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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바람……. 조금 울고 있어요…….

콩콩 2015.04.14 18:03 조회 수 : 61


 번화가에서 조금 벗어나 외곽을 향해 걸으면 한 저택에 닿는다. 어지간한 주택 3개는 합쳐놓은 듯한 본관과 주변을 둘러싼 뜰. 그 모든 걸 높은 담장이 둘러싸 있고 거기에 덩굴만이 무성하게 엉켜 있었다. 무성한 숲 사이에 감춰져 있는 그곳은, 쿠즈류 시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언덕 정상의 유령 저택이다.
 어느 부자인지 언덕을 통째로 사들인 탓에 근처에 건물이란 일절 없다. 가까이 가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진다던가 숨어들어 갔던 도둑들이 모두 백치가 되어 나왔다던가 하는 소문에 특유의 으스스한 분위기가 더해지면서 그 근처에 접근하지 않는 건 일종의 불문율이 되었다.
 다르게 말해서, 그런 사정을 모르는 외지인이라면 거리낌 없이 발을 들일 수 있었다.

"……."

 때는 한낮. 여름의 햇볕이 후덥지근하게 내리쬐고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나뭇잎이 하늘하늘 흔들렸다. 하지만 한 곳만은 얘기가 달랐다.
 그곳은 공기가 죽어 있었다. 나무와 풀들이 누렇게 말라 비틀어졌다. 압도적인 투기와 살기가 길항하는 한가운데, 두 기의 서번트가 대치하는 상황에서도 마르코는 동요가 없었다.
 계기는 단순했다. 마술사로서 외지에 찾아온 이상 이 토지의 세컨드 오너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 그렇게 배웠으니까.
 물어물어 세컨드 오너의 위치를 찾던 수상한 저택에 대한 얘기를 들어 찾아가던 중 한 소년을 만났다. 나이는 이제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쯤일까. 분명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중이었으며, 무엇보다 서번트를 대동한 마술사였다. 그래서 마르코는 물었다. 이자요이 가의 저택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소년은 친절했다. 그는 자신을 이자요이 가의 당주라고 소개했으며, 인사 또한 정중하게 받아주었다. 우호적인 대화를 나누고, 마침내 모든 절차를 마쳤다.
 볼일은 끝났다. 그렇게 생각해 작별의 인사를 하고, 헤어질 차례였다. ……그랬을 텐데.

"그럼 얘기는 끝났으니─ 서로 죽여볼까?"

 소년 당주는 조금 전까지 화기애애하게 웃던 얼굴 그대로 영문 모를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 순간 위화감을 느끼고─ 마르코의 서번트, 라이더가 실체화해 앞을 막아섰다. 소년, 이자요이의 쿠로 앞에도 어느샌가 누군가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상황은 다시 지금으로 돌아온다.

"마술사라면 신비의 은닉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지 않습니까?"
"아아, 상관 없어. 이 근처는 모두 이자요이의 토지. 결계를 쳤으니까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바깥으로는 흘러나가지 않아. 그러니까 안심하라고."
"인사를 하러 왔을 뿐, 싸울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이쪽이 더 의외인데. 양쪽 모두 성배전쟁의 참가자. 인사만으로 끝날 거라 생각한 거야?"
"……만나자마자 싸움을 거는 게 이자요이 가의 방식입니까?"

 대답은 다른 쪽에서 나왔다.

"그럼. 이렇게 서로 만난 거다. 싸우는 것 외에 무엇을 하란 말이냐?"

 쿠로의 서번트일 소녀. 그 목소리는 마음을 씻어내는 듯한 미성인 동시에 호방한 기상을 품고 있었다.
 성배전쟁은 배틀로얄. 그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말에, 라이더는 창과 방패를 고쳐쥐고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완전 무식한 사고방식이잖아."
"이제 동포가 아니면 술잔을 나누지 않기로 했다."

 그에 비해 그것은 여전히 무방비하게 서 있을 뿐이지만─ 제대로 된 서번트와 마스터라면, 저것을 향해 무작정 돌격하는 바보짓 따위 하지 않는다.
 라이더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섞여든다.

"뭐야, 너. 헤라클레스라도 돼? 버서커라고 하기엔 정신도 멀쩡해 보이는데."
"아니, 나는 버서커의 클래스로 현계한 것이 맞다. 광화 스킬은 소실했지만 말이다."
"─하? 농담이지, 너? 그만한 스테이터스를 가지고 있으면서, 광화의 혜택도 무엇도 없다고?"
"이런 영령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큭큭 웃는 버서커를 보면서, 라이더는 어이 없다는 듯이 말했다.

"너 같은 영령이 어디 있어?"

 얼핏 보기엔 두 명의 아이가 장난이라도 치고 있는 것 같은 장면. 하지만 이 자리에 겉모습만으로 상대를 파악할 정도로 어리숙한 자는 없다. 문외한이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방대한 마력이 들끓고, 전투의 긴장감으로 무거운 공기는 비릿한 냄새마저 감돌았다.

