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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새하얀 천장이었다.

"미츠키양. 정신이 드니?"

"여긴....?"

"병원이지. 미츠키양은 교통 사고로 이 곳에 실려 왔어. 가슴에 큰 파편이 박혀서 조금 위험했는데 이젠 좀 괜찮은 것 같구나."

의사로 보이는 사람의 말. 하지만 그에 대한 기억 같은 것은 없었다. 아니, 그보다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생각할 겨를조다 없었다는 말이 맞는 말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내게 그런 것 보다는....

"저기요. 선생님."

"응? 무슨일이지? 어디 안 좋은 곳이라도 있니?"

"아니오. 그게..."

잠시 뜸을 들인다. 정말이지...

"왜 그렇게 몸에 낙서를 하고 계세요?"

"응?"

"보세요. 선생님부터 시작해서 병원 전부가 낙서투성이잖아요."

얼굴을 가로질러 오른쪽 이마에서 왼쪽 턱으로 가는 검은 선. 그 선을 시작으로 눈 앞에 서 있는 의사 선생님의 전신에는 낙서와 같은 검은 선이 빼곡하게 그려져 있었다. 뿐만아니라 그 선들은 이 병원의 모든 것을 뒤덮고 있었다.

"흐음.... 안과 쪽에도 문제가 있는 것인가? 뇌 쪽의 문제일 수도 있으니 신경과 쪽에도 검진 의뢰 해 주세요."

"네. 선생님."

하지만 무시당했다. 그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들끼리만 쑥덕거리며 병실 문을 나가버린다. 정말... 왜 모르는거야? 이 옆에만 해도 이렇게 검은 선들이 잔뜩....

뭐야.... 손이.... 들어가?

무의식적으로 댄 손가락이 그 검은 선 안으로 아무런 저항 없이 들어가버린다. 당혹스러운 마음에 서둘러 빼낸 손은 보통 때와 아무런 차이도 없는 나의 손일 뿐이었다.






"미츠키양.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한 것인지 말해줄 수 있겠어? 어떻게 이런 작은 과도로 침대를 부순건지. 혼내거나 하지 않을테니 말해보렴."

"그러니까 말했잖아요. 거기 그려진 검은 선을 따라 그었더니 잘려버렸다고..."

"무슨 말을 하는거니? 검은 선 같은 것은 아무데도 없어. 어서 사실대로 말해보렴."

몇 번이고 설명해 주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내 말을 절대 믿으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날 슬금슬금 피하기까지 하는 분위기. 병원을 가득 메운 선들과 사람들의 몸에 그어져 있는 검은 선을 보는 것 만으로도 지독하게 기분이 나빠진다. 그 선을 볼 때마다 조금씩 무엇인지를 대강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요컨데 이건 틈이나 균열 같은 거다. 부서지기 쉬운....

정말... 몰랐다. 세상이 이렇게나 부서지기 쉬운 곳이라는 것을...





결국 그 눈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알지 못한 채 퇴원해 버렸다. 물론 더 있었다고 해도 그에 대해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미쳐버릴 것 같았다. 언제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지독히도 불안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것은... 그래. 저기 보이는 저 파아란 하늘마저 그런 모습이었다면 난 이미...

"이봐. 거기 그렇게 누워있으면 안돼. 걷어차 버릴지도 모르니까."

머리 위에서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놀라 몸을 일으킨다. 상큼한 목소리와는 달리 험악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주인공은 처음 보는 붉은 머리칼의 여성이었다. 눈에 확 띄는, 허리까지 올 정돌 길다란 붉은 머리칼과는 대조적으로 평범한 흰색의 반팔 셔츠와 청바지를 아무렇게나 걸쳐입고 갈색의 긴 가방을 든 미인이 살짝 인상을 찌푸린 채 내 앞에 서 있었다. 그 얼굴이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한 순간 말을 잊고 빤히 쳐다보기만 할 정도로. 그런 내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그 여성은 일순간 묘한 표정을 지었다. 재미있는 것을 본 것 같기도, 아니면 그리운 것을 본 듯한 느낌의... 그러나 다시 보면 단지 놀라는 것 같기까지 한 그런 표정이었다.

"무언가 큰 걱정이 있나 보구나. 꼬마 아가씨. 나라도 괜찮다면 어떤 일인지 이야기 해 줄 수 있니?"

내 옆으로 와서 앉으며 물어보는 여성. 왠지 갑작스러울 정도로 친절하게 변한 태도에 조금 의심이 가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반짝이는 것 같은 눈동자를 바라보는 순간 그런 의심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 사람은 진짜 나를 걱정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어느샌가 그 사람의 옆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놓고 있었다.

"역시 그랬구나..."

"네?"

"아니. 혼잣말이야. 단지 네게 조금 충고를 해 줄까 해서."

그 사람은 몸을 돌려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말을 이었다.

