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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

2014.01.23 06:42 조회 수 : 7



  많은 밤바람이 창문가를 스치며 웅웅거렸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밤새소리가 바람에 섞여 구슬피 울린다. 복도를 걷던 왕은 고개를 돌렸다. 휘장을 치지 않은 창문 너머로 왕은 바깥의 광경을 손에 잡힐듯 볼 수 있었다. 땅을 모두 덮을 정도로 거대한 검은 천 안에서 별들이 무리지어 반짝거리고 있었다. 달 없는 밤이었지만 오히려 그 덕에 별은 더욱 밝게 제 몸을 빛냈다. 그러나 왕은 그것에 경탄하는 일 없이 다시 시선을 돌리고 복도를 걸었다. 마음이 다른 감정으로 가득차 다른 것이 들어갈 여지가 없었다. 오고자 했던 방 앞에 다다른 왕은 문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다시 손을 쥐었다. 굳게 다물렸던 왕의 입술 사이로 한줄기 신음이 새어나왔다.


  "……윽."


  누군가가 왕을 본다면 자신들의 눈을 의심할 것이다. 언제나 유려했으며 항상 미소를 잃지 않던 왕의 모습은 그곳에 없었다. 곧 쓰러질 듯 위태위태한 풀잎이 이러할까. 왕은 한 손을 문에 대고 고개를 숙였다. 흘러내린 머리 사이로 보이는 피부가 금방이라도 스러질듯 창백했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른 다음 왕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문 앞에는 왕 말고 누구도 없었다. 다름 아닌 왕 자신이 물린 까닭이다. 방의 주인은 표면적으로는 왕이 내친 왕자였으며 기사들에게는 왕이 멀리한 아이를 보호할 의무가 없었다. ……그랬다. 그의 명령이었다. 바로 그 사실에 왕의 마음속을 채운 감정은 터질듯 요동쳤다. 왕은 세게 손을 그러쥐었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방 안은 고요했다. 복도에서 비쳐 들어온 빛을 제외하면 방을 밝히는 건 오로지 창문 너머의 별들뿐이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고, 어둡다. 만약 정말로 시간이 멈춰버린다면 어떨까 왕은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방 가운데에 있는 아이를 바라본 왕은 모든 생각이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왕은 소리가 나지 않도록 천천히 문을 닫았다. 등지고 있던 빛이 사라지고, 그림자가 방의 어둠 속에 먹혀들었다. 짧게 숨을 삼킨 왕은 아이의 잠을 깨울새라 조용히 발을 내디뎠다.

  왕이 아이의 곁에 당도할 무렵에는 눈이 어둠에 익숙해져 있었다. 왕은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눈꺼풀은 닫혀 있고, 여린 가슴이 호흡에 따라 부드러이 오르내린다. 왕은 시선을 살짝 내렸다. ……지금은, 이불에 감추어져 드러나지 않는, 아이의 등. 아이를, 왕을 이 상황에 내몬 장애.

  왕은 아이의 옆에 무릎 꿇었다. 가슴 위에 포개졌던 아이의 손을 그의 손이 쥐었다. 세게 쥐면 부러질새라, 놓으면 떨어질새라, 왕은 더없이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아이의 손을 감쌌다. 그리고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아이의 손은 따뜻했다. 아직 검에 무디어지지 않은 보드라운 손이었다. 왕은 나지막히 말했다.


  "……피핀."


  아이가 깨어나는 기색은 없었다. 왕은 말을 이었다.


  "이 아비를, 용서하지 말거라. 아니, 원망하거라."


  왕은 참고 있던 감정이 북받치는 것을 느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혹시 아이의 잠을 깨우지 않도록, 왕은 애써 그것을 누르며 읊조렸다.


  "다른 사람들이 아비를 칭송한다면 너는 아비에게 돌을 던지려무나."


  격정을 담아서. 하지만 자장가를 부르듯 조용하게.


  "나라의 모든 사람을 지킨다 천명했거늘, 정작 아들을 지키지 못하는 이 아비를, 비웃거라. 경멸하거라. 매도하거라."


  그리고……. 왕은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채 누르지 못한 감정이 부풀어 형체를 가진다. 방울방울, 왕은 자신의 눈가에서 부풀어 오른 방울들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왕은 그것을 닦지 않았다. 그러나 목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아이를 깨우는 일만은 없어야만 했다.

  지켜보는 이 없는 침묵 속에서 왕은 섦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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