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 앉아 두 눈을 감고있으면 시원한 바람이 상기된 두 볼을 쓰다듬었으며 지나갔다. 코로 숨을 들이쉬면 짠듯 비린듯 한 바다내음이 몸 안으로 들어가는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숨을 내쉬고 땅을 짚고있는 오른손을 뒤집어 작고 따뜻한 손을 마주잡았다. 뱃사장의 모래가 묻어있는 손바닥 그대로 그녀의 손을 잡아 따뜻하게 전해지는 온기를 느꼈다. 까칠까칠한 모래를 털지도 않고 나와 그녀는 각자 손을잡고 서로의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 말없이 감정을 교환했다.
"------?"
귀를 스치는 바람 사이로 그녀의 청아한 말소리가 귀 속으로 울려퍼지고, 나는 눈을 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백옥같이 흰 피부위로 고운 머릿결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나머지 왼손으로 그녀의 얼굴 앞을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그녀의 붉은 머리와 어울리는 눈동자에 내 얼굴이 겹쳐보였다. 분명히 장담하건데, 내 앞으로는 이보다 아름다운 여인을 볼 수 없을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살며시 미소를 짓자 그녀또한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분명히 나는 천상에 있는것이 틀림없다고 착각할 미소였다.
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전부 차지하도록 가까이 다가갔고, 두 입술을 포개어 뜨거우면서도 달콤한 숨결을 교환했다.
그리고 여명속에서 연기처럼 사라져가는 그녀를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헉!!"
두 눈을 뜨고 보인것은 지프의 천장이었다. 이따금씩 서늘한 바람이 차 옆면을 긁고 지나가는 소리를 내고있었다. 나는 타들어가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물통의 뚜껑을 열고 목을 축였다. 여전히 갈증은 남아있지만 바로 다 마셔버리면 사막 한 가운데에서 보충할 수도 없기에 아껴두기로 했다. 물통의 뚜껑을 닫아 배낭에 넣고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니 시간은 오후 9시를 넘기고있었다.
"이런, 생각보다 많이 지나버렸는데. 요즘 쉬지를 않았으니 피곤했나.."
시계를 본 다음 몸을 덮고있는 모포를 조수석에 접어놓았다. 잠기운을 날리기 위해 양손으로 두 볼을 찰싹 때린다음 뒷좌석으로 몸을 돌렸다. 배낭을 열어 물품을 확인한 뒤 다시 닫았다. 가방을 집어 다시 몸을 돌린 다음엔 야상의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한 밤중 사막의 모래바람과 추위는 아무리 익숙해진다 한들 그것이 괜찮다는건 아니니까. 천으로 된 마스크를 꺼내 입과 코를 가린 뒤 고글을 머리에 끼웠다. 마지막으로 시간을 확인한 다음, 손목시계의 알람을 다음날 아침으로 맞춰두었다.
신발끈을 고쳐메고 장갑을 낀 손으로 차문을 열자 바람이 차 안으로 들이닥쳤다. 차 밖으로 발을 내딛으면 발 밑이 모래밭과 닿는게 느껴졌다. 바람에 펄럭이는 소설책 옆으로 뉘여진 검을 꺼내 끈으로 등에 밀착시켜 고정시켰다. 그리고 가방을 꺼내 그 위로 멘 다음 운전석 문을 닫고 열쇠로 잠갔다. 어디든지 보안은 필요한 것이니까.
고글 너머로 지평선 위에 서있는 바위산을 바라보았다. 낮에 보았다면 붉으스름했을 바위산은 빛이 사라지고 차가운 달이 뜨니 백청색으로 보이는 듯 했다. 나무라곤 마른 가시나무 몇 그루만 보이는 그 산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박사박 하고 걷는 발걸음은 곧 사막의 바람에 사라져 그 흔적이 허공으로 흩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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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여기까지.
이후로는 이렇게 짧게 한 장 정도 분량으로 한 파트 쓰고 댓글에 다는 식으로 하면 어떨까 싶네요.
