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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면 그녀가 해온 말이 모두 이해가 갔다.
자신의 삶은 포기한 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아왔던 삶.
그렇기에 소환된 뒤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구하며 살아왔던 그녀.
비록 겉으로 내색은 안했지만 때때로 흘러들어오는 사념 속에서 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어쩌면 성배를 통해 생전에 이루지 못했던
자신의 삶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꿈’을 이루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지만 왜 하필 내게 불려와 이 땅에 머물게 된 것일까?
이 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그녀가······.




성배 전쟁 결전의 밤 전야 - Sticky night

걸을 수도 없다고 비명을 질러대는 몸을 이끌고 억지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문 앞에는 의외의 사람이 서 있었다.

“어디 갔다가 오는거야?”

차가운 목소리에 순간 오한이 달릴 정도였다. 싸늘하게 나를 바라보는 날개의 모습에 일순 놓칠뻔한 정신을 겨우 부여잡았을 정도니까. 그제서야 눈치 챌 수 있었다. 날개가 지금 내게 하려고 한 말을·······.

[대답 여하에 따라서 죽일 수도 있어.]

라고.

“미안하지만 나와 싸우고 지금 이 꼴이 된거야. 무슨 문제라도 있어?”

거기에 대답해 준 것은 아야메. 조금 전 까지만 해도 랜서의 마스터였던 토오사카 가문의 마술사였다.

“······· 그랬어? 후으. 그럼 역시 아닌건가? ······· 가 아니고 왜 네가 여기 있는거야!”

무언가 안심한 듯 어깨를 내리며 긴장을 풀다가 다시 발끈하는 날개. 역시······· 의외로 분위기에 잘 휩쓸리는 타입이구나. 날개는.

“·······.”

윽. 이 쪽을 보고 있어. 위험위험.

“······· 하아. 뭐 자세한 것은 나중에 듣기로 하고, 일단은 안으로 들어가자. 캐스터가 왜 그 모양인지도 안에서 물어보도록 할테니까.”

그 순간 자신이 처한 상황이 기억이 났다. 맞아, 지금 중요한 것은 캐스터다!






허겁지겁 방 안으로 들어간 뒤 캐스터를 눕히고 난 뒤에야 겨우 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아야메는 신기한 듯 방 안을 두리번거리고 있었고, 날개는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않은 듯 나와 아야메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아니, 긴장하는 것은 그렇다고 쳐도 일단 보석은 내려 놓는게 어때?

“자, 그럼 설명을 해 주실까?”

“간단해, 나랑 이 녀석이랑 싸워서 이 녀석이 이기고, 나는 어찌어찌 살아서 여기까지 끌려왔다는 것. 포로랄까?”

“틀려!”

뭔가 이상한 뉘앙스가 풍길 듯한 단어를 서슴없이 내뱉는 아야메에게 빽 소리를 질러준 뒤 지난밤에 있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혼자 뛰쳐나가 랜서를 맞아 싸운 캐스터, 그리고 캐스터가 보구를 사용해 랜서를 소멸 시킨 것, 쓰러지는 캐스터에게 달려가 내 ‘피’를 먹여 소멸을 막은 뒤 이리로 돌아온 것, 마지막으로 왠지는 모르지만 한 숨을 쉬면서 내 뒤를 따라온 아야메의 일 까지.

“그럼, 어제 밤은 계속 둘이 같이 있었다는 의미?”

“너 아까부터 이상한 이야기만 한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거야?”

“뭐, 있었다면 있다고 할까?”

그렇게 말하며 보석을 포켓 속에 집어넣는 날개, 그리고 냉장고로 다가가 물통을 꺼내 벌컥벌컥 마셔댄 뒤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녀석의 표정에서 복잡한 무언가가 보였지만 나로서는 대체 그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뭐, 좋아. 그럼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할께, 혹시 형제가 있어? 오래 전에 헤어진 쌍둥이라던가······.”

“응? 있을 리가 없잖아. 가린이를 제외하고는······· 없어·······.”

“·······미안.”

“아니야.”

하아. 다시 생각이 나 버렸어. 이미 어쩔 수 없는 것을.





“다시 말해서 나랑 똑같이 생긴 녀석이 있었다고?”

