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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 막간 - 메로메로 마고 (7)





'주술 연구부'

단순히 글자가 적힌 플라스틱 현판을 앞에 두고 이렇게까지 긴장하다니. 머리털 나고 처음 있는 일이고, 앞으로도 없기를 희망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 현판은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전하는 뜻에서 귀기를 닮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곳에 마고씨가 있다.

"태려씨, 저를 죽이시려는 겁니까."

내 손에는 태려씨가 쥐어 준, 통칭 '마고가 좋아좋아하는 간식 베스트 3'가 들려 있었다.
딸기맛 우유나 버터 쿠키는 쉽게 납득할 수 있지만, 말린 오징어와 곁들여진 마요네즈는 언벨런스하다. 도대체 이것들이 어떠한 조합을 이뤄서 마고씨를 즐겁게 해 주는지는 알고 싶지도 않고, 알아서는 위험할 것 같기도 하다.

'제가 가면 도망갈테니 영웅씨가 주는 것 처럼 해서 전해주세요.'

어째서 나야? 라고 물어보고 싶지만, 태려씨의 상큼한 미소는 어떠한 저항도 용납하지 않았다.
결국 터덜터덜 이 주술 연구부실앞까지 오기는 했지만, 문제는 여기서 부터 시작이었다.

도대체, 들어가서 뭐라고 한단 말인가.

딸기맛 우유, 버터쿠키, 오징어와 마요네즈가 들어있는 봉투를 들고?

'마고씨의 간식을 가지고 왔습니다!'라고 활기차게 외치는 순간 이름 모를 주술에 맞아 사망하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닐까?

그때, 주술 연구부실의 미닫이 문이 드르륵 열렸다.

"아...?"

머리 두개쯤 아래에서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보는 두개의 검은 눈과 마주쳤다.
그 마고씨는, 역시 기숙사 방에 있는 마고씨와는 달리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뭐야, 역시 너였어?"

마고씨는 시시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 하고는 안으로 되돌아갔다.
문을 닫지 않은 건, 들어오라는 뜻이겠지?

내가 문을 닫고 들어갔을 때, 의외로 밝은 내부에 온갖 정체를 알 수 없는 도구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생소한 풍경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저건 팔괘라고 하는 물건이던가? 대나무 통 속에 길게 들어가 있는 건 육효인 모양이다.

부실의 가운데에 회의용으로 쓰는 것인지 커다란 테이블과 의자들이 있었고, 마고씨는 그 중에서도 상석에 앉아서 덮어 놓았던 책을 다시 펴고 있었다.

신발까지 벗어버리고, 아주 편한 자세다.

"무슨 일로 온 거야? 누구든 꺼려하는 이곳에 놀러 온 건 아닐테고."

뭔가 자조적인 한마디에 위축될 뻔 했지만, 난 가까스로 봉지를 마고씨에게 내밀 수 있었다.

"가, 간식..."

"응?"

간식이라는 말에, 마고씨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봉지를 받아 내용물을 확인하더니, 마고씨는 빙긋 웃었다.

"이거, 태려가 보낸 거야?"

어찌합니까. 태려씨, 1초만에 들켰어요.
내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는지, 마고씨는 다시 책에 얼굴을 묻었다.

"안 먹어."

"예?"

"안 먹는다구, 백여우가 보낸 것 따위, 흥."

"그... 그래도."

"안 먹어."

안 먹어로 시작해서 안 먹어로 끝나는 간단한 문답 이후, 나는 할 말과 할 일과 생각을 동시에 잃어버리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돌려 보내 줄래? 아니면 여기서 네가 다 먹든지. 마침 손님 대접할 것도 없는데말이야. 그래, 네가 먹으면 되겠다."

마고씨는 묘하게 들떠있었다.
나는 그런 마고씨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든 생각을 입에 담았다.

"마고씨, 즐거워 보여요."

"뭐?"

찌릿 하고 노려보는 마고씨, 확실히 엄청난 위압감 때문에 눌려버릴 것 같다.

"아, 아니에요."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마고씨의 오른쪽 자리에 앉아서 봉지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조그만 봉지에 들어있는 쿠키와, 작은 우유 팩, 그리고 포장 되어 있는 말린 오징어. 그것들이 나에게 무언가 호소하고 있었다.

무슨 용기가 난 건지, 나는 마고씨에게 그것을 다시 내밀었다.

"뭐야? 싫다고 했잖아."

"시... 싫어도 드세요."

"도대체 왜? 이유가 뭔데?"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유? 도대체 이유가 뭐지?
나라는 놈은 도대체 생명을 거는 대 모험을 하고 있는데도 이유도 모르는 건가?

"태려씨는 분명, 어... 어떤 마음을 담아서 이걸 보냈을 거에요."

어라? 내가 뭐라고 지껄이는 거지?

"그걸 거절 한다는 건, 태려씨의 마음을 거절하는게 되잖아요?"

