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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만남

Stella 2017.04.02 03:11 조회 수 : 23


 거리에는 활기가 가득했다. 애초에 인구수가 많은 도시는 아니었기에 대도시처럼 북적이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쪽도 나름의 분위기가 있다. 오히려 그런 도시이기에 번화가는 더욱 활기를 띤다. 조금만 중심가를 벗어나도 산이니 바다나 하는 자연의 정취를 맛볼 수 있을 정도였으니 적은 사람들이나마 모여들게 되는 것이었다.


 한 손에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반대쪽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가는 어린아이. 수다스럽게 서로 웃으며 떠드는 학생들. 감색 앞치마를 입고서 가게 앞을 빗자루로 쓸고 있는 점원. 팔짱을 끼고서 걸어가는 남녀.


 행복한 모습이었다. 어떤 특별한 일이 없어도 느낄 수 있는 평범한 행복이었다. 페네브리아는 걸음을 aja추고 그 모습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그맣게 웃음이 입에 떠올랐다.


 그리고, 콰앙, 하고서 폭음이 터졌다.



 화염과 바람과 먼지가 모두 사라지고 난 후에도 소리는 떠나가지 않았다.


 아이는 건물의 잔해 앞에서 울고 있었다. 학생들의 웃음소리는 비명으로 바뀌어있었다. 점원은 가게 앞에 청소할 것이 상당히 늘어났지만 불평할 수 없었다. 남자와 여자는 사이좋게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다.


 그 모든 것을 조용히 지켜볼 수 있을 정도로 페네브리아의 정신은 멀쩡했다. 그녀는 기묘하게 부서진 건물의 파편 하나가 자신의 가슴께에 깊숙이 박혀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아까부터 시야가 붉은 것은 피가 튀어서겠지.


 상처 부위에서 피가 콸콸 쏟아지는 걸 가만히 지켜보면서 페네브리아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게 아니더라도 어떻게 해야 할 지 전혀 모르겠다. 그냥 서서히 죽어가는 사진을 보며 무슨 일을 해야 할까. 그저 아프다. 그런데 왜 비명조차 지르지 않는 걸까. 페네브리아는 그렇게 잠이 들듯 의식을 잃어버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몸을 벌떡 일으키지는 않았다. 눈을 뜬 그 순간부터 이해하고 있었다.


 사령 마술의 시작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했던가. 페네브리아는 항상 자신이 끔찍하게 죽어가는 꿈을 꿨다. 이번엔 뭐였던 걸까. 가스 폭발? 아니면 테러? 뭔가 폭음이 터지고 옆에 있던 건물이 폭발하던 건 똑똑히 기억이 났다.


 한참이나 꿈속의 광경을 곱씹던 페네브리아는 식은땀에 젖은 이불을 발로 걷어차 치워버렸다. 묘한 무게감이 기분이 나빴다.


 이전에 마지막으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잠이 든 것이 언제였더라. 잠자리를 가리는 편도 아니었고 떠돌아다니는 처지였기에 호화롭게까지 느껴지는 침구는 오히려 불편함을 느끼게 할 뿐이었다. 그래서 때로는 제대로 된 집이나 호텔 같은 곳에 묵어도 바닥에 침낭을 깔고 누워 잤을 뿐이었다. 침낭 정도가 딱 좋았다. 변덕을 부려서 좋을 게 없다는 걸 다시 실감했다.


 창밖은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



 성배전쟁이라는 것이 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배와 달리 거창한 건 아니다. 아니, 거창한 건 맞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것일 뿐이다. 애초에, 신비에 대해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예수의 피를 담은 잔이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하는 쪽이 더 어려운 이야기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성배는 원망기다. 소원을 이루어지는 지니의 램프라고 하면 쉬운 비유일까. 다만, 성배라고 해서 그런 신비한 요정이 소원을 이루어주는 건 아니고, 마술적으로 이미 규명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원망기라고 부르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도구에 불과한 것이었다.


 처음 후유키의 도시에 성배가 출현하고 그것을 위해 마술사들이 싸운 이후로 그 이야기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 이런저런 일이 있었던 모양이지만 대단한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았다.