댓글로 캐스터->권군->캐스터->권군
이렇게 서로 만나는 부분까지 쓰는거죠. 위 글이 2.6kb니...15~20kb으로 기준 잡아서 각자 3파트로 잡고 하면 어떨까 싶네요.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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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하
2014.02.02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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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하
2014.02.04 05:51
BGM정보: http://heartbrea.kr/1414725 -
ahaz
2014.02.06 01:06
태양이 내려앉은 황야의 찬 바람이 몸을 쓸고 지나갈 때마다 지면이 얼어붙는게 아닌가 할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얼어있는 것 같은 달만이 지상을 푸른 빛으로 비추고 있었고 그 주변의 무수한 별들은 하늘에 떠있는 눈송이같았다. 본래 낮이라면 땅의 갈색과 붉은색으로 이루어졌을 황야와 산은 달빛을 받아 북극의 빙산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을 띄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녀석이 있을것으로 생각하는 산의 입구. 그 골짜기에는 달의 빛조차 닿지않아 검은 먹으로 그 부분만 칠한 것 처럼 암흑 말고는 보이지 않았다. 마치 블랙홀처럼 그 주변의 모든것을 빨아들이는 것 처럼 보이는 그 골짜기 사이로 한 발 한 발 내딛어갔다.
칼날바람이 몸을 스치고 지나가고 어둠에 가까워질 때마다 이성보다 생물적인 본능이 어둠을 거부하는것을 느꼈다. 하지만 다시 한 발. 어둠속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마치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듯, 칼로 딱 자른것처럼 나누어진 어둠이 한 쪽 발을 삼켰다. 내딛어진 다리 사이로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먼지가 어둠속으로 들어가는것이 보였다. 다시 한 번 한 발. 나머지 다리가 어둠속으로 삼키어지고 곧이어 허벅지와 몸에 이어 전신이 계곡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 2초도 안 되는 이 과정이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차갑고, 끈적한 공기 안에서 그저 묵묵히. 녀석을 찾으러 스스럼없이 몸을 움직여갔다.
- 죽인다.
소리없는 말. 차를 멀리 두고왔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은 나의 존재를 이미 알고있는듯, 적의가 바람을 역행하고 나를 덮쳐왔다.
"이쯤되면 숨길필요 없겠지."
그에 답하듯이 나 또한 감추고있던 기척을 드러내고 발걸음에 힘을 주며 나아갔다. 세상과는 완전히 차단된 것 같은 계곡에 있자니 녀석의 둥지 안으로 들어왔다는것을 알 수 있었다. 뒤를 돌아보면 계곡의 입구를 통해 넓게 펼쳐진 황야와 지평선이 보였다. 그리고 위를 올려다보면 계곡의 정상 사이로 검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눈꽃들이 펼쳐져있는게 보였다. 나는 다시 고개를 내리고 녀석의 냄새가 나는 곳을향해 걸어갔다. 강한 바람이 불고있지만 숨길수 없는 녀석의 냄새는 나를 점점 더욱 강하게 자극해갔다.
- 죽인다.
다시 한 번 녀석의 소리없는 경고가 흘러나왔지만 개의치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분명히 진심이겠지. 물론 상대가 누구던지간에 그렇게 할 놈이다. 그렇기때문에 물러설 수 없었다. 이것은 악취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일까. 놈의 존재가 느껴지는 동굴 입구의 벽에 손을 짚고는 잠시 숨을 골랐다. 계곡엔 바람이 세차게 부는데 불구하고 입구가 열려있는 동굴 안은 그 무엇의 미동도 없이 적막함이 감도는것이 보였다.
벽에서 손을 떼고 검을 검집에서 뽑아냈다. 스르릉-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메아리치며 동굴의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건 녀석에 대한 경고이자 선전포고.
- 죽인다.
이것은 내가 녀석에게 경고하는 언어. 나도, 녀석도 물러설 이유는 없었다. 검을 뽑고 오로지 어둠에 익숙해진 두 눈동자에 의존하여, 짐승의 입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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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하
2014.02.06 01:41
광휘光輝
환하고 아름답게 눈이 부심. 혹은 그 빛. 혹은 눈부시게 훌륭함.
* * *
공간이 뒤틀리고, 세상에 금이 간다. 허공에 일어난 균열은 가뭄의 땅바닥처럼 으스러지는 소리를 내는 양 갈라지고, 마치 넘쳐 흐르기 직전만큼 물을 담아놓은 것처럼 흔들흔들, ──'일렁거렸다'. 어둠이 마치 진흙처럼 진득이 녹아내리고, 밤바다의 파도처럼 몰아치고, 거센 여름의 태풍처럼 격렬히 휘저이더니.