"얼굴은 예쁜데 아깝게 됐네. 여기서 죽을 테니까."
"가지고 싶으면 날 죽인 다음에 목이라도 잘라가면 되지 않나."
"사양할게. 머리 수집은 취미가 아니니까. ─물러서, 마르코. 여기서부터는 육체언어의 시간이야."
"너도 멀리 떨어져라, 주최자. ─말려들면 죽는다."

 이제부터 벌어질 것은 신화의 싸움, 영웅과 괴물의 사투. 거기에 범용한 인간 따위가 끼어들 일은 일절 없고, 말려들어 봤자 휩쓸려 죽어나갈 뿐이다. 지금 이 순간 주역은 두 명의 서번트로 전환되었다─. 그걸 깨달은 마스터들이 주춤주춤 물러났다.
 두 기의 서번트 또한 제대로 자세를 잡는다.
 한쪽은 백은. 그 몸을 감싼 것은 얼굴까지 가리는 갑옷. 유선형의 부드러운 곡선은 어딘지 미래적인 느낌을 준다. 왼손에 쥔 방패는 황금빛으로 빛나며, 그 위에 새겨진 장식은 눈을 번쩍 뜨게 할 만큼 화려하고 웅장했다. 오른손에 쥔 창은 물푸레나무로 대를 잡고 청동으로 만든 날끝을 붙인 일품. 얼핏 보기엔 수수해 갑옷과 방패에 밀릴 것 같으면서도 매끈하고 빼어난 자태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한쪽은 선혈. 그 몸을 두른 것은 이국의 전통복. 눈으로도 감촉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부드러운 천은 수려한 보라색이고 그 위에 수놓인 꽃무늬는 세밀하고 정교했다. 장난기와 오만함을 담은 눈동자도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도 투명감이 있는 빨강이며, 아무것도 들지 않은 맨손은 우유처럼 하얗고 부드럽다. 머리에는 뿔이 비대칭으로 한 쌍 돋았고 파충류의 꼬리가 땅을 찰싹찰싹 쳐댔다.
 잠시 간의 대치. 한 줄기 바람이 스쳐지나갈 때까지, 두 사람은 미동도 없었다.
 이윽고 라이더는 어이 없다는 말했다.

"……설마 해서 묻는 건데, 그 복장 그대로 싸울 셈?"
"나도 움직이기 불편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친구가 준 선물이라서 말이다. 걱정하지 마라. 결과에는 어떤 불평도 하지 않을 테니까."
"그런 거면 제대로 말해둬. 준비할 시간을 준 내가 바보 같잖아."
"너야말로 그대로 괜찮겠나? 시간이 필요하면 좀 더 기다려 줄 수 있다만?"
"먼저 덮쳐온 주제에 잘도 말하는구나, 너?"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보통은 도망가 버리니까 말이지."

 서로의 목숨을 건 싸움을 앞둔 자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태평하기 짝이 없는 대화였다. 버서커는 씨익 웃었다.

"한 놈쯤은 패기롭게 덤벼주어도 좋을 텐데. 한번 이름을 얻고 나면 모두가 공포와 경외로 우러를 뿐. 용감하게 덤벼 이 목을 가져가 줄 무사가 더 이상 없는 것이다. 애타게 갈구할 존재는 이제 세상에 없고 정점에서 굴러떨어질 일만 남지. 방탕한 나날을 보내다 눈치채 보면 비겁한 술책에 당해 최후를 맞이한다. 그런 삶이었다. ──그런 내가, 다른 시대와 다른 장소에서 온 영웅에게 기대하는 건 당연하지 않느냐."
"────헤에, 재미있는 말을 하잖아."
"어때, 이제 싸울 생각이 들었나? 분위기가 바뀌었는데."
"흥, 너 바보야? 물론 몸을 내빼는 건 간단하지만, 그랬다간 아버지와 어머니를 뵐 낯이 없다고. 처음부터 물러날 생각은 없었어. ─하지만."

 거기서 말을 끊고, 라이더는 씨익 웃었다. 투구에 가려서 보이진 않았지만, 아마도.

"흥미가 생겼는걸. 정말 네가 그런 말을 할 정도의 자격을 가졌는지, 직접 봐야겠어."
"호오. 시험하겠다는 거냐? 네가? 이 나를?"
"말하자면 그렇게 되려나."
"건방지구나. 하지만 그게 마음에 든다. ─그럼 나도 한 가지 말해 두마."

 버서커는 그 손을 들어, 검지를 치켜세우고, 라이더를 가리켜─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들어라! 나는 이 성배전쟁에서 그 누가 갖가지 술법과 도구로 어떤 수를 써 오더라도! 일절 이의 제기 없이! 정진정명 완력만으로 응해줄 것을 여기에서 선언한다!"

 그 기백은 강렬하고 호쾌. 바다보다 넓고 하늘보다 높은 음계를 자유자재로 노니는 미성은 그 자체로 말에 어떠한 힘을 불어넣는다.

"어떤 시대에, 어떤 장소에 있더라도! 인간은 지혜를 짜내는 것으로써 비로소 오니와 '진검승부'가 가능한 것이다!"