"그건 내 마음이야, 멍청아. 백여우의 마음이 그렇게 소중하면 백여우 치맛자락에서 놀아. 나한테 엉겨붙지 말고!"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요?"

"뭐가 그런 의미가 아냐? 역시 태려를 위해서 날 받아준 거지? 태려의 부탁이 아니었으면 나 같은 거랑 함께 있고 싶지 않았던 거잖아?!"

아니다. 그건, 절대 그건 아니다.

완전히 전투모드로 들어가버린 마고씨의 찡그린 얼굴, 그건 차라리 평소의 마고씨 답지 않게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도대체 난 왜 이 조그마한 몸집의 소녀를 그렇게나 두려워하는 걸까. 라는 의문을 가지게 만들었다.

난 조용히, 입을 열었다.

"... 남의 부탁으로 키스하지는 않아요."

마고씨가 얼어붙었다.

"남의 부탁으로 한 키스를 용서해 주는 바보도 없어요."

"그, 그..."

"마고씨라면, 분명 태려씨의 마음에 상처 입히고 싶지 않을거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제일 좋아하는 건, 태려씨잖아요? 언제나 상냥하고, 웃어주고. 저 따위는 당신에게 한때의 위안처 밖에 되지 않잖아요? 그런 저에게 태려씨의 마음을 떠 넘기지 말아주세요. 버리더라도 직접, 마고씨 손으로 버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부끄러워서 눈을 마주치지 못하겠다, 하지만 마고씨도 그건 마찬가지인 모양인지 한 동안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아삭

마치 기적이 싹트는 것 같은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마고씨가 봉지에서 버터쿠키를 꺼내어 입에 물고 있었다.

"... 됐지?"

마고씨는 쿠키를 입에 문 체, 힘 없이 생긋 웃었다.

사실은 그녀도 기뻤던 거다.
태려씨가 먼저 손을 내밀어 줬던 것이, 견디기 힘들 만큼 기뻤던 거다.

하지만, 그걸 건내준 건 나였다.

마고씨가 오해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 마치 마고씨가 지금 머무르고 있는 나라는 공간이, 태려씨가 마련한 것 처럼 보이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과연 태려씨는 그걸 알고서 내게 심부름을 시킨 걸까?

마고씨는 오독오독 쿠키를 깨물더니, 우유팩에 빨대를 꽂아 마셨다. 다행히 오징어는 함께 먹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 키스한 건 비밀로 해주지 않을래?"

에?

놀라서 올려다보니, 마고씨는 얼굴을 살짝 붉힌 체 반대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내가 아는 또 다른 마고씨.

위압감 따위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차라리 말하면 내가 무슨 짓을 해도 '... 살살해 줘.' 라고 부탁하며 수긍할 것 같은 마고씨의 모습. 곧 폭발하듯 삐져나오는 본래의 모습 때문에 더 가치있는 찰나의 연약함, 도대체 뭐라고 이름 붙여야 할 지 모를 마고씨.

"... 예."

난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저렇게 되어버린  마고씨는 또 다른 의미로 거역할 수 없다.

우물쭈물 거리는 앙증맞은 입술이 어제의 꿈 같았던 한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바람에, 나는 멍하게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때, 주술 연구실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난 의자째 뒤로 넘어갈 뻔 했다.

갑자기 마고씨의 조그만 체구에서 폭풍처럼 뻗어나오는 엄청나게 강력한 위압감. 방금 문을 연 사람도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아 버렸다. 주술 연구부의 일원으로 보이는 소녀는, 마고씨의 얼굴과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 아, 조... 조금 있다가 올게요."

라며 도망가버렸다.

"눈치 없기는."

마고씨가 혀를 차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마고씨는 여느 때 처럼, 존재하는 것 만으로 온 몸을 찌르는 것 같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보호 본능을 자극하던 반쯤 감긴 눈매는, 잠깐 사이에 날이 잘 선 단검을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바뀌어 있었다.

마고씨가 손을 살짝 휘젓자, 미닫이 문에서 찰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거, 잠긴... 거지?

"후우..."

마고씨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읽던 책을 턱에 괴어 엎드렸다. 그리고는  오징어를 봉지에서 꺼내더니, 그 머리 부분을 물고 우물우물 씹기 시작했다.

보통 오징어는 찢어서 다리부터 먹지 않던가요 마고씨...

하지만 여전히 가시지 않은 그 위압감의 오오라 때문에 나는 찍소리도 못하고 그녀를 관찰하는게 전부였다.

"... 아무래도 난 마녀야."

씹던 걸 뱉는 듯한 한마디. 물론 오징어가 튀어나왔다는 건 아니다.

"너도 내가 무섭지?"

"... 솔직히 말하면, 그래요."

"충격."

"거짓말 하면 때릴 생각이었잖아요?"

"당연하지."

마고씨는 책에 볼을 비볐다.

"... 그래도 충격."

마고씨의 골똘한 시선을 한몸에 받는 건 너무나 부담스럽다.
마고씨가 무섭다 귀엽다의 관점을 벗어나서, 저런 예쁜 여자아이의 물끄러미는 왠만한 남자아이는 감당할 수 없는게 분명하지 않은가.

