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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분명히 이상하기는 했어.”

끝없는 자기혐오가 밀려온다. 왜 그 것을 깨닫지 못했을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었는데. 아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그 녀석을 너무 믿게 되었다.

“워낙 사람 좋은 녀석이었으니까.”

그래. 분명히 그래서 그런 거였어. 안 그래도 성배 전쟁에 지쳐있었으니까 나도 모르게 깜박 당한거지. 맞아. 지쳐서 그래. 보통 때였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았어.

아쳐 정도의 마술사가 단지 팔을 떼어낸 것 만으로 령주를 사용해 명령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어. 본래는 신경과 연결된 령주를 떼어내고 이식하고, 또한 그 령주와 패스를 통하고. 보통 힘든 작업이 아닌거야. 때문에 보통은 상대의 팔을 잘라낸다는 상상조차 하지 않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쳐는 자살했어. 그 것은 분명 상대가 자신에게 ‘잘려나간 팔에 붙은 령주’를 이용해 명령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야. 그래, 그 것은 분명·······.

“감응의 일종이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감응의 최종 랭크. 상대의 신경을 조작해 자신의 맘대로 조종하는 것. 상대의 신경과 자신의 신경을 연결, 정확히 말하면 상대와의 파장을 느끼고 그에 동일하게 자신을 변화시켜 그 안에 녹아드는 것. 그 것이 바로 감응. 그래. 진작에 눈치 챘어야 했다.

아쳐를 죽게 만든 디펜더의 마스터가 감응을 사용한다는 것. 그리고 그 감응이라는 것은 한가람 녀석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마술 이라는 것을. 물론 감응을 사용하는 것만 가지고 연결하는게 우습지만, 보통은 그 정도까지 감응을 파고드는 마술사는 없다. 그 정도로 파고들 수 있는 것은 애시당초 그런 목적만을 가지고 그 것만 죽어라고 익힌 사람 뿐.

다시 말해 조금만 더 조심했다면 세이버가 한가람 녀석에게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왜 난 여기에 와 있는거지?”

가람이의 방문 앞에서 고민하고 있는 나였다.







바람이 몰아친다. 바람의 근원지는 다름아닌 캐스터의 손. 그 곳에서 눈을 뜨기도 힘들 정도의 바람이, 아니,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캐스터!”

닿지 않는다. 내 목소리는 이 바람을 헤쳐 나갈 수 없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 분명히 느껴지는걸. 캐스터는 자신의 생명을 버리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캐스터!”

다시 한 번 외친다.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듣지 못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녀는 멈추지 않고 자신의 보구를 꺼내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 멀리 랜서와 토오사카가 보인다. 그들도 적지않게 당황하고 있는 모습. 랜서는 앞으로 달려나가려 하지만 이 바람이 그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서번트의 움직임조차 허락하지 않는 바람.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다. 마치 쇠사슬로 묶인 듯한 느낌의 바람.

······· 쇠사슬?

“으윽!”

머리가 터질 것 같다. 무언가 기억이 날 듯한 느낌과 함께 엄청난 고통이 찾아온다. 하지만 알지 못한다. 확실한 것은 단 하나. 일방적인 방향으로만 부는 바람은 마치 사방팔방에서 쇠사슬로 묶은 듯 몸의 자유를 구속하고 있었다. 꼼짝도 할 수 없는 몸. 그 속에서 난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래. 난 이 바람을 알고 있다.

“······· 설마?”










모든 사람들의 꿈을 안은 채 살아가야만 했다.

올해 농사가 잘 되어졌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농민의 꿈부터 시작해서,
큰 공을 세워 출세하고 싶다는 말단 병사의 꿈이나,
천하에 이름을 날리고 싶다는 장수의 꿈,
혹은, 자신의 조상이 세운 제국을 부흥시키고 싶다는 주의 꿈 까지.

그 모든 꿈을 떠맡은 자신이었지만 정작 그 꿈을 이루어주지 못했다.
때문에 그 것을 안은 채 세상에 남았다.
마지막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을 모두 자신의 안에 품은 채 쓰러졌다.

때문에 질 수 없다.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 내가 쓰러지는 순간 이 사람들의 꿈 역시 무너지는 구나. 하고

말도 안 되는 행동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자신 역시 단순한 인간.
정작 자신의 꿈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한 무력한 인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백, 몇천만의 꿈을 안고 살아왔다.

