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니 중령님은 정의의 사도다.
대륙식으로 표현하면 성인군자(聖人君子), 중령님의 고향식으로 말하자면 신사(Gentleman)쯤 될까. 그는 결코 타인의 어려움을 용납치 않는다. 만약 내가 인사장교가 되어 중령님의 인사카드 란에 특기엔 봉사를, 취미엔 자선이라 바꿔 넣는다 해도 그 누구도 이상하다 여길 사람이 없을 것이다.
“T 소위. 이 아이를 잘 보고 있게. 지낼 곳이 마련될 때까지 데리고 있어야 하니까.”
타인의 어려움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매우 간단하다. 중령님은 타인을 데려온다. 그리고 그의 어려움이 해결될 때까지 집에 머물게 한다. 덕분에 로니 중령님의 관사 아파트는 늘 만원이다. 2인 가구 기준으로 제공된 집이 날 포함해서 항상 과포화상태를 이루는 실정이다.
“T 소위. 이 청년을 잘 보살피게. 이 청년은 자네만큼이나 훌륭한 청년일세. 하지만 때를 잘못만나 전철 역사 화장실을 숙소로 삼고 있었을 뿐이지. 결코 그가 모자라서가 그런 게 아닐세.”
문제는 로니 중령님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서 오신 외국인이고, 내가 그런 그의 생활을 성심성의껏 도우라는 명을 받은 군인이라는 점이랄까. 도대체 무슨 재주인걸까. 이 콧수염만 멋진 아저씨는 말도 잘 안 통하는 사람들을 손짓발짓으로 잘도 구슬려서 데려왔다. 외국인이고 내국인이고 상관없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들이닥치는 손님들 덕분에 이젠 중령님을 뵈러 아파트를 방문하기가 꺼려질 정도다.
“T 소위. 이 분을 잘 모시게. 두서없이 말씀하시긴 하지만, 이야기를 나눠보니 한 때 자네의 상관이 되었을지도 모를 분이라네.”
무슨 오지랖이 이리 넓은지. 얼마 전에는 성당에 갔었다. 평소 잘 가는 곳이 아니었지만, 최근 늘어나는 과업들(주로 더부살이 손님들의 뒤치다꺼리)의 원인이 과거 행실에 있나 생각이 문득 든 것이다. 신께 기도라도 하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였는데.... 맙소사! 그 곳에도 로니 중령님이 계셨다. 아무래도 신과 정의의 사도는 같은 뜻이었나 보다. 사실 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거긴 했다. 특기와 취미가 봉사와 자선이신 분인데, 대표적인 자선단체인 종교시설과 가깝게 지내지 않으신다면 그 또한 이상할 것이다. 참고로 중령님 왈, 매일 불우한 이들을 위해 기도하러 오신다고 한다. 참으로 지극정성이시다. 당장 올해의 노벨평화상 수여자로 발표난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저기, 군인 아저씨. 리모컨 어디있어요? 만화 봐도 돼요?”
“안 돼, 꼬마야. 그런 거 보면 멍청한 사람 돼. 유익한걸 봐”
“우리 소위님. 혹시 펀드에 관심 있으신가? 혹시 제가 다녔던 회사가 예전에 남미 쪽에 손을 대서 크게...”
“말아먹었죠? 빠질 타이밍에 뒤늦게 들어가서. 그래서 그쪽은 정리해고가 된 거구요? 전 관심 없습니다.”
“...이보게, 젊은이. 내 전우가 보이지 않구만. 너무 춥군. 이곳이 어딘가? 설원 위인가?”
“아뇨. 아파트 안입니다. 그리고 어르신의 전우님은 스탈린그라드의 소련군처럼 바글바글한 직장인들을 뚫고 퇴근열차를 타고 오시는 중이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마 열대야 찜통열차라서 설원 위에 있고 싶으실 거에요.”
그래서 다시 이야기를 돌려 오늘로. 참고로 이번 주는 세 명이다. 버릇없는 꼬맹이,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청년, 그리고 헛소리하는 예비역 어르신. 나는 아이의 손에서 리모컨을 뺏고,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녀석의 말을 무시하면서 노망난 참전용사의 입에 체온계를 물린 뒤, 프라이팬에 있는 계란프라이를 뒤집었다. 그리곤 흘끗 어르신의 입에 물린 붉은 수은 기둥을 바라보았다. 체온은 정상. 뭐야? 춥다더니. 여름감기라도 걸렸나 했는데 역시 헛소리였나 보다.
[[[철컥, 철컥, 끼이익]]]
순간 세 명의 시선이 현관문을 향했다. 그리고 나또한 그들의 시선을 쫓아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애증을 듬뿍 담아서. 비록 나를 통역장교라는 본래 업무 넘어 사회복지사와 가정부의 일까지 하게 만든 것도 그였지만, 지금 이 잠깐의 어려움을 나눠질 사람도 그였다.
“군인 할아버지!”
“수고하셨습니다, 어르신!”
“중령!”
각양각색의 부름에 맞춰, 나도 집주인의 이름을 불렀다.
“로니 교관님.”
로널드 중령님은 쓰고 있던 모자를 벗으며 집안사람들을 향해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래, 제군들. 하루 동안 별일 없으셨는가?”
정의의 사도가 일상에서 집으로 귀환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