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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가 비뚤어졌어

로하 2014.02.06 13:15 조회 수 : 1




00/





   달칵.


조용히, 찻주전자를 움직이는 소리가 나고, 고운 모양의 다과가 접시에 담겨졌다. 새하얀 떡에 분홍빛 곱게 장식된 것, 떡 세 알이 동그랗게 나란히 얽힌 것,  몽실한 하얀 떡 안에 언뜻 붉은 소가 엿보이는 것. 갈색 찹쌀피가 살짝 부풀어오른 채 얌전히 뭉친 것. 과자를 접시에 담는 동안, 희미하게 고소하고도 따뜻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차가 적당히 우러난 듯, 청년은 곧 익숙한 손놀림으로 잔에 따라둔 물을 따로 흘려버렸다. 아무래도 잔을 데우기 위해서였던 듯 싶었다. 찻주전자에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찻잔 끝에 맺힌 물방울이 없도록 차분히 마무리지은 후, 청년은 조심스런 손길로 잔을 채웠다. 조르륵, 하고 물이 흘러담기는 소리만이 고요했다. 그런 청년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세 사람은 저각기의 표정. 여전히 알 수 없는 듯, 조금 무심한 듯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눈으로, 허나 상냥한, 그런 표정으로 잔잔히 있는 흘러넘친 달빛 머리카락의 소녀. 발에 쥐가 났는지, 아니면 예상 외의 상황인지 - 허나 이 가능성은 낮다고 보였다 - 조금 안절부절 못하는 듯한 기색의 검은 머리칼 여자아이. 뜻모를 표정으로 그저 미소지은 채 있을뿐인, 태양과도 같은 찬연한 금빛 머리칼의 청년.



"───변변치 않은 것이오만,"


"향이 좋구나. 감사히 받겠느니라."


"가, 감사합니다..!"



은발 소녀와 청년 쪽은 아무런 당황스러움도 없이 마치 수 년 전부터 그래온 듯 우아한 몸짓으로 찻잔을 들었다. 그윽한 향기가 퍽 좋았다. 꽤 괜찮은 안목의 찻잎이었다, 검은 머리카락의 청년이 고른 것은. 더하여, 그 두 명의 기준에서 '꽤 괜찮은 안목'이란 것은 곧 범인의 기준으로 본다면 더없는 상등품. 곧 찻주전자를 마무리한 청년도 잔을 들었고, 네 명의 기묘한 동거인(예정)은 그제서야 서로 차분히 마주보았다.





01/





   "───여긴 내가 미리 침 발라놨다고!"


큰 소리로 외치며 대문을 박차고 들어온 소녀에, 은발 여자 아이도, 검은 머리칼의 청년도 일순 동작을 멈추었다. 동작이라고 해 봐야, 여자 아이 쪽은 저택 뒷마당의 터줏대감 같은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소일하듯 청년을 지켜본 것 뿐이었으며, 청년 또한 마지막 준비만을 남긴 상태였다. 깜짝 놀란 것은 아니었으나, 아무래도 귀가 울린 것인지 새하얀 아이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허나 단지 그것뿐. 그녀는 곧 조금 전과 같은 표정 없는 온화한 얼굴로 가만히 청년 쪽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가 아직 누구인가 더 올 것이라 생각하는 듯 열린 대문을 바라보는 것을 보곤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곳에서 마주치다니, 기묘한 우연이네. 그녀는 이렇게 말하지만... 나는 당신들과 대화를 나눠 보고 싶은데. 어려울까나."


"... 나는 괘념치 않노라. 계약자여, 너는 어찌 하고 싶느냐."



새하얀 소녀는 면식이 있는 청년의 얼굴을 마주보고 차분히 답하고는 다시 검은 머리칼의 청년을 바라보았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오밀조밀, 섬세한 이목구비의 청년이었다. 동양인 특유의 얼굴상이 조금 더 앳되어 보이는 느낌이었으나, 머리칼과 마찬가지로 칠흑과 같은 검은 눈은 확연히 다른 빛이었다. 그는 잠시 물끄러미, 금빛 머리칼의 청년과 '쳐들어온' 소녀를 번갈아 보고는 곧 입을 열었다.



