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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하 2014.01.29 09:43 조회 수 : 1




00/





     교회는 한산했다. 언제나 그러했지만. 일본이란 나라는 그리 신앙심이 깊지 않았다. 그것에 대해 시에라는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과거 종교의 수장이라는 자들이 신을 믿는 것 - 혹은 믿는다는 '맹세' 자체에 매우 집착한 반면, 시에라도, 그녀의 부친이었던 다윗도 오히려 그러한 것에는 큰 가치를 두지 않았다. 


     그것이 어디의 누구라도, 선하게 사는 바른 자라면 그 어느 지방의 하늘이건 신께서 싫어하실 리가 없다. 그 어떤 악한 자라도 분명 신께서 내리신 사명이 있는 법이거늘, 하물며 그렇지 않을 자일진대 믿는 신이 다르다 하여 어찌 그것만으로 그들을 죄인 취급을 하겠는가. 아니, 그를 떠나 그들은 '신의 대리인'일 뿐 신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것을 그들이 판단하고 시비를 가릴 권리는 없다고 부녀는 생각했다. 하물며 다른 사람들에게 멋대로 명령을 내릴 권리는 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세속의 군주라면 판단에 따라 종교가 목적을 위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은 그녀도 이해하고 있는 사실이었고, 수긍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을 받드는 가장 '높은' 자가 그 신의 이름을 자신의 사욕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은, 분명히 조금은 속상한 일이었다. 물론 그것이 그 자들을 '미워'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각설하고, 다시 한 번 말하자면 : 시에라는 교회가 조용하고 인적이 드문 것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여기었다. 오히려, 지금은 차라리 그 편이 더 편안했을까. 그녀로서는 지금, 그나마도 교회에 걸음했던 자들이 오히려 그녀를 본 후 다시 발걸음을 돌렸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기도하고 있는 그녀를, 그 옆을 감히 침범하는 것만은 아니 될 것 같다는 것이 그들이 공통적으로 떠올린 생각이리라고도. 




"... ....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s."

"You raise me up, to walk on stormy seas──"

"... I am strong, when I am on your shoulders,"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 to more than I can be....."



     나즈막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노래한 소녀는 곧 눈을 지그시 내리감았다. 금빛 투명한 눈이 곱게 가려지고, 시에라는 살짝 머리를 앞으로 숙였다. 제단 아래에서, 가만히 무릎 꿇고. 신의 앞에서 가장 낮은 자이자 모든 사람의 밑에 선 자.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새하얀 양 손을 살짝 모은 채, 그저 그렇게. 창문 너머 찬연히 깃들기 시작한 서녘 햇살 아래에서 그저 빌었다.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저 '바라는' 기도.


     가엾게 스러진 형제. 모든 짐을 져야만 했던 충성스런 두 후대. 그녀의 만백성. 세상 모든 것. 그녀에게 있어 그러한 기도는 일상이었고 호흡이었다. 언제나 바랐고 또 언제나 새기어 왔기에. ...허나, 시에라는 곱디고운 손가락 끝에 저도 모르게 살짝 힘을 주었다. 여태까지, 그녀의 삶에 있어서는 처음 있는 일. 허나, 그저 바라고 싶다, 바라는 것만이라도 하고 싶다, 그리 생각했다.



     그녀가, 누군가 『한 사람』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지금 이 순간, 다른 생각을 멈추고 바라고 있는 것을, 부디 그녀의 백성이. 그녀의 혈육이. 그녀의 신이 용서 베풀기를 바라며.



"──AGNUS DEI, QUI TOLLIS PECCATA MUNDI, DONA VOS .... ....."



     그녀는, 문득 말을 멈추었다. 하느님의 어린 양. 세상의 죄 없애시는 주여, 그에게. ... ... 자비를 베푸소서. 평화를 베푸소서.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어느 것도 맞지 않는다. 그리 느꼈다. 그녀는, 무엇을 빌어야 하나. 사알짝, 눈꺼풀 아래에서 고개 내민 금빛 눈동자에 잠시의 고민이 담긴다. 그녀는 생각했다. ... .... 어떤 것이, 그녀가 해야 마땅할 기원일까. 아. 시에라는 짧게 숨을 내뱉었다. 답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시에라가 판단하는 것이 맞다면, 그는 누군가가 멋대로 내려주는 자비도 평화도 영원한 안식도.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는 바라지 않으리라. 본디 바라던 것은 아니었으리라, 아마도.


     하여 시에라는, 다시금 눈을 가만히 감은 채 읊조렸다.



"... ... AGNUS DEI, QUI TOLLIS PECCATA MUNDI, UT MIHI, PUER TUUS ORAT, IPSUM BENEDICTE."



   하느님의 어린 양. 세상의 죄 없애시는 주여. 당신의 아이가 이리 비옵나니, ... 축복 내리소서. 



   그것이, 시에라가 지금 신께 바랄 수 있는 최선이었다.





