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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츠키님.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으음.... 히스이씨? 들어오세.... 우앗!"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본다. 밤이다. 입고 있은 옷을 바라보니 교복이 아닌 잠옷. 하지만 분명 옷을 갈아입은 기억은 커녕 집에 들어온 기억조차 없다. 뭐.... 뭐야 대체... 왜 어제 밤 일이 기억이 안나는거지? 오히려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미츠키님? 안색이 안 좋으십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지요?"

"아.... 아니에요. 오늘도 깨워주셔서 고마워요."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얼굴이 달아올라 있는 것이 느껴진다. 히스이씨의 질문을 대충 얼버무리면서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쓴다. 대체.... 뭐지? 설마 꿈인가? 옆에 있는 히스이씨를 바라본다. 오늘도 어제처럼 잘 다려진 옷을 들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 맞아. 그러고보니 히스이씨는 어제 밤에 내 모습을 봤을지도 몰라.

"저기... 히스이씨?"

"무슨 일이십니까?"

평소와 다름없이 무덤덤한 목소리로 되묻는 히스이씨에게 잠시 뜸을 들이다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음... 조금 이상한 질문 같은데요... 혹시 제가 어제 때맞춰 귀가 했었나요? 들어올 때 상태는 어땠는지 혹시 아세요?"

"... 별다른 것은 없었습니다. 단지 좀 피곤하시다고 저녁을 안 드시고 주무셨을 뿐...."

히스이씨의 말에 어느 정도 두근거리는 가슴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에에... 그럼 어제 그건 설마 꿈이었던 건가? 하지만 아무리 꿈이어도 그런.... 순간 몸 한 곳이 움찔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잠시 생각해 보는 것 만으로도 부끄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왜.... 왜 그런 꿈을 꾼거지?

"저기... 미츠키님?"

"네? 아... 아니에요. 히스이씨. 그... 옷은 제가 갈아입을테니 놓고 가시면 될거에요. 아니, 놓고 가시면 되요."

황급히 대답하며 히스이씨에게 제발 좀 나가달라는 무언의 압박을 보낸다. 제발요... 지금 부끄러워 죽겠습니다. 남의 시선을 느끼는 것 만으로도요. 하으... 뭐지? 설마 욕구불만인건가? 폭력적인 면이건, 아니면 그... 어쨌든 여러모로?




그 뒤로도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야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아래로 내려가니 오늘도 도시락을 든 코하쿠씨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활짝 웃고 있는 그 모습에 나 역시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정말 언제 보아도 굉장한 미인이었다. 특히나 그 웃는 모습은 더더욱. 그렇게 코하쿠씨의 얼굴을 보며 속으로 감탄하고 있는 사이 그녀는 내쪽으로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왼손에 든 무언가를 들어올리며 흔드는 모습에 갑자기 불안해진다.

"밤사이 편히 쉬셨나요? 미츠키씨? 부탁한 것 만들어 놓았는데... 지금 차보실래요?"

"... 부탁한 것이라뇨?"

"음? 어제 저녁에 들어오시면서 말씀하셨잖아요. 잊으셨어요?"

네. 전혀요.... 라는 말은 차마 꺼내지 못했다. 정말 저 화려한 미소의 앞에서는 도저히 아니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에... 대체 내가 뭘 부탁했더라?

"우와... 피곤해 보이시더니... 설마 잊으신거에요? 힘들게 만들었는데..."

"에? 아... 아니, 아니에요. 어떻게 만드셨는데요? 지금 보고 싶은데..."

살짝 토라지는 듯한 목소리로 투정부리듯 말하는 그녀를 보고 당황해서 재빨리 얼버무렸다. 하지만 그런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코하쿠씨는 다시 얼굴 가득히 미소를 담아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내게로 내밀었다.

"짜잔~ 코하쿠제 특수 대 나나츠요루 용 수납형 벨트랍니다. 미츠키님 허벅지 굵기를 생각해서 좀 넉넉하게 만들었어요."

"네? 무슨 소리에요! 대체! 안그래도 바람 불면 똑 부러질 것 같다는 말을 듣는 쭉 빠진 다리인... 데가 아니라! 뭐에요 그게!"

"뭐냐니요. 나나츠요루를 들고 다니기 불편하다고 하시면서 편하게 가지고 다닐 만한 방법 없냐고 하셨었잖아요. 그래서 제가 어떤 형태라도 상관없나요? 라고 여쭤봤더니 그렇다고 하셨으면서.... 확실히 만든 것 보다는 허벅지가 얇긴 하지만 괜찮아요. 조정도 어느 정도 가능하게 만들었거든요."