 페네브리아도 성배전쟁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그 운석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정말로 우연히, 어디까지나 우연히 일본에 자리를 잡고 있던 페네브리아는 근처 도시에 운석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연해졌다. 하다 하다 별일이 다 일어나는구나. 운석이라니, 스케일이 너무 큰 게 아닌가.


 도둑이 제 발 저리듯이 쿠즈류 시에 찾아가고 본 페네브리아였지만 무슨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자신은 지나치게 앞에 나서 돌아다녀선 안 될 사람이다. 다른 마술사와 엮여도 좋을 일은 없다. 운석에 접근하는 것도 역시 위험하다. 어쩔 수 없이 겉돌기만 하다가 알 수 있던 것은 그 운석이 성배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과 그다지 확실하지 않은 소문 수준의 정보 몇 가지 정도였다. 확실한 것은, 그 정도의 정보만으로도 이번 성배는 보통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한참을 고민한 페네브리아는 마음을 굳혔다. 단순한 흥미본위는 아니었다. 남들 앞에 나서지 않고 숨어지내던 페네브리아가 성배전쟁에 참가해야겠다고 결정한 것은 결코 터무니없는 생각은 아니었다. 



-



 밤의 산속은 길을 잃기 딱 좋은 곳이었다. 어둠이 깔리자 나무들은 길을 찾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것도 아니기에 고저 차는 방해만 될 뿐이었다. 어둠에 익숙한 눈은 잘 기능하고 있었지만 오랜 시간 이 곳에서 지낸 것도 아니었기에 쓸모는 없었다. 페네브리아는 단지 마력의 흐름을 쫓을 뿐이었다. 


 운석이 떨어진 후 그것이 성배로 기동하기 때문이었을까, 도시의 영맥은 제법 흐트러져있었다. 물론 그와 상관없이 건재한 영맥들은 이전에도 강력한 장소였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도시지만 그 사건 전에도 마술사들이 있었을지 모른다. 있었다고 생각해야겠지.


 페네브리아가 찾는 건 그런 곳은 아니었다. 흐트러진 마력들은 대부분 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분명 그 운석으로 향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마력이 모이는 곳을 찾는 것이었다. 도로로 말하자면 인터체인지나 톨게이트 같은 곳. 그 정도면 충분했다. 서번트를 소환하는 데에는 상당한 마력이 필요했지만, 성배전쟁이라는 마술적 룰 아래에서는 성배 자체가 백업을 해주기 때문이다. 애초에 백업이 없으면 웬만한 마술사는 서번트를 소환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거대한 숲처럼 느껴지는 나무들을 지나치자 제법 크고 평평한 공터가 나타났다. 페네브리아가 따라오던 마력의 근원이 그곳에 있었다. 페네브리아는 공터 한가운데에 꽂혀있는 손에 다가갔다. 그건 사람의 손이었다.


 이 공터는 페네브리아가 미리 봐둔 곳이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아무데서나 서번트를 소환할 수도 없는 것이고, 어제 하루종일 산을 돌아다니며 찾은 장소였다. 서번트를 소환할 시간은 미리 정해뒀었기에 밤이 될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손을 꽂아둔 것이었다. 위치를 알려주는 발신기 같은 것이었다.


 역할을 다한 손을 땅에서 떼어내자 말라 비틀어진 사람의 손은 재와 같이 부서져 사라졌다. 어떻게 보면 끔찍할 수도 있는 그 모습을 페네브리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았다. 사령 마술사라는 건 그런 족속들이었다. 어디까지나 시체의 손이었지만, 그 행동에 일말의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낄 수 있었다면 사령 마술 같은 것에는 처음부터 손을 대지 않았을 것이다.


