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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지금부터 시험을 시작한다."


어느 사립 고등학교의 교실 안. 평소의 떠들썩한 모습과는 다른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학생들은 일사불란하게 프린트를 뒷자리로 넘기면서, 그 시간마저도 아깝다는 듯 시험지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펜이 움직이는 소리를 제외하면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정적 속.

(당연한 사실이지만)옆에 있는 친구와 잡담을 나누거나, 또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내년, 수험을 앞두고 있는 그들로써는 내신에 반영될 점수에 목매일 수 밖에 없었다.

머릿속에 외운 내용이 온전히 남아있을 때, 그것을 토대로 눈앞의 문제를 얼른 정리해버리고 싶었다.


───늘 그렇지만.

시험 시간은 영원과도 같았고, 사막의 물 한 방울처럼 한없이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감독관을 맡은 교사, 후지마루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심 흐뭇한 심정이 되었다.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바로 얼마전에 감독관의 눈을 훔치고, 핸드폰을 이용한 단체 컨닝에 성공한 사례가 주변의 다른 고등학교에서 발각된 것이다.

학교 측은 한 교실마다 두 명의 교사를 배치함으로써 사각지대를 완전히 봉쇄해버렸다.

시험이 시작하기 전에 핸드폰을 압수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후지마루는 혹시라도 모를 컨닝범에 대비하기 위해 엄숙한 표정으로 교실 안을 돌아다녔다.

적어도 아직은 그럴 기미가 보이는 학생은 없었다.

그런데 문득 어딘가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지는 게 아닌가.


"────?"


그것은 다름 아닌 한 명의 남학생이었다.

그 남학생은 시험이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시험지를 쳐다볼 생각조차 없는 듯 했다.

후지마루는 머릿 속으로 자신이 그 남학생에 대해 알고있는 바를 떠올렸다.


이름은...... 분명, 칸자키 유우.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많은 2-A 안에서도 단연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수재였다.

얼핏 봐도 여자들한테 인기 있을 법한 수려한 외모에 항상 높은 순위를 유지하는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다.

칸자키는 학교 안에서 아이돌적인 존재였다.

올해 이 학교에 부임한 후지마루는 알 길이 없었지만, 신입생 대표를 맡은 것도 칸자키였다.

그런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가 자신을 쳐다보는 이유에 짐작가는 바가 없었다.


머리 좋은 그는 이미 모든 문제의 답이 보이는 걸까?

아니면 다른 학생들이 눈치채지 못한 치명적인 오류를 발견했다던가?

혹은 우등생으로 살아가는 데 지쳐 뒤늦은 사춘기를 맞이한 단순한 반항기일 가능성은?

어쩌면 시험에 집중하지 못할 정도로 지금 후지마루의 모습에 신경쓰이는 구석이 있을지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 속에서조차 적절한 이유는 떠오르지 않았다.

끝내 후지마루가 그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 입을 연 그 순간..


"─────어, 라"


───교사【후지마루】의 기억은 거기서 끊어졌다.


마지막으로 그가 본 것은,


유난히 어딘가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띈 칸자키 유우의 눈동자와───


그의 표정이 말해주는 단 하나의 진실이었다.




───칸자키 유우는 웃고 있었다.




.

.

.





칸자키 유우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두 손바닥을 오므렸다 피면서 몸의 감각을 확인했다.

문제 없다.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건 지금 자신이 30대 중반이기 때문일까.

지금 유우는 교단 앞에 서서 한창 시험지와 씨름중인 같은 반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지금 그의 눈 앞에 있는 것은 마치 무거운 것에 머리라도 맞고 그대로 정신을 잃은 듯한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다.

물론 옆에서 보면 그냥 고개를 숙인 상태로 졸고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후지마루 녀석, 10분 동안이나 자길 쳐다보고 있는 것도 눈치 못 채다니.'


유우는 속으로 혀를 찼다.

사실 그는 후지마루가 교실에 들어왔을 때부터 그를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좀처럼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후지마루에게 애간장을 태우고 있었다.


덕분에 후.지.마.루.의.육.체.를.빼.앗.는.데 쓸데없는 시간을 소모해버렸다.


시험 시간은 결코 무한하지 않다.

유우는 천천히 발걸음을 떼면서 교실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의 눈길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학생들의 시험지다.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육식동물처럼 시험지의 내용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답안을 재빨리 머릿속으로 암기했다.


감독 교사의 움직임에 집중력이 흩어진 몇몇 학생들은 불만스러운 듯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나 아무도 의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의 유우는 그들을 감독하고 있는 입장인 것이다.

수상하게 여길 이가 있을 리 없었다.

특히 집중적으로 체크해야 되는 건 이 반 안에서도 탑 클래스 안에 들어가는 몇 명이다.

이미 사전에 그런 범주에 속하는 아이들의 조사를 마친 유우는 그들을 중점적으로 머릿속에 답안을 암기해갔다.


지금 유우의 가슴 속에는 묘한 고양감이 있었다.

이 교실은 지금 자신의 지배하에 놓인 왕국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도 자신을 막을 수 없었고, 아무도 자신에게 거역할 수 없었다.