이 자리에서 다시 쓰러져도 좋다.
하지만 지는 것만은 납득할 수 없다.
내 자신이 부족해 쓰러지는 것은 용납할 수 있어도,
다른 이에게 무너지는 것은 안된다.

궤변이다. 그 따위 궤변 따위는 집어치워라.  
라는 생각은 수없이 많이 해 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궤변이라도 좋으니까, 다른 사람들 때문이 아닌 내 자존심 때문이라고 해도.

이 것은 분명한 나의 ‘이상’
모든 사람들의 꿈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나의 목표.
그래. 이 생각은 분명 옳은 것이다.

그렇게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며 그녀는 다시 한 번 도움을 청한다.

꿈을 이루어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루어 주겠다.
그러니까, 다시 한 번만 나를 믿고 나에게 힘을 빌려주길 바래.

그 것이 실현 가망이 없는 조건이라고 해도,
단지 입에 발린 말이라고 해도,
그녀의 친구들은 쓴 웃음을 지으면서도,

그녀에게 자신들의 힘을 빌려준다.

사람들을 해치던 흰 매를 잡아 그 깃으로 부채를 만들었던 친구가 그 맹세의 징표를,
일백만 백성을 살리기 위해 같은 수의 적병을 묶은 친구는 억압의 쇠사슬을,
더불어 10년 이상 함께 했던 자연은 거대한 폭풍을 부르고,
마지막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기원이 하늘에 닿아

이 세상 자체의 날씨를 바꾸어 버린다.
폭우와 함께 거대한 황금빛 도끼를 머금은 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바람은 조금 잦아들었다. 하지만 몸은 여전히 움직일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쇠사슬에 묶인 듯한 느낌.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내 몸. 그 것은 서번트라 해도 마찬가지 인지, 랜서와 토오사카 역시 움직이지 못한 채 캐스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죽는구나.

어느샌가 비가 오고 있었다. 분명 달이 보일 정도로 맑은 하늘이었지만 지금은 달이건 별이건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똑, 똑, 하고 떨어지던 빗방울은 어느새 폭우로 변하고 있었다.

“캐스터·······.”

커다란 목소리로 그녀를 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녀는 숨이 가쁜 듯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알고 있다. 마지막 마력인 것이다. 한계치까지 박박 긁어모은 마력. 그 마력으로 이 세상의 날씨를 바꾸어 버린 그녀는 손에 들린 부채를 힘겹게 들어올렸다.

“끝입니다. 랜서, 그리고 랜서의 마스터.”

깃털로 만든 부채가 비에 젖어들고 있었다. 흠뻑 젖어버린 채 부채를 들어올린 캐스터의 팔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부채를 내리지 마. 제발, 이대로 멈추어 있어도 좋으니 그대로 있어줘 캐스터.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 느낄 수 있었다. 저 부채, 백우선을 든 팔이 떨어지는 순간 랜서라는 존재가 사라져 버린 다는 것을. 그리고 그와 함께 캐스터 역시 사라져 버린 다는 것을.

하지만 막을 수 없었다. 입이 열리지 않았다. 크게 소리쳐 그녀를 말리고 싶었지만 그 말은 입 안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 마스터.”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빗소리에 묻혔어야 할 작은 목소리지만 똑똑히 들려왔다. 캐스터가 나를 부르고 있다. 손을 높이 든 채 그 둘을 바라보던 캐스터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알고 있던 건가? 내가 있다는 것을?

비가 그녀의 눈 안에 가득히 고여 있었다. 하지만 그 것을 보고도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녀의 행동을, 그녀의 말 한마디를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 뿐·······. 캐스터는 천천히 팔을 내려 랜서들을 가리키며 중얼거린다.

“부디, 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내 사ㄹ·······.”
                            - 콰아아앙! -

미처 다 하지 못한 그녀의 말을 끊어버리며 귀가 멍해질 정도의 폭음과 함께 새하얀 섬광이 눈앞을 가득 메웠다.



덧 1 : 지금까지의 줄거리는 연재가 너무 오랜만이라 이제까지의 내용을 잊으
신 분들 [퍼억!] 을 위한 서비스~]♡

덧 2 : 완결까지 앞으로 약 6~7화인가... 생각 외로 늘어나 버렸습니다. 쓰다보니..

덧 3 : 낚시에 주의하세요 [의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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