 페네브리아는 적당히 공터 바닥에 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피도, 수은도, 황금은 더더욱 아니었다. 페네브리아는 주변에 부러진 나뭇가지로 그냥 땅에 선을 쭉쭉 긋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의 모래 장난과 다를 것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페네브리아는 알고 있었다. 어차피 그런 건 모두 겉치레일 뿐이라고. 소환이라는 건 형식만 어떻게든 맞추면 되는 것이다. 유명한 쉐프가 조리해 장인이 만든 최고급 접시에 담겨 나오는 호화로운 스테이크와 대충 구워 손으로 잡아 뜯어 먹는 고기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그래도 고기 자체는 좀 중요하겠지.'


 페네브리아는 소환을 위한 진을 다 그리고 나서 품에서 가져온 것을 꺼내어 올려두었다. 보통 서번트를 소환하기 위해서는 성유물이 필요하다. 촉매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페네브리아는 성유물은 커녕 비슷한 골동품조차 가지고 있는 것이 없었다. 이제 와서 그런 것을 구할 방법도 없었다. 물론 성유물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서번트의 소환은 인연이 강하게 작용한다. 성유물은 그것을 위한 것이고, 없다면 그 나름대로의 서번트가 소환될 뿐이다. 그래서 페네브리아가 준비한 것은 단순한 마력의 덩어리였다. 푸른 눈동자의 눈이었다. 페네브리아는 애써 고개를 돌렸다. 시체를 사용하는 것에 거부감은 없다. 다만 그 눈은 여러 가지를 떠오르게 만드는 것이다.


 소환의 준비를 끝낸 페네브리아는 시계를 확인했다. 새벽 2시였다. 계획대로였다. 이 나라에는 축시의 참배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다. 사령 마술에는 딱 어울리는 시간이겠지.


 "채워라. 채워라. 채워라. 채워라. 채워라. 되풀이 할 때마다 5번. 단지 채워지는 순간을 파각한다."


 페네브리아는 영창을 시작했다. 무미건조했다.


 "고한다. 그대의 몸은 나에게, 나의 운명은 그대의 검에. 성배의 인도에 따라 이 뜻, 이 이치에 따른다면 대답하라."


 마술의 행사, 그것도 강령의 계열은 수도 없이 해온 일이었다.


 "맹세를 여기에, 나는 세상 모든 선을 이루는 자, 나는 세상 모든 악을 베푸는 자."


 영령을 부른다는 떨림도, 성배전쟁에 발을 내딛는다는 흥분도 없었다.

 

 "그대, 삼대 언령을 두른 일곱 하늘. 억지의 윤회로부터 오라, 천칭의 수호자여."


 기계가 틀에 찍어낸 듯한 영창이 끝나자 마력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흙 위에 희미하게 그려진 소환의 진이 더욱 진하게, 어두운 색을 띄기 시작하고 마력이 한층 날뛰기 시작했다.


 페네브리아는 덤덤히 영창을 마친 것과는 다르게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마력은 기본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이 공간에 퍼져, 터져 나오는 검은빛의 마력은 페네브리아를 저 멀리 날려버릴 정도였다. 순수하게 물리적인 힘을 가질 정도의 마력의 폭풍은 엄청난 것이었다. 죽음의 느낌, 끝을 알 수 없는 불길한 어둠이었다. 보통 사람은 닿는 것만으로 치명적일 성질의 것이었다.


 한참이나 계속되던 마력의 폭풍은 전조 없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리고 무언가가 서 있었다.


 폭풍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눈앞의 존재로 한데 뭉친 것만 같았다. 그것은 인식을 초월한 범위의 무언가가 아니었다. 언제나 느끼고 손에 잡힐 듯 익숙한 마력이었다. 사자의 원념 같은 것이 한데 뭉쳐 있는 느낌. 하지만 그 스케일은 상상을 초월하는 범위에 서 있는 것이었다. 페네브리아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손등 위에 새겨진 령주, 그것뿐이었다.


 "저, 저기..."


 령주를 보고도 확신할 수 없는 심정으로 페네브리아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사람이 맞긴 한걸까?


 "머리를 조아려라, 인간."


 조용한 목소리였지만 그 말은 무엇보다도 무거운 철추처럼 페네브리아를 짓눌렀다.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 안에 담긴 마력이 페네브리아를 떨게 만들었다. 


