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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 막간 - 메로메로 마고 (15)

에필로그





"... 다른 세계의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게 될 경우 다른 모든 세계의 대상이 영향을 받게 된다는게 평행 차원 이론을 연구하는 일부 학자들의 이야기에요."

하늘비 선생님의 낭랑한 목소리에 눈을 뜬다.

졸아버린 걸까? 멍한 눈길로 하늘비 선생님을 바라보자,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의중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뭔가 쓸쓸한 것 같은, 하지만 다행이야. 라는 듯한 미소.

역시 졸아버린 것 때문에 마음쓰고 계셨던 걸까.

난 조심스레 고개를 숙여 사죄하고는 옆자리에 앉아 졸고있는 풍월을 쿡쿡 찔러 깨웠다.

뭐랄까, 이 녀석을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딩동 딩동>

조용히 울리는 수업 종료 벨소리,  반장인 진산이 인사하는 모습을 반쯤 멍한 눈길로 바라본다.

"야, 야. 그거 봤어? 오늘 마고 선배. 긴 머리로 등교했던데?"

"에에? 정말? 마고 선배 가끔 머리가 길어지는 이유가 뭐야?"

"몰라, 주술적 작용에 의한 반작용이라던가? 여하튼 너무 예쁘던데. 그 발에 밟혀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쉬는 시간에 복도에 모여 진지한 어투로 어이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녀석들을 무시하며, 나는 잠을 쫓기 위해 바깥의 벤치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익숙한 검은색을 발견했다.

구석의 조용한 벤치, 태려씨의 무릎 위에 앉아서 태려씨가 머리를 빗어주는 손길에 몸을 맡기고. 입가에 부스러기를 묻혀 가면서 봉지에 든 버터쿠키를 바삭거리고 있다. 누가 봐도 흐뭇해질 장면이지만, 대상이 마고씨다보니 일단 주저함부터 생긴다.

좋아하는 걸 먹고 있어서 그런지, 지금은 건드리면 안될 폭풍의 핵이라기보다는 태려씨의 앙증맞은 여동생으로 보이지만, 그 무시무시한 모습을 모를리가 있나.

나는 자판기에서 무심결에 딸기우유를 뽑아서, 벤치에 앉는다.

마고씨의 눈길이 가만히 나를 향한다.
졸음이 반쯤 끼어서 기분 좋아 보이는 눈빛이다. 저럴 때 안아주면 뀨우 하고 귀여운 소리를 낼 것 같다.

젠장, 난 도대체 무슨 묵시록급의 생각을 하는 거냐.

"마고 마고, 가끔 이렇게 긴 머리인 이유가 뭐야?"

"... 으응? 아,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끔 보여주고 싶어서."

"에에? 마고, 좋아하는 사람 있었어?"

태려씨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저런 짖궂은 미소의 마고씨를 보면서 그게 진심일거라고 생각하다니.

그런데 왜 난 순간 가슴이 철렁했지?

딸기 우유를 내려다본다.

이거, 왠지 내가 먹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도대체 뭘까. 이 이상한 기분은, 어제까지 만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왜 이런걸까.

"저기."

스스로도 모르게, 마고씨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에? 에? 뭐하는 거냐? 나? 내 스스로에게 제동을 걸고 싶었지만, 나는 마치 익숙한 듯 마고씨의 앞에 서 있었다.

마고씨의 날카로운 눈이 나를 향한다.

"뭐야? 발정나서 집적거릴 거면 다른데 가서 해, 우린 바빠."

"아, 다른게 아니라... 이거 드세요. 뽑긴 했는데, 먹기 싫어져서... 딸기우유 좋아 하시잖아요?"

마고씨의 눈에, 당혹이 엮인다.
다급히 태려씨를 바라보지만, 태려씨는 고개를 젓는다. 자신이 알려주지 않았다는 의미겠지.

마고씨의 눈에, 복잡한 감정이 얽힌다.

하지만 마고씨, 그 입가에 과자 부스러기는 어쩔 거에요? 그런거 매달고 그런 진지한 눈 해봐야, 설득력이 없다구요.
나는 손수건을 꺼내서, 조심스레 마고씨의 입가를 닦아준다.

"... 아."

그 순간. 마고씨의 눈이, 울어버린다.

그 입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탄성이 흘러 나온 후에야, 내가 무슨짓을 했는지 깨닫고 당황한다.

"아... 아, 그그그그.... 아? 저기?"

"괜찮아요, 영웅씨. 괜찮아요. 걱정 말아요."

태려씨가 마고씨를 꽉 끌어 안아주면서, 그녀를 달랜다.

"마고? 울지마, 지금 해야 할 말이 있잖아? 안 하면 후회할 거 잖아?"

마고씨는 익숙한 우는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안아주지 안으면 안될 것 같다.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마고씨를 안아주지 않으면 절대 안 되는 이유가 있다.

태려씨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내게 마고씨를 넘겨준다.

나는 마치 깨져버릴 유리 세공품을 다루듯이 '마고'를 안아든다.

마고는 조용히 내 어깨에 뺨을 비비더니, 내 옷깃을 꽉 잡고 내 귓가에 달콤한 숨결을 불어넣듯 말했다.

"... 고마워."



-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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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만족스럽군요, 이 정도라면 제 자신에게 상을 줘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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