“아니, ‘똑같이 생긴’ 레벨이 아냐. 거의 동일인이었다고. 다만 눈빛이랄까, 너랑 어디에선가 다른 느낌이 들어서 확인하러 온 거야.”

“그런데 목숨을 거는 것은 대체 뭐야?”

“시끄러워. 너는 대체 여기 왜 온 거야?”

툭탁거리는 날개와 아야메. 그 모습을 보고 왠지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 버렸다. 둘은 분명 앙숙일텐데 이렇게 금세 어울릴 수 있는 것일까?

“아아. 너무해. 도와주러 온 사람한테 그런 말을 하면.”

“쫑알쫑알 말만 많으면서 도와주긴 무슨.”

아야메에게 가볍게 쏘아 준 날개는 포켓 속에서 작은 보석을 하나 더 꺼내 들었다. 그리고 캐스터에게 다가가 그녀의 가슴에 손을 얹고······.

“음? 뭐하는거야?”

“보면 몰라? 마력의 주입이지. 먹이는 것 보다는 효율이 떨어지지만 지금 제대로 먹을 수도 없는 상태일테니까.”

“헤에. 자신의 서번트도 아닌데 신경 많이 써주네?”

“캬악! 집중하는데 방해돼! 떨어져!”

날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크게 소리를 질러 준 뒤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날개의 손 아래에서 밝은 빛이 흘러나오고 캐스터의 가슴 위에 있는 보석이 부서지며 가루가 되어 흩날린다. 가루들은 바람 한 점 없는 방 안에서 흩날리며 캐스터의 몸을 감싸 안 듯이 흩어지다가 가라앉았고, 한결 호흡이 나아진 캐스터의 모습을 보고서야 날개는 어깨를 풀고 자리에 앉았다.

“그나저나 츠바사.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왜 아깝게 보석을 날리는거야?”

날개 = 츠바사 입니까.

“시끄러워. 헌혈은 취미가 아니야.”

자그마치 헌혈이군요.

“뭐. 이 녀석이 혈액으로 캐스터의 소멸을 막은 것은 의외랄까. 혈액이라는 요소가 마력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니. 의외였어.”

“이봐이봐. 나도 마술사야. 아무리 맹탕이라도 그 정도는 안다고.”

“그거 내가 알려준 거잖아.”

윽. 그랬던가? 그 때 워낙 경황이 없어서.

“아아. 최악이야. 이런 엉터리 마술사에게 당하다니. 이번 카드는 꽤 고급이었는데 말이야.”

“하아? 그 랜서가 그렇게 대단했어? 뭐, 창술 자체는 대단했다만 보통 랜서로 뽑힐 정도라면 그 정도는 당연한거 아닌가?”

‘그럼 그렇지.’ 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날개는 아야메의 말에 그렇게 비꼬아 준 뒤 입을 열었다.

“적어도 세이버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어?”

결국 자기 서번트 자랑입니까.

“그럴리가, 그 때 그런 의외의 상황만 아니었다면 이기는 것은 랜서였을 거라고.”

“오호라. 그렇게 자신 있다는 말인가?”

이 사람들. 어쩐지 무섭도록 어울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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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는 좀 짧습니다.
사실 뒤 쪽에 조금 긴 비축분이 하나 더 있어 3화의 업로드는 문제 없지만
그 다음화, 그러니까 3월 12일 4화 부분에서 여러모로 막혀있기 때문에
업로드가 조금 느려질 수도 습니다.
분위기도 무거웠다 가벼워졌다... 왔다갔다군요 [먼산]

뭐.. 요즘 조금 바쁩니다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빠른 시일 내로 업로드 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웃음]





결국 싸움은 캐스터가 몸을 일으킨 뒤에야 끝이 났다. 캐스터는 시끄럽게 떠드는 둘에게 한바탕 설교를 해 준 뒤에야 자신이 아직 현계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는 눈치였다.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자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는 캐스터. 의외로 질기구나. 캐스터는. 하긴, 분명히 강한 사람이었으니까.

“그 강제 해지된 패스가 의외로 도움이 많이 되네. 적어도 아직 연결 고리는 있으니 연료 주입만 해 주면 된다는 거잖아. 이미 소멸되어도 남았을 녀석이 여전히 살아있다니.”

“기합으로 남아있던거 아니었던가?”