"안타깝지만, 소저에게 양보할 이유는 없다오.

───허나, 대화를 하지 않을 이유도 없는 것 또한 사실이외다."



역시 그렇게 대답하는가. 조금 딱딱한 표정으로 대답한 청년을 보고, 하얀 소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허나, 곧바로. 청년은 잠시 말을 멈추고는, 이윽고 가벼운 쓴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상냥한 빛이었다. 그것을 보고, 소녀는 속으로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는구나. 헌데 너, 이 땅을 혹여 미리 매입해 둔 것이었더냐. 계약자의 말대로, 어떠한 조치도 표시도 남겨두지 않은 땅을 자신의 소유라 주장하는 것은 조금 아귀가 맞지 않는다 생각하노라."


"...으,윽. 그, 그런 건 아니지만...."


"...뭐어, 좋다. 우리 또한 떳떳이 대가를 지불하고 얻은 곳이 아니니, 주인 행세는 우습다만, 부디 들어오너라."



은발의 소녀가 객을 맞이하는 듯 나붓 일어나, 한 쪽 팔을 가볍게 들었다. 흑발의 소녀보다도 한 뼘은 족히 작을 자그마한 체구였다. 아니, 물론 검은 머리카락의 여자아이 쪽이 나이대 소녀에 비하면 다소 장신인 것도 사실이었지만. 사락이는 은사가 길게 내려앉았고, 그 모습에 무심코 살짝 입을 벌려 감탄사를 흘린 다른 아이는 곧 고개를 두어 번 가볍게 젓고는 재빨리 - 마치 자신의 집인 것처럼 당당하게 - 따라 들어갔다. 그 뒤를 따라 들어가는 금발 청년과, 마지막으로 일어선 동양의 청년은 재빨리 가장 앞장서 걷던 새하얀 아이에게 말했다.



"소인은 무언가 요기라도 할 다과라도 준비해 가겠소이다. 부디 소저께서는 먼저 객들을 안내해 주시겠소이까."


"아아. 툇마루..보다는 일단 내실이 낫겠지. 그리 가도록 하겠느니라."



소녀의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여 이해를 나타낸 청년은 곧 두 방문객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재빨리 다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소녀는 발을 멈추는 일 없이 계속하여 걸었고, 이윽고 좁지만 운치 있는 - 특히 부슬비 가벼이 내리는 이러한 날씨에는 - 복도를 지나 한 방 앞에서 가만히 섰다. 그리고는 긴 소맷자락 속에 살풋 감추었던, 언뜻언뜻 보일 뿐이었던 하얀 손을 드러내고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아직 정리가 끝나지 않았는고로 볼 것도 없다만, 편하게 있어주면 좋겠구나."


"에, 아, 네...!"



눈처럼 새하얀 아이는 '볼 것도 없는' 방이라 표현했으나, 다른 소녀에게 있어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주인 .. 이 경우에는 저 소녀나 아까의 청년이겠지만, 하여튼 건축물이나 예술이나 조경, 그러한 것에 대해서는 전혀 지식이 없는 그녀가 보기에도, 이 방과 여태까지 걸어온 복도만 보았음에도 좋은 취향에 훌륭한 안목이었다. 마치 어딘가의 사진집 같은 곳에나 나올 것처럼, 하지만 그러한 곳들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지 않고, 좀 더 우아하고 기품있는. 



"치아키."



금빛 머리칼의 청년이 작게 부르는 한 마디에 소녀는 그녀가 지금 두리번거리며 감탄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재빨리 하얀 아이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푹신한 방석과 앉은뱅이 상. 하나하나가 마치 헤이안 시대나 당나라의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었다 - 그 둘의 양식은 확연한 차이가 있지만, 그건 역사 전공자나 알 것일 테니까- 



"바닥이 차거나 방석이 별로 푹신하지 않은 건 아니냐. 그렇다면 부디 말해다오."


