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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하 2013.12.29 01:56 조회 수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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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생각하는 자에게는 악을, 선을 생각하는 자에게는 선을! 자아, 검을 들어라!"



01/ SHEET



소환명 : 에드워드 왕세자Edward, "the Black Prince"

클래스 : 궁병Archer

마스터 : 칼 로렌츠 크래프트Karl Lorentz Kraft ( Karl Lawrence Kraft )

성   별 : 女

사이즈 : 160.3 cm 49 kg

소   원 : ⑴ 소환자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

            ⑵ 다시 한 번 삶을 얻어 타인을 해치지 않고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혈   통 : 영령/ 사실체계

속   성 : 질서 선Lawful Good

능력치 : 근력 C / 내구 C / 민첩 A / 마력 E / 행운 B / 보구 A

스   킬 : 대마력 C / 단독 행동 D / 재정비 A

보   구 : 

⑴ 금작화의 활Planta Genista

: A 랭크 대군보구 / 판정패 15장 / 최대 목표 수 2인 / 소모 마력 45점

: 백년 전쟁 초기 승세를 휘어잡았던 영국군의 가장 유명한 부대였던 장궁병을 이미지화한 보구

: 형태는 우아하게 다듬어진 황금의 활. 아쳐가 들기 버거울 정도로 길다.

: 발동 시 형태는 쏟아지는 비.


⑵ 흑의 가호Chevalier Noir

: A 랭크 상시 발동형 방어보구 / 판정패 5장 / 소모 마력 없음

: '아쳐' 본인은 생전에 들은 적 없으며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녀의 별명으로 가장 유명해진 '흑태자'란 것에서 파생된 갑주.

: 전쟁 시 프랑스군에게는 악명 높았던 그녀의 전승과 그에 대한 민중의 기대 혹은 공포의 개념은 실체화되어 그녀를 감싼다.

: 본인이 원하지 않을 뿐더러, 진명이 발각될 위험이 있으므로 그 능력을 억제하고 평소에는 보이지 않게 해 둔 상태.





02/ HISTORY



   1337년에 시작되어 긴 시간동안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이어졌던 통칭 '백년 전쟁' 초기의 인물. 영국군이 우위를 점하던 초기

가장 인지도 높은 인물이며, 동시기 가장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에드워드 3세와 에노의 필리파 사이의 장남. 

플랜테저넷 왕가의 부친과 발루아 왕가의 피를 모계 쪽으로, 에노의 공작의 피를 부계 쪽으로 이은 모친 사이의 아들로 의심할 여지 없는 

완벽한 왕위 계승자. 1330년 출생하였으며, 14세 이후 작은 싸움에 참여하다, 16세 때인 1347년 크레시 전투의 최전선에 나서는 것으로 

본격적으로 전쟁에 참여한다. 그 이후로도 칼레 등지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며, 아키텐 지방에서 진군하여 남프랑스의 대다수를 확보한다. 

그 도중 26세 때 중남부의 푸아티에Poitiers에서는 '선량왕' 쟝 2세와 그 아들 도팽(왕세자)와 고위 귀족들을 생포하여 영국으로 

개선한 전공 또한 보유하고 있다.


   그 이후, 아키텐 공작에 임명되어 주로 남부 아키텐 지방 : 보르도 지역의 성에 거주하며 왕과 같은 생활을 누리다, 카스티야 왕국

페드로 1세 ( '잔학왕'이라 알려져 있으나 실은 '정의왕' 이라 불렸다고. ) 의 요청을 받아 카스티야 왕좌를 놓고 형제 엔리케에게 맞서는

페드로를 지원한다. 도중 나바레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프랑스 - 엔리케 연합 측의 사령관이었던 게클랭을 생포하는 등 성과를 거두지만,

전쟁 비용의 문제와 페드로와의 이견으로 전승의 기록만을 남긴 채 아키텐으로 귀환한다. 허나 기본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즐기던

것 이상으로, 카스티야 내전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아키텐에서 거두어들인 세금으로 영토 내에서는 반발심이 거셌으며, 이는 프랑스 왕의

에드워드 소환 명령으로 이어졌지만 그는 군사를 이끌고 곧 출두하겠다는 답변을 보냈을 뿐이었다. 또한, 프랑스 군에게 맞서지 않고

즉각 항복했다는 이유로 리모주 성에서 학살을 명하는 등 말년의 행보는 프랑스 민중의 영국에 대한 분노에 큰 영향을 주었다.

