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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전] 동거인, 上

로하 2019.04.08 12:32 조회 수 : 21

 

 

00.

 

 

   "아가씨, 대체 어디 가서 무슨 사고를 치신 거에요?"

 

   먼저 제나에게 말을 걸어서는 안 된다, 이 암묵적인 금기를 어기고 비키는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01.

 

 

   제나 비토리아는 비키의 흥미진진하다는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정확히, 어떠한 살도 붙이지 않고 지금 일어난 상황을 그대로 표현하자면, 1. 갑자기 밤나들이에 갔다 온 고용주가 남자를 데리고 왔다. 2. 그 남자는 무진장, 정말, 아주, 많이 잘생겼다. 3. 그리고 왠 기절한 아이까지 안고 들어왔다.

 

   시민으로서 어느 정도 의식주를 보장 받고, 교육도 제공받으며 전체 인구 기준으로는 넉넉한 편인 삶을 유지한 비키는, 가장 기본적인 생존에 관한 고민이 없었기에 이러한 유형의 문제에 대해 관심이 아주 많았다. 하여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소설을 쓰다 못해 영화와 드라마까지 화려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고 있었다.

 

   "비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야."

 

   의식을 잃은 것인지, 잠든 것인지 모르겠으나 불편해 보이지는 않는 아이를 웨더비에게 넘겨주며 제나가 말했다. "그 애가 일어나면 씻기고 간단히 먹을 걸 줘. 릭, 늦었지만 혹시 그 나이대 애들이 입을 만한 좀 깔끔한 옷 같은 것을 찾아다 줄래? 여기, 지갑. 잔돈은 가지고." 레베카는 맥 앤 치즈를 만들겠다며 주방으로 달려갔고 - 이 시간에? - 웨더비는 소년을 안아들곤 작은 욕실로 향했다. 릭은 기쁜 듯 제나의 지갑을 받아들곤 튕겨나가듯 밖으로 달렸고, 비키만이 남아 제나와 청년을 반짝거리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아가씨. 이 분은?"

   "... ... 동지?"

 

   제나는 표현에 관해 약간 고민했다. 동지라고 말하려니 무언가 어색했다. 동지는 또 뭔가. 사회주의 혁명분자인가? 노동자 동지? 아무튼, 그녀는 비키가 제발 좀 입을 다물기를 바랐고, 유감스럽게도 그녀를 해고해야 하나 진심으로 갈등하기 시작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아무튼 빨리 앉으세요..! 계속 서 계시게 만들었네."

 

   다행히도, 비키는 들뜬 와중에 서서히 자신의 본분을 다시 떠올리는 것처럼 보였다. 자리를 권하던 그녀는 문득, 남자가 위에 걸치고 있던 것이 제나의 코트라는 것을 눈치채고는 다시 한 번 소리 없는 탄성을 내뱉었지만 제나는 그녀에게 피에 젖은 부츠를 안겨주고는 세탁을 핑계 삼아 밖으로 내보냈다. 해고의 충동이 다시금 들었지만, 왠지 이렇게 그녀를 해고하면 뭔가 정말로 그녀가 편 상상의 나래와 같은 상황이 되었다고 인정해주는 것 같아 제나는 충동을 억눌렀다.

 

   "세이버."

 

   그는 불렀냐는 듯 시선을 향했다.

 

   "내가 너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꽤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비키 같은 내부인에게야 그를 동지라고 소개하던 개라고 소개하던 별 차이 없었으나, 관계 없는 외부인이 물었을 때 개라고 대답하긴 아무래도 곤란한 부분이었다. 물론 실제로 사람을 애완동물로 키우는 인간은 꽤 존재했지만, 그런 이들에 대해서는 뒷소문이 많았다. 제나는 이상성욕자가 되는 것은 사양이었다. 

 

   "글쎄."

 

   세이버는 다리를 꼬고 앉았다. 몸을 뒤로 젖혀 소파에 기댔고, 꽤 편안한 자세였다. 그리곤 잠시 천장을 보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싶더니, 다시 몸을 앞으로 일으켜 제나를 마주보았다.

 

   "당신은 뭐라고 부르고 싶은데? 내 이름이 필요해?"

   "네가 먼저 알려주지 않는 이상 묻지는 않겠어."

