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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안 좋아 보인다..."

소란스러운 통제실 안에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목소리가 끼어든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지만 기이하게도 소란 속에서 그 목소리를 놓친 사람은 없었다.

"리체에르씨. 정신 차렸네요. 몸은 괜찮아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한 뒤 나카프네가 물었다. 하지만 리체에르는 그에 답하지 않고 자신의 품에 안은 인형을 조금 더 세게 끌어 안을 뿐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듯 조금은 낡아보이는 비스크 돌. 하지만 이상하게도 새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인형이었다.

"이 애.... 겨우 잠들었는데, 시끄러워서...."

중얼거리며 화면을 응시한다. 그녀 주변의 공기가 이상할 정도로 무겁다.

"영자범주.... 기동."

리체에르는 여전히 들리지 않을 것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하지만 통제실 안의 몇명은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말에 무언가가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

"다녀올께."

조용한 목소리로 류노스케에게 말한 뒤 리체에르는 몸을 돌렸다. 느릿한 걸음. 하지만 그와는 달리 그녀의 몸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녀가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야 통제실을 가득 메운 검은 안개가 걷힌듯한 느낌에 숨통이 트인다. 모두가 느끼고 있던 이상할 정도의 압박감. 특히 쥐슬은 가뿐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히이로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무슨 일이죠? 쥐슬씨?"

나카프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하지만 쥐슬은 답을 하지 못한다. 가까이서 본 그의 몸은 사시나무 처럼 떨고 있었다. 히이로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그나마 그는 좀 나은 듯 나카프네의 말에 힘겹게나마 답했다. 하지만 역시 그의 목소리 역시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저... 저 분. 리체에르 씨라고 했나요?"

".... 네. 그런데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예전에 염동력자라고 들은 것 같은데..."

힘겹게 말을 이어나간다. 처음 그녀를 소개 받았을 때는 이렇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건 염동력이 아니에요. 이... 이게 염동력이라고 하면...."

그 이상은 무리. 히이로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멀리서 괴수의 울음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 이 멍청한 꼬맹이가!"

동시에 사라져버린 유키와 적함의 반응. 멀리서 터져나오는 섬광을 바라보며 시피르는 그 것이 어떤 의미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알펜하임의 움직임이 당황스러워 하는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피르 역시 그 기회를 잡지 못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당황하고 있는 것은 사이네와 가브리엘도 마찬가지였다. 함재기의 공격이 줄어드는 것 같다 싶더니 적함과 유키의 반응이 사라져있었다. 자신들이 이 곳에 발이 묶여 있는 사이에 그리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생각에 가슴이 무거워진다.

일순간 침묵이 번진다. 세 번 숨을 쉴 정도로 짧은 시간. 그 시간이 삼천년의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것도 잠시. 멈추어 있던 시간이 움직이며 전장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자유로워진 슈안의 토르해머가 솟구쳐 오르며 왼팔에 장비되어 있는 TB(Thunder Break)를 서전트를 향해 겨눈다. TB의 자주식 플라즈마 캐논이 팬텀과 서전트의 사이를 파고들며 그 둘을 떨어뜨리고, 연속으로 4번의 플라즈마 캐논이 다시 쏘아지며 서전트를 향해 날아든다. 거의 기동을 멈추고 있는 팬텀의 앞으로 날아들며 단분자 블레이드를 꺼내든다. TB에서는 플라즈마 블레이드가 솟구치고, 단분자 블레이드의 날이 고속으로 회전하기 시작한다.

"자아. 이제부터가 진짜다. 저런 반 시체보다는 이 쪽이 낫겠지?"

처음으로 화가 나 있는 듯한 슈안의 목소리. 두 자루의 검을 들고 토르 해머가 서전트에게 사나운 맹수처럼 달려든다.




