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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 막간 - 메로메로 마고 (4)



훌쩍이는 마고씨를 달래고, 옷을 입혀서 감기 약을 먹이고 재우는 생애 최고로 난감 복잡한 일이 끝나자, 이미 해가 기울어 있었다.

이젠 한계라고 울부짖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마고씨의 머리에 물수건을 갈아주면서, 방안에 간식삼아 가져다 놨던 과자를 저녁으로 먹었다. 하지만 솔직히, 지금 먹는게 과자인지 플라스틱 조각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 위안점이 있다면, 곤히 잠든 마고씨의 천사처럼 귀여운 얼굴이었다.

열이 조금 가라앉아서 편안한 숨결을 내쉬는 그 얼굴은, 오늘 고생해 왔던 것 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버릴 만큼 감화력이 있었다.

"뀨으..."

가끔 내주는 저 귀여운 소리의 정체는 뭘까.
물어봤다간 살해당할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물어보리라 다짐했다.

과자를 아삭아삭 부숴먹다가, 시간이 좀 지난 것 같으면 물수건을 꼭 짜서 다시 올려주는 단순 반복 작업을 계속하다보니, 어느 새 나도 지쳐서 잠들어버렸다.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는, 마고씨가 누운 침대에 엎드려 있느라 차가운 새벽 공기에 잠을 깨버렸기에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앗차 싶어서 마고씨의 이마를 만져보고는, 그저 따스할뿐인 그 보드라운 이마의 감촉에 안심한다.
 학교에서 제공한 상비약이라 효과를 확신할 수 없었지만, 나름 괜찮게 먹혀 든 모양이었다.

그때, 내 손위에 앙증맞은 크기의 손이 올라왔다.

"어, 어, 마고씨? 일어나 계세요? 제가 깨운 건가요?"

"... 응."

어떤 의문에 대한 대답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마고씨의 처음 들어보는 고분고분한 어투는 묘하게 가슴을 울렸다.

"설마, 네가...?"

"예? 아, 예. 제가 약하고 옷..."

히익, 생각해보니 축 늘어진 마고씨에게 티셔츠 한장을 달랑 입힌 건 나였다. 물론 알몸을 보지 않으려고 무던 노력하긴 했지만, 누가 믿어주겠는가.

뭔가 변명할 말을, 레퍼토리를 필사적으로 뇌에서 짜내려는 내 모습이 어떻게 보였는지, 마고씨는 빙긋 웃었다.

"장난 많이 쳤어?"

"아, 아뇨 자... 장난이라니. 절대 아니에요, 절대! 마고씨 몸에 손끝 하나도 안대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요. 믿어주세요!"

장난이라니, 도대체 무슨 장난? 난 분홍빛에 휩싸여 혼잡해지는 머리를 마구 마구 내저으며 마고씨의 이마에서 손을 뗐다.
하지만 마고씨는 그 정도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키스 정도는 용서해 줄 수 있었는데 말이야. 줘도 못 받아 먹는 한심한 녀석."

"에 키... 키... 크켁, 컥, 컥."

키스를 발음하지 못해 컥컥거리는 내 모습을 보더니, 마고씨는 후후 하고 소리내서 웃었다.
분명 놀리는거다. 진심따위는 1나노 그램도 담겨있지 않은 순도 100%의 농담.

"노, 농담은 그만두세요. 정말 아무 짓도 안 했어요."

"알아, 그런 짓을 하지 않을 녀석이니까 안심하고 잠든 거야."

마고씨의 한 마디에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허둥지둥하는 내 모습이 그렇게도 재미있는지, 마고씨는 또 쿡쿡하고 웃었다.

"손이... 차네."

"아, 여기서 잠들어버려서... 저쪽에 가서 잘게요."

어두워서 마고씨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는다. 토라진 것 처럼 보이는 건 착각이겠지.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응."

마고씨가 또 고른 숨결을 내는 것을 확인하면서,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너무 무리했다. 내일 수업도 제대로 듣기는 글렀다.

주말부터, 오늘까지. 왠지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거의 절반쯤, 몽환의 세계에 내 몸과 마음을 넘겨주고 있을 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일까. 마고씨가 일어난 걸까?

아무리 귀찮아도 환자는 도와줘야 한다는 마음의 경종을 무시하지 못해서 몸을 일으키려 할 때, 이불 속으로 뭔가 따듯하고 보드라운 것이 휙하고 뛰어 들어왔다.

싸아 하고 잠 기운과 함께 핏기가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혼자 자기 싫어."

내 이불 속에서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는 것은, 버려진 새끼 고양이 처럼 불안한 표정의 마고씨였다.
마치 다른 사람인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히 내가 알고있는, 무시무시한 마고씨다.

그 이미지의 갭이, 아찔하게 나를 위협했고, 동시에 유혹하고 있었다.

"그... 그, 마고씨?"

"마고."

마고씨는 못을 박듯 그렇게 말하고는 내 품 속으로 기어 들어왔다.
호흡이 가빠진다. 마고씨가 건드린 부분을 중심으로 온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 같다.

마고씨는 금새 쿠우 하고 잠들어 버렸다.

하지만, 나는 잠이 올 리가 없었다.

애초에 마고씨라는 점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난 동년배의 여자아이와 동침해 본 적도 없었다. 이런 익숙하지 않은 시츄에이션을 가장 껄끄러운 상대인 마고씨와 함께 한다니. 삼재가 겹친 것 같은 재앙이었다.

게다가 아까부터, 내 마음 한켠에서 물씬 물씬  솟아 오르는 마고씨에 대한 음험한 욕망이 나를 더 곤란하게 만들었다.

'장난 많이 쳤어?'

그 요염하면서도 깜찍한 미소가 잊혀지지 않았다.
장난 쳐버리고 싶다. 품 안에 착하게 잠들어 있는 마고씨라니, 이런 기회는 지구가 자전을 그만두는 때가 온다해도 다시는 없을거다.

평소완 다른 그 꺠끗할 정도의 무방비함.

하지만, 여자아이에게 짖궂은 장난이라니, 내가 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

나는 작게 한숨을 쉬고 머릿속을 꽉 메우던 위험한 생각들을 지워나갔다.

마고씨는 나를 믿고 있다.

절친한 태려씨와 싸우고, 그녀도 마음이 많이 상한 상태라서 이렇게 어리광을 부려서라도 안심하고 싶은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내가 한 술 더 떠서 그녀에게 상처를 입히다니, 내 생명의 존귀를 벗어나서 그건 인간으로써 실격이다.

그저,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설사 마고씨가 깨어있더라도 화내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정성을 다해서

오늘도 제대로 잠들기는 포기해야 할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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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라면 진도를 확확 빼고, 판치라와 노출등의 서비스를 잔뜩 추가해서 재빨리 달려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후반부를 생각해서 조금씩 깔아둬야 되겠다는 생각에 조금 진도를 늦췄음.


마고씨가 극 데레데레 모드가 됐을 때를 기대해 주시길.

생각해보면 별로 츤츤도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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