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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m Clavolt  - 고전적인 반란  -     Project. 잊혀진 자들
        외전    천로역정~☆ - Ave, Spirit of the Departed! -
                                              
                                                     - 푸른 늑대 Chanrang-
                                                          오후 : 본관 앞





"그만하세요! 두 분 모두!"

순간 울려퍼진 날카로운 목소리.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한 순간에 그 쪽으로 시선을 옮기게 만드는 힘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그 것은 막 싸우기 직전의 상태였던 두 사람도 예외가 아닌 것 같았다.

"능손희인가?"

명왕 선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혀를 찼다. 하지만 여전히 손을 내리지는 않았다. 그저 힐끔하고 막 등장한 능손희 선배를 한 번 보더니 다시 백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천수님. 그만 두라고 말씀 드렸을 텐데요."

명왕 선배의 태도가 바뀌지 않은 것을 눈치 챈 것인지 능손희 선배는 속도를 높여 둘 사이로 끼어들었다.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것이 명왕가의 가르침 아니었습니까? 이렇게 개인적인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능손희 선배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옆에서 듣는 것 만으로도 날카로운 칼로 후벼파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명왕 선배 역시 예외는 아니었는지 살짝 인상을 찌푸릴 뿐이었다.

"부동이면 모를까, 명왕가의 직계도 아닌 놈한테 그딴 말이 먹힐까?"

"놈!"

"백검 후배님! 그만하세요!"

이죽거리며 답하는 백검의 말에 명왕 선배와 능손희 선배는 동시에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그 둘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백검은 입가에 비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맞잖아. 내가 틀린 말 한 건가? 천, 수, 씨?"

"더 이상은 못 들어주겠군."

백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명왕 선배가 다시 손을 들어올렸다. 동시에 선배의 머리칼이 하늘로 치솟으며 다시 얼굴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좋아. 이제 해 볼 마음이 생긴건가?"

그 모습을 보며 백검은 기쁘다는 듯이 자신의 칼을 들어 양손으로 굳게 움켜잡았다. 그런 백검의 모습을 지켜보던 명왕 선배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하아!"

하고 짧은 기합과 동시에 눈을 크게 치켜떴다.

순간 명왕 선배의 몸을 중심으로 무언가가 퍼져나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붉게 변한 명왕 선배의 모습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듯한 기운이 주변으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느껴지고 있었다.

"으, 대, 대체..."

이를 꽉 깨물고 뒤로 물러나지 않기 위해 힘을 준다. 자신도 모르게 도망치고 싶고,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지고 싶은 강한 기운이 내 목을 조르고 있었다. 앞에 서 있는 명왕 선배의 모습이 몇 배로 커보이는 느낌이었다.

"와~ 이거 진심인가보네? 명왕의 오라까지 사용할 정도면. 어때? 누가 이길 것 같아?"

하지만 그런 나와는 달리 연희는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로 히히덕 거리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신기한 것을 보는 아이처럼 좋아하던 연희는 내 쪽을 보면서 그런 것을 물었고, 그제서야 내 상황을 판단한 것인 듯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이런, 깜박했네. 형부가 나 같을리가 없는데."

투덜거리며 가볍게 내 손을 잡는다. 그 순간 몸을 짓누르던 압력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제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크게 숨을 들이킨 뒤 내뱉자 어느 정도 가슴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놀랐지? 명왕가의 비전을 쉽게 버틸리가 없는데 깜박하고 있었어. 미안해."

연희는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대체 이건?

"너무 궁금해 하지 마. 알면 다쳐. 하지만 이 것을 쓸 정도라니, 천수도 화가 날 만큼 났나보네?"

연희는 그렇게 말을 끊어버리며 고개를 다시 돌렸다. 주변을 둘러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금 전의 나 처럼 괴로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답답해 하고, 두려워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칫."

자신의 무력함에 혀를 차며 고개를 돌린다.

명왕 선배는 천천히, 무겁게 한 발을 앞으로 내딛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백검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선배를 노려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여유롭게 이죽대던 백검의 표정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 제가."

그리고 그 사이에 서 있던 능손희 선배는 조금 전과는 달리 진짜 화난 것 처럼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까부터 그만 하라고 말씀 드렸을 텐데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한 번 주변의 공기가 바뀐다.

"읏!"

그 것을 느낀 것은 나 뿐만이 아닌 것 같다. 명왕 선배가 가볍게 숨을 삼키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나는 모습이 보인다. 곧 자신이 밀려났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선배의 인상이 팍 구겨졌지만 능손희 선배는 딱히 그에 신경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 끝났네. 능손희가 진짜로 화났어."

그 모습을 본 연희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상황이 이해가 잘 안 가지?"

아니, 잘 안 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안 가거든요.

명왕 선배가 고개를 저으며 손을 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붉게 달아올랐던 얼굴 역시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뒤에야 고개를 끄덕이자 연희는 피식 하고 웃으며 이상한 소리를 지껄였다.