아야메의 말에 무의식적으로 대꾸했다가 세 미녀(라고 쓰고 마녀라고 읽는다.)의 무시무시한 눈총을 받게 된 나는 재빨리 구석에 가서 찌그러져 버렸다.

“그나저나, 세이버는 어떻게 된 겁니까?”

어느 정도 방이 조용해지자 캐스터가 한 말은 바로 이 것이었다. 그러고보니 세이버가 보이지 않는다. 영체화라도 했겠지 했는데 캐스터의 말에서 풍기는 분위기로는 그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날개 역시 인상을 찌푸린 채 무언가 말을 하기 꺼려하는 듯 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한숨을 내 쉬며 설명해 주었다.








“그런 것은······· 듣지 못했어.”

“알 리가 없지. 그런 것은 숨기는 것이 보통이야. 애시당초 인간 자체의 복제 Replica는 금기니까.”

그렇다. 그 것은 금기. 도플갱어와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될 지도 모른다. 정체성의 혼돈. 그로 인해 보통은 미쳐버리게 될 테니까. 그리고 복제를 하는 이유 역시 가장 큰 것이라면·······.



생체 실험.



순간 구역질이 밀려 올라왔다. 나와 같은 얼굴을, 모습을 한, 비록 인형이라지만 그런 존재들이 실험용 쥐가 되어 사라져 왔다는 것을 상상하는 순간 참기 힘든 역한 느낌이 들었다. 애써 그 것을 참으며 고개를 들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다른 사람들 역시 그리 표정이 좋지 않았다.

“뭐. 그렇다면 목표는 복수인가.”

“아마도 그렇겠지.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을 것 같은데? 그 레플리카 녀석. ‘한’가의 마술을 제대로 익히고 있다고.”

날개의 말에 조심스럽게 캐스터의 얼굴을 바라본다. 랜서를 소멸시킬 때 사용했던 기술. 하늘에서 벼락을 불러오는 것이라면 어떻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것은 가정. 실제로 캐스터는 그 것을 부인했다.

“랜서 정도의 항마라면 가능했습니다만, 방어의 영령이라면 항마 역시 엄청나겠지요. 그렇다면 주문이 완성 될 때 까지 그를 묶어놓는게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설령 주문을 사용한다고 해도 그 벼락이 그의 보구를 뚫을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사실 랜서 역시 묶이지 않고 보구를 사용할 수 있었다면 혼천릉에 그 벼락은 흩어져 버렸을지도요. 아니, 그 보다 걱정인 것은 마력이지요. 확실하지 않은 공격에 대부분의 마력을 쏟는 것은 위험합니다. 지금 상태로는······· 잘 해야 한 번 사용할 수 있을 것 같군요.”

라고.

그 말에 날개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하기 시작했다. 세이버, 버서커, 아쳐. 세 서번트 중 하나만 남아있었더라도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았을 것을! 이라고 외치면서

“그럼 우리가 녀석을 묶어 놓는 것은 어떨까?”

“서번트를 마술사 3명이 묶는다고?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아. 네 녀석이 반 사람분이고 내가 1.5명 분이야.”

굳이 그렇게 토 달 것은 없잖아. 하지만 내가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날개는 생각에 잠겨버렸다. 하지만 수가 보이지 않는지 계속 투덜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흐음. 캐스터. 그나저나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는데?”

“무엇입니까?”

아야메는 왠지 모를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무언가 아직 꺼내지 않은 카드가 있지? 표정을 보니 그럴 것 같은데?”

“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망설이는 눈치였어. 말 해봐.”

“그건·······.”

우물거리는 캐스터.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대체 뭐길래 저런 태도를 보이는거지?

“말해봐. 캐스터. 지금 우리들이라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니까.”

“지푸라기는 아닐겁니다. 다만·······.”

“다만?”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격이랄까. 아니, 그 보다는 마력이 너무 많이 필요해요. 실제로 만전의 상태에서라고 해도 사용하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그 말에 아야메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날개와 무언가 상의를 하기 시작했다. 날개 역시 처음에는 조금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다가 아야메의 말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거기에 캐스터까지 끼어들면서 무언가 설전 비슷한 양식을 띄기 시작했다. 이거······· 어쩐지 따돌림 당하는 기분인데?







“후으. 분명히 그러면 될 지도.”

“그렇지? 캐스터의 마지막 수단이 확실히 그 녀석을 누를 수 있다면 이게 최선의 방법일거야.”

