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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ngled

로하 2014.01.26 17:13 조회 수 : 1




00/



     살짝 열린 창 틈새로, 자그마한 새 두 마리가 날아와 지저귀었다. 그리고, 인형처럼 폭 잠든 소녀가 번쩍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나는 것은

그와 동시. 6시에 맞춰 둔 알람은 권속의 장난인지 질투인지 모를 이유로 울리지 않았다. 재빨리 일어난 소녀가 잠이 덜 깬 탐스런 금빛 눈으로

멍하니 침대에 앉은 채 주위를 둘러보자 보인 것은 온갖 군데 너저분하게 널린 옷가지들. 거의 다 비슷한 모양의 하얀 옷이란 것이 문제였지만.


     소녀는 멍한 눈으로 어째서 자신이 이렇게 지저분한 상태에서 잠이 들었나, 아니, 그보다 어째서 간밤에는 예장을 준비하지 않은 것인가를

떠올리기 위해 애썼다. 곰곰히 생각했다. 어제──분명히──밤에 언제나와 같은 정찰을 한 뒤──마스터들을 들여보낸 후──그 다음에──

함께 간──밤의 달구경──산책에서──낯익은──성상화 꽃밭───약속───그리고...


     그 늦은 밤까지 무엇이 있었는지 떠올려 낸 순간, 소녀는 이불에 발이 꼬여 침대에서 굴렀다.





01/





      헐레벌떡. 소녀는 재빨리 방과 이어진 화장실로 뛰어들었다. 샴푸, 린스, 아니, 칫솔 먼저인가? 비누는 머리를 닦는 데 쓰는 용도였던가?

소녀는 정신 없이 자신이 무엇을 집어들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구르듯 샤워기를 틀었다. 목욕물을 받을 여유 따윈 없었다. 소녀는 얇은 흰색의

홑옷을 거리낌없이 벗어 던지고는 김이 피어오르는 뜨거운 물에 머리칼을 적셨다. ...어째서 자신이 이렇게 경망스럽게 움직이는 것인지는

그녀 자신도 알지 못했다. 아니, 외출을 준비할 때 목욕을 해야 한다는 것 또한 몰랐으며 여직 그리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 전에, 이러한

'사적인 외출' 자체가 처음이었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다. 소녀는 재빨리 하얗고 가는 팔을 뻗어 통을 집어들었다. 가볍게 두어 번 펌프. 그리고 손에 문질러

거품을 낸 후 - 아니, 실례. 거품을 내려고 '시도'한 뒤에야 소녀는 그것이 린스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낭패를 본 기분으로 소녀는 이미 물에

젖은 머리칼을 살짝 넘기곤 고개를 돌렸다. 샴푸 통, 샴푸 통. 똑같이 생긴 통. 윽, 소녀의 미간이 확 좁아졌다. 곤란한 듯 입매가 쳐졌고 

입술을 가볍게 오므렸다. 너무 멀어. 닿을 거리가 아니다. 소녀는 단 수 초간 생전의 일 년 간 했었던 정도의 고민을 한 후 으으, 하는 신음을

내뱉고는 휙, 손을 움직였다.


      착. 샴푸 통은 아무렇지 않게 소녀의 손에 들어왔다.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이런 사소한 일..이랄까, 손수 할 수 있는 일에는

마법을 사용하지 않기로 스스로 결심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는 법이다, 예외 사항. 이를테면 말이지. 이건 그런 경우니까. 시에라는

그녀 말년의 분쟁 때에도 사용하지 않았던 힘을 아무렇지 않게 쓰고는 다시 수증기 속에 숨어들었다. 아직은 어색한 손놀림으로 부드러운

거품을 내어 흐르는 머리카락을 잘 닦고── 린스를 조심스럽게 짜내어 머리카락에 착착, 그 후는 깨끗하게 행궈주면 되는 일. 이런,

양치질을 잊을 뻔했다. 치약을 이 정도 짜면 되는 것이었나. 윽, 알싸한 느낌에 소녀는 눈을 조금 찌푸렸다. 양치질의 권장 시간은 3분.

그리고는 제대로 입을 헹군다. 세수를 한 번 더 하고 얼굴을 수건으로 제대로 물기가 남지 않도록 닦는다. 그 다음은, 다음은... 