──일순간, 멈추었다. 그리고,
서서히, 서서히, 서서히. 살며시, 흰 비단에 물드는 쪽빛 염처럼. 검고 검고 밑바닥 없는 어둠 속 그 깊고 먼 끝에서, 무엇인가가 천천히 물들고 있었다. 퍼지고 있었다. 다가오고 있었고. 천천히.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것은 태어나기 직전의 알처럼 강하게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마치 별이 태어나는 것처럼. 화려한 빛이 되어 시야를 채웠다. 눈이 멀 것만 같은 그런 빛이었다. 그럼에도 무엇인가, 무엇인가가 굉장히 따스하고도. 맑은. 어둠 속을 기어다니던 남자가 눈을 크게 뜨고, 빛에 안기는 것과 동시에, 누군가가 내려섰다.
'초대'한 자를 기다리던 남자는 눈을 감싸쥐었다. 빛을 보지 못한 것이 벌써 몇 년 째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통째로 뒤집히는 느낌이었다. 먼저 느낀 것은 분노. 이러한 빛에 버틸 리 없다. 허니 이제 곧 자신이 스러져 사라질 것이라는 것에 대한 분노. 증오. 누구인지 보이지도 않으메, 그 자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그 모습은 흡사 인간보다는 짐승. 어쩌면 맞는 말이었던가. 그러한 것을 남자는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니, 누구'였'던 것인지. 그는 그저 생존 욕구와 자신의 감정, 그것들에만 의해 움직이는 그러한 존재였으니. 적어도 이제는.
그는 굶주린 야수인 양 손톱을 세웠다. 입가와 양 미간이 분노로 흉측하게 일그러졌으나, 이미 그것을 보고 겁에 질려 울부짖을 어린애 따윈 주변에 없었다. 그는 서서히, 서서히, 일순 폭발한 듯한 눈부신 빛이 사그라드는 것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저것이 누구이지 보게 된다면. 갈가리 찢을 마음을 먹고서.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인 양, 사납게 끓어오르는 바람으로.
그리고, 폭발하는 듯한 빛이 스러지고, 투명한 잔향. 봄날의 햇빛 같은 상쾌하고도 상냥한 빛만이 부드럽게 감쌌다. 그제사 남자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빛을 휘감은 소녀. 한 손으로, 목을 잡고 부러뜨릴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자그마한 여자아이. 해악의 파편조차 보이지 않는 그런 소녀.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남자는 아직도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는 듯, 멍하니 눈을 감은 채 호흡을 가다듬는 듯한 소녀를 향해. 내달리려 했다. 그 희고 가는, 사슴 같은 목을 갈가리 찢으려 했다. 헌데.
소녀는 눈을 떴다. 새벽녘의 그것과 같은 맑은 금빛 눈동자가 곧게 남자를 마주보았다. 위기감의 위, 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한 표정의 소녀는 물끄러미, 그만 몸에 힘이 빠져버린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고요한 숲의 산새가 지저귀는 양, 소녀는 나즈막히 중얼거렸다.
"───가여운 자로다."
단지, 소녀는 그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소녀는 그저, 이젠 멍하니, 발이 땅에 매인 양 주저앉아 그녀를 올려다보던 남자에게 손을 내밀었고. 마치, 마치. 수십 수백여 년 전 보았던 햇빛의 찬란함을 마주한 그 감각으로, 남자는 마주 손을 내밀었고. 미소를 지었다.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는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 어쩌면 그것은 안도. 어쩌면 그것은 후회. 어쩌면 그것은 체념. ..어쩌면 그것은 구원.
그리고, 손이 닿기 전. 이 세상에선 본 적 없었던 마알간 따스함에 포근히 감싸안기듯, 남자는 스르륵 무너져내렸다. 눈물자락 한 줄기가 맺힌 눈자리와,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담은 채. 서서히, 서서히. 아주 천천히. 보통의 그의 '동족'들보다도 훨씬 느리게 사그라드는 그를 보며, 소녀는 잠시, 다시 한 번 눈을 감았다.
놀라는 것은 없었다. 그녀가 그러한 일로 놀랄 성품은 아니었으니. 그저, 말했던 것 그대로였다. 눈 앞에 덤빈 남자의 동족 자체를 가여이 여긴다던가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 때 그의 감각이. 몸부림이. 감정이 전해져 그것을 안타깝다, 가엾다 느꼈고, 그것을 그대로 말했을 뿐이었다. 사라지기 싫어하는 자를 억지로 사라지게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 순간 그가 그 자신도 모르는 마음 깊은 곳에서 그리 바랐을 것이었고, 소녀의 생각은 옳았다. 평온한 얼굴로 잠들어 스러지기 시작한 남자를 보며, 소녀는 가볍게 숨을 들이쉬었다.