"에? 아, 전혀요! 엄청 푹신해요! 오리털 점퍼를 깔고 앉은 것 같을 정도로!"


"...오리,털..점퍼...?"



소녀의 말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듯, 눈의 요정 같은 아이는 눈을 크게 떴다가는 곧 의미만은 이해했는지 선선히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금빛의 청년을 바라보았다.



"너 또한, 익숙치 않다면 자리를 바꾸겠으니, 만에 하나라도 그리 느낀다면 괘념치 말고 말해주길 바라느니라."


"흐응, 전혀 문제 없어..? 오히려 이 쪽이 조금 더 새롭고 좋은 느낌이야."


"...그렇느냐. 불편이 없다면 다행인 일이나.."



소녀의 말은 거기까지였다. 가볍게 헛기침 소리가 들리고, 들어가겠다는 말과 함께 드르륵. 한아름 올려진 다과상을 든 청년이 문을 열고 들어왔고, 곧이어, 문이 닫혔다.





02/





     치아키는 무심코, 행복한 표정을 저도 모르는 새 온 얼굴 가득 지은 채 화과자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고 있었다. 어쩐지 듣도 보도 못한 고급품 - 한 개에 0이 몇 개씩 붙는 가격의! - 같았지만, 대접해 주시는 거라면 겸양보다는 맛있게 먹는 게 최고일 것이다. ...라고 스스로 굳게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허나 그런 그녀의 믿음은 적어도 눈 앞의 두 명에 대해서는 통하는 사실이었던 듯, 동양인 청년은 온화한 표정으로 시종일관 행여나 부족해질세라 다과를 곧바로 더 올려두며 권하고 있었고, 은발 소녀는 따뜻한 눈으로, 상냥한 표정으로 그런 치아키를 바라보며 가볍게 미소지은 모습이었다.



"혹, 배가 고팠던 것이라면, 차라리 잠시 후에 식사를 준비할 터이니 그리 급하게는 먹지 말아 주시오. 속에 좋지 않소이다."


"계약자의 말이 옳으니, 자칫하다 목이 메이거나 걸리거나 하면 큰일이니 천천히 하거라. 얼마든지 있느니라."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거 정말 맛있네요!"



겸양의 거절이라던가 대신 곧바로 받아들이는 소녀의 모습에 살짝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띄우며 새하얀 아이는 말을 받았다. 스스럼없이 굴고, 밝게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 생각했던 것일까. 그녀는 작은 손을 움직여 치아키의 찻잔을 채웠다. 흰 소맷자락 사이로 비친 팔목이 마치 한 번에 잡힐 듯 가늘어서, 살짝 귓가를 덮고 흘러내린 달빛 계곡물 같은 머리칼이 문득 일렁거려 치아키는 씹던 사쿠라모찌를 꿀꺽 삼킨 후 진심의 감상, 겸 의문을 내뱉었다.



"그런데 서번트들은 다 그렇게 예뻐요?"



예상치도 못했던 말이었기에, 찻주전자를 가만히 마무리짓고 들어올리던 소녀는 그만 주전자를 떨어뜨릴 뻔 했으나, 간신히 잡아내고는 재빨리 손을 움직여 모양새를 정돈했다. 



"──그것이 네 질문이라면 나로서도 어찌 대답해야 할 지 모르겠느니라. '다'라 한다면. 나로서도 다른 자들을 전부 알고 있는 것도, 직접 본 것도 아닌 이상에는 말이다."


"이런, 아가씨. 그 말은 그런 의미로 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 다른 질문이었느냐?"


"오야? 일전에도 생각했지만 역시 순진한 아가씨네... 이건 혹시 직구로 말해야 하는 걸까나."


