗 남자를 쳐다보았다.

갈색 비니 아래로 비져나온 검은색 반곱슬머리, 턱선이 있는 곳까지 기른 가느다란 구레나룻, 검은색 뿔테 안경을 받치고 있는 조금 낮은 듯한 코... 여려보이지도 강해보이지도 않는 적당한 턱선. 라면을 먹는 작은 입술.
종.......은 이라했던가, 저 사람?

사람들을 헤집고 달려나온 직 후, 미호는 일단 경찰을 피해서 달렸다. 마구잡이로 끌고왔는데 이 남자는 별다른 저항도 하지 않았다.
어디가 어딘지, 자신도 몰라 발길 닿는데로 마구 달렸다. 그렇게 한 십여분을 달렸을까? 어느새 둘은 다리처럼 강 위에 놓여진 8차선 도로 아래 도착해 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달려본게 얼마 만이었던지, 폐는 갑작스런 운동에 시위하듯 씨근거렸고 숨소리는 거칠어져 있었다. 자신도, 이 남자도....

힘겹게 헐떡이다 미호는 마른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해야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 이거."

미호는 청코트 주머니에서 그의 지갑을 꺼내 내밀었다.
남자는 그런 미호의 행동이 의외인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기 것을 돌려 주겠다는데 어째서 놀라는 것일까? 미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당황하여 동그래진 뿔테 안경 속 그의 눈이 귀여워 보였다.

그는 정중하게 두 손으로 그 지갑을 받았다. 미호의 눈치를 보면서......
그 모습에 미호는 풋,하고 웃었고,
남자도 멋쩍게 따라 웃었다. 그러더니 엄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종.은. 최종은. 이라고 또박 또박 한자씩 말했다.
종........은.......
그의 이름인가 보다.

◆                                    ◆                                      ◆

예전부터 일본 라면을 먹어보고 싶었다. 뭐니뭐니해도 본고장이 아니었던가.
종은이 기대에찬 자신의 혀에 한젓가락 놓으려 할때,

쿨럭
옆자리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소녀가 먹던 라면을 토해낸 것이다. 황당하기도 하고 난감하기도 한 상황. 소녀는 라면을 뱉어내고도 아직 뜨거운듯 혀를 내밀어 손바닥으로 부채질을 해대고 있었다.
그래, 뜨거웠던거야. 뜨거웠던 거겠지. 그래도...
어떻게 먹던걸....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걸 눈치 챈 것일까?  소녀는 조심스레 이쪽을 바라 보았다. 어떻게 반응해야하지?하다, 별수없이 웃어버렸다. 아주, 아주 어색한 웃음이었으리라.
웃음이 그녀와 자신의 무언의 대화로 약속이나 되어있는 듯 서로를 마주 보게 될 때면, 그녀도 자신도 웃었다.
하긴 말이 안통하니 별 수 없지 않은가. 그래도 통성명은 해서 다행이었다. 포장 마차 안으로 들어오기 전, 자신이 엄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종.은. 내 이름. 최종은이라고 해요. 그쪽은?"

이라고 말하자 어찌어찌 저쪽도 알아 들었던듯 천천히,

"나카시마 미호데스."

라 했다. '나카시마 미호데스' 좀 길고 어딘지 어색한 이름이긴 했지만 뭐, 못외울 정도는 아니었다. 나카시마 미호데스..... 한번더 마음 속으로 그 이름을 되뇌이다 어딘지 어색한 느낌을 다시 한번 받았지만 애써 무시하고 종은은 그녀의 호칭을 나카시마상이라 혼자서 멋대로 결정지었다.
일본어는 하나도 할 줄 모르지만 티비에서 일본사람들은 서로 누구누구상 이렇게 부르는것을 본것 같았다.

'그나저나 이제 어쩌지?'

종은은 젓가락으로 마지막 면빨을 휘저으며 고민에 빠졌다.
소녀의 이름을 알고 난 후, 둘은 딱히 할 말이 없어 포장마차 앞에 묵묵히 서있었다. 그러다

꼬르륵,
하고 한참의 정적을 깨며 그녀의 배로부터 대단히 욕구중심적인 소리가 들려와 종은은 소녀를 다짜고짜 포장마차 안으로 이끌었다. 뭐, 종은 자신도 슬슬 배가 고파오기도 했었고....

아무튼 일단 배부터 채우고 보자고 들어온 포장마차, 문법에 전혀 맞지 않는 어눌한 일본어와 호소력 짙은 바디랭귀지로 라면 두개를 주문하는데까지는 성공하였으나 들어올 때부터 메뉴판에 쓰여있는 "700円"이 적잖게 신경쓰였다.

'지갑에 현금이 차비 정도 밖에 없는데, 카드라도... 여기 카드가.....'

녹색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허름한 포장 마차의 내부 인테리어를 감상해보다 종은은 좌절했다.

'이런 곳에서 될턱이 없지.'

그때 마침 주인은 포장마차 한 쪽 구석에 노여진 라디오만한 소형 티비를 손보는 듯 그들에게서 등을 돌린채 쪼그려 앉아 있었다. 주인 만큼이나 오랜 세월을 보내온 것 같은 그 고물티비에 감사하며 빠르게 마음을 굳혔다.

'아저씨, 죄송합니다. 이 다음에 꼭 갚을게요.'

그리곤 조용히 들릴락 말락한 목소리로 미호를 불렀다.

"...나카시마상.."

라면 한그릇을 이미 다 비우고 그래도 좀 모자란듯 젓가락을 입에 물고 있는 소녀. 미호는 응?이란 표정으로 종은을 바라보았다.

