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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엉 누가 빨리 후일담 써 주세요

로하 2014.01.02 21:33 조회 수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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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레릭 리스트는 가만히 읊었다. 성스러운 날의 밤, 교회는 고요했다. 근방에선 분명 이 순간에도 연인들의 달콤한 밀어가 들리고,

양친의 손을 꼭 쥔 아이의 웃음소리가 퍼질 터임에도, 신의 집에 발걸음을 옮기는 이는 없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차라리 그 편이 잘 된 일이었다. 분명 오늘 밤의 교회에는 아주 귀한 방문객들이 곧 올 터이니. 그가 『보호』하고 있는 서번트는

교회 근처의 숲 속 어딘가에서 물을 즐기고 있을 터였다. 적어도 단번에, 다짜고짜 서로 한 마디 말도 없이 주변을 초토화시킬 일은

발생하지 않을 테니까.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문득, 레릭 리스트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 읊는 이 기도문을, 과연 자신이 입에 담을 자격이 있는 것인가. 그는 손을 

꽉 움켜쥐었다. 결과적인 가치관 그 자체와 실행된 행동으로 보아, 선악은 명백했다. 다섯 살 아이도 알 만할 일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은, 어째서 이 길을 선택했는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그 숲에서,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손을 내밀었던 것은 무의식의 행동이었다. 어떠한 계산도 생각도 없이, 손이, 마음이 먼저

움직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순간, 스스로를 영원히 용서할 수 없으리란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또한, 그것이 신의 어떠한

말씀보다도 그가 그 순간 갈구하는 것이라 이해했다.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과연, 신이 있다면 분명 그는 지옥에 떨어지겠지. 아니, 지옥에 떨어져야 합당한 인간이라고 머리는 판단하고 있었다. 허나 그 또한

피하지 않겠다 그는 생각했다. 감히 천국을 꿈꿀 수도 없는 죄인이 된 이상, 영원히 함께 불 속에서 타오르는 것 또한 나쁘지 않으리.


"──저희 죄를 용서하시옵고."


   그는 그가 내린 답에 맞설 이들을 알고 있었다. 모두가 주님의 선한 백성이었고 또 그의 형제자매였으니. 노인도, 소녀도, 청년도,

소년도, 여성도, 어린 아이마저도. 신을 배신한 자를 벌하기 위해, 그 빛나는 모습을 친히 내보일 것이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허나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독주라면 함께 나누어 신의 법을 받들고, 꿀과 같은 승리라면 그 위에서 내다보기를. 그 발로 만민 위에 서 

지배하기를. 그녀라면 필경 이 몸을 종으로 엎드릴 수 있게 해 주리라. 삐그덕대는 마룻바닥에 먼지가 가라앉았다. 레릭 리스트

신부는 가만히 일어섰다. 


"──악에서 구하소서."


   화려하게 울리는 종소리가 방문객의 내방을 알렸다. 천천히, 남자는 눈을 내리깔았다. 

귓가에 언젠가 들어본 듯한 목소리가 속삭였다. ──하나님의 오른팔이 네게 말하노니, 그러한 것惡은 존재하지 않으리로다.





01/





   "──그래도 저는, 당신의 옆에서 함께 걷고 싶어요."



간절한 바램이었다. 처음으로,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으로 가진. 그리고 자신이 '바라고 있다'고 깨닫고 있는. 

..어쩌면, 탄식과 비탄과 피로 얼룩져 있던 그 삶을 끝낸 후에야 다시금 내려선 땅에서 가지게 된 , 그녀라는

존재에게 있어 가장 순수한 소망.


Иван Грозный 

──호의 따위 모르며 자란.

──광기에 젖었던.

──외롭게 사그라든.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모르면서도 어쩐지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 이유는 모르지만.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그는 말했다. 네가 필요하다. 네가 있어주면 좋겠다.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받아본 적 없는 마음이었다.

유리 인형처럼 차가운 뺨이 살짝 젖어드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한 채, 그녀는 바랐다.

지금의 이 순간을, 이 행복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



*         *         *



   "──그렇다면, 아기새의 날개를 찢어발기듯 철저하게 유린해 주겠어!"


톤 높은 목소리가 히스테리컬하게 외치는 것과 동시에, 노인은 신부를 꽉 잡은 채 뒤로 가볍게 착지했다. 입가는 여전히

웃음을 띄고 있었지만, 감히 웃음을 띌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노인 본인이 더 잘 아는 사실이었다. 


세이버의 주위로 넘실거리는 검은 마력. 마술에 대한 지식은 전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노인이었으나,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것은 사람을 삼키는 마魔라고. 


저 어두운 안개에 삼켜진다면 서번트라도 그대로 녹아 먹혀들 것이거늘, 한낱 인간이 어찌 버틸 수 있을까. 그것을 깨달은

순간 노인은 몸을 날려 레릭과 함께 거리를 벌렸고, 네르피스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재빨리 좌중을 훑었다. 