레이시키와 미야우치가 쏘아져 나가는 순간 남아있던 함재기들이 마구 터져나간다. 레이시키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함재기들은 어김없이 반으로 갈려버리고, 미야우치 역시 탄이 바닥난 발칸을 내던진 뒤 샷건을 꺼내들어 난사하기 시작했다.

"일단 라렌느를 구한다. 이의 있나?"

"알아! 이 빌어먹을 가짜 락커. 죽으면 지옥에서 머리박고 기다리고 있어야 할거야!"

구하거나 잡거나. 두 가지의 길 속에서 둘은 전자를 택했다. 후자를 행할 사람은 따로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응답이 없는 동기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둘은 반파되어버린 아스트라나간을 향해 날아갔다.




움직이려 하는 알펜하임의 등 뒤로 날아들며 빔샤벨을 휘두른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약하게나마 뒤 쪽의 슬러스터를 베어버린다. 다른 곳으로 보낼 수 없다. 이 쪽의 동력은 이미 바닥이고, 싸울 만한 기력 역시 바닥이 나 있었지만 절대로, 절대로 그냥은 보내지 않겠다 생각하며 시피르는 비명을 질러대는 센터를 억지로 운용한다.

알펜의 검을 피한다. 완벽하지는 않다. 센터의 머리 부분이 잘려나가며 화면에 노이즈가 낀다. 즉시 흉부의 보조 카메라로 전환한 뒤 알펜의 다리 부분을 베어버린다. 알펜이 검을 드는 순간 그대로 슬러스터를 작동시켜 몸으로 알펜을 받아버린다. 알펜 하임의 품 안으로 파고든 시피르는 빔샤벨을 그대로 적기의 옆구리에 찔러넣어 버린다.

알펜하임의 복부에 긴 검상이 생긴다. 알펜이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나 치명상은 입히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시피르는 다시 센터를 무작정 돌진시킨다.

그리고 알펜 하임이 뒤로 튕겨져 날아간다.

[돌아가.... 더 이상은 무리....]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란 시피르가 멈칫하는 사이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화면에 비친 것은 리체에르의 모습이었다. 리체에르의 말과 동시에 그녀의 무릎 위에 앉아있던 인형이 팔을 들어 함을 가리키는 듯한 모습에 시피르는 고개를 흔들어댔다. 다시 본 인형의 모습은 평범한 비스크 돌의 모습일 뿐이었다.

[지쳤을거야..... 돌아가....]

그 말과 함께 리체에르의 기체 '귀왕슈'가 센터의 앞을 가로막는다. 그 모습에 시피르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릴만한 상태가 아님을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더 이상은 기동하는 것 조차 힘든 상태였다.

"알았어. 부탁해."

시피르의 말에 리체에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시피르는 센터를 드림하트 쪽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사풍. 돌아와."

리체에르의 말에 알펜하임을 밀어내던 푸른 새가 사라진다. 한 줄기의 바람처럼 변해버린 푸른 새는 귀왕슈의 전신을 휘감으며 회전하기 시작했고, 그 것을 확인한 뒤에 리체에르는 역시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키리츠케. 없애버려."

귀왕슈의 앞에 커다란 검의 형상이 나타난다. 마치 청동기 시대의 세검 같은 형태를 한 무형의 검. 반투명한 모습의 검에 새겨진 도깨비가 싸늘하게 웃는 것 같았다.

알펜 하임이 달려든다. 하지만 그 보다 빠르게 귀왕슈의 왼팔, 아니 왼팔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무언가가 뻗어나완다. 그 안에서 뻗어나온 두 마리의 용은 알펜의 전신을 묶어버린다.

"로우도의 지킴이. 거믄 바리의 구속을 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해?"

움직이지 못하는 알펜의 콕핏을 향해 귀왕슈의 앞에 있던 검의 형상이 날아가 박힌다.






"콕핏 강제 개방! 목이 움직이지 않게 조심해!"

