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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도중 (브금주의!)

렛잇고 2014.02.08 06:36 조회 수 : 16


00/



I don't know when

I don't know how

But I know something's starting right now

Watch and you'll see

Someday I'll be

Part of your world





01/



   "어쩐 일이더냐. 소환사 아이를 홀로 내버려 두고 온 게냐."



      자박, 자박. 흰 모래가 밤빛에 물들어, 소녀의 새하얀 발끝에 스며들듯 부서졌다. 달빛 머리카락 소녀는 다가온 기척에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아니나다를까, 그녀의 예상대로 평소와 같이 우아하고 나긋한 말씨가 살짝 웃음을 담은 목소리로 답했다.



   "으응, 아무래도, 나는 아직 치아키에게 신뢰 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너와 같은 언동이 저자의 여인네들을 홀리는 것 이상의 신뢰를 주려면 꽤나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하느니."


   "흐응, 그런 걸까나. ..거기다 잔소리까지 들어 버려서..."


   "...잔소리?"



     소녀는 그제사 사박이며 천천히 걷던 걸음을 멈추었다. 확, 하고, 일순 강한 바닷바람이 불어 달빛 은사가 파도를 타듯 춤을 추었다. 그렇지만 저 바람이 이 별 아래의 것인 이상 그녀에게 해를 끼칠 일은 없겠지. 그것을 무엇보다 잘 알고 있는 소녀에게 있어서는, 그런 바다 특유의 내음이 섞인 비릿한 밤바람마저 깊고 시원할 뿐이었다. 그렇게 소녀의 머리칼이 사락 나풀대는 것에 시선을 향하던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을 이었다. 소녀는 남자의 그런 행동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그리했으리라. 평소의 그라면 분명히.



   "아가씨를 혼자 이런 밤에 밖을 걷게 한다니 안 되는 일이라면서 한 소리 들었는 걸...?"


   "허면 밤에는 술잔을 기울이며 오는 객들도 많을 터인데, 그 아이를 그러한 곳에 홀로 놔 두는 것이야말로 해서는 안 될 일이 아니더냐. 그 아이는 사람의 아이니, 그 아이 곁에 머무르는 것이 옳은 판단이라 생각하노라."



     시에라는 그러니 그만 빨리 돌아가보라는 듯 내뱉었다. 그녀의 말은 '일반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정론이었다. 시에라는 인간이 아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아늑 뛰어넘는 능력 - 모든 면에서 - 을 보유한 먼 옛날의 존재. 위험하다고 한다면 시에라보다는 치아키 쪽일 것이었다. 물론 치아키의 실력을 낮게 평가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으나, 객관적으로 비유해 본다면 사실일 테니까. 

   물론, 시에라는 치아키가 못내 레이시안에게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이 취미 나쁜 남자의 성정상 나어린 여자 아이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태연하게 - 이 아이가 본 적도 없고 볼 생각도 없었고 볼 일도 없었던 그러한 무언가를 드러냈을 것이었다. 허나 그럼에도 쥬린 치아키가 그의 마스터인 이상 그는 그녀를 해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무리 치아키가 내심 그를 무서워한다 한들 그 옆에 있는 것이 홀로 있는 것보다야 안전할 터였다.  무엇보다도──── 시에라는 침묵을 지켰다. 그녀가 우려했던 일이 실제로 또 일어나고 있다. 고요했던 밤바다, 소리 없는 정적만이 어둠 속에 내려앉았던 세상이 또 와글와글 시끄러워진다. 그것은 다른 무엇 탓도 아닌, 지금 그녀의 뒤에서, 그녀의 보폭에 맞추는 듯 천천히 걷는 남자 때문이겠지. 



     머리가 윙윙 울린다. 귓불이 뜨거워지고, 상념에 집중할 수 없이 혼란스러워져, 시에라는 말을 삼켰다. 그것을 말하는 것이, 그녀 스스로에게 있어 도움이 되지 않을 선택이란 것을 아는 데에는 단 잠깐의 시간조차 필요치 않았다. 하여 그렇게 부러 자르듯 말했거늘, 그가 따라오는 이유를 그녀로서는 알 수 없었다. .

   ..설마, 그녀는 움찔. 어깨를 떨었다. 자신이 이런 뒤죽박죽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조차 그는 기대하고 또 예상한 채, 계산한 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던가. 소녀는 살짝 꽃잎 같은 복숭앗빛 입술을 악물었다. 그렇다면, 뜻대로 말을 섞고 그가 재미있어하는 그런 모습은 보여주지 않겠느니. 그녀는 보드라운 손을 꽉 쥐며 그리 다짐했다. ...물론, 불과 수 분도 되기 전에 깨져버렸지만.