01/





     천천히, 기도를 마친 채 몸을 일으켜 나온 시에라가 고개를 돌린 곳에 서 있던 것은 다름아닌 '그' 본인이었다. 이리 왔음에도 기척조차 눈치채지 못했다니. 시에라는 그것이 자신이 이제는 그에게 그만큼 경계의 파편조차 가지지 않았다는 의미인지, 혹은 남자의 실력이 그만치 뛰어난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혹은, 그 둘 다일지도 몰랐다. 



"보고 있었느냐."


"아아. 당신이 너무 아름다워서."


"..또, 또 무슨 말을 하는 게냐...!  전언을 건내지 않고 나왔거늘, 용케도 찾아 온 게로구나. 소환자 둘은 그대로 놔두고 온 것인 겐가."



     경솔한 행동이 아니냐 염려하는 말투였다. 언뜻 단어의 선택만 들어서는 책망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으나, 그것에 그런 의미가 없다는 것은 시에라도, 남자도, 너무나 잘 아는 일이었다. 더하여, 시에라라는 소녀가 애당초 진심으로 사람을 책망하는 일이 없다는 것 또한 남자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당신이 곧바로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역시 당신 쪽이 더 걱정 되었는 걸."


"... .... 지금 무시하는 것인가."



     무심코, 시에라는 또 약간의 볼멘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뾰로통하게 중얼거렸다. 어딘가에 가서 반항도 아무런 연락도 취하지 못할 정도로 쉬이 당해버릴 것처럼 보인단 말이었나, 시에라는 그새 또 조금 토라진 기분이었다. 그와 이야기를 할 때마다 상태가 변한다. 순간순간의 모든 말에 기뻤다, 슬펐다, 시무룩해졌다, 즐거워졌다, 외롭다, 그 모든 것들이 빙글빙글 바뀌었다. 그럼에도 그런 변화가 기쁘고 ..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바라는 것이 시에라가 생각하는 스스로의 이기심이었지만. 거기다, 남자는 근래에 들어서는 꽤나 많은 - 특히 걱정 같은 저러한 말만큼은 어쩐지 진심을 담아 말하는 것이었다. 태연하게, 진심으로. 이제는 몇 번씩 겪었음에도, 그 점이 못내 익숙치 않고 수줍었던 탓인지, 시에라는 또 한 번 얼굴을 붉혔다. 고개를 홱 돌렸지만 발갛게 달아오른 귓불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 



"시에라, 나의 시에라."



     남자는 고아하게 울리는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고개를 돌린다면, 또 언제나처럼 가벼운 미소를 입가에 걸고 있겠지. 때이른 봄햇살이 부드럽게 걸린 듯한 금빛 머리칼이 사붓이 그림자에 어른거리고. 생전, 이 세상에 존재하던 낙원의 땅, 그곳의 그 어떤 꿀보다도 더 달콤하고 아름다운 눈으로 그녀를 곧게 바라볼 것이었다. ... 이쯤 되면, 그녀 자신의 머리가 이상해진 것이 아닌지 의문스러울 정도지만, 시에라는 그녀가 미치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판단을 완료한 상태였고, 또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가볍게 숨을 들이쉬어 호흡을 가다듬고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렇지만, 당신은,"



     몸이 굳은 듯, 시에라는 멍하니 눈을 크게 뜬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녀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조금은 단단한 손가락, 조금은 더 큰 손이 뺨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금방이라도 깨어질 것 같은 유리 인형을 만지는 것처럼, 소중하고도, 조심스럽게. 



"──이렇게, 닿고 있더라도."



     이 땅으로선 드물게도 내린 눈밭을 보고 있노라면, 나뭇끝에 피어난 눈꽃을 보고 있노라면. 새하얗기 그지없는 아이는 그대로 녹아들 것 같고. 신록 푸르른 여름날이라면, 귓가를 간지럽히며 스쳐 피어난 바람꽃처럼, 하늘하늘 어느샌가 꽃바람과 함께 사라질 것 같고. 황금빛 넘실대는 눈부신 가을이라면, 그 넘실대는 황금빛 파도 속에 저도 모르게 삼켜 빠져 사라질 것 같고. 누리에 꽃 가득한 찬연한 봄날에는 그 꽃들 사이에 함께 피곤 그렇게 함께 어느새 져 버릴 것 같은.



"──이렇게, 보고 있더라도."



     달빛 한 번에 만개했다 사그라드는 벚꽃처럼 보고 있음에도 어느새 없어질 것만 같은 아이니까.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으니까."



     그리고,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그 하늘 아래. 금빛은 붉게, 은빛은 황금빛으로 물드는 것과 동시에, 소녀의 입술에 온기가 닿았다.





02/





     "... 곤란한 남자로다."


"후응. 싫은 걸까나?"


"... ... ..."



   시에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에 수긍하면 거짓이라는 건 그녀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감히 그럴 수 없었다. 허나 그대로 부정하기에는, 역시 상상만으로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이었다. 요컨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실... 이라기에도 미묘한, 그저 시에라라는 소녀가 부끄럽다는 이유로 부리는 고집일 뿐이었다. 


