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아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도시락이 든 봉투를 손에 든 채 리모컨을 조작하여 집의 문을 열었다. 해안가 부두에 자리를 잡은 집. 정확히는 대형 버스를 개조한 캠핑카지만, 어쨌든 그녀는 문을 지나치며 입을 열었다.
“다녀왔습니다.”
그 한 마디에 그녀는 마음속을 간질이는 무언가를 느꼈다. 타인의 집을 관리하는 때도 아니고,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면서 인사를 하다니. 혼자뿐인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어어어으응.”
늘어지는 목소리. 밀리아는 볼을 부풀이며 식당칸에 도시락 봉투를 내려놓고는 침실로 향했다. 문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기념할만한 첫 동거인-매우 안타깝게도.-은 침대 위에서 과자를 먹으며 자신의 노트북을 마음대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 또 침대 위에서 음식을 먹고 있다. 놀고 싶으면 응접실의 테이블에서 하라고 말씀 드렸을텐데요.”
“침대가 가장 편하고 푹식푹신하니 어쩌겠느냐. 이 유혹에는 그 누구라도 벗어날 수 없다.”
그녀의 동거인은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그렇게 말한 뒤 하던 행동을 계속했다.
“정말. 응접실의 소파도 이 침대와 비슷할 정도로 좋은 물건을 사다 놓은 것인데.”
밀리아는 한숨을 내쉬며 침대 위에 널려진 음료수 통과 과자 봉지를 정리해 나갔다.
“음식물도 여기저기 흘리고, 누가 이런 당신을 전 왕족이라 생각할까요. 아, 머리카락에도…”
“왕족이라는 카테고리로 나를 생각하지 마라. 나는 뤼카온. 그리고 이 모습, 행동이야 말로 나이니라.”
하는 행동은 취직하지 못해서 집에 틀어박힌 백수나 다름이 없었지만 그녀는 어디까지나 당당했다. 보는 사람이 묘하게 납득할 정도로 자신이 하던 일-노는 것-을 계속했다.
“어쩔 수 없네요.”
밀리아는 주변 정리가 끝나자 빗을 들어 뤼카온의 머리카락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이러한 행동을 손해 본다고들 많이 이야기 하지만 그런데도 미소를 지은 채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 그녀의 성격, 아니 체질이었다.
“그나저나 저에게 도시락을 사오라 해놓고서는 이렇게 먹다니. 역시 서번트에게는 공복이 없는 것인가요.”
“아, 그렇다. 잊고 있었구나!”
과자를 입에 넣고 있던 뤼카온은 순식간에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밀리아의 어이없어하는 얼굴과 뤼카온의 기대로 가득찬 눈이 마주쳤다.
“하아, 남에게 무엇인가를 시켜놓고 잊고 있었다니.”
“어쩔 수 없었니라. 지금의 시대에는 재미있는 것이 너무 많으니. 그보다 도시락, 도시락은 어디에 있느냐.”
밀리아가 조용히 손가락으로 부엌을 가리키자 뤼카온은 몸을 활처럼 튕겨 순식간에 날아갔다.
“아, 그렇게 침대를 차면…”
정리가 끝나가던 침대 위가 다시 어지럽혀진 것을 본 밀리아는 힘들게 웃음을 지었다.
“나는 분명 청소는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정리해 놓은걸 휙휙 뒤엎어 버리는 것은 역시…. 아니, 아니. 그래도 서번트 상대로 이 정도면 양호,한편이겠지.”
밀리아는 지금까지 그녀가 원했던 물건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대부분이 음식이었다.
어쨋든, 뤼카온은 손에 넣을 수 있는 건 모두 가질 수 있었던 왕족이었던 사람.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소박해 보이는 것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터무니 없는 것을 바라지도 않고 값이 비싼 고급을 고집하지도 않았다. 그것에 대해 밀리아가 물어보았을 때의 대답은 ‘그런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였다.
“조금 걱정했었는데, 기우였죠.”
“그건 무슨 이야기지?”
“으헤엥!”
혼잣말 도중에 갑작스레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란 밀리아가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돌아온 뤼카온이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 네. 무슨 이야기요? 아니, 그보다 도시락을 드시러 가지 않았었나요.”