"어때? 지금 누구랑 싸우고 싶은 생각이 들어?"

"...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그건?"

연희의 말에 반박해 보지만 연희는 별다른 말 없이 웃으며 턱으로 앞쪽을 가리킬 뿐이었다.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쓴 웃음을 지으며 칼을 거두는 백검의 모습과 고개를 저으며 다시 안경을 꺼내어 쓰는 명왕 선배의 모습이 보였다.

"어라?"

갑자기 반전된 분위기. 그 이유를 찾지 못해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연희는 피식 하고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이게 능손희의 힘이야. 그 누구도 능손희의 기운 앞에서는 '싸운다' 라는 행동을 하지 못하지. 보통 사람들은 '평화의 오라'라고 하는 것 같더라고."

"평화의 오라..."

연희의 말을 가볍게 되뇌어본다. 실제로 조금 전까지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공기가 확 풀려버린 느낌이었다.

"좋지? 세상은 러브 앤드 피스. 멋진 말이야. 정작 능손희는 사람들의 감정을 제 멋대로 조정하는 것 같다고 해서 잘 사용하지 않는 능력이지만."

'하여튼 꽉 막혔다니까~' 라고 말하며 연희는 싱글싱글 웃었다. 그 말을 대충 귀로 흘려들으며 다시 고개를 돌려 둘을 바라보았다.

"흠. 미안하게 되었군. 뭐, 본래의 목적은 달성했으니 이 정도에서 그만 두는 것으로 하지."

"됐수다. 다음 번에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을거니 알아서 하슈."

가볍게 사과의 말을 건네는 명왕 선배와 여전히 툭툭 쏘아대는 것 같지만 더 이상은 싸울 생각이 없는 것인지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있는 백검의 모습이 보인다. 180도 바뀌어버린 분위기와 마찬가지로 둘의 태도 역시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 같았다.

뭐, 뭔가 대단하잖아.

능손희 선배의 능력에 감탄하고 있는 사이 명왕 선배는 몸을 돌려 능손희 선배와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사과의 말을 건넨 뒤 몸을 돌려서 이 곳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본 연희 역시 이제는 흥미가 떨어진 것인지 '아아~ 시시해~'라고 중얼거리며 사람들에 섞여 이 곳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문득 그제서야 놓고 있던 정신을 다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당황하며 연희를 불러세우려던 찰나 들려온 능손희 선배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들어올렸던 손을 내려버렸다.

"백검 후배님. 대체 왜 그러시는 거에요? 오늘은 제가 봐도 좀 지나쳤어요."

조금씩 흩어지는 사람들의 모습 사이로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백검은 능손희 선배의 말에 머리를 아무렇게나 긁어 흐트러트리며 되물었다.

"뭐가?"

"뭐라니요. 오늘 일의 발단이 된 한나 후배님과의 대련 때문이죠. 제가 봤어도 오늘은 평소와 느낌이 너무 달랐다구요. 게다가 천수님께 그런 안 좋은 이야기까지 하니까...."

능손희 선배의 말에 백검은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선배에게 백검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조용히 물었다.

"네 녀석까지 백검인가..... 이봐. 능손희. 내가 누구라고 생각해?"

"네? 그야..."

백검의 뜬금없는 혼잣말과 그에 이어진 물음. 능손희 선배는 그에 답하려고 하다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그런 선배의 태도를 예상했었다는 듯이 백검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모르겠지?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어때? 당신이 생각하기에 난 누구일 것 같아?"

"그건..."

능손희 선배가 살짝 인상을 찌푸린다. 백검은 그런 선배의 모습을 보더니 우습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정말 백검이 맞을까? 혹시 난 사실 지흑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루에 몇 번이나 하는지 알아? 그래도 넌 자신이라도 지킬 수 있었지. 하지만 난 아니야."

"...."

더 이상 능손희 선배는 말을 잇지 않았다. 백검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딱 잘라 말했다.

"유정백도를 쓸 수 있는 것. 그 것 만으로 난 내가 맞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그런 기분을 당신은 알 수 있겠어?"

"... 죄송해요."

"아니, 당신이 사과할 일은 아니지. 이거 괜한 소리를 했나보네."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능손희 선배에게 백검은 손을 내저으며 몸을 돌렸다.

"하아, 뭔 소리를 하나 했더니."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내게 연희의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연희야. 안 갔어?"

"다시 왔어. 깜박하고 형부를 안 데려갔지 뭐야."

어깨를 으쓱하며 웃는다. 하지만 여전히 시선은 백검을 향한 채였다.

"혹시나 했는데 여전히 저 녀석도 그림자에 잡혀있구나."

"뭐?"

한숨을 쉬며 중얼거리는 연희의 말. 그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해 되묻자 연희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가희 언니랑 똑같다는 말이야."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을 던진다. 그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연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이 내 손을 잡고는 몸을 돌렸다.

연희에게 끌려가다시피 발을 옮긴다. 재빨리 고개를 돌려 바라본 백검은 쓴웃음을 지으며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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