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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행동도 할 수가 없었다. 억지로 학교에 나오기는 했지만 떨리는 몸은 여전히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잠시도 눈을 감을 수 없었던 어제 밤. 그 생생했던 기억이 여전히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다.

  자신은 다른 사람을 죽인다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살인귀다.

예상했던 것 보다 더 엄청난 사실 앞에서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없었다. 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귀에 와 닿지 않는다. 어떤 일도 손에 잡을 수 없고, 어느 곳으로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계속 자신의 자리에 앉은 채 떨고만 있을 뿐이었다.

"미츠키, 계속 안색이 안 좋아보여. 진짜 몸이 안 좋은 것 아냐?"

아야메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하지만 차마 답할 수 없었다. 나란 사람의 본성을 알게 되어서도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지만 답은 역시... 도저히 무언가를 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내일 밤 11시에 공원으로 와 주세요.]

그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진다. 그 알 수 없는 사내와 함께 있던 선배의 모습이 떠오른다. 더불어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서 칼을 만들어내고, 엄청난 몸놀림으로 날 제압하던 모습 역시 함께.

선배는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역시 이 곳에서 이렇게 가만히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 아야메. 시엘 선배가 몇 반이었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옆에 있는 아야메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며 아야메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시엘 선배? 우리 학교에 외국인이 있었던가?"

"뭐?"

아야메의 말에 순간 할 말을 잊어버렸다. 하지만 아야메의 표정은 절대 농담을 하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모르고 있다. 어제만 하더라도 같이 이야기를 나누던 선배의 존재를 아예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제서야 무언가 어색했던 점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시엘 에레이시아. 그 이질적이며 이국적인 느낌의 이름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만난 적이 없던 것이 분명한 사람을 자신도 모르게 [알고 있었다.] 라고 받아들였던 상황을.

".... 대체 뭐야?"

점차 의문은 커져만 간다. 스스로의 본 모습을 모르는 자신, 알 수 없는 충동, 마법같은 힘을 사용하는 남자, 그리고 모두에게 잊혀져버린 선배까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오늘도 여전히 비어있는 자리. 그 공백이 너무 크게 보였다.

왜, 왜 없는거야? 어째서. 이렇게나 힘든데...

"... 츠바사."

그가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집에서 몰래 빠져나와 밤거리를 달렸다. 한시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한 밤의 공원. 인적이 뜸하다 못해 아예 전무한 이 곳은 을씨년스럽다 못해 조금은 공포스러운 분위기까지 전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약속한대로 선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왔군요. 미츠키양. 이제 이야기를 좀 해 볼까요?"

꿈에서 보던 선배의 모습. 아니, 꿈이 아니었던가... 어쨌든 지금 내 눈앞에는 선배가 예의 그 수녀복을 입고 서 있었다. 그 목소리는 분명 평소 듣던 선배의 것과 동일했지만 왜 이리도 메마른 느낌이 드는 것일까? 그 이유를 미처 생각해보기도 전에 선배는 입을 열었다.

"일단 뭐 부터 시작할까요? 그래요. 그 것부터 하죠. 지금 미츠키양은 현재 상태가 어떤지 알고 있나요?"

당연히 알 리가 없었다. 지금도 뭐가 뭔지 헷갈리니까. 가만히 고개를 저으니 선배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좋아요. 그럼 맨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군요. 미츠키양은 지금 이 도시에서 일어나는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해 알고 계세요?"

연쇄 살인 사건. 종종 TV에서 나오던 그 이야기를 말하는 것 같았다. 아무런 연관성 없는 피해자들. 그리고 그들에게서 보이는 유일한 공통점. 아마 이 정도가 그 사건의 대략적인 개요였던 것 같다.

선배는 긍정을 표하는 날 한 번 보더니 살짝 한 숨을 쉬었다가... 무언가 이상한 말을 꺼냈다.

"알고 있다면 다음으로 넘어가죠. 그 사건의 범인이 누군지 아세요? 무작위적인 대상 선정. 전신의 피가 한방울도 남아있지 않은 사체들. 여기에서 연상되는 것이 무엇인가요?'

".... 흡혈귀가 범인이라는 이야기라도 하고 싶으신 건가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선배의 말에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하지만 선배는 그런 내 반응에 대해 아무런 태도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예상했던 반응이었다는 모습. 그 선배의 침묵이 긍정을 나타내는 것인지, 부정을 나타내는 것인지는 너무나 명확했다. 흡... 혈귀?