 듣는 것은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뿐이었지만, 그 내용은 분명 성배전쟁의 참가자 전원을 상대로 한 것이었다.
 주먹을 꽉 쥐며 압도적인 성량으로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쳤다.

"자신의 바닥을 파헤쳐라! 온힘을 다해라! 그 손 안에 있는 보여라! 마물 퇴치의 보검인가, 악을 봉하는 곡옥인가? 생전에 다루던 군사라도 좋다! 일찍이 다스리던 성이라도 좋다! ──무엇이든 전부 깨부숴 주마!"

 ─이를 테면 그것은, 세계를 향한 선포 그 자체였다.
 라이더는 코웃음쳤다.

"혼자서 흥을 타는 건 좋은데, 좀 따라갈 수 있게 해 줄래?"

 버서커는 웃었다. 그 표정도 목소리도 즐겁다는 기색이 넘쳐흘렀다.

"오오, 미안하군.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를 정면으로 타도하려는 자가 얼마만에 나타났는지 생각하면, 감회가 치밀어 어쩔 수 없다."

 말을 꺼내는 중에도 피식피식 웃음이 흘러나오고, 어깨가 들썩거려, 이윽고 손으로 얼굴을 덮으면서도 그 환희를 감출 수가 없다.
 그리고 다음 순간, 손을 움켜쥐어─ 고개를 치켜들며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벗겨내면, 어느새 거기에는 오니 가면이 내려앉아 있었다.

"자, 덤벼라! 이 나를 퇴치해라! 그리고 나의 목을 가져가라!"

 그것이 개전의 신호. 신화 속에서나 엿볼 수 있는 싸움의 시작.
 다음 순간 라이더와 버서커의 모습이 사라지고,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흙먼지가 치솟아 올랐다. 폭음이 터진 것은 그 다음이었다.
 세기의 대결을 고대하던 두 마스터가 서둘러 연결을 따라 시선을 돌렸지만, 이미 전장은 시야가 닿지 않는 곳으로 옮겨간지 오래.
 그걸 자각한 직후, 마르코는 권총을 꺼내들고 한 발 늦게 쿠로는 영창을 읊었다. 서로를 경계하며, 서번트를 쫓아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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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인간은 아무리 빨라도 시속 40km 이상으론 달릴 수 없다. 반면, 단련하기에 따라선 시속 200km에 가까운 펀치를 날릴 수 있다.
 서번트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검격은 음속의 영역을 넘나들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소리에 가까운 속도로 달릴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순간적으로 몸을 날린다면 거기에 닿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이미 질주가 아니라 발사의 영역이다. 폭발력과 지속력의 차이. 총알을 쳐내거나 피할 수는 있어도 총알을 앞지르진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음속을 '달릴' 수 있다면 단순히 그것만으로 필살의 영역이 된다. 상대가 그 세계에 들어서는 것은 순간. 한 합을 겨루고 나면 숨을 고를 수밖에 없다. 그 순간 상대는 굼벵이와 같아지고, 이쪽은 그 틈을 노려 극초음속의 공격을 때려박는 게 가능해진다.
 라이더의 방금 발차기가 바로 그랬다. 그 위력은 그야말로 발군, 범상한 서번트라면 닿은 순간 박살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신업과 같은 일격을 날렸음에도 라이더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본래라면 그 차기에 이어서 추가타를 78번은 더 꽂을 수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 순간, 버서커는 초월적인 반사신경과 신체능력으로 반격을 시도했다. 그 방해에 막혀 추가타는 29번째에서 끊기고, 튕겨 날아가는 버서커를 향해 창과 방패를 투척했지만─ 그때 버서커가 팔을 뒤로 뻗었다가 허공에 닿지도 않을 주먹질을 날린 것이다. 그것을 피해낼 수 있었던 건 야생의 직감 덕분인지, 수라와도 같은 경험 덕분인지. 즉시 발을 멈추고 주먹질의 목표에서 물러난 직후─ 날아가던 창과 방패는 으스러지고, 라이더가 있던 자리가 터져 나가며 커다란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소닉붐이 라이더의 뒤를 따라 땅을 갈아엎고, 흙먼지가 치솟아오르며 폭음이 터져 나온 것은 그 후였다.
 마스터들에게서도 멀리 떨어져 착지. 이걸로 그들을 현세에 묶어두는 닻이 휩쓸릴 염려는 사라졌다. 라이더가 흙먼지 너머를 주시하면, 버서커는 태평하게 말을 걸어왔다.

"재밌는 짓을 하는구나. 창과 방패 모두 투척으로 쓰는 일회용, 위장이었다는 건가. 이거 참, 나는 꼼짝 없이 랜서인 줄로만 알았지 않느냐, 라이더."

 피해를 입은 기색은 일절 없어, 느긋한 동시에 오만하기까지 해 보인다.
 상대, 버서커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다. 별도의 힘에 막힌 것이 아닌, 그저 단단할 뿐인 방어력. 그 짧은 순간 라이더는 보았다. 그 몸에 타격이 들어간 순간, 버서커의 피부에 붉고 투명한 비늘이 돋아났던 것을. 그 강도는 터무니 없이 단단해 치명적이었을 데미지를 생채기 수준도 못 되도록 삭감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충격파……. 동작을 보지 못했다면, 피할 수 없었어.'