코하쿠씨는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면서 손에 들고 있는 그 무언가를 내 눈 앞에 내밀었다. 분명 나나츠요루를 기준으로 만든 것 같은 수납공간에 두개의 가죽으로 된 고리 형태를 이어 붙인 모습. 보는 순간 어떤 식으로 착용하게 되는 것인지 금세 알 수 있었다. 확실히 나나츠요루 정도의 크기라면 치마 아래쪽에 완전히 가려질 수 있을테고, 꺼내는 위치도 좋을 것 같긴 하.... 지....

"자, 잠깐만요! 그럼 그... 여기 칼을 넣을때나 뽑을때는 좀... 그, 그러니까..."

위험하잖아! 그러니까.... 안그래도 짧은 치마인데! 이 상태라면 그렇게 움직이는 경우 분명히...

"아아, 속옷이 보인다구요? 괜찮아요. 그 것이 매력 포인트거든요."

"무슨 말씀이세요! 매력포인트라니요. 그런..."

"에이, 괜찮다니까요. 미츠키씨는 꽤 미인이니까 그 정도 서비스는 해도 돼요."

"그. 러. 니. 까! 무슨 서비스냐구요!"

한참동안을 티격태격 했지만 코하쿠씨는 도저히 자신의 고집을 꺾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허벅지 만한 곳이 없다나... 팔에 해도 되지 않느냐는 내 의견은 하복때는 어떻게 할 거냐는 의견에 바로 묵살당해 버렸다. 아니면 일년 내내 발목 부분이 긴 부츠를 신고 다닐거냐고 하면서 협박아닌 협박을 하는 그녀에게 결국 난 두손을 들고 말았다.

"후으... 별 수 없죠. 줘보세요. 차 볼테니까요."

"잘 생각하셨어요. 분명 어울릴거에요."

그러니까... 이게 무슨 악세사리도 아니고 말이죠.... 정말 기억에도 없는 말실수 덕에 고생 많이 한다고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그 벨트를 착용했다. 하지만 그 순간 비명같은 코하쿠씨의 외침이 저택 안에 울려퍼졌다.

"뭐, 뭐에요! 그게! 반칙이에요!"

뭐긴요. 속바지지. 이런 짧은 치마를 그냥 입을 만큼 젊지는 않다구요. 테니스 부원 시절부터 입었던 것인데 유용하더라구요. 그나저나 왜 반칙인거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허벅지에 매어진 벨트는 그리 불편한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잠깐식 그 존재 자체를 잊을 만큼 몸에 맞는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 하지만 몸이 편하다고 해서 마음까지 편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이런 쪽에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기억도 나지 않는 말 한마디 덕에 이런 것 까지 하고 다니게 되다니... 나도 참 뭐랄까.... 재미있는 삶을 사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아무래도 치마 아래쪽이 신경쓰여 조금 엉거주춤한 자세로 자리에 앉으니, 그 모습이 우스운 듯 아야메가 소리 죽여 웃는 것이 보인다. 쳇, 자기가 한 번 해 보라지. 꽤나 신경쓰이는 거라고 이거.... 생각 외로 잘 만들어져 특별히 운동이 과하지 않는 한 그리 문제는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할 수 있다고는 또 못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뭐야, 미츠키. 다리에 쥐라도 난거야?"

아야메에 이어 치카게다. 이 쪽은 아예 다리 부분을 콕콕 찔러가며 말하고 있었다. 왼쪽 다리라 다행이긴 하다만... 치카게씨, 너무 찌르는 위치가 높지 않아요? 거기에 조금씩 위로 올라온다는 느낌까지 드는데?

"아니야, 그냥 조금... 그만해. 하나도 안저리니까."

"쳇, 재미없긴..."

치카게의 말에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았다. 정말 억지로라도 이 것에 익숙해 지던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든지 해야 할 듯 싶다.

"그나저나, 오늘 어쨰 뭔가 허전한데?"

그러고보니 무언가 이상하게 빠진 듯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치카게는 괜히 이야기를 돌리려 한다며 투덜거렸지만 사실인 것을 어떻게 하라고? 하지만 치카게와는 달리 아야메는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씨익 하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역시, 자동으로 느낌이 오는가보구나?"

"너는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그러는거야?"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그러나 아야메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 눈총을 받아넘기며 답했다.

"없잖아. 서방님. 그러니까 그런거 아냐?"

"오, 그러네? 왠일이래?"