“그대가 나를 기다리게 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데리러 왔느니라. 그리고 이야기는 나를 소환해 놓고 걱정 했다는 부분이다.”
손목의 시계를 바라보자 밀리아가 생각한 것 보다 시간이 많이 지나있었다. 덤으로 침대의 정리도 어느새 끝나있었다.
뤼카온은 그렇게 말을 마치자마자 밀리아의 손을 붙잡고 끌어 당겼다.
“일단은 도시락이다. 다른 일은 나와 도시락을 먹고나서 하도록.”
“아, 어….”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침실로 손을 뻗은 채 질질 끌려가기 시작했다.
식탁의 위에는 이미 밀리아가 사온 도시락들의 포장이 전부 뜯겨있는 상태로 널려있었다.
“흠흠, 드디어.”
뤼카온은 밀리아를 의자에 밀어 넣고는 자신도 의자에 앉아 도시락들을 스윽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밀리아가 자세를 바로 잡기도 전에 음식을 입에 넣기 시작했다.
“아, 아까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해도 좋아. 그건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거니까.”
어디까지나 자신의 페이스로 움직이는 뤼카온에 밀리아는 잠깐 멍하니 있다가 젓가락을 들었다. 밀리아는 뤼카온과 함께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자신이 무엇인가를 말해보아야 그녀의 태도는 바뀌지 않는 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당신은 인육을 즐겨 먹었다는 전승이 있으니까요. 혹시 ‘인간이 아니면 입에 대지도 않는다.’라고 말하지 않을까 했거든요. 저 동양 요리가
살짝 서툰 것을 빼면 세계 여러 지역의 요리를 할 수 있지만 인육을 다루어 본적은 없거든요.”
뤼카온이 그 이야기에 눈을 가늘게 뜨자 밀리아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빠르게 입을 열었다.
“아, 혹시나 해서 말해두지만 제가 실력을 얼버무리려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이 도시락도, 제가 정말, 저엉말 동양 요리를 해본 경험이 없어서 사온거지 한번 먹어보면 충분히 재현 할 수 있으니까요. 정말이에요. 제가 살면서 몇십명의 집주인들을 만나 보았지만 그들의 엄마 손맛까지 재현했을 정도의 실력은 있어요. 그리고 인육만 빼면 초고가 재료에서부터 그 지역 원주민들이 아니면 모르는…”
밀리아의 이야기는 상당히 두서없이, 길게 진행되다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와 함께 마무리 되었다.
“저는 가사 전반이 완벽한 집 요정, 실키니까요.”
실키는 남의 집에 눌러 살면서 청소나 난로의 손질 등 집안일을 도와주는 흰 옷을 입은 요정이었다. 뤼카온은 그 이름에 신기하다는 듯 소리를 내었다.
“실키, 하얀 부인인가. 과연.”
밀리아는 뤼카온이 무엇인가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에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어깨를 으쓱이는 밀리아를 보며 뤼카온은 웃으며 말했다.
“성배도 참 특이한 취향을 가졌군. 뭐, 내가 이곳에 있는 시점에서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닌가.”
“?”
“그것보다는 인육에 관해서인데. 그건 그냥 인육이라는 것이 유행했기 때문일 뿐. 흠. 이 시대의 사람들이 맛 집을 찾아가거나 별미나 재철
음식을 찾아먹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지.”
뤼카온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대에게 감사하고 있다네.”
짐작가는게 없는 밀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뤼카온은 웃으면서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그러자 그녀의 입꼬리가 점점 찢어졌다. 입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신체 부분도 조금씩, 조금씩. 어느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그 모습은 사람들이 늑대인간이라 부르는 괴물이 되어있었다.
“설마, 이 몸이 신이 없는 하늘 아래에서 숨을 쉬게 될 줄이야. 공기는 악취에 찌들어 구역질이 날 것 같고 가만히 있어도 귀에 들려오는 소음은 끊이지 않지만, 이것이야 말로 인간의 세계지. 아아, 이런 하늘에서 서 있을 수 있다니. 이보다 멋진 일이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