   사박사박. 발끝에 희미하게 닿는 눈의 감촉이 퍽 차가웠다. 인간이었다면 얼어붙을 것 같다 외칠 서늘함이었지만, 시에라라는 소녀에게 있어서는 그 또한 맑고도 은혜로운 이 대지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그녀가 영령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도, 자연은 시에라에게 자비로웠으니까. 그러나,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남자는 구태여 시에라의 손을 꽉 잡았다. 손가락과 손가락이 얽히고, 그 끝에서 온기가 닿는다. 싫다면 거절하면 되었을 일임에도, 시에라는 거부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조심스럽게 손가락 끝을 살며시 맞잡을 뿐. 



"이 지방은 눈이 드물다 하였거늘, 그 뉴스라는 것에서 아홉 해 만에 내린 것이라 소란스럽더구나."


"후후. 어쩌면 신이 당신을 위해 내려 준 것일지도."


"... 무슨 한가한 말을 하는 게냐, 너는."



   아무런 의도도, 계획도 담기지 않은 그냥 그냥,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소박한 이야기. 날씨를 - 농경이 아닌 단순한 감흥의 대상으로 - 이야기하고, 신기한 가게나 물건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그저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 사람들이 '일상'이라 부르는 것을 이야기한다. 두 명 모두에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생전에는 그다지 연이 없었던, 그런 대화들. 그것을 문득문득 자각할 때마다,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작게 아려와 시에라는 손을 움츠리는 것이었다.



"... ... 아."



   그리고, 그럴 때면 언제나 조금 더, 강하게 잡아주는 다른 손이 있어서. 어쩐지 그것에 또 익숙해져 버려서. 시에라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희미하게, 본인도 모르는 미소를 머금는다. 잠시, 조금 울 것 같은 눈빛을 지운 채 고개를 든 소녀는 다시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하고보니, 어제 오후에, 소환자가 보던 잡지라는 서적을 훑다가 '바티칸'에 대한 글을 보았느니라."


"흐응, 바티칸..인가."


"아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곳이더구나. 축복 받은 자들의 정성과 재능이 깃들어 있는. 성전에 진즉 그러한 마음을 담을 수 없었던 것이

후회될 정도였느니."


"헤에. 그건 또 대단한 평가네. 정작 그들은 당신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말하는 성전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을 굉장히 괴로워했다고?"


"... 그것을 네가 말하느냐. 그들 중 대부분이 어떠한 연유로 그 땅에 닿기를 바랐는지 모를 네가 아니지 않느냐."


"그건, 응. 부정은 하지 않겠지만. 말했듯이, 성경이 있으니까. 권력도 부도 이교의 축출도 물론 있달까, 오히려 주 목적이었겠지만, 

그래도 일종의 동경심 같은 것이 있다고 해야 할까나. 말하자면, 말이지."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소녀는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저 남자는, 저 남자는,

도대체. 그녀는 장미 꽃잎 같은 입술을 작게 오므렸다. 물론 그 모든 지보 중의 티끌보다도 못한 양이었으나, 남자는 그 몇 개 되지 않는, 

그것도 가장 귀하지 않은 보화였음에도 그녀의 신전에 되돌려 보내었다. 물론 일전에 그가 말해 준 이유는 완전히 납득이 갈 만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그 신전의 관리자로서, 신께 봉헌한 자로서 그것에 대해 전부 다 알고 있던 그녀는 약간의 아쉬움이 못내 남는 것이었다. 그 안에 있었던

어떠한 지보라면, 그가 어떠할 수 있을 것이었는데. 어떠한 술이었다면, 어떠할 수 있었을 터였는데. ... 어쩌면, 어쩌면. ... 조금 더 다른 그 땅의

'끝'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아니, 아니. 부질없는 생각이다. 시에라는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새하얀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것이 마치 눈의

요정 같았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설마 소녀의 생각을 읽은 것일까. 머리 위에서 낮게 쿡쿡 흘리는 웃음이 들려, 시에라는 또 한 번

고개를 팍 들어 시선을 올렸다.



"──어째서 그대는 또...,"


"사랑하는 시에라."


" . . . ? ! "



   시에라의 어깨가 다시 한 번 굳었다. 몇 번이고, 아니, 셀 수 없이 들었다 해도 좋을 정도로 귓가에 새긴 말이었지만, 소녀는 여전히 그 

한 마디에 볼이 달아오르고 숨이 막히는 것이었다. 아마도 남자는 - 진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 소녀의 그러한 반응이 더 즐거워 부러 더

입에 그리 담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 그 가능성이 높다고, 신이 주신 지혜가 고하고 있었다.


   떨리는 호흡을 애써 다시 가다듬고, 소녀는 다시 곧게 남자와 마주보았다. 꿀과 같은 금빛, 햇살 같은 금빛이 서로를 오롯이 담았고, 

남자는 나즈막히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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