 

   제나는 무심할 정도의 말투로 대꾸했다. 사실이었다. 제나 비토리아는 그런 것을 먼저 묻지 않았다. 그 쪽에서 내켜서 먼저 말해주지 않는 이상, 그녀가 먼저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그런 신뢰 관계였다. 철저한 비즈니스. 그는 그녀에게 '세이버'로서 존재하고, 그녀는 그에게 '마스터'로서 존재한다.

 

   "그럼, 나는 당신을 뭐라고 불러야 하지?"

   "네가 좋은대로."

   "그래, 그럼, 엘데세나."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

 

   "보아하니 다들, 당신을 '제나'로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남들과 똑같아지는 게 싫은 거야?"

   "그런 건 아니야. 하지만, 모처럼 좋은 어감이잖아. 레이디 엘데세나. 도나 엘데세나. 프로일라인, 마드모아젤."

   "닭살 돋네."

 

   제나는 새침하게 내뱉었다. 세이버의 말은 제법 정론이었다. 그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그녀를 제나, 혹은 도나 비토리아로 불렀다. 적어도 그녀가 기억하는 범주 안에서, 그녀를 엘데세나로 부르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진짜 당신 이름은, 나도 당신이 먼저 알려주지 않는 이상 묻지는 않겠어."

 

   어때, 이럼 공평하지? 세이버는 어깨를 으쓱했다. 놀란 것은 제나 쪽이었다. 엘데세나 비토리아 오르델라피에게 그건 거의 평생을 잊고 있었던 말이었다. 

 

   "맘대로 뭘 엿보다니. 스토커 같아, 세이버."

   "마스터에 대해 파악하는 것은 유능한 서번트의 귀감이지."

 

   세이버는 태연하게 시치미를 뚝 떼었다. 그 유들유들함이 못마땅한 듯, 제나는 입을 비죽였다. 

 

 

02.

 

 

   "네, 그럼요. 미스터 콜린슨. 언제나 신세를 지고 있어요. 네에, 정말 어제 그건 무서워서... 후후, 감사드려요. 네, 정말..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단은 시민인데, 네에. 어머, 그렇군요. 네, 잠시.. 아, 참. 맞다, 미스터. 깜빡 잊을 뻔했네요. 이전에 제가 말씀드렸던 건에 관련해서.."

 

   제나는 화상으로 진행되는 대화를 마무리지었다. 담당자는 뉴욕 시의 고위 간부였다. 비시민과 하류층 시민 수십 명이 죽은 것 따위, 연방 정부는 커녕 주 정부에 올라갈 만한 안건도 되지 않았으므로. 하지만 사교계의 인사인 엘데세나 비토리아가 휘말렸다면 얘기는 다르다. 시 관계자들은 사건을 크게 만들고 싶어하지 않아 먼저 지극한 사죄의 인사와 함께 - 그들이 관리와 통제에 소홀했다며 - 이른 아침부터 제나에게 연락해 왔고, 제나 또한 사건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은 피차 마찬가지였으므로 정중히 응대했다. 

 

   대화는 꽤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그들이 서로 원하는 바는 같았고, 서로간에 충분한 이해와 물질적인 대가 또한 충분했다. 지난 밤의 작은 학살은 존 톰린 로지튼이라는 37세의 무직 시민(이자 마술사)에 의해 벌어진 돌발적인 사건으로, 그는 과도한 전자 아편의 주입으로 인한 환각에 취해 위조한 사제 테일건을 사용하여 시민 9명과 비시민 17명을 살해했다. 시민 9명의 유족에게는 산업재해 보상금의 다섯 배에 해당하는 보상금이 제시되었고, 비시민 17명의 유족으로 파악된 비시민 일가족에게는 하류층 시민의 세 달 배급에 해당하는 식료품과 생활필수품이 보급되었다. 제나 비토리아는 동부 상류 사회의 모범으로서 우아하고 관대하게 경찰청의 감시 소홀에 대해 대가 없는 관용을 베풀었고, 사건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을 책임자인, NYPD 경찰청장 로널드 콜린슨에게는 19xx년산 고급 남프랑스 산 와인을, 아래 관련 실무자들에게는 최신의 촉감 영화 관람권과 고급 레스토랑의 식사권을 선물로 보냈다. 이걸로 해당 사건은 언론은 커녕 시장의 귀에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죽어나도 그렇게 무마할 수 있는 것이다.