   "후후, 하지만 치아키의 말이 맞는 걸. 게다가, 만약의 경우가 생긴다면 이 곳에서 치아키가 있는 곳까지는 분도 걸리지 않으니까."



     천천히, 천천히, 확 차이나는 보폭임에도 시에라의 그것에 맞추어 따라 걷던 남자는 노래하듯 고이 울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깨끗하고 청량한, 듣기 좋은 목소리에 나긋한 어조였다. 시에라의 청아한 그것과는 조금 느낌이 다른 - 조금 더 기분 좋은 서늘함이 있는 그런 목소리. 귓가에 달콤하구나, 시에라는 무심코 그리 생각한 자신을 깨닫고는 재빨리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흔들리지 않는 거야. 들리지 않는 거야. ..아니, 후자는 취소. 그건 무리였다. 그녀 성격에 '타인의 말'을 무시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시에라는 간신히 평정을 가장하여 걷던 그대로 몸을 움직였다.



   "게다가, 아름다운 시에라───"



     귀의 착각일까. 목소리가 조금 가까워 진 기분이 들었다. 또 언제나의 실없는 소리인가, 시에라는 희미하게 떨리는 손가락 끝을 애써 감추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감추려고 했다'. 하지만 평소 입던 긴 소맷자락 속마냥 정갈히 감추는 것은, 이 익숙하지 않은 짧고도 사랑스러운 옷 안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여 대신으로나마, 그녀는 살짝 손을 오므렸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남자가 웃은 것 같은 느낌은 기분 탓일까. 하지만 그녀는 곧 이어진 말에 몸을 굳히듯 꼼짝 세울 수 밖에 없었다. 어느 틈에 다가온 것인지, 귓가에 울리는 듯 가까운 목소리. 특유의 서늘함이 녹은 속삭이는 듯 조용한 말투. 무엇보다 그 말의 내용은...



   "이렇게, 달 아래에 있으면, 당신은 그대로 사라질 것만 같으니까───"



     덧없이. 하늘하늘. 그 말의 내용도, 그 말의 거리도, 말 자체에 움찔 놀란 시에라는 휘둘리지 않겠다는 종전의 다짐을 잊고는 홱 몸을 돌렸다. 주인의 의지를 따라 함께 춤을 춘 머리칼이 뒤늦게 그녀를 따라 돌았다. 그 투명한 달빛 아래, 파도 거품이 부서지며 태어난 것처럼 하이얀 소녀는, 꽃 따다 물들인 듯 오직 두 뺨이 붉었다. 



   "후후, 드디어 돌아봐 주었구나... 기뻐, 매력적인 시에라."



     역시, 아니나다를까 남자의 계획대로였다. 또 한 번 넘어간 듯한 기분에, 시에라는 샐쭉하니 눈을 흘겼다. 나름대로는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항의의 표시이기도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남자뿐 아니라 누가 보기에도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거나 미안하게 만들지 못했다. 물론 그녀가 누구인지를 생각한다면, 그녀가 진심으로 화를 낼 때의 분위기는 - 본 사람이 있을까 의문이었지만서도 - '감히' 누구와 비할 바가 되지 않을 것이었으나, 애당초 그녀는 사람에게 부정의 감정을 갖는 것도, 표현을 하는 것도 매우 드문 성품이었으니까.



   "그러한 실없는 소리를 하기 위해 쫓아온 것인 게냐. 어지간히도 한가하도다, 레이시안."


   "오야..?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시에라는 또다시 귓가가 달뜨는 기분이었다. 물론 그 이상의 감흥은 아무 것도 없이 오히려 언제까지고 저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인지 궁금할 뿐이었지만. ...아마도. 아무튼, 시에라는 꽤 현명한 선택을 내렸다.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발을 멈추었다. 더 이상 무얼 말해 보아도, 이미 이리 한 번 그가 대화를 주도하게 된 이상 쓸데없는 말은 무의미했다. 하여 내린, 같이 걷겠다는, 작은 의사의 표현. 


     소라고둥을 귓가에 댄 것마냥, 파도 소리가 가까이 스치었다.





02/



   "현세에서 이리 조용한 것은 처음이지 싶구나."



     사박사박. 말 없이 걷던 평화로운 고요를 깨뜨린 건, 시에라가 무심코 던진 가벼운 중얼거림이었다. 그녀의 말은 확실히 옳았다. 하다못해, 옆에 치아키가 있을 때에는 또 그 나름대로 소란스러움이 있었고, 거리들은 말할 것도 아니었으니까. 물론 치아키가 휘감은 공기는 싫지 않은 느낌의 소란스러움이었지만. 정확히 말하면, 소란스럽다기보다는 활발하다는 편이 어울리겠지. 무심코 미소가 지어지는, 그러한 종류의.