쿡쿡거리며 말하는 아야메와 맞장구치는 치카게. 그에 살짝 고개를 돌려보니 정말로 츠바사의 자리가 비어있었다. 가방도 없는 것이 어딘가 잠시 간 것이리라기 보다는 아예 안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희안하네? 이미 올 시간이 지났을텐데..."

비어있는 책상을 보는 순간 이상할 정도로 기분이 나빠졌다. 아니, 정확히는 불안했다. 내 표정이 이상하게 변해있는지 웃고 있는 둘의 모습과는 반대로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고...

결국 오늘 츠바사는 학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느덧 인적이 뜸해져 있었다.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뭐, 상관 없겠지. 어차피 저런 녀석들의 숫자 같은 것은 있으나 마나니까. 진짜 필요한 것은 언제나 따로 있는 법이다. 밤의 거리. 이 안에 있는 수 많은 사람들 중에서 분명 '그 녀석'은 어디엔가 있을 것이다. 저런 아무것도 아닌 녀석들이 아닌, 생각만 해도 가슴 떨려오는 그런...

... 찾았다. 지금 녀석은 누군가를 쫓고 있다. 이전과 동일하게. 그 녀석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몸이 뜨거워진다. 참기 힘든 욕망이라는 이름 아래, 내 갈증을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녀석.

천천히 접근한다. 그 녀석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쫓기는 자와 쫓는자, 그리고 쫓는 자를 쫓는 자. 그 사슬의 최상층에서 모든 것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

사냥하는데 방해가 되는 눈가리개 따위는 치워버린다. 죽죽 그어져 있는 선을 볼 때마다 밀려오는 두통이 사냥이라는 행위 안에서 마약같은 쾌락을 건네주고 있었다. 다른 시선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 그 녀석이 사냥하는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 즐겁니다. 그렇다면 내가 그 녀석을 사냥할 때는 어떨까? 역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관음증에 걸린 것 마냥 남이 사냥하는 것을 바라보며 만족하는 그런 것은 이제...

발톱을 세운다. 한껏 자세를 낮추고 그대로 튀어나갔다. 커다란 검은 개를 그대로 베어버린다. 선을 베인 검은 개는 그대로 검은 물처럼 변해버리고 그제서야 이 쪽을 발견한 것인지 놀라는 표정을 보인다. 그래. 그거야. 그 표정이 나를 미치게 만들어!

검은 새가 보인다. 벤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검은 새의 잔해. 밤보다 검은 그 물줄기가 사내의 정액보다 달콤하다. 그대로 퓨즈가 나가버릴 것 같은 쾌감 속에서 앞에 서 있는 사내의 가슴을 베어들어간다. 빗나갔다. 그 발버둥치는 행위는 더욱 욕망을 부채질하고 그럴 수록 절정에 대한 기대감은 커져만갔다.

혀로 입술을 핥는다. 무어라 소리치는 것 같지만 들릴리 없다. 사내의 몸을 채우는 검은 섬. 그리고 점. 마지막 순간에 대한 기대감 속에 그대로 몸을 날린다. 불필요한 움직임 따위는 모두 집어 치운 채. 오직 바라는 것은 하나 뿐. 녀석의 [  ]

순간 몸이 제멋대로 움직여 버린다. 즉각 전진을 멈추는 순간 바로 앞쪽으로 세자루의 긴 칼이 날아와 땅에 꽂혔다. 방해꾼의 출몰에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뒤로 물리는 순간 방금 서 있던 곳에 다시 세자루의 칼이 날아와 박힌다. 칼은 곧 먼지처럼 사라져 버리고,

그와 동시에 앞에 있던 사내 역시 사라져 버렸다.

고개를 들어 칼이 날아왔던 방향을 바라본다. 멀리 수녀복을 입은 한 여성이 높은 건물의 옥상 위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에 사냥하려 했던 사내와는 달리 그리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 무시해 버렸다. 네 년 따위, 베어버릴 가치도 없으니까...

들고 있는 칼날을 핥는다. 그 곳에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조금 전 사내의 체취가 묻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혀를 대는 순간 지릿! 하며 전기가 흐르는 듯한 쾌감에 몸이 부르르 떨린다. 아아, 그래. 오늘은 이 정도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이런 부족함이 곧 찾아올 절정에 더욱 큰 기대를 하게 해 주는 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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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짐승 챕터. 시작합니다.
요즘 주문한 책이 배송와서 즐겁게 읽고 있느라고... [퍼억!]

사실 이미 마지막 챕터 집필 들어가긴 했습니다.
검은 짐승 마지막 부분부터 약간 매끄럽지 못한 면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웃음]
오랜만의 신작이니까요.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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