근 2시간에 걸친 대화를 마친 뒤에야 그녀들은 나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멀리서 소근대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감응의 술을 사용하려다가 날개에게 들켜 된통 혼나고 아야메의 간드에 몇 대 얻어터진 것 외에는 심심해서 죽을 뻔한 시간이었다. 아니, 간드는 분명 저주의 술로 기억하는데 무슨 스트레이트 펀치 같은 느낌이냐고, 뭐 어쨌든 이제 좀 들어볼까?

내용은 의외로 간단했다. 결국 캐스터의 마력을 회복시켜 그 술을 사용하는 것. 너무 간단해서 맥이 빠져버렸지만 그녀들이 상의한 내용은 그 마력을 회복시키는 방법인 듯 했다. 캐스터의 마력회복이라. 보석을 한 10톤 쯤 먹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가 현실성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 방법을 들으려는 찰나 아야메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이봐. 가르쳐 주지도 않고 어디가는거야?

“뭐. 이쯤하면 내가 할 일은 다 한거지? 그럼 난 돌아갈께.”

다 안했습니다! 아직 난 모른다구요!

라고 소리 지르려다가 깨달았다.

그녀는 남이다. 아니, 그 보다는 적이다. 날개의 어머니, 그리고 그 각인의 전수자인 날개를 살해하려 찾아온 날개의 적. 그리고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목숨을 걸고 싸워왔던 사람. 그런 사람이 너무나 친근하게 다가와 도와주는 통에 잊고 있었다.

“·······.”

“눈치 참 느리네. 이제야 알았다는 눈치라니. 설명하려면 고생 좀 하겠어.”

아야메는 그렇게 나를 보고 웃으면서 몸을 돌렸다. 하지만 난 그런 아야메의 표정 속에서 그 무엇도 읽을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오직 하나. 그녀가 우리를 도와준 것은 분명히 진심이었다는 것.

“뭐. 다음에 또 만나면 좋겠어. 그때는 이런 관계가 아니었으면 하지만 힘들겠지.”

마지막으로 등도 돌리지 않은 채 그렇게 말을 한 아야메는 방문을 나섰다.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날개와 아야메, 이런 관계만 아니었다면 함께 지낼 동년배의 가까운 친척이라는 것을. 실상은 오래 전부터 이렇게 가까이 지내고 싶었지만 그렇게 못했던 것 뿐 아닐까?

실제로 날개는 쓴 웃음을 지으며 내게 아야메가 한 말을 전해주었다. 처음에는 단지 싸울 상대라고만 생각했는데, 며칠 동안 생각해보니 그 것이 아니었다고, 날개의 어머니는 특별히 가문의 비술을 가져간 것도 아니고, 단지 마술의 기본과 함께 기초적인 자연 마술 - 광물 마술 - 에 대한 것을 몰래 배웠을 뿐이라고 했다. 말 그대로 ‘형제’ 라는 제약이 없었으면 당연히 배웠을 기본중의 기본을 배웠다고 그 것에 대한 제제를 가하려 한 것이었다는 말에 한숨만이 나올 뿐이었다.

“뭐. 어쨌든, 아마 다시 아야메 녀석을 볼 수는 없겠지. 녀석이 토오사카의 당주가 된 뒤에도 날 만나려 한다면 또 다르겠지만.”

촌수를 따져보면 겨우 사촌이다. 그 혈연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둘은 금세 사이가 좋아진 것 같았다. 그 증거로 날개는 아쉬운 듯한 미소를 짓고 있으니까.

“뭐야? 그 표정은?”

“아·······. 아무것도 아니야. 별로 실례되거나 무례하거나 미안하게 느껴진다거나 하는 생각을 한 것은.”

“········ 대충 그렇다고 믿어줄께.”

날개는 그렇게 말한 뒤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자아. 그럼 2시간 동안 대화 내용을 알려줘야겠지? 결론은.”








결론은 이 것이었다.

내 생각대로 보석을 무작정 먹이자는 생각도 나왔지만 그랬다가는 전 재산을 털고 빚을 내도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미쳐 기각. 무작정 피를 마시게 한다거나 사람들에게서 빼온다는 것 역시 기각. 실제로 그랬다가는 아마 미라가 될 정도로 피를 빼내야 한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랄까.