   "흐응, 그럴지도. 이 세상은 꽤 시끌벅적하니까."


   "너는 꽤 즐기는 것 같았다만. 내 생각이 그르더냐."


   "오야? 아아니, 정답. 후후, 역시 뛰어난 안목이네..."


   "실없는 소리에 이어 이젠 입에 발린 소리까지 하는 게냐. 너를 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게다."


   "그렇지만 어쩐지 기쁜 걸, 당신이 나를 알고 있다는 것이..."


   "───?!"



     시에라는 입을 빠끔거렸다. 정말이지 저런 표현은 부러 하는 것이 아닐 리 없었다. 시에라는 무언가 또 말을 하려다간 휘말릴 것이란 사실을 깨닫고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하얗고 하얀 아이의 붉게 물든 귓불만이 은사 사이로 슬쩍 비치었다. 그 모습을 보고 또 잔잔히 미풍 같은 웃음을 흘린 레이시안은 으응, 하고는 덧붙이듯 중얼거렸다.



   "응, 역시... 이 세상은 꽤나 즐거운 곳이네. 일순 그렇게 보여도 그저 약하거나 그저 천박하게 값어치 없는 그런 곳은 아니면서, 말이지."


   "...그야 당연한 일이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곳은 어디나 그렇지. 사람이 기뻐하고, 슬퍼하고, 다투고 또 웃으며 포기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로도, 그 빛남은 오롯 충분하고도 남는 것이니라.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아름답고 또 귀한 자들이로다."


   "흐응, 당신다운 말이야. 상냥한 시에라. ...나와 당신의 의미는 조금 다른 것 같지만, 당신의 말 자체에는 동의해 둘까나." 



     레이시안의 말에, 시에라는 살며시 고운 미간을 좁혔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지금에 와서는 그와 자신이 의미가 조금 다르다, 고 한 것이 어떤 뜻이었는지, 무엇이 다른 것인지 시에라는 어렴풋 눈치채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기준에서 받아들일 수는 없는 감각이었으나 머리로는 이미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세 번, 가볍게 설레설레 저었다.



   "으응, 하지만 역시. 이 세상에는 본디 속하지 않던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다니. 꽤나 역설적이네..."


   "... ... 영령들을 말하는 게냐, 역시 악취미인 남자로다, 너는."


   "오야, 당신에게 그런 평가를 받다니 영광이야."


   "──?! 에에잇, 모르겠느니!"



       뾰로통 삐친 아이처럼, 시에라는 홱 고개를 돌렸다. 그녀 자신으로서는 레이시안이 그녀를 놀리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기준을 두는 것에 따라서는 그녀는 그에게 여간해서는 내뱉지 않은 평가를 한 것이므로 '드물다'는 면에서는 맞는 말일지도 몰랐다. 시에라는 고개를 돌리며 흘끗, 아주 사알짝 레이시안을 향해 시선만을 잠시 남기었으나, 그는 오히려 더 뜻모를 미소만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에에이, 무언가 혹여 다를까 기대한 내가 바보였느니. 시에라는 저도 모르는 새 살짝 볼을 부풀렸다. 방울을 울리는 듯 마알간 웃음소리가 따르듯 울리었다. 한숨을 쉬듯, 레이시안은 부드럽게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시에라, 당신은 너무 상냥하고  물러... 이런 곳에서 싸우는 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전자에 대해서는 한 번도 그리 생각해본 적 없으며 동의할 수 없다만, 후자는 굳이 나 또한 아는 사실을 일깨워주지 않아도 되느니라."


   "글쎄.. 당신이 생각하는 의미의 '어울리지 않는다'로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되었느니."



     시에라는 나즈막히 내뱉었다. 정직, 그녀 또한 자기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주지하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 호환되지 않은 이러저러한 것들은 제쳐두고서라도, 무엇보다도 다른 이들이 바라는 종류의 바람이 없기에. 또 그 특유의 성품인 덕분에, 본디 소환된 자들 사이에서 느낀다는 호전성을 그녀는 전혀 갖지 못했다. 그러한 그녀가 다른 이들에게는 또 호전성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지는 아직 미지수였지만─옆의 남자는 그 예로 생각하기에는 , 너무나.. 너무나 특이한 사람이었으므로─ 적어도 그 점은 그녀가 그 수많은 차이와 이견, 그녀 성품마저 다스리며 현재의 계약자에게 책임감을 느끼는 이유 중 꽤나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렇기에 옆에 선 남자와 처음 함께 하게 된 것이었지만. 계약자에게는 고하지 않은, 지독히도 현실적인─시에라의 성품에는 맞지 않는─그러한 계산으로. 