 "힛..."


 페네브리아는 그 존재의 위압적인 태도에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머리를 조아리라는 말에 따르기는커녕 그저 멍하니 눈앞의 것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불길하고 음울한 마력은 그녀의 마음마저 한없이 떨어트리는 것만 같았다.


 "이국의 계집아이야. 한점의 인연도 없을 네가, 무엇하러 이 몸을 불러내었느냐. 이 인간 세상을 잿더미로 만들기 위해서더냐?"


 망연자실한 상태였던 페네브리아는 그의 말에 깜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건 아까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 영령은, 아니 반영령은, 분명히 잘못되었다. 세상을 잿더미로 만든다는 건 페네브리아가 원하는 바와는 전혀 다른 일이었다. 그저 평범하고 무난한 영령을 소환할 줄 알았던 것은 오산이었다.


 "나는... 나... 저는... 그런... 그러려던 게..."


 눈앞의 악의에 페네브리아는 힘없이 고개를 젓는 것밖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존재의 원념은 그런 정도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 무엇이냐. 이 세상 모든 것을 뒤바꾸어, 혼돈으로 뒤덮기 위해서냐?"


 미안해요. 미안해요. 죄송해요. 또 제가 모든 걸 망쳐버렸어요. 언제나처럼의 지독한 불행 때문이었을까. 페네브리아는 자신을 자책할 뿐이었다.


 "저, 저는... 그냥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고 싶었을 뿐인데..."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 무엇을 일러 잘못이라 하는가. 세간의 말인가? 도덕인가? 경문인가? 양심인가?"


 그의 말은 페네브리아에게는 비웃음 섞인 것으로만 들렸다.


 "귀를 기울일 가치는 없고, 눈으로 보아 살필 가치도 없다. 그러한 '옳은 말'은 기침 소리 한 번으로 날려버려라."

 "나는 질서를 파괴하는 자. 세상에 혼란을 뿌리는 자. 온갖 원망과 저주를 그 한몸에 앉아 타락하여 떨어진 자."

 "■의 이름으로 공포와 경외를 사는 것은 바로 나이니. 이번의 성배전쟁, 주술사Caster의 격Class로 나타났노라."


 일렁이던 검은 마력의 덩어리는 그제야 사람의 형태로 변했다. 페네브리아의 상식도, 도덕도, 양심도 부정한 그가 댄 이름은 페네브리아도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의심은 들지 않았다. 그야말로 틀림없는 ■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름을 대어라. 특별히 윤허하노라."


 캐스터의 오만한 말에 페네브리아는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자신을 낮추고 있었다.


 "페네브리아... 피오렌티나입니다."


 여전히 떨고 있는 페네브리아였지만, 조금씩 침착함을 되찾고 있었다. 마치 울고 난 어린아이가 조금씩 눈물을 그치고 침착함을 되찾는 것처럼.


 "길다."


 하지만 캐스터는 한 마디로 그녀의 말을 잘라버렸다. 아무런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다는 듯한 오만한 태도였다.


 "......."


 페네브리아는 자신의 손등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곳에 새겨져 있는 령주는 분명한 마스터의 증명이었다. 눈앞에 있는 자가 자신의 서번트라는 것도 틀림없었다. 지금도 마력의 연결은 확실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다만, 페네브리아는 눈앞의 존재가 자신의 서번트라고 실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령주를 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전략적으로도 유용한 령주를 낭비한다는 문제가 아니었다. 오만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상전에 대한 반역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반감을 산다거나 공격을 당할 거라는 생각은 해봤지만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페네브리아는 그에게 령주를 써서 강제로 명령을 내리는 자신을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결국 모든 게 자신 때문이었다. 그녀 자신의 저주와도 같은 불행 때문에. 그래도 결국 책임을 지는 것은 페네브리아다. 우선은 캐스터에게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최종적으로 그의 생각에는 절대로 따를 수 없는 입장이었지만.


 "그럼 저는 당신을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비굴하게까지 보이는 페네브리아의 말에 캐스터는 시선을 돌렸다. 아주 흥미가 사라져버렸다는 태도였다.