 

   "자."

   "음?"

 

   통화를 끝낸 제나는 카드 같은 형태의 무언가를 세이버에게 던졌다. 이게 뭐냐는 듯 눈으로 묻는 세이버에게, 제나는 새침하게 대꾸했다.

 

   "너도 다니려면 신분증이 필요하잖아."

   "당신과 24시간을 붙어 있어야 할 텐데 굳이 필요한가?"

   "만에 하나, 라는 거야. 그리고 가능하면 불심검문 때 현장에서 돈을 먹여야 하는 일은 생기지 않길 바라거든. 아니, 차라리 사람이면 편하지만 안드로이드가 돌아다니면 귀찮단 말야."

   "흐응."

 

   세이버는 시민증, 이라고 표기된 증명서를 훑었다. 카드 형태, 중산층 이상의 시민들이 들고 다닐 수 있는 카드 형태의 시민증이었다. 중산층 이상은 카드 형태, 서민은 휴대폰 따위에 걸 수 있는 작은 칩이나 바 형태. 빈민은 생체 바코드로 분류되었다. 즉, 카드 형태의 시민증을 갖고 다닌다는 것은 미합중국을 이끌어가는, 혹은 먹여살리는 부류에 속한 당당한 모범 시민이란 의미였으며, 칩을 들고 다닌다는 것은 납세의 의무와 투표의 권리, 각종 생활보장의 혜택을 누리는 이 사회의 주류 시민. 그리고 생체 바코드로 인식되는 시민은 앞의 두 부류가 지불하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각종 복지와 보조금을 지급받는 피부양자라는 의미로 통용되었다. 카테고리나 기준의 차이일 뿐, 물질적인 시민증과 생체 시민증으로 국민을 분류하는 것은 미국 밖의 어느 나라에나 대부분 시행되고 있는 새로운 관리법이었다. 드물긴 하지만, 앞의 두 부류가 어떤 성공적인 사교 활동이나 아이디어, 수완 좋은 경영 수단을 통해 계층간에 이동이 가능하며, 뭣보다 파티나 고급 레스토랑 같은 곳에 들어갈 때 제약이 없다면 마지막 부류는 그 모든 부분에 있어 차단되었고 격리되어 있었다.

 

   "당신의 목이 날아갈 뻔한 걸 눈감아준 대가로 받은 건가?"

   "그런 셈이지."

 

   제나는 대꾸했다. 그 뒤에는, '눈 감지 않았다면 내가 귀찮아졌겠지만', 이란 말이 생략되어 있었다. 허울뿐인 관계, 부 위에 쌓아올린 인연. 무너지는 건 모래성보다도 쉬운 일이다. 그리고 제나는, 비합법적 수단도 말도 안 되는 액수의 자금도 지원이 가능했지만 - 당장 그녀가 그를 실각하도록 만들기 전까진 권력에는 이길 수 없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한 달의 시간만 있다면 그가 그 자리에서 내려오도록 만들 수 있겠지만. 당장 그가 내일모레 그녀를 감옥에 쳐넣어버린다면 꽤나 어려워지는 일인 것이다. 

 

   "골아프게 살고 있군."

   "어쩔 수 없는 걸."

   "나에게 그 자의 목이라도 날려버리라고 시키진 않네."

   "굳이."

 

   썩어빠지고, 닳을 대로 닳은 인간이더라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살인은 하지 않는다. 제나 비토리아는 아직도 희미하게 김이 올라오는 커피잔을 들었다. 세이버는 흘끗, 자신 앞에도 놓여 있는 컵을 쳐다보곤 내뱉었다.

 

   "건배라도 할까?"

   "커피로? 무얼 위해?"

   "경찰청장이란 자의 유병장수를 기원하며. 그리고 하나 더, 고귀한 이 플라스틱 시민증을 위해."

   

   제나는 피식 웃었다. 불과 하루 반나절을 함께 있었을 뿐이지만, 세이버가 정중하고 꽤 사근거리는 어조 뒤에 숨어 있으나 제법 신랄한 성격이라는 것은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멋진 신세계를 위해, 건배."

 

   경쾌하게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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