"...직구...?"


"응, 직구. 그렇게 말하자면, 방금 그녀의 말은, 당신이 아름답다는 뜻이니까."


"음? ... ...? ....?! ....───?!?! 너,너는 또 실없는 소리를! 그 때는 그저 변덕이라 생각했거늘, 그런 되도 않는 수작은 그만두라 하지 않았더냐!"


"에-에, 하지만 정말인걸요! 지금 제 눈 앞의 두 명 다 말도 안 되게 예쁘니까── 응, 비유하자면 둘만 어디 미술관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 이랄까 다른 세상 사람 레벨? 그리고 당신은 정말로 천사처럼 보인다구요! 맛있는 것도 이렇게 가득 주고, 깜짝 놀라서 멍하니 봤을 정도로 예쁘고 새하얗고, 맛있는 것도 이렇게 가득 주고. 엄청 맛있고."


"... 과, 과찬이니라. ...그리고, 과자는.. 아직 한가득 있으니 더 먹어도 괜찮느니라. ..많이 배가 고팠던 게냐."


"와아, 역시 천사님...!"



은발 소녀는 살짝 귓불을 붉혔지만 그 이상의 반응 없이 - 오히려 조금 당황한 듯 - 다과상 옆에 놓여 있던 상자에서 이번엔 양과자마저 꺼내 올려두기 시작했다. 녹차 쉬폰, 블루베리 치즈 수플레, 고구마 케이크와 호두 파이. 딸기 타르트와 애플 스트루델, 몽블랑에 머랭 쿠키까지. 척 보기에도 모든 소녀들이 좋아할만한 생김에 치아키는 눈을 빛냈다.



"이건 조금 슬픈데... 내가 했을 때에는 실없는 소리 취급이더니, 그녀의 말에는 그렇게 얌전한 반응이라니. 물론 얼굴을 붉히며 그런 말은 그만 하라고 하던 당신도 재미있고 귀여웠지만."


"?! 그야 당연한 것이 아니더냐! 너는 네 스스로 그것이 실없는 소리가 아니라 말할 수 있느냐!"


"응, 그야 물론이지. 나, 거짓말은 하지 않지만. ..이런, 혹시 겉치레나 수작 부리는 대사로 알아들었던 걸까? 그건 진심이었는데."


"────?!"



새하얀 소녀의 도자기 같은 피부가 발그레 물들었다. 그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인지, 아니면 발끈한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복숭앗빛 뺨에 장밋빛 홍조가 더해지니 다른 세상 사람, 그림 속 존재가 현실에 비로소 튀어나온 것만 같았다. 그 반응이 재미있었던 것일까, 마음에 드는 것일까. 금발 청년은 형태 좋은 입매를 휘고는 가볍게 웃었다. 서양배와 커스터드 크림이 담뿍 든 밀푀유를 부스럭대며 입에 넣던 치아키 또한, 청년의 칭찬에 동의한다는 듯 (아니면 그저 음식이 매우 훌륭하다는 의미일지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가 부정하지 않은 것에 또 당황했는지 은발의 여자 아이는 곧 휙 고개를 들어 너라도 어찌 말려 보라는 듯한 눈으로 흑발 청년을 보았다.



"그들의 말은 참이라고 생각하오. 소저가 그저 너무 겸손한 것 뿐이오. ..헌데, 소저는 저 쪽과 면식이 있던 것이오이까?"


"... 일전에 언급했었던, 저자에서 보았던 자이니라."


"음..? 오호, 그렇소이까. 이것 참, 기묘한 우연이외다."


".. 기묘하다면 기묘하겠구나. ..너, 무얼 그리도 계속 보고 웃는 게냐!"


"으응? 아아, 그냥. 당신이 아름다워서...?"


"그, 그, 그러니까, 그 무의미한 소리는 그만 하라고 했었..."


"──잘 먹었습니다!"