 최속, 준족이라 불리며 칭송 받은 라이더에게 있어 그것은 경이로운 일이었다. 충격파가 전달되는 데에 있어서 타임래그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 그 위력도 어이가 없는 수준이라 변변한 방어 수단이 없는 라이더라면 한 방이라도 직격 당하는 순간 죽는다.

 주먹질의 위력을 그대로 전달하는 그 충격파는 불합리의 극치였다. 형태가 없어 모든 걸 투과하기에 방어 불가. 뻗은 순간 도달해 있기에 회피 불가. 비상식적인 근력에 힘입은 일격 일격은 통상 보구의 진명해방에 필적하기에 필살.
 근접전은 압도적인 스테이터스로 깔아뭉개진다. 그렇다고 멀리 물러날 수도 없다. 거리가 멀어진다면 버서커는 손목만 틀어 주먹을 날리면 되고 그 간단한 동작에 상대는 온몸을 물려야 한다.
 공방일체. 거리를 무시하는 파격적인 성능. 어지간한 상대라면 이 순간 버서커의 승리는 확정되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상대가 라이더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마력방출인가. 터무니 없잖아.'

 지향성을 가진 충격파. 평범한 주먹질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필시 마력을 동반한 스킬의 효과일 터. 고찰이 끝나고, 그 위험성을 등골이 저리도록 느껴, 평가했다.

'하지만, 별 거 아니네.'

 그리고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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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광경을 지켜보던 두 마스터는 그저 입을 다물고, 그들의 모습을 필사적으로 쫒는 것이 한계였다. 시각을 강화한 쿠로의 안구는 뇌에 상당한 부담을 안겨주면서 이미 두 발로 서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한편 촬영 장비를 지켜보던 마르코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컴퓨터는 한참 전부터 발열로 인한 비명을 호소하였고, 마르코는 마술로 기계의 온도를 보존하기 바빴다. 그런 마스터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2기의 서번트는 그 속도를 줄일 마음이 조금도 없어보였다.

 마찰 때문에 공기가 새빨갛게 달아오르며 탄내를 풍겼다. 이동과 공격에 충격파가 잇따르며 굉음이 연달아 터져나왔다. 여파만으로 숲이 갈아엎어져, 나무는 뿌리째 뽑히고 꺾이며 대지는 속살을 드러냈다.
 대기가 붉게 물들고 천둥이 울려퍼졌다. 전장은 어느샌가 하늘로 옮겨가 있었다. 라이더는 허공을 박차고 달렸으며, 버서커는 마력을 분사해 추진하며 대응했다.
 싸움은 라이더가 시종일관 몰아치는 것처럼 보였다. 전후 좌우 상하로 덮쳐들어 때려박고, 반격이 들어올 때쯤에는 뒤로 빠져, 충격파는 동작을 보고 피하는 것을 반복할 뿐인 전략은 무서울 정도로 먹혀 들어갔다. 버서커의 공격은 일절 닿지 않고 라이더가 일방적으로 칠 뿐인 상황이 아까부터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라이더는 알고 있었다. 상황은 전혀 진전되지 않고 있었다.

'터프하잖아, 이 녀석!'

 비늘도 비늘이지만, 그 이전에 몸 자체가 단단하다.
 막아내지 못한다 해도 공격에 대비하고 있다면 몸이 굳는다. 이건 생명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반사행동이다. 버서커는 그 반응 자체가 그대로 방어수단이 되고 있다. 몸에 힘을 주는 것만으로 강도가 강철보다 단단해지는 것이다. 거기에 비늘이 덮이면서 강화, 결과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하지 않아도 데미지를 무시한다. 신체 능력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리고 그것이 반격으로 이어진다. 맞는 것을 신경 쓰지 않고, 맞으면서 그대로 때리려 든다. 그리고 한 방이라도 직격 당하면, 그대로 죽어버린다!

'치사한 것도 정도가 있지!'

 속으로 토해내며, 다시 한번 돌격. 대응하기도 전에 품 안으로 파고들어 그 가슴과 배에 연격을 때려박는다.
 공략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그 방어를 부수려면 힘이 빠진 곳이나 의식의 빈틈을 노리면 되는 것이다. 실제로 라이더가 날리는 공격은 그런 곳만을 정확히 때리고 있었다. 문제는, 그것조차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충격은 주고 있다. 피해는 누적된다. 하지만 그것이 치명타로 연결되지 않는다.
 18번째 발차기를 복부에 꽂아넣은 다음, 버서커가 주먹을 휘둘러온다. 거기에 맞서는 여섯 방 연속의 라이트 스트레이트. 버서커의 팔에 연달아 직격해 궤도를 틀어버리고, 그 가슴에 발을 얹어, 박차고 거리를 벌린다. 겉보기로는 멋진 동작. 다르게 말해서, 여섯 방이나 날리지 않으면 한 방의 궤도를 트는 것조차 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라이더는 그러면서 투덜거렸다.