   "너는 전혀 '상냥하고 무르지' 않기에 더욱 그리 보는 것일지도 모르잖느냐."


   "흐응,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내가 말한 것이 틀렸느냐? 너는, 그러할 생각은 일말도 없으리라 보았느니라."


   "으응, 그거라면야.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다 하고, 이용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이용할 테니까."


   "... ... 그렇느냐."



     시에라는 눈송이 내려앉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나붓 금빛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는, 다시 곧게 남자를 향했다. 꿀 같은, 그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진한 금빛과, 마치 햇빛과도 같이 투명하여 무엇이든 오롯 비치는 고아한 금빛이 가만 마주쳤다. 옴짝, 무엇인가를 말하려던 시에라는 곧 입을 다물었고, 잠시 지긋 눈을 내리감았다. 그리고, 다시금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렇게 눈을 떠 시선을 마주한 채 그녀는 입을 열었다.



   "부적, 보여주겠느냐."


   "...으응? 부적이라면...?"


   "있지 않느냐. 녹빛의."


   "오야, 당신은 그런 것까지 알고 있던 걸까나."



     의외롭게도, 레이시안은 별 망설이는 기색 없이 그 옷춤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었다. 목걸이인지 무엇인지, 그의 손에 잡힌 채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으나, 시에라가 그것을 확인하는 것에는 어떠한 문제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 ......"


     소녀는 자그마한 양 손으로 살짝, 조심스레 레이시안의 손을 잡았다. 다소의 머뭇거림, 하지만 지체는 없었다. 주위에, 마력이, 별빛이, 바람이, 파도가 넘실거리기 시작한다. 마치 그녀의 의사에 따르듯. 그리고, 소녀는 살짝, 잡은 한 쪽 손을 들어올리고는, 마치 기도를 하듯 살짝. 그 손 안의 녹빛 별에 입을 맞추었다. 



    "... 지금의 나로서는, 이렇게 비는 것 정도밖에 할 수 없노라. 허나, ..."



     그녀는 말을 멈추었다. 이상하게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었다. 

   그녀의 계약자의 소원은 결코 그녀의 사상과는 맞지 않는 종류의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바람이 진심이라면 거기엔 어떠한 경중도 시비도 없으리라.

   그녀는 본디 그녀 자신을 다른 이들을 받들고 존경하기 위해 태어나 자란 것이라 믿어 왔다. 그 오롯한 희로애락 - 특히 기쁨과 행복을 보는 것을 유일에 가까운 즐거움으로 살아 왔으메, 어찌하여 괜한 생각을 그 잠깐이나 가졌는지 영문 모를 일이었다. 아무래도 현세에서 받은 영향은, 그녀 생각보다 큰 듯 싶었다. 당연히 이해하고 있는 것에 무슨 바보같은 꼴이냐, 그녀는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더욱 자신답지 않은 것은... 아니,


     ───자신답다, 는 게. 무엇이었지?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후세의 사람들이 무어라 평하고 무어라 말하건, 당시의 사람들이 무어라 찬미하고 무어라 전하건, 그녀는 결국 그녀가 원하는 대로, 그녀가 믿는 대로, 그녀가 결정한 대로 판단하고 또 살아온 것이었다. 


     그렇다면...    마치 그 옛날의 한 순간처럼, 마음 한 구석에서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린다. ───내려왔던 그 순간, 흥얼거리던 노래. A chance to change my world. There'll be actual real life people.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 아아, 그랬었지. 어째서 자신은 또 괜한 일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나. 시에라는 살짝, 무심코 또 볼을 부풀릴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리고, 홱. 언제나, 평소의 그녀가 그랬듯 고개를 들어 곧게 시선을 마주보았다. 조금 높았지만, 흔들림 없이. 조금, 아주 조오오오금은 놀란 것 같은 표정을 보니 입가가 저절로 올라가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그녀 자신도 모르지만서도. 그리고, 시에라는 미소지었다. 별을 녹인 눈으로, 곧게, 오롯이, 자신감 가득한, 아마도 그녀 '본래'의 표정. 



     "──그리 당당히 이용하겠다 선언했다면, 자신감 정도는 있을 터렷다."