토렌디의 지시에 따라 아스트라나간의 콕핏이 강제로 뜯겨져 나갔다. 부서진 잔해를 치우고 그 안에 있는 라렌느를 끄집어낸다. 피투성이의 라렌느는 곧 도크 밖으로 실려나갔고, 토렌디는 아스트라나간을 다른 곳으로 치우도록 지시했다. 금방 실린 역시 들어올 것이다. 그녀의 상태도 그리 좋지 않을 터... 마음이 급해졌다. 격벽이 닫히고 또 다른 기체가 함내로 진입했다는 방송이 들려온다.

"꽤나 침착하네? 생각과는 달리."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하지만 토렌디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태도에 화가난 듯 시피르는 높아진 목소리로 따지듯 물었다.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거냐 물은거다! 이 자식아!"

"그럼 울고불고 난리라도 칠까? 그러다 괜히 멀쩡한 사람까지 죽는다."

차갑게 대꾸하며 토렌디는 귀향한 팬텀의 강화 파츠를 분리하도록 지시했다. 이어 팬텀의 콕핏 역시 강제로 해체되고 그 안에서 실린이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쓰러지듯 나온다.

"너... 분명."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토렌디의 뒤에서 시피르가 화를 내며 따지듯 말한다. 하지만 토렌디는 반대로 차가운 목소리로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어 대지 마라. 그 이상 떠들면 진짜 죽여버린다."

순간 시피르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방 안을 가득 채우는 살기의 주인이 과연 토렌디가 맞는 것인지 하는 생각에 침을 꿀꺽 하고 삼킨다.

"경고하지. 눈 앞에서 사라져. 아니면 일이라도 거들던지. 둘 다 싫다면 이 자리에서 장례식 치루게 해 줄 수도 있다."

토렌디의 말에 시피르는 잠시 그를 노려보다가 담배를 꼬나문 뒤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쓴 담배 연기. 그 냄새를 맡으며 토렌디의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계속 지시를 내릴 뿐이었다.





"라렌느! 정신 차려! 라렌느!"

빠르게 움직이는 침상 옆으로 나카프네가 달라붙는다. 그녀의 목소리에 라렌느가 힘겹게 눈을 뜨며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나카프네? 통제실은 어쩌고?"

힘이 없는 목소리. 그 소리가 듣기 싫었는지 나카프네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그런 이유가 아니다. 쓸데없이 아직까지 여유있는 체 하는 모습이 보기 싫은 것이다.

"시끄러워. 타일런트 씨나 너나 쓸데없이 폼 잡는 것은 똑같아. 입 다물고 있어!"

짐짓 화를 내는 척을 해본다. 하지만 라렌느는 반쯤 풀린 눈으로 피식 웃을 뿐이었다. 오랜만에 들은 그 이름. 그리 좋은 기억만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이 곳에 있게 해 준,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최고의 친구임에는 틀림없었다.

"아아. 타일...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야. 너는 꽤 그 녀석을 좋아했지... 생각해 보면 그 녀석이 널 여기 보낸 것은..."

"입 다물어! 두들겨 패 버린다!"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라렌느는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 모습에 나카프네는 더 이상 입씨름 하기 싫다는 듯 통신기에 대고 지시를 내렸다.

"바로 OP 준비해 주십시오. RH+ A형 혈액 있는대로 긁어모아 주시고! 실린씨는 옆방으로! 토렌디씨에게 연락 주십시오!"

빠르게 지시를 내리며 나카프네 역시 자신의 머리를 묶는다. 그녀의 분위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은 병사가 나카프네에게 'OP실에는 못들어갑니다.' 라고 조심스레 말했지만 나카프네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래. 타일런트가 자신을 이 곳에 보낸 이유는 절대 오퍼레이터 같은 일 때문이 아니다. 자신과 같은 상태가 되지 말라고, 히로를 보호해 달라는 의미. 그래, 이 쪽이 사실은 자신이 이 곳에 온 진짜 임무....



하지만 그녀는 OP 실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 앞에 쓰러져 있는 누군가의 모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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