'또 빨라졌네.'

 그것이 또 다른 공포. 버서커는 점점 이 속도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초격에는 29격. 하지만 점차 짧아져, 지금에 이르러선 한 번의 돌격에 18격이 한계다. 엔진에 시동을 걸듯이 버서커 또한 가속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압도적인 속도에 충격파가 발생하고, 그것이 굉음을 부른다. 하지만 라이더에게는 닿지 않는다. 상념을 방해 받지 않는다. 그것이 라이더의 세계, 초음속의 영역이었기 때문이었다.
 내지른 고함마저 두고 달린다. 세계가 그 자체로 진동하면서 기이하게 웅웅거리는 소리만이 들리는, 역설적으로 고요한 정적의 세계다. 라이더는 그곳의 주민이었다. 그 누구도 자신이 있는 곳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이것은 분명, 자신과 같은 지평선에 서 있는 존재다.

 라이더는 전신이 타오르는 듯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두근 두근, 하고. 가슴 속에서 들려오는 고동 소리는 점점 커지면서 그칠 줄을 몰랐다. 온몸에 비늘이 돋아난 건 실은 자신이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라이더는 미처 겪어보지 못한 흥분에 자연스레 미소가 번졌다.

'얼마만일까? 싸우는 것을 즐겁다고 느껴본 건…….'

 지금 틀림없이 자신은 미지의 강적과의 조우에 긴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살아생전, 리스크를 관리, 회피한다는 개념은 본래 라이더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애당초 승패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라이더에게 있어서 전장이란 싸우는 곳이 아닌 살육의 장소. 그저 죽이고, 빼앗는 게 전부인 장소다. 그곳에 존재하는 것은 자신이 뒤집어쓰는 적의 혈액 뿐. 그저 창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방패로 후려치는 것만으로, 그들이 몇십 년 동안 노력해왔던 성과를 처음부터 없었던 걸로 만들어버린다. 라이더에게 있어서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시대에 소환되기 전까지는.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건 마치 나를 위해 있는 말 같네.'

라이더는 처음부터 성배는 관심 밖이었다. 그런 진위도 알 수 없는 모조품 따위에 연연하는 것은 마술사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들의 손에 의해 모든 시대에서 불려지는 신화, 전설 속에서 위업을 쌓은 영웅들. 솔직히 말해서 그들조차 라이더에게 있어서 유상무상과 다르지 않았다. 어떤 서번트가 소환되더라도 결국은 자신이야말로 최강의 자리에 어울린다고 라이더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정말로 라이더가 바랬던 것은, 마스터의 소환에 응한 진짜 이유는───그런 오만한 자신의 생각을 180도 뒤집어버릴 정도의 강적, 순수하고 아름다운 힘을 이 눈으로 확인하는 것뿐.

'아아, 세계는 여전히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로 가득해!'

 그 순간, 라이더는 동작을 멈추고, 무장을 해제했다. 그걸 지켜보던 마스터들은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투구 속에 감춰진 얼굴은 그야말로 여신의 현현. 양갈래로 묶은 긴 황갈색 머리카락은 마치 잘 만들어진 두 자루의 쌍둥이 검을 연상케 했고, 빛나는 녹색 눈동자는 항해자들이 마지막의 순간 가슴에 품는 세상 끝의 바다와 닮아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가련한 자태. 그러면서도 강적을 앞에 두고 결코 물러서지 않는 불굴의 주먹과 맞물려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그녀의 양면성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었다.

 버서커는 휘파람을 불었다.

"수비를 포기하고 장갑을 더욱 얇게 했나."
"그만큼 더 빨리 움직일 수 있거든."
"……과연. 창이나 방패와 같은 건가. 자신의 힘을 일부러 제약하다니. 이 나를 상대로 전력이 아니었다고?"
"그래서 이제부터 진심으로 간다고 하잖아."
"이제부터 진심, 인가. 여기서 더 빨라진다니, 터무니 없군."

 버서커는 잠시 그 말을 곱씹는 듯했다. 빈틈 투성이였지만 라이더는 찌르지 않았다.
 갑작스런 질문.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웃기지만…… 나는, 너에게 위협인가?"
"───하아? 농담이지? 너 정도나 되는 위협, 겪어본 적이 없다고."

 라이더는 씨익 웃었다.

"자랑스러워 해도 좋아. 생전 생후를 통틀어서, 내 진심을 보는 건 네가 유일하니까."
"그렇군. 그렇구나. 건방진 말이긴 하다만……."

 그 말에 버서커는 잠시 침묵했다.
 이어서 가면 아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아련한 기쁨.

"……나는 아직, 누군가의 위협이 될 수 있는 건가. 좋다. 기쁘구나."

 잠시 여운에 잠긴 듯 늘어지고, 이어서 정신을 차린다.

"아니, 이런. 말이 길었구나. ……그럼, 다시 시작할까."

 버서커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라이더는 자세를 스윽 낮췄다.
 동시에 바람이 숨을 죽였다. 지상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던 마스터들은 오한에 휩싸이고, 버서커의 전신에 비늘이 우두두 돋아났다가 가라앉는다.
 이 순간 이 장소, 호흡이 허락된 것은 라이더뿐이었다.