     물론 지금 생각해도 조금 과도하게 있는 것 같지만, 무심코 시에라는 내심 그리 생각하면서도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이런 기분이 들어본 적은 또 언제적 옛날 이야기일까. 하지만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고 또 입가에 맺혔다. 굉장히 푹신푹신한 기분. 무엇인가 등을 감싸안는 기분.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보며 기뻐하는 듯한, 그런 느낌으로. 시에라는 말했다. 낭랑한 목소리만이 숨죽인 파도 위 곧게 울렸다.



   "그렇다면, 네가 나를 『이용』할 정도의 그릇일지, 한 번 기대해 보겠느니라───"



     소녀의 표정이 정말로, 어쩐지 '즐겁다' 는 듯 환하게 피었고, 동시에 주변에 몰아치던 별빛 바람이 폭발하는 듯 빛을 발했다.





03/



     순간 본 것은 꿈이었을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전히 바다는 고요하게 파도의 바스락거림만이 들렸고, 머얼리 번화한 거리의 불빛이 보였고, 바닷바람만이 선선히 불었다. 여름 바다 특유의 짠 맛 바다내음이 풍기었다. 사그라져가는 그 빛 속에서, 기대해 보겠노라 당당히 선언한 소녀는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 더하여, 네가 어떤 생각을 하든, 어떤 목적을 갖던, 너와 함께 하기로 정한 것은 나 자신이니라. "

   " 하여, 네가 어떠한 말을 하든, 어떠한 결과를 부르든 그것은 내 선택이 불러온 책임일지니."

   " 그렇기에, 네가 그리 하더라도, 나는 너를 원망치 않노라.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노라. 그리 정했고 그리 믿어왔으니."



     그렇게, 쏟아지는 빛무리 속에서 소녀는, 천천히, 천천히, 빙그레 웃었다. 부드럽게, 악의 없이, 오롯 진심에서 나온 것이, 그 누구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아마도 그녀 자신은 결코 모를 표정이겠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었다. 또 그러한 마음가짐이 당연한 것이리라 여기고 있을 터였다. 허나───



      『───그러니까, 네 그 마음 바램에 닿을 수 있기를.』

      『───부디 네게, 행복 있기를.』



     레이시안은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아마도, 시에라가 보았다면 깜짝 놀라다못해 기겁을 했을 법한. 픽, 하고. 가볍게. 그리고 문득, 예상했던 대로의 반응이 돌아오지 않자, 레이시안은 바로 옆 - 혹은 앞에 시에라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꿈을 꾼 것 같은 그 느낌 때문이었을까. 그가 고개를 마악 돌리려는 쪽으로부터, 아침 하늘을 녹여 담은 듯한 맑은 목소리가 청아하게 울렸다.



   "레이시안, 게 서서 무얼 넋 나간 듯 가만히 있는 게냐. 이리 기다리고 있지 않느냐!"



     은빛 넘실대는 소녀는 뾰로통한 듯한 표정으로 그를 불렀다. 그가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맞추자, 작게 - 너무나도 알기 쉽게 순간 움찔, 하고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갛게 웃었다. 비 개인 하늘처럼 깨끗이 웃는 얼굴로, 그녀는 망설임 없이, 손을 내밀었다.



   "빨리 오거라,"



     시간이 늦었느니라. 치아키가 걱정할 게다. 라고 덧붙이며 손을 뻗은 그녀를, 한 번 눈을 깜빡이며 바라본 레이시안은 곧 가볍게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평소와 같이 나긋 미소지었다. 그렇게 한다면,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당신이 원한다면, 부디 뜻대로.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하지만 싫지만은 않은 듯한 희미한 웃음을 머금은 채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의 눈에 든 무언가를 보고, 아주 살짝 눈을 크게 떴다, 곧 다시 평소와 같이 곱게 휘었다. 시선이 흐른 곳은 저 너른 밤하늘, 소녀의 머리카락, 그리고 그 반짝이는 금빛 눈동자.



   ".....별이 깃든 것 같네."



     검은 비단처럼 흐르는 바다 위로 펼쳐진 밤하늘은, 분명, 분명 멀지 않은 곳 사람의 불빛으로 빛을 잃었었을 것이 분명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눈이 아플 정도로 밝은 그 빛 사이에 숨어서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내밀지 않던 별들이, 마치 한 번에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 너르고 너른 밤하늘에는, 마치 기적처럼, 꿈처럼, 그 아래와는 또 다른 빛이 쏟아져───찬연한 별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선 채, 은하수로 자아낸 듯한 은사가 춤을 추며 저 하늘의 것과 같은 금빛 눈이 그를 오롯 비추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 쉬듯 웃으며, 그는 아주 작게, 작게 중얼거렸다.





   "...응...역시, 그건 보류."


별이 빛나는 이런, 이런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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