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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전] 동거인, 下

로하 2019.04.09 09:57 조회 수 : 19

 

 

03.

 

 

   여객기의 안은 호화로웠다. 중동의 석유왕의 전용기와의 차이는, 아무리 그래도 금으로 벽을 전부 칠하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 외에 푹신한 쿠션, 널찍한 좌석. 최고급 실크 냅킨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입가를 닦는 데 쓰곤 던져버리는 곳. 개중에도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고객들을 위해, 공용 공간 외에는 따로 격벽으로 분리되어 비행 시간 동안의 사생활이 보장되었다. 제나 비토리아와 세이버 또한 그 격벽에 파인 공간에 박혀 밖으로 나오지 않은 고객의 일부였다.

 

   제나는 릭과 비키를 뉴욕의 저택에 두었다. 게이머에게 ■■를 맡겨 두었으며, 그날 밤 주워온 어린 아이는 적당히 신원을 만들어 릭과 비키에게 돌보도록 했다. 게이머는 육아에 지대한 흥미를 표했으나, 아서라. 남에게 무관심한 엘데세나 비토리아는 물론이요, 웨더비, 레베카, 비키는 물론 릭까지 게이머에게 육아를 맡기는 건 아이의 미래를 시궁창에 박아버리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에 동의했다. 그런 것치곤 삼촌 왔다, 며 아이에게 살갑게 말하는 게이머의 태도는 퍽 진심인 듯 보였지만. 이 세상의 괴짜들이 그렇듯, 그에게도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 본인이 아니면 모를 일이니까.

 

   아무튼, 따라서 지금 그녀를 따라온 일행은 세이버에 더해 웨더비와 레베카였다. 둘 다 이 목적지에 충분할 정도의 인맥은 있었으며, 무슨 일이 생길 경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능력도 충분했다. 정신 한 켠을 놓아 버리긴 했지만, 바넬로피 프레웨사 포르벳지는 마나가 충만하고 마술이 발전했던 2000년대 초반이었다면 시계탑의 보석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재였으며, 이제는 웨더비라 불리는 사무엘레 셰르베지야는 한 때 시칠리아에서 겨우 다섯 명의 한 명으로 시작하여 미 동부를 주름잡는 수준으로, 밑바닥에서 정상까지 올라가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인간이었다.  

 

   "세이버."

 

   요안 안드레센, 스웨덴 출신 시민, 24세. 6살에 미합중국 이주, AQ 8012 비자에 의해 합법적 뉴욕 거주, 라고 되어 있는 시민증을 이리저리 돌리던 세이버는 황금빛 시선을 돌렸다. 

 

   "공항에서는 요안이라고 부를게."

   "모쪼록 당신이 좋아하는 대로, 엘데세나."

 

   도착하려면 아직 한 시간 가량이 남았다. 원하면 초음속 제트를 이용해도 되었지만, 제나는 부러 아날로그적인 선택지를 택했다.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몇 년 전처럼 일곱 시간 가까이 걸리는 것도 아닌 고작 네 시간의 비행이었다. 엘데세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곤 메일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연락을 확인한 후, SNS에 접속하여 심드렁한 얼굴로 업데이트를 체크한다. 

 

   "그건 뭐지?"

   "이거? 아아. 네트워크 메신저..인데, 뭐라고 해야 될까. 사생활을 자랑하며 관심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쓰는 거야."

   "그럼 엘데세나, 당신도 당신의 사생활을 자랑하며 관심받고 싶어하는 부류였던가?"

   "그건 아니야."

 

   제나는 단호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메신저는 어디까지나 도구 중 하나로, 비유하자면 취미보다는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었다. 그녀의 정보는 기본적으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비공개되어 그녀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그녀에 대해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그녀의 네트워크 리스트에는 유명 패션 디자이너부터 정치인, 기업가까지 다양한 부류의 유명 인사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들 중 메신저를 몸값을 올리는 데 사용하는 일부 직군을 제외하고 대다수는 그녀와 비슷한 방식으로 - 물론 그녀보다는 평균적으로 좀 더 많이 - 정보를 공개했다. 대중에게는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했으나, 저들끼리의 네트워크는 견고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서로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교 관계는 파티장, 디너 모임, 그리고 그곳에서의 네트워크 교환으로 구성된다. 얄팍하기 그지없는 것이라고 제나는 종종 생각했다.

 

   "잘 이해할 수 없군."

 

   세이버는 내뱉었다. 제나는 흘끗, 시선을 돌렸다. 

 

   "내가 이 나라를 본 건 불과 며칠밖에 되지 않았지만, 너무. 모든 게 달라."

 

   그는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밖을 가득 채운 푸른 하늘은, 저 아래 내다 보이는 땅은 분명 그가 살아 있던 시대와 다르지 않겠지.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하지. 사람이.. 사람이 아니게 된 것 같은 느낌이야."

