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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히히

사쿠라모찌 2014.02.07 11:37 조회 수 : 23


     『악신』이란 건 무엇인가. 사람의 공포. 사람의 신앙. 사람의 적. ───신의 적. 이미 어둠에 뒤덮인 새까만 낮의 하늘을 바라보며, 그는 그 한 가운데 서서 가만히 그들을 지켜보는 검은 청년을 보았다. 이건 조금, 마음에 들지 않을지도. 이미 본디의 우스꽝스러운 표정도 소리도 내지 않는 청년은 , 빛이 없는 눈동자로 가만히 그들을 내려다 볼 뿐이었다. 아니, 없는 것은 그저 빛만이 아니다. 슬픔도, 증오도, 분노도, 환희도, 어떠한 것도 드러나지 않아. 그야말로 인간들이 '만들어 낸' 악신이다. 하잘 것 없이 괴로워하던 남자를 바꾸어 만들어 낸 재앙신이다. 그렇다면, 그는 눈 앞의 '인간'이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까. 그럴지도 몰랐다. 하지만 좀 더, 좀 더 깊은, 그런 무언가가────



(중략:p)



     스치기만 하여도 삼켜질 것 같은 그림자가 하늘에서 흩뿌려진다. 바다 건너라면 모를 일이나, 이 땅에 한하여 그는 그야말로 악귀. 입에 담는 것조차 꺼려지는 그러한 대상. 남자는 쏟아지는 그림자 무리를 우아하게 피하고, 또 동시에 베며 그를 보았다. 응,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아. ...어째서? 

──그야.... 남자는 윤무를 추는 양 검을 휘두르며, 가볍게 웃음을 머금었다. 순간, 희미한 빛이. 서서히, 서서히. 마치 별가루가 흩뿌려지듯 조금씩. 조금씩. 희미하지만, 점차 강하게. 점차 진하게. 점차 모여서. 


     바람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점차 점차 귓가를 할퀴던 것은, 이윽고 마치 폭풍우인 양, 모든 것을 휘감아 버릴 듯 강하게 몰아치고. 쏟아지던 그림자 조각들은 어지러이 흩어지고. 숨조차 내쉬기 힘들 법한 검은 바람 속에서, 살풋 내려앉은 빛의 파편들은, 모이고 모여 한 무리의 빛무리가 되고. 남자는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이미 사람을 가뿐히 날려버릴 법한 바람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쓰러질 것만 같은 바람 속에서도, 어긋남 없이.



─── 사람 위에 서는 것은 누구인가Qui se tient sur l'homme

오직 왕일 뿐C'est roi 



     휘몰아치던 바람이, 날려버리는 것을 넘어,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옥죄인다. 검은 바람이, 사람을 삼키듯 목을 타고 건물을 기고. 아가리를 벌려 다리를 물어뜯고, 벼락을 메다꽂고. 그러나, 남자만은. 마치 다른 세상에 서 있는 듯한 모습으로, 그 입가도, 그 눈매도, 단 하나의 흔들림도 없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자는 누구인가Qui tout embrasser

오직 왕일 뿐C'est roi 



     서서히 내려앉아 온 빛무리는, 남자의 검을 부드러이 감싸안았다. 빛에 휘감겨, 그 품에 안기듯. 빛 한 점 없이 가라앉아 가던 심연의 하늘에, 낮의 밤에, 그늘 속 세상에. 점차 점차 찬연하게. 몰아치던 검은 바람에 눈부심이 깃들어 새하얗게 돌고, 그럴 수록 강하게 벽을 물어뜯는 바깥의 검은 별똥별. 남자는 여전히, 천천히, 천천히. 악신이 내리보는, 불쌍한 남자가 서 있는, 그 곳으로.



───진리(옳고 그름)를 정하는 것은 누구인가Qui décide de la vérité

오직 왕일 뿐C'est roi 



     이제, 남자의 검에 내려앉은, 그 주변에서 춤추는 빛무리는 유독 홀로 찬연하여. 어둠 속에 홀로 선 빛은. 이제 땅을 뒤흔드는 난폭한 손에도 꺼지지 않고. 시들지 않고. 점점 더, 아름답게, 눈부시게. 강하고, 차갑고, 또 따뜻하게.



───백성의 빛이 되는 것은 누구인가Qui est la lumière de l'homme

오직 왕일 뿐C'est roi 



     그렇다면, 남자는 서서히. 검을 들었다. 다급함도, 긴장감도, 없이 그저 평온할. 그저 다름 없는. 그렇다면, 마지막 답은 무엇일까. 남자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왕은 누구지? 망설임 없이, 단호한 속삭임. 답은, 정해져 있었다.



"C'est moi."



    드높이 빛나는 왕의 빛은 찬란하고, 앞에 내려선 적의 눈동자에 비치는 유일한 밝음으로. 그리고, 이제 휘몰아치기 시작한 빛의 폭풍은────



"───이 앞에, 영광 있으리LAETUS IN LUCEM──────"



    지상에. 하늘에. 눈부시게 빛나라. 그 무엇보다 강하고, 무엇보다 찬연히. 순식간에 검은 폭풍우는, 그림자 별똥별은, 벽에 붙은 어둠은, 땅을 가르던 진흙은. 모든 것이 모든 것이 빛에 휩싸이고, 그 빛에 모든 것이 새하얗게 변할 것만 같고. 검게 물들었던 다리는 새하얗게 물들었다 곧 본래의 모습을 찾고, 가라앉은 강물은 서서히 흐르고. 숨을 쉬기도 힘든 그런 빛바람 속에서, 오직 남자만이 고요했다. 마치 그의 주변만, 공기가 멈춘 것처럼. 끝도 시작도 없이 너리 펼쳐진 땅처럼. 평소의 그것과 똑같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남자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귀를 찢을 듯 몰아치는 바람 속에서도, 눈이 멀 것 같은 그런 빛 속에서도. 마치 폭풍의 눈인 양, 혹은 바람조차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듯, 남자의 목소리만은, 유독, 잔잔하고 아름답게, 강하고 또 맑게. 순간 찾아온 고요, 단 한 순간의 스치는 평온 속에서, 남자는 읊었다. 입꼬리가 휘었고, 눈매는 상냥하게. 마치 노래하는 것처럼, 이 순간이 영원한 것처럼. 단 한 마디.



"──────Joyeuse LUMIERE"




     그리고, 세상이 빛에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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