어디인지는 알 수 없으나, 취미가 나쁜 장소로구나. 그것은 그 장소의 어두움과 음침함 때문인지, 혹여 다른 무언가 때문인지, 소녀는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의 할 일을 생각할 뿐. 그런 소녀의 귓가에 바람이 소곤거렸다. 동굴 바람이 재빠르게 달려와 전령의 역을 고했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는 몸을 곧게 폈다. 여전히, 투명한 빛에 감싸인 채. 그 발 밑에만 새싹이 싱그럽게 고개 내민 채. 그 손이 닿는 곳에만 낡아 부서진 벽이 그 옛날 영광된 모습을 찾은 채.
고아한 몸가짐으로 나붓이 선 채, 소녀는 달빛 한 점 깃들지 않은 허공을 올려보았다.
──나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나는 여기 서 있어.
──나는, 여기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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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하
2014.02.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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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az
2014.02.07 02:14
결계인걸까. 아니면 동굴 속의 습기때문일까. 숨을 들이쉬자 끈적하면서 찬 공기가 폐 속을 가득 채웠다. 고글을 벗고 배낭에서 조명탄을 꺼내 불을 붙였다. 암석으로 된 동굴 내벽이 붉은색 조명으로 물들어갔다. 타들어가는 조명탄을 동굴 안쪽으로 던지자 붉은색 호를 그리며 바닥에 떨어져 굴러갔다.
"여긴...."
한 손으로 동굴 내벽을 더듬어 그 모양을 살펴보았다. 손이 내벽에 닿자 거친 바위의 느낌이 손가락 끝을 통해 전해져왔다. 반짝이는 조명탄의 빛과 그림자는, 오랜 세월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않은 동굴 내벽을 보여주고 있었다. 곧이어 던진 조명탄이 다 타들어가고 다시 동굴은 칠흙같은 어둠으로 가득 채워졌다. 조그전 조명탄을 던지며 본 동굴의 모양을 기억해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는 와중에도 공기중에 섞인 짙은 녀석의 자취는 없어지지않고 오히려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이것은 명백한 도발이라고 봐도 되겠지. 어쨌든간에 녀석은 침입자를 살려둘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 역시 맨손으로 나갈 생각은 없었다. 녀석과 나. 둘 중 하나만이 이 동굴 밖으로 나갈 수 있을것이다.
어두운 동굴 속, 방향감각이 상실된 채 그저 앞으로 뚫린대로 걸어가기를 수십여분. 갑자기 녀석의 자취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동시에 나타난 거대한 무언가. 그것의 등장과 함께 녀석은 사라졌다. 어쩌면 소멸. 단 하나 확실한것은 갑자기 나타난 그것은 한 번에 동굴에서 녀석의 자취를 없애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는 새로운 그것의 자취..라기보단 존재감. 만약, 그것이 적이라면... 나 또한 소멸을 각오해야한다. 적이 아니기를 비는 수밖에.
"일단, 가봐야겠어."
걸어가면서 알게된 점으로 새로운 존재는 갑자기 나타난 이후 어떠한 미동도 하지않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처럼. 새로운 존재는 이동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나를 감시하는 듯 한 느낌도 났다. 이 때부터였다. 미동없이 무언가를 기다리는 그것에 호응해주기로 한 것은.
발걸음을 빨리 움직여가며 그것의 자취가 느껴지는 곳으로 향했다. 이토록 진한 자취는 처음 겪어보는 일이기에, 그만큼 그것이 있는 장소를 찾는데 오래걸리지 않았다.