 

   당신에 대해서 험담을 하거나 하려는 건 아니야, 세이버는 덧붙였다. 

 

   "아니. ...나도 그래."

 

   제나는 툭 중얼거렸다. 건조한 목소리였다.

 

 

04.

 

 

   네오 베가스는 현란한 도시였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휘황한 네온이 도시를 수놓았으며, 인간이 유흥에 필요한 그 모든 것들이 존재한다고 일컬어지는 곳. 둠즈데이 이후 황폐화된 네바다 주를 다시 불야성의 화려함으로 채운 지상의 환락가였다. 고요하고 평온한 환경과는 셰익스피어와 롤링 스톤즈만큼이나 무관계한 곳.

 

   엘데세나 비토리아는 일단 당장 며칠을 묵을 수 있도록 호텔로 향했다. 제나는 네 군데의 호텔을 알리사 브랑셰리 및 쟝 클로드 루델이라는 전혀 다른 이름으로 예약했으며, 그 모든 호텔의 비용을 지불하였고, 또 각각 웨더비와 레베카를 보내 체크인을 진행했으나 그녀가 향한 곳은 그 네 곳 중 어느 곳도 아니었다. 

 

   제나는 아시아, 중동, 유럽의 각지에서 온 관광객과 비즈니스맨 사이에 섞여들었다. 마술을 사용한다면 주변의 사람들이 그녀를 인식조차 할 수 없게 만들 수 있겠지만 제나는 하지 않았다. 그녀는 본인의 불호 문제로 가능한 한 마술을 사용하려 하지 않았고, 또 의도적으로 사람들이 그녀를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되레 눈에 띄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선글라스를 껴고, 탐스런 금빛 파도 같은 머리칼을 틀어올렸다. 살짝 푼 드레스 셔츠에 검은 정장 재킷과 팬츠. 7센티 굽의 스틸레토 힐을 신고 얇은 노트북이 든 토트백을 들자 평범하게 출장 온 젊은 프로페셔널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엘데세나."

 

   제나의 계획이 틀어지는 건 불과 1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선글라스를 씌우면 너무 눈에 띌 것 같아, 세이버에게는 의도적으로 옷만 던져주었는데. 검은 유리알 뒤편으로 제나는 미간을 좁혔다. 

 

   "요안."

   "응?"

   "뭐, 그런 스킬은 없어? 변장이나.. 변형이나.."

   "있다면 있긴 한데. 해 볼까?"

  

   세이버가 저렇게 순순히 나온다는 것은 뭔가 꿍꿍이속이 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라면 그게 대강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아, 제나는 아서라 손을 내저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담담하게 움직였다. 필요할 경우 웨더비는 그들의 상사이며, 레베카는 비서. 제나와 세이버는 이 시기 네오 베가스에서 열리는 대형 박람회에 참가하는 기업의 직원으로 행동을 예정했다. 기본적으로는 단독 행동들이었지만, 그들은 필요한 경우 어떤 상황에서라도 회사원 동료로 굴 수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었다.

 

   제나는 철저하게 IT 기업의 회사원으로 행동했으나, 네트워크를 통해 이 도시의 유명 인사 중 극히 일부에게 그녀가 네오 베가스에 왔다는 사실을 흘렸다. 어려운 일이지만, 관심을 피하는 동시에 필요한 사람들의 이목은 집중시킨다. 그리고 그들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것이 어떤 속셈이던간 이 도시의 여론 혹은 물리적 힘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의미로, 관심은 적을수록, 감시는 차라리 많을수록 낫다.

 

   여태까지는 모든 것이 제나의 계획대로였다. 유일한 예외라면 세이버가 생각보다 훨씬 더 순순하다는 점일까. 제나는 기본적으로 세이버에 대해 현대와 좀 동떨어진 마인드를 가지고, 제멋대로 굴 것이라 상정하고 있었다. 협조적이라면 다행이지만, 협조적인 것을 전제로 행동하다가 비상 상황이 닥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비협조적인 것을 상정하고 행동하는 것이 안전했다. 

 

   허나 세이버는, 이상할 정도로 여태까지는 별다른 행동이 없었다. 그건 제나에게 있어서 그리 나쁘진 않았지만, 어떤 꿍꿍이속이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에선 좋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술을 먹일까. 제나는 곧 서번트가 그런 것에는 취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곤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럴 필요 없어. 그녀는 스스로에게 다그쳤다. 상호간에 비즈니스 파트너인 것. 서로 지킬 것만 지키면 자유롭게 하는 것으로 좋다. 그런 것이다. 

 

   제나는 눈을 질끈 감고, 셋을 셌다. 셋, 둘, 하나. 눈을 떴고, 입가에는 미소를 띄웠다. 동부의 여왕, 도나 비토리아는 어떠한 희로애락도 담기지 않은 우아하고도 빈틈없는 미소로 네온사인 틈으로 발을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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