"오는가───"

 오니 가면의 눈구멍 사이로 붉은빛이 반짝이고, 그 아래의 입가는 호선을 그렸다.
 그래. 착각하면 안 된다.
 라이더와 버서커의 싸움은 그야말로 신화의 재현이었다. 서로의 단순한 일격이 보구의 영역으로 승화해 있고, 싸우는 여파만으로 지역이 반파된다.
 하지만, 결국 서번트의 싸움은 보구의 싸움이다. 큰 실력 차이가 없는 한 보구를 꺼내지 않은 대결은 길항하는 것이 보통이다. 범용한 영령이 상대라면 그런 것 없이도 무난하게 압살하는 그들이지만, 같은 영역에 이르러서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온다.
 노블 판타즘. 영령들이 가지는, 인간의 환상을 골자로 하여 만들어진 무장. 개체화한 신비. 그것들은 마법에 가까운 것과 동등한 힘을 발휘해, 영령은 이러한 보구를 다루는 것으로 자신보다 몇 단계 위의 정령조차 쓰러뜨릴 수 있다.
 일개 인간이 용을, 거인을, 악마를 쓰러뜨리게 하는 무구. 영웅을 영웅이게 하는 한정예장. 그 영웅이 가진 필살의 패.
 그것이 해방된다는 걸 직감하고, 기대는 부풀어 올라─

"───하늘을 달리는(케이론)."

 지금 이 자리에서 폭발한다.

"황금의 미각(스텝)───!"

 폭풍이 불었다.
 변화는 극적이었다. 그 징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라이더가 그 보구의 진명을 입에 담은 순간, 거대한 소용돌이가 두 서번트의 모습을 집어삼켰다는 결과밖에 남지 않았다.
 휘몰아치는 폭풍 속을 라이더가 달린다. 그 다리에 바람을 휘감고, 지나간 자리에 돌풍이 남는다. 지금이라면 별의 한 바퀴마저 한 호흡에 달릴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압도적인 해방감이었다.
 처음으로 전력을 다하고 있다. 피부를 스치는 공기의 감촉이 더할 나위 없다. 항상 자신을 억누르던 갑옷을 벗자 속도는 우스울 정도로 가속을 더해갔다. 한계 따윈 없다는 듯, 다리를 뻗을 때마다 가볍게 다음 지평으로 나아가 버린다.
 전신의 감각이 맑다. 약간의 수치심, 그리고 그걸 압도하는 고양감이 치솟는다. 무아지경에 빠져들며 버서커를 철저히 걷어차─ 그 볼에는 사랑스런 홍조마저 감돌았다.
 여기까지 일순. 버서커는 유린당했다.


'설마 했지만── 정말로, 가속 효과의 보구라고?'


 방금 전과는 다르다. 일격이 무게를 더하고 폭풍처럼 몰아친다. 모습은 놓친 지 오래. 타격을 느낀 다음은 늦다. 저항도 대응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저 샌드백처럼 얻어맞고, 이전과는 다르게 몸에 둔중하게 충격이 쌓여온다.
 통증을, 느끼고 있다. 거기에 경이마저 느낀다.

'마지막으로 아픔을 느꼈던 게 언제였더라?'

 버서커는 멍하니 회상에 잠겼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목 언저리를 관통하는 화끈함. 아니다, 이건 제외다. 이런 상황에 떠올릴 만한 게 아니다. 그 다음은 뱃속을 태우는 듯한 뜨거움. 이것도 아니다. 왜 이런 때에 떠올리는 게 이것뿐인가.
 뭔가 있을 것이다. 무언가, 무언가──
 아, 그래. 딱 하나, 있다.
 세월이 얼마나 지나도, 그 녀석의 얼굴만은 잊지 않는다. 지금 상대하고 있는 이 적은, 그를 어렴풋이 떠올리게 만들었다.

'취할 것 같구나.'

 심지가 뜨거워진다. 입에는 군침이 돌고 뱃속이 헛헛했다. 혀 끝에는 매운맛, 목구멍에는 감칠맛. 무심코 삼킨 다음엔 입 안을 도는 개운함. 상쾌한 바람이 부는 것 같은.
 이 정도의 술, 마셔본 적이 너무 오래다. 마지막의 독주, 그것도 맛만은 최고였지. 하지만 뒷맛까지 생각하면 이쪽이 더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황홀한 미주였다.
 머리가 멍하다. 전신이 욱신거린다. 그 잠깐 사이에 얼마나 얻어맞은 건지 잠시 헤아리려다가 그만둔다. 그런 건 처음부터 세지 않았으니까 모른다. 그리고 그 사이에 또 얻어맞았다. 이번 건 더 무겁다. 타격 부위가 삐걱거린다.
 안개가 낀 것처럼 몽롱한 눈이 허공을 더듬어─ 우연인지, 한 순간 눈이 마주쳤다.
 미소 띤 얼굴을 보며, 버서커는 어딘지 안심했다.
 생각해 보면 꽤 치사한 짓을 했는지도 모른다. 난데 없이 덮치다니 오니로서 실격이다. 인간과 오니의 격차가 있다. 내기 종목 정도는 인간이 정하도록 해 줘야 했는데, 다짜고짜 전력 승부를 걸어버렸다. 어딘가 초조해져 있었던 걸까.
 그저 오랜 옛날의 환상을 쫓고 있었다. 오니를 이기는 인간을 찾아 헤맸다. 세월이 흘러 간신히 둘 사이의 격차를 인정하고 양보와 타협을 거듭했다.
 오니는 백 보를 양보해야 간신히 인간과 대등한 위치다. 그렇게 해야만 간신히 인간을 '친구'로 대할 수 있다. 그런 변명 아래, 먼 옛날의 꿈을 저버리고 있었는지도.
 인간의 몸으로 오니와 대등해진 용사라는, 오랜 희망──