"...나 현금이 없어요... 카드는 있는데 현.금. 이 없어요.."

절래절래 손사래를 쳐보는 종은,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 미호는 저게 무슨 뜻일까 하며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오른손 검지를 미간에 갖다댄채 몇 초간 고민하다 미호는 알았다는 듯,

"아!"

하며 자신의 두 손바닥을 쳤다.
그리곤 활짝 웃으며 종은과 똑같이 절래절래 손사래를 치는 것이 아닌가......

"아니, 그게 아니라...."

오해다.. 분명 오해한게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종은은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그의 반응에 미호도 자신이 틀렸단걸 알았던지 얼굴에 물음표를 가득 띄운 표정으로 흔들던 양손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어라, 이게 아닌가? 그것이 미호의 생각일 것이다.

'안돼. 전혀 전달되지 않고 있어."

종은은 다시 주인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이 주인은 아직 그 티비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아직, 아직 할 수 있다! 마음을 다잡는 종은에게 그때 마침 자신의 지갑 사정을 그녀에게 알릴 수 있는 간단하고도 획기적인 방법이 떠올랐다.
지갑을 보여주면 그만인 것이다!

'왜 진작에 이 생각을 못했지.'

종은은 얼른 지갑을 꺼내 미호 앞에 펼쳐 보였다. 텅빈 지갑엔 퇴계이황 아저씨가 수줍은 듯 빨갛게 세장 들어있었다.물끄러미 종은의 행동을 바라보다 미호는 이번에야 말로 알았다는 듯 아,하고 작은 탄성을 내었다.
드디어 이해했구나, 종은은 미호가 자신의 사정을 알았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포장마차의 출구를 가리키며,

"..저기로.. 나가요.. 저기로.."

아까와 같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지금 종은은 남의 나라, 남의 가게에와서 배불리 먹고는 무전취식을 조장하는 중이었다.
미호는 뭔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마지막으로 주인의 동태를 살폈다. 지지직, 거리는 티비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는 그.......

종은은 구부정하고 비쩍마른 늙은 주인의 모습에 이대로 그냥 내빼는 것은 뭔가 아닌것 같아 지갑속 3000원을 슬그머니 그릇 옆에 올려두었다.
그 모습에 소녀도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이백 삼십엔을 꺼내어 놓았다. 그녀의 전재산이었다. 그리고 종은을 바라보며 찡긋 윙크를 날렸다. 마치, 나 잘했죠?라는 어린아이같은 제스쳐였다.

둘은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종종걸음으로 포장마차를 빠져나가려했다. 포장마차의 출구 장막을 걷으며 종은은 주인이 그 고물 티비로 도대체 뭘보고 있길래 저리 꿈쩍도 하지 않는지 궁금해 슬쩍 고물 티비의 브라운관을 훔쳐보았다.
그 브라운관 안에선 인형처럼 예쁜 소녀가 노래하며 춤추고 있었다.
MTV의 콘서트장 영상인즛 소녀의 노래 소리에 관중들의 환호성이 섞여있었다. 저 정도의 환호성이면 족히 그 콘서트장을 가득 메우고도 남을 만큼의 팬들이 찾아와준 것일테지.

그런데 노래 소리를 듣다 종은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아니, 이런걸 이상하다고 할 수 있을까? 대개 콘서트 영상은 노래소리가 환호성에 묻히기 마련일텐데 소녀의 노래는 섞여든 환호성에 전혀 방해받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소녀의 목소리가 그 환호성이 원래 그 노래의 일부인양 느껴지게끔 하고 있는것 같았다. 꾹..
포장마차 장막을 손에 쥔채, 멍청히 선 종은의 소매를 미호가 붙잡았다. 우리 아직 무전취식 중이라구요,라고 말하고 싶은 듯 소녀는 종은의 소매를 계속해서 밖으로 당겨댔다.

미호의 행동에 종은은 포장마차 밖으로 나왔다. 잠시 들었던 노래의 멜로디가, 목소리가 귀에서 떠나지 않아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따. 그렇게 멍하게 있었던 벌일까? 종은은 울퉁불퉁한 강기슭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철푸덕!
요란한 소리가 포장마차 주위로 울려퍼졌다.
아차, 종은은 입술을 깨물었다. 주인아저씨가 이 소릴 안들었길 간절히 바랐지만 자동차도 하나 없는 이른아침의 한적한 8차선 도로 아래. 그런 요행은 사치에 가까웠다.

펄럭!
예상했던 전개대로 잠시 후 포장마차 주인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미호와 종은이 그때 이미 달리고 있었단 사실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오전 10시 4분, 밤샘 장사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받은 손님이 무전취식 커플이었던 운없는 포장마차 주인의 등 너머로, 지나스의 노래 "樂 K`n Roll"이 강변의 아침공기를 가르고 있었다.

◆                                        ◆                                        ◆

........달린다. 바람이 이마를 스쳐지나가고 기분 좋은 리듬으로 심장이 뛴다.
달리고 있었다.
오늘은 자꾸 달리게 된다고 미호는 생각했다. 달리는게 즐겁게 느껴졌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그 기분.
즐거움.

소매치기에, 싸움에, 무전취식까지. 오늘 하루 만에 그간 살아오며 저질렀던 것들의 수백배는 될것같은 나쁜짓을 저질렀는데 왠일인지 기분은 날아갈 것같았다.
옆에서 자켓을 휘날리며 부리나케 뛰고있는 그를 만난 이후부터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일들의 연속이다.
맘속으로 다음번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은근히 기대해보며 미호는 힘껏 달렸다.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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