"맞아요. 흡혈귀. 그게 이번 사건의 범인이에요. 그리고 전 그 범인을 잡기 위해 교회에서 파견 나온 사람이구요. 당신이 공격했던 제 동료 역시 마찬가지에요. 제 힘만으로는 조금 부족한 듯 싶어서 그를 불렀는데 오히려 그게 당신의 본성을 깨우는 일이 되어버린거죠."

나의 본성. 그 기분 나쁜 기억을 떠올려본다. 하지만 나의 생각과는 달리 선배의 얼굴에는 어떤 비하적인 표정도 나타나있지 않았다. 오히려...

"미츠키양. 흡혈귀는 마魔지요. 하지만 그에 대항하는 퇴마 역시 존재한답니다. 저희 교회의 매장기관이 그 좋은 예가 될 겁니다. 그리고 미츠키양. 당신 역시 퇴마의 피를 가지고 있는거에요. 퇴마 가문의 후예로서. 때문에 그에게 그렇게 반응한 것 뿐이구요."

선배의 설명. 하지만 그 설명에 무언가 모순점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퇴마 가문의 후예라는 말은 둘째 치더라도 선배의 설명은 분명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러니까...

"잠깐만요. 뭔가 이해가 안되는데요? 퇴마의 피라고 하지 않았어요? 선배 역시 퇴마 계통이고, 그런데 왜 제가 그렇게 반응하는 거지요?"

내 물음에 선배의 표정이 살짝 풀렸다. 그리고...

"그야 그 역시 사도, 그러니까 흡혈귀니까 그렇지요. 단지 흡혈귀를 사냥하는 기관에 속해있는 흡혈귀일 뿐이지만."

"네?"

"알고보면 꽤나 재미있는 사람이랍니다. 주변사람을 좀 골치아프게 만들기는 하지만."

긴 시간동안 계속 된 대화 속에서 선배에게 들은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이전부터 이 도시에서 지속되어 온 흡혈귀에 의한 살인사건. 그 범인을 퇴치하기 위해 이 곳에 온 선배는 그 흡혈귀의 힘이 생각외로 강하다는 것을 알고 선배의 동료를 불러들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 동료라는 사람은 알고보면 같은 흡혈귀. 그리고 우연히 그와 만나게 된 나는 퇴마의 피가 그에게 반응하기 시작하면서 선배의 말로는 '반전모드'인지 뭔지하는 각성 상태가 지속되기 시작한 것이란다.

어제의 해몽을 통해 그 일에 대해 '꿈' 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 반전 모드를 가라앉히려 했지만 통제되지 않아 결국 이렇게 이야기 하게 되었다는 것이 선배의 말.

문득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네게 주어진 그 힘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주어지지는 않았을거야.] 라는 말.

이 피비린내 나는 비일상 속에 뛰어들도록 예정되었을 때, 내게 이런 힘이 주어진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아아, 그런 것이었나. 하고 왠지 납득이 되는 느낌이었다. 운명이라는 것을 그리 믿는 편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렇게 자신에 대해 자각하게 된 이상 밤중에 반전해서 자신도 모르게 돌아다닐 일은 없을거에요. 가급적 미츠키양이 이쪽 세계에는 발을 들이지 않도록 하고 싶었는데... 그건 불가능해 졌군요. 하지만 이 정도가 한계에요. 더 이상은 다가오지 않는 것이 좋을거에요."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노라니 선배가 나를 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다분히 경고하는 말투다. 일상과 비일상. 그 경계에 서 있는 내게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

하지만 난 그 말에 따를 수 없었다. 적어도 아직 남아있는 것이 하나 있으니까.

"미안해요 선배. 하지만 아직은 아니에요."

"무슨 일이죠?"

선배의 인상이 찌푸러진다. 그 눈빛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당당하게 말했다.

"츠바사. 츠바사가 이 일에 관여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일할 때까지는... 절대로 그 무작위적인 대상에 츠바사가 해당되지 않는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이상할 정도의 예감. 이미 반 이상은 확신으로 변해있는 그 느낌. 분명 츠바사는 이 사건에 관계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추측일 뿐이지만... 이 쪽 말고는 실타래를 풀어나갈 방향이 없던 것 뿐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상하게 내 추측이 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말에 선배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내 포기한 듯 웃으며 말했다.

"뭐, 말려도 소용 없겠지요. 하지만 뒷일은 책임 못집니다."

그와 함께 멀어지는 선배의 모습.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이내 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매듭이 하나씩 풀리기 시작한다.



검은 짐승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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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짐승 챕터 끝입니다.
한동안 업로드를 못해서... 이미 완결난 글 가지고 오래도 끄는군요.
룰루랄라... 가급적 빨리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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