 지금 찾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
 둘 모두 그것을 느꼈다. 얼핏 작지만 더없이 큰 변화. 그것을 인식하고, 거기에 시선을 돌리면─
 비늘에 금이 가 있었다.
 모든 것이 투명해졌다.

'아, 이제 안 돼.'

 버서커는 마지막으로 느낀 걸 스스로도 명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사고에 혼돈이 들끓고─ 이어서, 둔중한 통증이 이성과 함께 날아가─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은연 중에 자중하던 리미터를 철거한다. ─주먹을 쥐고 손을 들어, 허공을 힘껏 내리쳤다.
 그러자 폭풍이 찢겨나갔다. 대기가 통째로 뜯겨나갔다.

"뭣───"

 오른팔을 들어 전력으로 휘둘렀을 뿐인 일격은, 그저 그것만으로 라이더의 보구를 완벽하게 박살내 버렸다. 그리고 여진이 사방으로 퍼져나가 라이더를 후려쳤다.
 눈앞이 새하얘진다. 몸이 굳어, 발이 멈추고, 휘말려서 추락해 간다─
 지향성이 아니라서 파괴력이 분산된 덕분에 살았다. 하지만 흐름을 잃었다. 완벽하게 포착됐다. 공중에서 자세를 잃어, 서둘러 바로잡으려 하고─ 그 사이, 버서커는 주먹을 장전하려고 했다.
 이대로면 늦는다. 선명하게 죽음을 느낀다. 하지만 침착했다. 놀라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보구란 그 영웅이 가지고 있는 필살의 무기. 그걸 저리도 간단하게 막아버리는 버서커의 존재는 지금까지 라이더가 품고 있던 긍지나 자신감을 순식간에 무너뜨려 버렸다.
 그저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봤던 그것.
 버서커 위로 흐릿하게 겹쳐 보였던─ 2명째의 버서커를.
 그건 뭐였을까. 격통 때문에 멍한 사고로, 역전된 시야 너머, 눈부시게 파란 하늘과 새하얀 구름을 올려다 보면서 생각했다. 그러나 이윽고 고민마저 멈추고, 느긋하게 떠올렸다.

'그러고 보면, 마지막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던 게 언제였더라.'

 문득 든 의문.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 하늘에 겹쳐 보이는 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스승이고 아버지이며, 남매이고 친구였던. 숲을 떠올리게 하던 그를.

[알겠니, 아킬레우스. 주법走法에는 세 가지 요령이 있단다.]

"───아."

 지금 그것을 떠올린 건, 어떤 조화였을까.
 그래, 아직 끝이 아니다. 할 수 있는 건 아직 남아 있다.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속도. 거기에 닿기엔 이 몸에 지닌 것이 무겁다.
 그러니까 버리자. 달리는 것에 이 몸 이외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하고, 라이더는 망설임 없이 신발을 벗어던졌다. 자신의 '전차'였던 것이 해방되어 발에서 떨어져나간다. 일찍이 드러낸 적 없고 드러낼 생각도 하지 않았던, 자신 최고 최대 최악의 약점, 발뒷꿈치를 만천하에 드러난다.
 가슴을 채우는 그것은 부끄러움인가, 해방감인가. 라이더는 그것을 굳이 구분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이 순간에 충실하게, 맨발에 닿는 감촉을 만끽하고─
 바람에 발가락을 걸었다.

[달린다는 행위에는 필연적으로 발을 딛을 곳이 필요하지. 넓고 안정된 발판일수록 잘 달릴 수 있는 게 당연해. 그러니까, 발바닥으로 단단하게 붙드는 거란다. 땅을, 별을, 세계를 잡아서 박차고 나아가렴.]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유연한 발가락. 힘을 풀어주고 틀어주는 전환점.
 생전에는 따르지 못한 가르침. 약점을 감추기 위해 신었던 신발은 족쇄이기도 했다.
 그것이 지금 해방된다.