책상 앞에 앉아있는 저들은 유우의 빛나는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백성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 나라의 왕이였으며, 왕이란 곧 법이나 다름없었다.




.

.

.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시험 종료 시간이 다가왔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턱이 없는 후지마루는 한 동안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것을 본 것처럼 몇 번이나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했다.

그러다 슬슬 답안지 작성을 마무리하도록 학생들을 재촉했다.

후지마루는 다시 한 번 유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역시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답안을 작성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후지마루는 자신이 심적으로 지쳐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시험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시험지를 걷어올 것을 지시했다.


유우는 뻐근해진 목을 풀기 위해 크게 기지개를 폈다.

그 사이 맨 뒷좌석에 앉아있던 아이가 유우의 시험지를 걷어갔다.


─────하지만, 문제될 것은 없다.


이미 그의 시험지는 단 한 칸도 빠짐없이 완벽한 모범 답안이 작성되어 있었으니까.

조용했던 정적을 꺠고, 시험의 부담 속에서 해방된 아이들이 저마다 입을 열었다.

그들은 문제의 난이도에 대해 각자 감상을 나누었다.

유우의 주변에도 여러 명의 인원이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가 쓴 답안이 맞는지 앞다투어 묻기 바빴다.

유우는 자비로운 우등생의 가면을 쓴 채, 그들의 질문에 하나하나 성실하게 답해주었다.

속으로는 그들을 한껏 비웃으면서.




.

.

.




복도 앞은 게시판에 붙은 성적 순위표를 확인하기 위해 몰려든 인파로 소란스러웠다.

생각보다 낮은 순위에 낙담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낙제점을 피해서 보충 수업을 면제받은 덕분에 놀러갈 생각으로 들뜬 사람도 있었다.

아이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그런 와중에 마치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무심하게 그 옆을 지나가는 한 소년의 모습이 있었다───


하지만 주변에 있던 아이들은 금새 그를 알아보고, 저들끼리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저 사람이야, 학년 1위. 2-A의 칸자키 유우."

"분명 전국 모의고사도 1위였지? 그런 굉장한 인재가 우리 학교에 있었구나."

"게다가 얼굴까지 잘 생겼다니, 역시 머리가 좋은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른가봐."

"얼굴과 머리에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눈 앞에 저런 사람이 있는 걸 실제로 목격하면 마냥 바보같은 얘기라고 흘려넘길 수 없다는 게 아쉬운 걸."


───지금 그들의 관심은 모조리 자신에게 쏠려있었다.

그 사실에 우월감을 느끼면서도, 가급적이면 얼굴에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유우는 그 자리를 떠났다.


'훗, 역시 이 몸은 천재야. 새삼 스스로의 재능이...... 두려워지는군!'


......비록 그 점수가 꾸준한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닐지라도, 유우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본디 사람들이란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법이다.

게다가 부정한 방법이라 할지라도, 이 힘은 틀림없는 자신의 재능이었다.

그것은 누구보다 유우 본인이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다.




.

.

.




───신비학에서 말하길,

이 세상의 바깥 쪽에는 삼라만상의 모든 사상이 기록되어 있는 "근원의 소용돌이"가 있다고 한다.

아카식 레코드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우는 그것은 만물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있었던 '시작'이 있었던 곳이다.

한마디로, 전지전능한 신의 영역이다.

그 "근원"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의 한 평생을 연구에 바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이렇게 불렀다.


───마술사【메이거스】라고.


그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사회의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신비를 탐구하고, 그 힘을 행사한다.

그것을 가업으로 삼고, 자신들의 대에서 이루지 못한다면 다음 세대에게 모든 연구 결과를 물려준다.

언젠가 근원의 소용돌이에 닿아, 이 세상의 모든 진리를 손에 넣을 것을 꿈꾸며......


칸자키 유우 역시 그런 마도의 가계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유우는 근원 따위에 조금도 관심 따위 없었다.

그런 존재하는지 어떨지도 모를 불확실한 것을 쫒으며 평생을 마치는 건 사양이었다.

차라리 그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이 힘을 알맞은 곳에 유용하게 쓸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확신했다.


만약 유우의 부모가 그의 생각을 알았더라면, 그들은 매우 격노했을 것이다.

그것은 마술 자체에 대한 모독이라고.

선대로부터 이어져온 가문의 숙원에 먹칠을 하는 짓이라고.

어쩌면 부모 자식간의 연을 끊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지금 와서는 전부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에 불과했다.

유우의 양친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난지 오래였다───


유우는 마술에 대한 재능을 타고났지만

정작 마술사로써 그를 이끌어줄 스승이 그의 인생 속에서 결여되어 있었다.

그래서 유우는 자신이 타고난 이 힘을 아낌없이 쓰기로 정했다.

유우의 앞길에는 약속된 행복과 미래가 보장되어 있었다.

유우 본인도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운명은 그가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그리고 확실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유우가 원하던, 원치 않던 간에 마술사로써의 피가 그 결말을 부르고 있다면......

한 명의 인간의 선택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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