그렇기에 아야메가 내 놓은 의견은 이 것이었다. 무작정 연료 탱크를 채우는 것이 아니고 패스를 새로 만들면 된다는 것. 성배의 힘으로 캐스터와 묶이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마술사 대 마술사로서 패스를 새로 만들어 마력을 공급해준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것. 거기에 내가 사용, 아니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잠재되어있다는 (확인은 불가능했다) 마력의 양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에 날개 역시 그 생각에 동의했다고 한다.

“헤에.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이제야 알았어? 정공법이 안되면 다른 방법을 쓰는 수 밖에 없는거지.”

날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다행이다. 이렇게 늦게나마 방법을 찾을 수 있었으니까. 확실히 패스를 연결해 놓는다면 분명히 안정적이겠지. 필요할 때마다 물(보석)을 부어서 탱크(마력)를 채우는 것 보다 호스(패스)를 통해 채우는 것이 안정적일 것이다.

“왜 이제야 그 것을 깨달았는지 모르겠네. 뭐 좋아. 그럼 어떻게 하면 돼?”

기쁜 마음에 별 생각도 안하고 웃으면서 그렇게 물어 보았다.



그 순간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또한 ‘알면서 그러는 거라면 죽여버린다’ 라는 듯한 표정을 짓는 날개.

그리고 고개를 돌린 채 멋쩍은 표정만을 지으며 있는 캐스터

그제서야 눈치 채 버렸다.



더불어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타 버린다.

그 둘의 표정을 보는 순간 알아버렸다.그녀들이 말하려고 했던 ‘방법’ 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 저······· 저기?”

“뭐가?”

“그러니까 그건 혹시?”

쐐기를 박는 날개. 그녀는 그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래서 확신해 버렸다.

날개가 말하는 것은 분명히 그 것.





- 캐스터를 안아라 -





라는 것을.

“아······· 그러니까······· 그건·······”

당황해서 말을 하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 심장이 뛰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캐스터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동에 미칠 것 같았다.

“········ 알아서 해.”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날개는 그렇게 말한 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방 안에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저기······· 캐스터?”

한참이 지난 뒤에야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다. 캐스터는 그 때까지 아무 말도 안하고 있다가 내가 말을 건 뒤에야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이미 이야기는 다 끝났습니다. 그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미건조한 말투. 하지만 분명히 조금 떨리고 있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래도 그건·······.”

솔직히 나도 기대가 되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남자니까. 그렇지만, 무작정 캐스터를 안을 수만도 없었다. 서번트로서 이 땅에 와서 나 때문에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며 지금도 언제 소멸 될지 모르는 상태로 힘겹게 남아있는 그녀를·······.

그런 거다. 만약 캐스터가 그 것을 마음으로 원하고 있다면 별 문제 없겠지. 하지만········ 단지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도구로서 그 것을 마지못해 허락한 것이라면? 그렇다면 더더욱 그녀를 안을 수는 없었다.

“마스터.”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내게 캐스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을 때 그녀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미소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제가 마스터의 앞에 소환되었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응? 으······· 응.”

뜬금없는 캐스터의 말에 조금 당황하며 긍정을 표한다. 그런 내 모습을 캐스터는 웃으며 바라보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 때 저를 소환한 매개물이 무엇인지 기억하시는지요?”

“······· 없었는데?”

그랬다. 생각해 보니 난 그 어떤 매개물 하나 없이, 단지 너무나 우연하게 캐스터라는 카드를 뽑은 것이었다. 그 자체의 강함은 둘째 치더라도 이 땅에서 신화적일 정도의 인지도라는 배경까지 가지고 있는 ‘제갈량’ 이라는 카드를·······.

“없을 리가 있습니까? 서번트를 소환하는데 그 서번트와 연결 된 매개물이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겁니다.”

캐스터는 그렇게 말하면서 무릎을 세워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점차 그녀의 얼굴이 가까워지면서 가슴의 두근거림 역시 커지기 시작했고, 난 그런 캐스터를 말리지 못한 채 멍하게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빛이 나는 듯한, 빨려 들어갈 듯한 눈동자를 바라본다. 가볍게 홍조가 서린 얼굴이 점차 가까이 다가오고 가볍게 벌어진 붉은 입술은 미쳐버릴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그 때 저와 당신을 묶은 매개체는······· 다름 아닌 당신의 피, 즉 당신 자신이었습니다. 전 당신을 만나기 위해 이 곳에 불려온 거에요.”