하얀 소녀의 말은 거기서 멈추었다. 하얀 소녀의 계약자,라는 흑발의 청년도, 하얀 소녀도,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치아키란 소녀를 쳐다보았다. 접시에 그득그득 쌓여 있던 형형색색의 케이크와 다과는, 하나도 남김없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반짝반짝, 초콜릿 가루 한 줌 남기지 않고. 금발 청년만이 오야, 이건 또... 라 중얼거리며 여전히 미소 띈 얼굴이었을 뿐. 하얀 소녀가 몇 번 눈을 깜빡거리고는 약간 떨떠름한 목소리로, 하지만 그럼에도 배부르고 행복한 얼굴을 한 소녀를 따스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입맛에 잘 맞았던 것 같아 다행이니라. 차는 다 마셨느냐."


"에에, 차는 아직 남았어요! 그리고 정말로 맛있었어요!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 보기도 했지만, 뭐랄까. 이런 과자 자체를 뭔가 굉장히 오랜만에 먹어서. 에헤헤."


"그, 그런가. 허면 따로 있는 것을 조금 더 챙겨 줄 터이니 그것이라도 가져가 후에 자택에서 즐겨도 좋느니..."



허나 소녀가 내뱉은 자택, 이란 말에 치아키가 움찔하는 모습이 보이고, 소녀는 곧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허나 물어도 괜찮은 일인지 알지 못했기에, 소녀 쪽에서 먼저 묻는 일은 없었다. 그저,



"...저어, 그게."


"...그게....?"



그리고, 이어진 것은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말.



"저희, 지금 현재 진행형으로 집이 없어서요. 헤헤."





03/





   집이 없어?! 당황한 것은 소녀 쪽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그녀가 내뱉었던 말은 얼마나 큰 실례였던 것인가. 죄책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는 곧 어찌하여 소녀가 그리도 맛있게, 빠른 속도로 다과를 먹었는지 순식간에 이해했다. 그녀가 추측한 것이 맞다면,의 전제 하였지만. 투명한 아침 햇빛 같은 금빛 눈을 당황스런 빛에 젖은 채 혼란스러워하는 듯한 소녀를 제치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소녀의 계약자 쪽이었다.



"허면, 지금 소저와 소저의 동행께오선 거처 없이 밖에서 머무르고 계신다는 말이오?"


"..으,으음. 뭐라고 해야 하지.. 어, 음... 그게, 오늘부로 쫓겨났거든요...?"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설명이 필요하다는 듯 청년은 금빛 머리칼의 청년과 치아키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내쫓기다니, 누구한테? 어디에서? 아아, 이건 곤란하네, 란 듯, 어깨를 한 번 으쓱한 청년이 조곤조곤 말을 시작했다.



"오해가 있을까 해 두는 말이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아무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쫓겨난 건 아니야. ...솔직하게 말하자면, 자업자득, 일까나..?"


"자업자득...이라면..?"


"그녀가 준비해 두었던 비축금 또한 있었고, 어느 정도는 내가 돈을 벌기도 했지만, 이 곳의 물가나 방세가 생각보다 비싸서 말이야. 특히나 여름철에는 더 . 겨울철에는 뭔가 이유를 알 수 없는 사고가 이곳저곳에서, 매 해 연례 행사 급으로 발생해서 집값이 내려가지만, 아무래도 해안 도시기도 하고, 그런 사고가 없으니 여름에는 더 오른다고 들었어."


"...그것은...."


"뭐어, 그래도 숙소 여주인이 호의를 베풀어서─그는 이 대목에서 매우 뜻깊은, 허나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처음 계약할 때의 가격으로 계속 해 주겠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바닥이 나서. 아, 자금이, 말이야. 그렇게 되서 미루고 미루다 더 이상은 무리라, 현재는 그녀의 말대로. 자업자득이란 건, 기본적으로 시세에 대해 조사하지 않고 시작한 이 쪽이 실수했던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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