 "알아서 좋을 대로 부르거라."

 "그럼 캐스터, 로 괜찮을까요."


 아까와 달리 무미건조해진 캐스터의 반응은 페네브리아에겐 불행인지 다행인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물을 말은 그것뿐이더냐? 그렇다면 이만 쉬겠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됐다고, 페네브리아는 그렇게 느꼈다. 그냥, 평소의 감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근거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캐스터가 현계하고 있는 마력은 페네브리아가 공급하고 있으니 캐스터는 페네브리아를 죽일 수 없다. 어쩌면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걸로 좋다. 하지만 그런 이유를 대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따를 뿐이다. 그것이 페네브리아를 지금까지 구했던 것이니까.


 "캐스터, 당신은 세상을 불태워버리기 위해 나타난 건가요? 무엇이 그리 미워서?"


 캐스터의 목적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페네브리아는 캐스터의 관심을 끌 만한 말을 던졌다. 조금 전까지 자리에 주저앉아 떨고 있던 여자의 모습이라고 하기엔 적잖이 당돌한 것이었다.


 "짐이 언제 너의 질문을 허락했더냐!"


 마치 벼락과 같은 노호였다. 비유를 넘어서 정말로 벼락이 떨어졌던 것이다. 어둠을 가르는 한 줄기 벼락은 페네브리아의 뒤쪽의 나무에 꽂혀 작은 불길을 일으키고 있었다.


 "물을 것은 그것뿐이냐고 말한 건 캐스터, 당신이잖아요?"


 확실히 사람을 위축되게 만드는 광경이었지만 페네브리아는 오히려 조금 안심했다. 마른하늘에서 떨어지는 날벼락도 맞을만한 것이 그녀인데 머리 위에 벼락이 떨어지지 않은 것이라면 상당한 호재가 아닌가. 


 "당신의 이름은 이 나라에 살지 않던 저라고 해도 알만한 것. 당신의 이야기도 잘 알고 있으니까."


 캐스터는 다소의 흥미가 생긴 것인지 되물었다.


 "그렇다면, 그 원한 역시 알고 있겠지. 말해보아라. 나는 무엇에 분노하고 있는지."


 기세인지, 아니면 오기인지. 페네브리아는 태도는 평소대로, 오히려 평소보다 더 격양된 것이었다.


 "당신을 배신한 사람들. 당신을 끝내 저버린 사람들. 결코 당신을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죠." 

 "...아니다."


 잠시동안의 침묵 끝에 나온 캐스터의 대답은 의외로 부정이었다.

 

 "그들이 밉지 않다는 건가요? 자신을 떠받들다가 내팽개쳐버린 사람들이, 뒤에서 칼을 갈고 저주한 그 사람들이?"


 페네브리아는 자신의 말에 스스로도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입은 그대로 끝까지 멋대로 말을 완성시켰고, 내뱉듯이 쏘아붙였다.


 "....어린 계집아이야. 너는 아직, 분노를 모른다. 증오를 모른다. 절망을 모른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일만으로는, '이렇게'까지 되지 않는 법이다."


 씁쓸한 느낌을 주는 말을 남기고 캐스터의 모습이 사라졌다. 영체화로 모습을 감춘 것이었다.


 제멋대로 결렬된 대화였지만 페네브리아는 캐스터를 쫓을 마음은 들지 않았다. 서로 간의 연결으로 대략적인 위치는 알 수 있었지만 지금 쫓아간다고 해도 아무런 말도 들을 수 없겠지. 그것보다는 힘이 쭉 빠졌다. 서번트를 소환한 대가로 소비한 마력과 긴장으로 인한 몸의 피로가 한 번에 밀려오는 것만 같았다.


 페네브리아는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발길을 돌렸다. 캐스터도 자신의 위치는 알 수 있을 테니 상관 없을 테지. 힘 없는 발소리가 떠나자 갈 곳 잃은 누군가의 원념과 불 붙은 나무가 타는 소리만 조용히 공터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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