     아, 로션! 시에라는 생각났다는 듯 욕실의 선반을 열었다. 그녀의 동거인 중 한 명인 소환사 소녀가 이것저것 넣어 두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 보자, 로션. 로션, 로션이.. 이건 오 드 콜로뉴... 라고 씌여져 있다. 이건, 크림..? 크림이라면 음식의 종류가 아니던가.

욕탕에 잠겨 있으면서 먹으면 되는 음식인가, 이 나라는 목욕 중 크림을 먹는 것인가. 이제 슬슬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깨닫지

못하며 시에라는 열심히 뒤적였다. 이건, 클-렌-징- .. 이것이 무엇인지조차 시에라는 알지 못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빼꼼, 자그마한 의혹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 아이가 그랬었잖아. '이건 생략 가능'이라고. 그렇다면, 지금처럼 시간이 없을 때에는 '생략 가능' 해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시에라는 그 머릿속 의문에 충실하게 따랐다. 그리고, 그리고, 물기를 다 닦았으니, 가운.. 가운이.. 순간, 소녀의 표정이 밝아졌고

그녀는 그녀의 체구에 비하면 해변의 천막이나 파라솔처럼 큰 가운을 로브를 뒤집어쓰듯 빙글 돌려 묶었다. 


     벌컥, 화장실 문을 열고 그녀가 튀듯 나가자 옆에서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내지르며 구르는 권속 중 한 명의 목소리와 그를 놀리거나

비웃는 다른 목소리들이 들린다. 아몬인가, 딱하게도. 평소와 같았다면 그를 챙겨주었겠으나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여유가 없었다. 시에라는

재빨리 바닥에 널부러진 옷들을 적당히 챙겨 침대 위에 던져놓으며 '드-라-이-기'란 것을 찾아 뒤적였다. 보이지 않아! 어떻게 생겼는지

세밀한 것은 그녀의 '지식'에도 없기에 - 세상의 모든 지식이라 하여 전 가정의 드라이기 제품 종류까지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 그녀는

막연히 '알고' 있는 것만을 가지고 그것을 찾아 헤매는 중이었다.


     ───벽장 속, 없음!

     ───테이블 위, 없음!

     ───빨랫바구니 속, 없음!


     으, 어디 있는 것인가. 또 '반칙'을 사용해야 하는 것일까. 시에라가 반쯤 울상이 되기 시작하자 보다 못한 것인지 권속 중 하나인 

푸르푸르가 강한 바람 한 줄기와 함께 침대 아래의 상자에 들어 있던 드라이기를 꺼내어 가져와 내밀었다. 곧바로 표정이 풀어진 시에라가

마악 내민 받으려는 손을 막은 건 벨리알. 그는 문답무용에 가까운 태도로 시에라를 끌고 테이블 - 겸 화장대. 쓸 일은 없었지만 - 앞에

앉히고는 드라이기를 틀었다. 


     이것은 어떤 원리일까,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드라이기의 구멍을 바라보던 시에라는 스위치를 누르자 갑자기 확

나오는 건조하면서도 뜨거운 바람에 움찔 놀라 눈을 꼭 감았다. 그것을 보며 나즈막하게 쿡쿡 웃는 벨리알은 웃음과는 별개로 매끄러운

움직임으로 순백금으로 뽑아낸 듯 달빛을 베틀에 넣고 자은 듯한 은사를 조심스레 빗질하며 만지는 중이었다. 



『아씨. 옷은, 옷은──』


"....아."



     시에라는 그제서야 자신이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옷, 맞아, 그랬다. 옷.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아까 자신이 잠에서 덜 깬 채 한 곳에 쑤셔박듯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 둔 옷뭉치를 쳐다보았다. 움직이지 말라며

벨리알이 볼멘소리를 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어어어어떡하면 좋은가. 그녀에게 다른 의복이 더 있었던가. 그녀의 소환사가 자금은

부족하지 않으니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언제든 구입해도 좋다고 했었으나 그녀는 간혹 먹는 자잘한 요깃거리를 제외하고는 

그의 금전을 쓰는 일은 없었다. 


     벨리알이 그 길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건조시키는 작업을 끝내는 순간, 시에라는 반사적으로 튀어나가 옷장의 문을 열어젖혔다. 

기대를 담은 십대 여자아이와 같은 반짝이는 눈으로. 분명히, 적어도 한 벌은 무엇인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제례복

같은 - 현대 기준에서는 - 이질적이고 정중하기 그지 없는 치렁치렁하고 길고 깨끗한 순백의 의복 한 벌과. 