"네게 주어진 그 힘은 분명 특별한거야. 아무런 이유도 없이 네게 그런 힘이 주어지지는 않았겠지. 네가 정말 필요로 할 때는 그 힘을 사용해도 돼. 하지만 아무 이유 없이 그 힘에 휘둘리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따듯한 목소리로 그런 말을 건넨다. 그 말이 이상할 정도로 가슴에 울린다. 단지 처음으로 내 말을 믿어주었다는....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그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가슴이 두근거린다.

"내가 이 곳에 오게 된 것도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였구나. 좋아. 꼬마아가씨 이름이 뭐지?"

".... 미츠키."

"그래. 미츠키. 힘을 가지게 된 자는 자신도 모르게 비틀려 버리는 경우가 많아. 넌 아닐거라 믿지만 그래도 그 눈은 네게 너무 무거운 짐일거야. 그렇지 않니?"

"네...."

"응. 그러니까 네게는 특별한 선물을 줄께. 혹시나 해서 가져오길 잘했구나."

그 사람은 주머니를 뒤지더니 작은 상자 같은 것을 꺼냈다. 이 것은... 안경집이다. 그 안에는 조금은 촌스럽게 보이기까지 한 검은색 안경이 새하얀 천으로 정성스레 감긴 채 담겨있었다.

"이건 뭐죠?"

"안경이지. 써 보렴."

그 말에 조심스레 안경을 써 본다. 조금은 큰 것 같지만 그래도 쓰는데 별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안경의 렌즈를 통해 본 세상. 특별한 일그러짐 같은 것이 없는 것으로 보아 렌즈 자체는 아무런 효과가 없는 평범한.... 아?

"..... 선이 안보여?"

"그렇지? 마음에 드니?"

"네! 대단해요! 진짜 마법 같아요!"

즐거운 마음에 소리친다. 그 미칠 것 같은 검은 선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할줄은 몰랐다. 그래. 그 균열이 주는 무게는 그만큼 컸던 것이겟지. 그렇게 좋아하고 있는 내게 그 사람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난 마법사니까."

"네?"

"마법사라고. 그 안경 역시 특별한 마법의 안경이지. 안경을 벗는 순간 그 선은 다시 보이겠지만 그래도 그 것에 네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거야."

그 동화같은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여성. 하지만 왠지 그 이상한 말을 믿고 싶었다. 생각해보면 사실 그 선이라는 것 자체도 이미 마법 같은 것이었으니까 마법사가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겠지.

"네. 고마워요."

"응.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나도 기쁘구나. 그런데 미츠키."

"네?"

"아까도 말했지만... 그 안경을 절대로 벗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야. 네가 살아가는데 있어 그 안경을 벗어야 할 때도 올 거란다. 하지만 그에 대해 세 번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바래. 단지 아무렇게나 행동하고 미안하다는 말로 끝내버리려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생각하며 행동하고 잘못을 했을 때는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 것이 내가 네게 그 안경을 주는 조건이야. 어때? 할 수 있겠니?"

".... 네. 그렇게 할께요."

"그래. 믿을께."

그렇게 말하며 그 여성은 정말 기쁜 듯 활짝 웃었다.

"좋아. 이제 내가 이 곳에서 볼일은 끝난 듯 싶구나."

"네? 가시는 거에요?"

"응. 할 일이 끝났으면 가야지. 미련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미련한 사람만이 가지는 거란다. 떠날때는 다음에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웃으며 떠나면 되는거야."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털어낸다. 아아... 정말로 떠나는구나.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단 10여분의 만남이었지만 왜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만나왔던 느낌이 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마치 이전에도 만났던 것 같은 반가운 느낌. 그 사람이 떠나간다는 말에 이상하게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웃으면서 보내달라고 했잖아. 미츠키."

"... 네에."

발걸음을 옮기던 그 사람은 결국 다시 몸을 돌려 내 앞에 와서 무릎을 꿇었다. 오른손을 내 머리에 올려 쓰다듬으며 미소짓는다. 그 손길이 떠나간다는 것이 너무 싫었다. 어째서일까...

"울지마.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거야. 그 때, 선생님이라 부르며 반겨주지 않겠어?"

".... 네에. 그렇게 할께요."

간신히 울음을 참으며 답할 수 있었다. 억지로 웃음 짓는 내 모습만으로도 충분했는지 선생님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래. 그럼 된거야. 갈 사람은 가야지. 나중에 보자 미츠키."

"네... 나중에, 나중에 꼭 다시 만나요. 선생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드는 것 만으로 인사하며 가는 모습을 시야에서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계속 지켜보았다. 자꾸만 눈물이 나는 것 같았지만 그 모습이 흐려지는 것이 싫어서 연신 눈을 비비며 웃엇다. 많이 힘들었지만...





짧고도 강한 그 만남. 그 이후 난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 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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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편 정도로 구상중인 월희 팬픽. 만월의 날개 입니다.

살짝(이라고 쓰고 매우) 비슷한 구성 같지만...

사실 노린겁니다 [웃음]

뭐... 그런겁니다. 저의 새로운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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