“그······· 그럴리가.”

“분명히 사실이니까요.”

어느새 캐스터는 나를 마스터라고 부르지 않고 있었다. 그 것을 말릴 틈도 없이 캐스터의 팔은 내 목을 감아왔다.

“안아주세요.”

그리고 그녀는 단지 그렇게 말하며 내게 안길 뿐이었다.






더 이상 눈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미 마비되어버린 사고로는 다른 무언가를 생각할 수 없었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 이 곳에 왔습니다.’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안아주세요.’

분명히 내 앞에서 나에게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아·······.”

무언가 말을 하기도 전에 그녀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온다. 엉거주춤 몸을 뒤로 빼고 있는 나와 그 위에 올라타 있는 듯한 캐스터의 모습. 가루처럼 부서지는 머리로는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무언가 ‘부드럽구나’ 하는 생각만이 들 뿐이었다.

캐스터의 얼굴이 천천히 내게서 멀어진 후에야 몸을 조금 세울 수 있었다. 특별한 무언가가 없는, 단순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풋풋한 입맞춤.

“지금은······· 모든 것을 잊어도 좋아요. 단지·······.”

붉어진 얼굴. 고개를 숙인 채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단지 지금은 저만을 바라봐주세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되는, 넋이 나갈 것 같은 모습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처음 받는 고백. 그리고 그와 함께 안겨오는, 지금은 너무나도 여리기만 한 소녀. 이미 머리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있었다. 내가 왜 그녀를 안는지, 그녀가 왜 나에게 안기는지. 그녀와 나와의 관계는 무엇인지에 대한 것 까지도 모두 잊고 있었다. 조심스레 팔을 뻗는다.

‘고마워요.’

그렇게 귓가에 소곤거리는 캐스터를 가만히 안는다. 그저 인형처럼, 그녀의 말을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었지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의 몸을 보는 순간 다시 몸이 굳어버렸다. 등을 돌린 채 자리에 조심스레 앉아있는 캐스터.

평소 단정하게 틀어 올리고 있던 긴 머리는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처럼 그녀의 등 뒤로 단정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는 어깨. 가느다란 허리. 긴 흑빛 머리칼 아래 감추어진 조그마한 등에 그녀가 사실은 얼마나 약한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맡겨진 짐이 너무 컸기에 자신을 돌볼 수 없었던 소녀. 죽은 뒤에도 오직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꿈’, 아니 자신에게 맡겨진 다른 사람들의 꿈이 바라보이는 언덕에 묻혔던 사람.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작은 소원을 잊지 않고 있었다. 단지 마음속에 깊이 묻어 놓았을 뿐.

하지만 그 마음을 버리지 않았기에 이렇게 내게 올 수 있었다. 비록 힘들기만 한 열흘간의 만남이었지만 그녀는 절대 내 곁을 떠나지 않았고, 나는 미련하게도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이제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제 똑바로 그녀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녀가 내게 등을 돌린 채 천천히 옷을 벗는 짧은 시간, 그 사이에 난 그 것을 깨달았다. 비록 그녀의 생전에 내가 어떤 존재였는지도 모르고, 지금까지 단지 그녀를 싸움의 도구 비슷하게 여겨온 사실도 없지 않아 있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녀는 분명히 단지 나를 만나기 위해 이 곳에 왔고, 그런 고통 속에서도 내게서 떠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내게 그 마음을 전해주었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수천년 전의 인연. 하지만 그 마음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에 제대로 대답해 주어야 한다는 것 역시.

몸을 일으킨 캐스터가 천천히 뒤로 돌아 내게로 다가온다. 여전히 몸은 가볍게 떨리고 있었지만 마음은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어쩌면 지나칠 정도로 침착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한 가지. 이제는 그녀의 행복을 찾아주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내 곁에 조심스레 앉는 캐스터. 스스로 안아달라고 했지만 그래도 부끄러운 모양인지 몸은 꼼꼼하게 가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작은 웃음이 새어나온다.

“마스터·······.”

가만히 열리는 캐스터의 입술. 하지만 그 뒤에 나올 말을 기다리지 않은 채, 그 입에 나는 천천히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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