"......."



      '그'가 일전에 함께 나갔을 때 사 주었던 옷. '패스트 푸드'라는 것을 먹고 사 주었던 눈처럼 새하얀 옷. 그 때는, .... 순식간에

얼굴이 화끈거리며 열이 오르는 것을 깨닫고는, 그녀는 고개를 붕붕 돌렸다. 뺨을 아직 욕실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 뜨거운 손으로 

열심히 눌러보았지만 역효과 뿐이었다. 지금의 그녀는 분명, 거울을 본다면 커다란 토마토 같이 보일 것이라 그녀는 단정지었다. 

아니, 아니. 그건 미루어두고. 뭘 어떻게 하지? 그녀는 잔뜩 곤란함을 담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3, 2, 1 !



『아씨, 이건 어때!』


『아가씨. 이런 의복은...』


『이것도 사랑스러울 거에요!』


『아씨가 입으면 귀여울 것 같은데.』


『이거라면 그 놈도 홀딱이에요! ...아니, 이미 홀딱인가. 아무튼 뭐!』



     도대체 그들은 게헤나에서 무엇을 쌓아두고 있는 것인가. 온갖 옷으로 추정되는 것들을 들쳐메고 나와 한번에 떠들어대는 통에

시에라는 귀가 울려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즉시 좌중이 조용해졌고 시에라는 가볍게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몇 번 젓고는 새하얀 의복을

꺼냈다. 일단 되는 데까지 어떻게든 해 봐야... 침대 옆 서랍장 위에 올려둔 그려 두었던 스케치를 꺼내었다. 얼마 전부터 '어쩐지 모를

자그마한 예감'으로 그려 두었던 몇 가지의 옷본. 그리고 시에라는 재빨리 바늘코에 실을 꿰었다. 어어이, 아가씨. 설마 지금 자수 놓으려고?

그건 무리라고! 귓가에서 또 한 번에 여럿이 마구 떠들어대며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 아니, 괜찮다. 베짜기도 바느질도 왕위를 받기 전까진

착실하게 해 온 것이었다. 그리고는 황제의 것인 양 화려한 자수를 눈부신 속도로 놓고 또 실을 풀고 밑단을 고치기 시작하는 그녀를 보며

발을 동동 구르던 그녀의 권속들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물론 그들의 아가씨의 실력과 속도라면 더 아름다우면 아름답지 절대로 어색하지

않을 옷을 완성할 것이었다 : 하지만 그건 현대의 복식이 아니었다. 아무리 잘 어울리고 그림처럼 아름다워도 그것 하나는 부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안 될 일이지. 이번 기회를 놓치면 또 언제 아가씨의 현대 복장을 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것이었다. 그나마 아가씨를

움직일 수 있는 몇 명 중 하나인 남자는 분명히 뭘 입든 아름답다고 입에 발린 - 아니,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사실이지만! - 찬사를 늘어놓을

테니까. 효과가 없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들 중 한 명이 재빨리 소곤거렸다. 아가씨, 정말 예쁘지만. 악마들의 풍습에서는 여자가 남자를 만날 때

손수 자수를 놓은 옷을 입는 건 결혼 전 날 밖에 없다고. 결혼 전 날 결혼 상대를 만날 때! 이 말에 소녀의 손이 멈추었다. 그녀는 새하얗게

된 얼굴로 그녀에게만 보일 그들을 빙빙 둘러보았다. 진짜냐는 듯한 시선이었고, 그들은 짐짓 진지한 표정을 꾸민 채 고개를 열렬히 끄덕였다.  

양심에 찔리지는 않았다. 그들은 악마인 것이다. 그것도 고위의 악마. 자잘한 악마는 사람을 고의적으로 해치는 것조차 할 수 없다지만

그들은 그러한 것에는 제한받지 않았다. 아니, 그 전에 이건 보는 인간들의 눈을 호강시켜주는 것일지언정 해치는 것이 아니니까. 거짓말?

그들은 악마다,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거짓말 따위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하..하지만 나는 악마..는 아니지만..."



      아니, 그래도 안 돼! 종속 중 하나인 아몬이 조금 강하게 뜯어 말리듯 외쳤고, 움찔한 여자 아이는 곧 엉겁결에 재봉 도구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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