동굴의 오래된 내벽. 물도, 바람도 없이 정체되어있는 공간은 이미 그것의 자취로 가득 차서, 한 편으로는 지금 수영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고 생각될정도로 짙고 농후한것이 온 몸을 감싸고있었다. 이대로 있으면 늪에 빠져들거나, 그것이 온 몸을 감싸며 서서히 질식해갈 것 같을정도로. 그것또한 자신의 존재감을 숨기지 않고 방출하고 있었다. 아니면, 본인도 주체할 수 없는걸까.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 동굴속의 공간. 마치 방처럼 넓게 펼쳐진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돔처럼 이루어진 천장과 자연적으로 생긴 돌기둥들 사이로. 이질적인것이 보였다. 빛이 없는 공간임에 불구하고 마치 빛이 비추는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한 소녀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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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하
2014.02.08 04:15
고요함에, 평화로운 빛에 안긴 채, 소녀는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새벽녘 고아한 햇빛과 같은 황금의 눈동자가, 마치 길 잃은 여행자를 기다리던 것처럼 곧게 들어온 이를 마주보았다. 아. 소녀는 짤막하게, 속으로 숨을 들이쉬었다. 검은 머리칼, 검은 눈동자. 단정한 외모는 선인의 그것. 허나, 맞물리지 않은 톱니가 있다. 저 눈 속 깊은 곳 어딘가에. 삐걱이는 그러한 것이 있어.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윽고 그녀는 희미하게 고개를 저었다. 고민거리조차 되지 않는 문제였다. 그녀는 언제나 그러했듯, 그녀가 살아온 대로 행동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나붓이 한 발자국. 발걸음을 내밀었다. 따스한 어머니의 손길처럼, 소녀를 감싸던 빛이 순간 눈조차 뜰 수 없을 정도로, 아니,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강하게 휘몰아쳤다. 그야말로 빛의 폭풍. 그리고는, 서서히, 잔잔히 사그라든다. 아까와 같은 눈부신 빛 대신, 이제 남은 건, 소녀가 주위에 두른 희미한 잔향과 같은 빛 한 줌. 그럼에도 이 어둠 속에서, 홀로 존재하는 '특이점'. 그녀는 천천히, 완전히 몸을 돌려 객을 향해 섰다.
『그대는 무엇을 바라느냐?』
소녀는 물었다.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그 어떤 것도 더럽히지 못했던 듯, 찬연히, 오롯이 빛나는 금빛 눈동자가 한 점 흔들림 없이 청년을 향하고 있었다. 네가 바라는 것을 말하거라, 가엾은 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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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 개시』
『영역 탐색』
『이동 개시』
폭풍우가 몰아치는 곳이었다. 정정. 알 수 없는 공기와 기분 나쁜 쇳소리가 울려퍼지는 곳. 폭풍우라 생각했거늘, 그렇게 느껴질 정도의 '악의'만이 가득한 곳이었다. 어둠 속에 숨어든 누군가가 탐욕스럽게 찍찍대었다. 더 이상 사람이 사람이 아니게 된 비참한 모습으로, 과거의 동족을 물어뜯은 후 향해진 빛을 피해 숨어든 어둠 속이었다. 아아주 오랫적 아득한 옛날에는, 이러한 어둠이 아니었으나 시간이 흐르고 사람이 변하여, 결국 이 깊고 깊은 밤 속에 묻혀버린 곳이었다.
그리고, 그가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에 목말라 몸일 비틀 때, 투명하고도 투명한. 비누 거품 같은 상자 안에서, 소녀는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전언은 해 두었다. 걱정할 것은 없다. 머무르던 곳을 떠나 이 거품 속에서, 소녀는 잠시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조차도 '항상'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으므로. 허락을 받고, 준비를 하고. 시간을 돌린다. 시간을 맞춘다. 빙글빙글.
"────A chance to change my world♬"
소녀는 나즈막히 흥얼거렸다. 기회는, 분명 또 있을 수 있다. '항상' 할 수 있는 일은 아닐지언정, 언제든 마음만 먹고, 조금의 인내심을 가진다면 충분히 몇 번이고 할 수 있고 또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소녀는 이번이 같다 생각되지 않았다. 어쩐지 모를, 그런 생각이 든 것이었다. 이번이어야 한다고. 이유는 그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이번이어야만 한다고.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소녀는, 작게 손을 꼭 쥐었다. 새하얗고 보드라운 손이 작게 옴츠린 모습이었다. 그녀는 깊게, 깊게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There'll be actual real live people♬"
분명히, 그녀가 보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악의도, 호의도. 수많은 색의 사람들과 수많은 목소리의 사람들. 그녀는 그들을 볼 수 있을까. 그들을 알 수 있을까. 그녀가 꿈꾸던 그 끝에 닿을 수 있을까. 바라온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금으로서, 지금의 그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만히 일어섰다. 도망치지 않아. 이건 스스로가 고른 것. 스스로 하기로 마음먹은 것. 언젠가는 반드시 해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라면. 그렇게 믿은 것이라면. 스스로, '그렇게 하기로' '선택'한 것이라면──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
소녀는, 작은 몸집을 곧게 일으켰다. 길게 늘어뜨린 달빛 은사가 등을 덮었다. 새하얗고 또 새하얀 아이는, 내려깔았던 눈을, 곧게 떴다. 찬란히 빛나는 햇빛과 같은 금색의 눈동자. 그리고───
"───Nothing's in my way!"
푸르게 푸르게. 끝도 없이 바닥도 없이 펼쳐진 그 너머 아래로, 소녀는 뛰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