게다가 저 모습은, 말린 오징어의 머리를 물고 한쪽 볼을 찌부러트린 모습은, 국가 공인으로 해야 할 만큼 반칙이다.

"태려는 날 무서워하지 않는데, 넌 날 무서워 하는구나."

"그런 차이점을 말씀하셔도 말이죠. 아하하..."

"... 이유가 뭘까."

갑자기 마고씨의 고찰 모드가 전개되었다.
한번 생각을 시작하면 주변 누구의 의견도 듣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이끌어 내는 정답은 항상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경지에 있는 것.

태려씨의 버터쿠키를 조금 축내는 사이, 갑자기 마고씨가 고개를 들었다.

"왜. 태려는, 나를 만지거나 할때 아무런 거리낌이 없을까?"

"그, 그래요? 하지만 여자 아이들은 보통 그렇지 않나요? 친한 사이끼리는..."

"친한 사이라..."

마고씨는 나와 자신의 오징어를 번갈아 바라보고는 다시 골똘한 생각 모드로 들어갔지만, 이번에는 그리 길지 않았다.

"너랑 친해려면 어떻게 해야 해?"

본인에게 그런 걸 물으셔도 말이죠.

"여, 역시 넌 남자니까... 음, 아무래도 성적 환상을 충족시켜 주는게 가장 빠른걸까?"

"아와와왁?!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에요! 갑자기 그렇게 진도 빼지 말라구요! 오징어까지 물고!"

"오징어는 상관 없잖아! 오징어는!'

마고씨가 나와 친해지고 싶어 한다.
그건, 내가 그녀를 무서워하길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 그게, 그렇게 싫은가요? 누군가가 당신을 두려워 한다는게."

"응."

그 대답은 너무나 쉽게 나왔다.

"끔찍하게 싫어."

위압감을 마치 코트처럼 두르고 있는 여자아이. 누구도 쉽게 다가갈 수 없고, 그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퉁명스러워진 고집쟁이.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부끄럼쟁이.

마고씨를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 걸까.

"게다가, 넌 날 한번도 마고라고 불러 준 적 없잖아?"

"그거야, 선배이기도 하고요...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저보다 높은 존재라는 생각이 머릿 속에 주입되서..."

"... 으으, 그거. 그게 싫다는 거야."

마고씨는 한숨을 푹 쉬더니 조금 지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 보았다.

"나, 귀엽지 않은 거야?"

그럴리가요.

"... 어제, 키스 할 때는. 어떤 기분이었던 거야? 네 고결하신 마고씨에게 감히 입술을 들이댄 기분은, 도대체 뭐였어?"

"에, 그러니까 그건..."

죽어도 상관 없다. 라는 기분.
그 대상을 경배하지 않고서는 내 존재를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스스로를 내몰아버린 판단.

"잘 기억 안나요, 그런 무모한 것..."

내 퉁명스러운 대답에, 마고씨는 '그게 뭐야.' 라는 듯 입술을 빼죽 내밀더니
 
"한 번 더 해봐."

그 앙증맞은 얼굴을 내 얼굴에 들이댔다. 내가 뒤로 도망갈 것을 예상했는지 이미 내 의자 등받이는 그녀의 손에 붙들려 있었다.

"에...? 에? 에?"

이야기가 어째서 그런 쪽으로?

머리에 이빨 자국이 가득난 오징어를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오징어 냄새가 아무래도 걸렸는지 딸기 우유팩을 들어 입을 행궈냈다.

그 눈빛은, 당황스러울 만큼 무감정.

위험해, 진짜 할 생각이다.
아니, 이제까지 마고씨는 이야기를 꺼내놓고 실행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어떻게든 이 사태를 모면할 생각만 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마고씨는 내게 살짝 안겨들어와 속삭였다.

"말하지 않은게 있는데."

"네?"

마고씨의 눈빛이 무언가에 휘감겼다. 나는 마치 고양이를 눈앞에 둔 쥐처럼 꼼짝도 못하고, 그 요염한 눈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 한 때의 위안처 따위에게 키스를 허락해 주진 않아."

마고씨가 생긋 웃는다.

키스하기 위해 눈을 감으면, 저 얼굴을 볼 수 없는 것일까.

하지만 마고씨는 마치 흐려지듯 눈을 감는다. 그에 맞춰서, 나도 눈을 가늘이며 그녀와 짧은 이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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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길어!

젠장 젠장!

분량 조절 실패!

아와와와와와!




영웅 : ... 남의 부탁으로 키스하지는 않아요.

마고 : 키스 해 줘.

영웅 : 남의 부탁으로 키스하지는...

마고 : 키스 해 줘. (앙탈)

영웅 : ... 그러니까 남의...

마고 : 키스 해 줘. (울먹)

영웅 : 우아악, 마, 마고씨 잘못했어요! 마고씨? 울지 말아요, 마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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