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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특별한 인간의 행복인가.

 

 학교에서 작문 수업 때 어른이 되면 무엇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글로 써보는 시간이 있었다. 파일럿, 경찰, 의사, 가수, 큰 회사의 사장, 피아니스트, 아나운서, 대통령, 행복한 신부. 아직 어렸던 아이들은 연필을 쓰고있는 손을 멈추는 법이 없다. 그저 저마다 바라는 앞날을 자유롭게 백지 위에 그려나갈 뿐이다. 그 앞에는 일말의 불안도, 두려움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 만나보지 못한 어른이 된 나 자신,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아이들의 얼굴에는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도 있다. 그게 바로 나였다. 왜냐면 내 아버지는 마술사였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사회 속에 숨어서 신비를 탐구하던 자들. 세상을 등진 그들은 근원의 소용돌이라고 불리우는 하나의 종점을 향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마라톤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마술사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는 인생의 모든 것을 가문의 번영에 바치며 설령 그들이 늙어죽더라도 그 자식이 가업을 이어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술사의 자식으로 태어난 나 역시 언젠가는 마도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내 아버지가 그랬고, 할아버지가 그랬으며, 내 조상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그 외의 다른 선택의 여지는 존재하지 않으며, 생각해서도 안 됐다.

 

 그건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거짓말이었다. 나는 신비를 은닉해야 된다는 부모의 가르침에 따라 그럴듯한 내용을 지어내고 그것을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얘기했다. 발표를 마친 나를 선생님은 칭찬해주셨지만, 그런 것은 조금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치 이 교실에서 나 혼자만이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쓴 글에는 난생 처음보는 다른 누군가의 인생이 적혀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밑에 내가 진짜로 가야할 레일이 깔려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 선로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이 마을의 땅에는 성배가 잠들어있다고 한다. 그것은 어떤 소원이라도 이루어주는 만능의 잔으로, 우리들 마술사가 근원으로 오르기 위한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성배를 손에 넣는 게 우리들의 집안이, 그리고 내가 평생 짊어질 가문의 숙원이라고 했다. 웃기는 얘기였다.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면서, 어떤 소원을 빌어야 할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모든 것이 지긋지긋해졌다. 나는 집에 가자마자 작문 시간 때 썼던 원고지를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평소와 다름없는 신중한 얼굴로 그것을 읽어보더니 내게 물었다.

 

 "여기 쓰여있는 게 너의 인생인가?"

 "네."

 

 그 말에 나는 수긍했다. 처음에는 그저 그 자리를 넘어가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쓴 글이였다. 정말로 내가 되고싶은 게 무엇이였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새 그것은 내 진짜 꿈이 되어있었다. 내 앞에 펼쳐져 있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선로가 실은 외길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갈림길로 뻗어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행복했다. 그 가능성이야말로 내가 줄곧 원하던 것이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말씀을 기다렸다. 부디 아버지가 실망하지 않으셨길 바란다. 그런 내 걱정과 달리 글을 마친 아버지는 웃는 얼굴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아버지의 커다란 손이 내 머리 위에 닿는 순간 나는 정신을 잃었다. 딱 하나 기억하고 있는 것은 마치 종이가 타는 듯한 냄새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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