 발가락을 축 삼아 원심력으로 빙글 회전한다. 방향을 바로잡고 허공을 딛어 자세를 잡는다.
 이걸로 손실한 시간은 따라잡았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다. 버서커는 웃고 있다. 가면에 가려서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라이더는 어쩐지 그 눈만 봐도 속내를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버서커는 주먹을 휘두르려 하지 않고─ 숨을 들이쉬어, 포효했다.
 순수한 마력의 격류. 최강의 환상종인 용이 뿜어내는 숨결은 그 자체로 필살의 위력을 자랑한다. 그것이 지금 충격파로 현현해 날아든다. 호흡을 줄곧 빼앗겨 봉인됐던 비장의 수가 하늘을 덮으며 내려앉았다.
 허를 찌르는 공격. 동시에 라이더는 허공을 박차 하늘로 날아올랐다.
 떠올리는 건 하나. 오랜 옛날, 창공과 녹음으로 빛나는 가르침뿐이다.

[요점은 마음가짐. 파고드는 순간에 모든 걸 등 뒤로 버리고 가는 거야. 그 순간에, 세계에 존재하는 건 너 혼자뿐이란다.]

 초음속도 극초음속도 넘어 영역은 신속.
 소리는 진작 두고 갔다. 세계는 고요하기 그지 없다.
 시야는 이윽고 하얗게 물들어 천국이 보인다.
 충격파에 허공이 출렁이고 있었다. 범위는 전방 전체. 피할 공간은 없다.
 그러니까, 뛰어넘자.
 덮쳐드는 일그러짐의 바로 앞, 허공에 발을 딛고─ 유연한 발가락을, 가볍게 틀어준다. 몸이 바람에 물든다.
 다음 순간, 라이더는 버서커의 뒤에 위치해 있었다.

"────"

 뚫는 것 따위와는 다르다. 버서커의 충격파는 그런 걸로 피해갈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그것은 나라를 무너뜨리는 지진파의 현현 그 자체. 고체와 액체와 기체를 모조리 투과하며 음속의 20배를 넘어 달려드는 재앙 앞에서 회피도 방어도 요격도 무용지물이다.
 라이더는 그저 '뛰어넘었다'. 그때 라이더는 분명, 이 세계에서 소실해 있었다── 아니, 세계에 녹아들었던 걸까? 버서커로선 구분할 수 없었지만, 하나만은 확실했다.
 그래.
 마법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순수한 공간전이를── 라이더는, 그 주법走法 하나만으로 성취한 것이다!
 마술에 기대지 않고 체술과 속도만으로 이룬 극의. 경악스러운 위업이었지만 라이더의 눈동자는 열기조차 품지 않고 투명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나면 안 돼. 박차고 나간 발이 다시 땅에 닿을 때면, 그 힘을 그대로 돌려주렴. 세계에서 받은 힘을, 그대로 세계에 돌려주는 거야.]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는 맑다.

[나는 세상에 단 홀로 설지니, 고로 세상에 단 홀로 서지 않을 것이다. 어때, 멋진 태도라고 생각하지 않니? 뭐라고 해도, 나도 이 경지까지는 닿지 않았지만…….]

 너라면 분명, 닿을 수 있을 거란다.

 라이더는 오른다리를 뒤로 끌어당겼다. 그러면서도 그저 감탄하고 있었다.
 버서커는 그 순간에도─ 고개를 뒤로 틀어, 라이더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놓치지 않고.
 눈이 마주친다. 거기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끼며 라이더는 씨익 웃었다. 버서커도 마주 피식 웃었다.

 ───일격.
 전심전력, 라이더 생전과 사후를 통틀어 생애 최고의 발차기였다.

────────────────────────────────────────────────────────────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도통 알 수 없는 마르코는 다시 노트북을 펼쳐서 감시 카메라 영상을 확인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최첨단의 초고속 카메라로도 그 공방을 찍어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저 알 수 있는 것은, 이 자리에 남은 것이 라이더뿐이라는 것이다. 쿠로조차 한순간에 사라져 있었다.

 마르코는 싸움의 여파로 생긴 크레이터 주변을 빙 돌아서 라이더의 곁으로 다가갔다. 라이더는 고개를 떨군 채 그 자리에 서있었다. 마지막 버서커의 포효가 새긴, 어마어마하게 크고 깊은 구덩이 한가운데. 여파가 아닌 진심이 직격한 흉터는 라이더와 버서커의 싸움에 갈려나간 주변을 전부 합친 것보다 컸다. 라이더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승패는 확실해 보였다. 마르코는 건네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격려? 위로? 그 어떤 말이 지금의 라이더에게 위안이 될 수 있을까? 아니, 정말로 지금 이 순간 말은 필요한 것일까? 한참을 고민하던 마르코는 용기를 내서 입을 열었다.


"일단……."

"푸핫!"


 라이더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배를 잡고 정말로 유쾌한 것처럼 미친듯이 웃어대기 시작했다.

 눈물까지 훔치면서, 세상에서 이보다 더 재밌는 일은 없다는 것처럼.


"바보 같아! 폭풍을 찢고 나오다니, 정말로 미친 거 아냐!"

"……아아, 확실히 강적이었다."

"강적도 저런 강적이 없을 걸! 저 서번트를 쓰러트리려면 등골 좀 휘겠네, 마르코?"

"그건 네가 감당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만."


"그렇네."


"다음에 만날 때는 절대로 안 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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