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
"....쿨럭.....!"
각혈.
거칠게 목을 울리며, 핏덩어리를 바닥에 토한다. 다행이다. 아직 깨끗한 물에 들어가서 몸을 깨끗하게 하기 전이라.
공교롭게도 자신의 작업복인 무복巫服은 전부 세탁중이다. 하지만 젖은 불결한 옷을 입고 의식을 치를수는 없는 노릇. 전날 세탁해서 바싹 마른 학교의 교복을 대신 입고, 오오미와 토키와大神常盤는 산을 오르고 있었다.
시간은 자시 초(밤 11시). 산에 오르기에 좋은 시간은 아니다. 그것이, 아직도 산속에 드문드문 위험한 짐승이 목격되는 지방의 산이라면. 하지만 토키와는 산의 짐승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릴때부터 산신을 모시고 견신을 부리는 자신에게 위해를 끼칠 짐승은 없으니까.
언제나, 토키와를 위협하는 것은 인간이었다.
"...괜찮아, 츠키시로月城. 걸을수 있어."
자신의 옆에 다가와 코를 킁킁거리며 부축해주려는 견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기운을 내서 다시 몸을 일으킨다. 자신이 어머니에게, 어머니는 다시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았다고 하는, 3대째 오오미와 가에서 사역되고 있는 견신.
어머니 세이나清菜의 대에서 오오미와 가는 더이상 견신을 만들지 않았기에, 토키와가 알고있는 유일한 이 견신은 비록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따를 정도의 지능을 가진 요물이다. 자신에게는 어릴때부터 놀이상대가 되어준 친구이며, 부모가 죽은 지금은 유일한 가족이기도 하다.
그런 츠키시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토키와는 오늘 낮에 나눴던, 전화선 너머의 대상과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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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르르르르르------
-철컥.
"여보시오."
"오랜만이에요, 마키리의 할아버님. 오오미와의 토키와입니다. 여전히 정정하신것 같군요."
토키와의 인사에, 상대는 잠시 반응이 없었다. 전화를 받기는 한 것인지, 처음의 대사가 무언가의 착각이 아니었나 생각될정도의 침묵이 흐른 후, 터져나온것은 음산한 웃음소리였다.
"......................................큭큭큭, 정말이지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구나.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 영감에게 연락을 했지?"
"손녀가 할아버님께 전화하는게, 그렇게 별일인가요?"
"그렇게 생각하면 한번쯤 얼굴을 비추러 와도 좋지 않느냐, 마침 신지 녀석도 딱 좋은 나이고 말이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에게는 오오미와의 집안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는지라. 신지 군에게는 후유키에서 좋은 연을 찾도록 말해주시길."
"여전히 건방지기 짝이 없는 말투로구나. 하지만 네쪽에서 먼저 전화를 했다는 것은, 뭔가 아쉬운 것이 있다는 이야기겠지. 말해보거라. 들어는 주마."
자아, 이제부터 시작이다. 결코 녹록하지 않은 이 노회한 요괴를 상대로, 어디까지 자신의 요구를 통과시킬것인가. 토키와는 들리지 않게 수화기를 막고 침을 꿀꺽 삼킨후, 교섭을 시작했다.
"성배전쟁이 시작됩니다. 외부인이 가져온 재앙이."
"....그래서, 어떻게 해달라는 것인고? 성배전쟁은 서번트들의 싸움. 제아무리 이 영감이라 해도 그런 괴물들의 싸움에 머리를 들이밀고싶지는 않다만. 살아날수가 없으니 말이다."
'잘도 지껄이는군, 이 요괴가.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을 괴물이.'
"그런것은 알고 있습니다. 역사와 전설, 신화에 이름을 남긴 '영령'. 그것의 일부라고는 해도 인격을 가진 채로 강림하는 것. 마술사가 열이든 백이든, 그런 괴물과 상대할수는 없겠지요."
"그럼 무엇을 바라는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 영감에게 바랄만한 것이 무엇인지 알수가 없다만."
"지식을."
"지식."
"성배전쟁을 처음으로 계획한, 시작의 3가문. 그 발안자의 한명인 할아버님이라면, 당연히 성배전쟁의 구조에 대한 지식은 누구보다도 뛰어나겠지요. 그 지식을, 바랍니다."
"....마술사에게 있어서 지식이란 무엇보다 중요한 것. 그것을 바란다면 마땅히 그쪽에서 내놓을 것이 있지 않겠느냐?"
"이 성배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면, 그 성배를 드리지요. 비록 후유키의 대성배를 도둑맞았다고는 하나, 그정도로 성배에 대한 탐욕을 거두지는 않으셨을터. 필요하시지 않으신가요."
"그것은 후불이다만."
"충분히 매력적인 후불입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제가 진다면.... 어차피 그 지식은 사장될 것. 아닙니까? 아니면, 할아버님에게 성배란 그정도의 선행투자를 할 가치도 없는 것이었나요?"
이 마지막 한마디는 도박이다. 상대가 흥분해서 전화를 끊어버린다면, 자신의 패배. 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고 믿었다. 마토우 조켄=마키리 조르켄이란 마술사는 다른 모든것을 포기하더라도 성배에 대한 갈구는 멈추지 않는다. 죽은 부친, 오오미와 카리야(결혼전 성은 마토우)가 귀에 못이 박히면서 했던 말이다.
"......약속을 이행한다는 보장은?"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잠들어있는 이 땅을 지키고 싶을 뿐입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당신에게 말한 그 뜻은 변함이 없습니다."
"성배가 있으면 죽은 사람을 살릴수도 있다. 너는 카리야와 세이나를 되살리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죽은 사람을 되살려서,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그런건 그냥 사령일뿐. 제 아무리 완벽히 되살려낸다고 해도, 그분들이 이미 죽은지 오래 되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겠죠.
저에게 있어서, 성배란 평온을 흐트러트리는 소동의 원흉일 뿐입니다. 뒷 처분따위, 맡아주신다면 기꺼이 드리지요."
"......본래라면 자기강제증명Self Geas Scroll 정도의 제약은 걸어야겠다만... 좋다. 그 호언장담을 믿어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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