교복을 입은 소년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세이버를 쏘아보는 채였고, 어린 아이의 모습을 한 망령은 그런 주인을 

지키기 위해 날카롭게 손톱을 세워 으르렁대는 것처럼 보였다. 도대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남자는 여전히 뜻모를

미소를 지은 채, 서번트가 없는 상황임에도 그저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머금었을 뿐이었다. 그런 그는 마치 기다리는

것처럼 보여서── 무엇을──? 그것이야 물론───



그리고, 햇살 아래 나타난 소녀는 가만히 발걸음을 옮겼다.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것처럼 코앞에서 흘러넘치는 것은

마치 보이지도 않는다는 것처럼. 빛무리 같은 머리칼이 사락이는 소리만이 침묵 사이에서 울려퍼졌다. 


와락. 마치 깨지기 쉬운 조각을 다루는 양 소녀는 끌어안았다. 뒤에 서 있던 네르피스가 무엇인가를 외치려고 했지만, 

노인은 가만히 한 쪽 손으로 제지했다. 조곤조곤, 금발의 여자 아이가 읊는 것은 인사였고, 사과였고. 노인은

이해하고 있었다. 


아마 이 신부가 세이버에게 한 말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그 뿌리는 비슷했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고 싫어하게 되는 것은, 자질구레한 이유도 논리도 이성도 그 어떠한 것도 바꿀 수 없다고.



──아아, 이래서 안 된다는 게야.



노인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는 현자도 뭣도 아니었지만, 그저 연륜이란 것으로 눈 앞의 광경을 이해하고 있었다.

한 명은 결국 이성보다 자신의 마음을 따랐고,

한 명은 결국 순간의 마음보다는 자기 자신의 긍지를 따른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얼마나 슬픈 것인지를.

하나의 마음을 완전히 지워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애달픈 일인지를.

그리고 소녀에게 그것이 익숙한 일이라는 것이 얼마나 가여운 일인지를.



"──악에 맞서는 것이야말로 기사의 도리! 성인Saint George의 십자가 아래 맹세하노니, 나의 검에 기사의 긍지를,

나의 방패에 전우Master의 영광을 걸고, 주사위는 여기서 멈춘다!"



새하얀 다리에는 창은의 갑주가. 가녀린 어깨에는 순백의 망토가. 검을 쥔 소녀는 기사가 되고.



"──악을 생각하는 자에게 악을, 선을 생각하는 자에게 선을 ! 하여 세이버, 검을 들어라 !"



날을 세운 어린 아이는, 광기에 물들어 울부짖기 시작하고.



"──다시 한 번, 화려하게 어울릴 기회를 다오, 북쪽 땅의 황제여──!!!"



대기가 삐걱이고 공간이 일렁였다.  

마르그리트 플랜테저넷이 부드럽게 속삭였다.



"드디어──이 어리석지만 가치 있는 무대의 종막극이 열렸으니."



그리고, 작은 속삭임과 고조된 무대의 개막은 동시에.




『자아, 최후의 공포극을 시작하자』






02/





   마르그리트-빅토리아-로벨-플랜테저넷이란 이름의 소녀는 우아하게 검을 휘두르며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녀 본인은 검은 양친 몰래, 교육계의 귀족 부인과 시동들 모르게 잡아보았을 뿐인 그녀 자신 : 소녀 마르그리트로

있기를 바랐으나, 반평생을 전장에 바친 덕인지 몸만은 그러한 그녀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알고 있다는 듯 자유스레

춤을 추었다. 마리는 살짝 아랫입술을 악물었다. 


이 순간에도, 이 교회의 뒤에서 트랩형의 암살 보구를 설치해 두었더라면 효율적이었을 텐데. 

이 순간에도, 이 교회 째로 날려버릴 수 있는 대성 보구 이상을 발포해 버렸다면 문제는 없었을텐데.

이 순간에도, 저 신부가 너저분한 사랑고백을 하기 전에 목을 날려버렸다면 차라리 편했을 터인데.


── 나흘 전의 밤에, 그녀가 끝까지 좇아 그 숨통을 끊어버렸다면 지금 이런 수고 따위 없었을 터인데.


이러한 생각들이. '흑태자' 에드워드 왕세자로서의 생각들이 쏟아져 나오는 스스로가 미웠다. 미우면서도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것은 적. 배척해야 할 적. 기사의 도리로 처단해야 할 악.



어째서 망설이는 거야──? 그렇다면, 베는 것이 당연하잖아. 죽여도 좋아. 친구라 해도, 죄가 되지 않아.



칠백여 년 전 그 날, 너는 네 사촌에게 칼을 겨눠 잡아들였지. 칠백여 년 전 그 날, 네 먼 혈족은 네 오라비를 죽여버렸지.

바라는 것에 위협이 된다면, 배제하는 것이야말로 너희들의 본능. 생존을 향한 발버둥. 


누군가가 귓가에 속삭였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달콤하고도 간드러지는 목소리였다. 어디서 들었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알고는 있는데 모르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아직도 흔들린다면, 고개를 들어 보렴. 저 멀리를 봐.



반사적으로, 마르그리트는 고개를 들었다. 넘실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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