1376년 6월 7일. 탄생일을 정확히 일주일 남긴 채 병으로 사망한다. 정확한 병명은 아직까지 불명으로, 유력하게 대두되는 것은 

이질과 흑사병이다.


   전체적으로 통치자 : 즉, 정치력이 요구되는 '군주'로서는 부족한 점이 있었으나, 전쟁 지휘관이나 전시의 지도자로서의

유능함에는 이견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덧붙여, 포로로 잡은 장 2세가 탄복하고 결국 런던으로 귀환하여 죽게 만들 정도로 

기사도에 철저하여 당시 기사의 모범이라 불린다. 또한, 에드워드 3세와 흑태자 본인이 살았던 시기 (백년 전쟁 초기)는 사실상 기사들이 활약한

마지막 시대라는 평가. 그들의 시기에 백년 전쟁. 아비뇽 유수. 흑사병 등이 전부 다 발발했으며, 그들 사후 수십 년 후 교황이 하나로 선출되고,

전쟁이 끝나고, 흑사병 이후 인구가 안정화되며 중세는 끝나고, 이를 근세의 시작이라 구분한다. 왕세자 본인은 기사들의 마지막 시대, 

중세의 끝을 살았으며 그 둘째 동생인 곤트의 존의 4대손이 절대 왕정기인 튜더 왕조를 열게 되는 등, 여러모로 시대의 격변기에 살았던 인물.


   현재까지도 영국 내에서 가장 이름 드높고 고귀한 자리인 가터 기사단의 최초 기사로 알려져 있으며, 이미 혼인을 두 번이나 했던 유부녀

(덧붙여 사촌)와 연애 결혼을 하는 등의 행적이 남아 있다. 아버지인 에드워드 3세는 유능한 군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아서왕

팬이기도 했다는 듯 하며, 에드워드 왕세자 본인 또한 어느 정도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추정된다. 그 외 남긴 것으로는

현재까지도 영국 왕관의 중앙을 장식하는 거대한 보석 ── 통칭 '흑태자의 루비'가 있다.




03/ SETTINGS



* 주의 : 이하의 내용은 실제 역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위의 시트 파트에서 '진명'이 아닌 '소환명' 이라고 나와 있듯, 그녀의 본명은 '에드워드 플랜테저넷'이 아니다. 본명은

'프레데린' 마르그리트 빅토리아 ( "Frederine" Marguerite Victoria ) . 마르그리트 빅투와르, 혹은 마거릿 빅토리아 또한

통용되는 발음이다. 출생연도는 1337 년. 백년 전쟁이 개전한 연도로, 부친이었던 에드워드 3세는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는

의미로 그녀에게 빅토리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하여 조금 격식이 생략되는 자리에서 불렸던 이름은 마리 빅토리아.

금발 장신의 미남이었다던 증조부 에드워드 1세나 마찬가지로 미인이었다던 조모 프랑스의 이사벨라 - 특히 증조부 쪽을

격세 유전으로 닮은 듯 찬란한 금발과 산호색 눈동자를 가진 눈부시게 아름다운 소녀. 16세까지만 해도 유럽 가톨릭 세계

제일의 미인이라 불렸지만 그녀의 '사망' 후 그 칭호는 훗날 그녀의 '부인'이 되는 켄트 백작부인 조안에게 넘어가게 된다.

'프레데린'은 남편을 내조하며 전장에 나서는 군을 격려하는 등, 활발하면서도 이상적인 행보를 보였던 그녀의 모친 필리파가

붙인 이름으로, 웨일즈 고어로 '평화의 군주'란 의미. 부친이 붙인 이름은 승리를 기원했지만, 모친이 붙인 이름은 평화를

바라는 뜻을 담았고. 마르그리트는 성녀의 이름인 동시에 흰 여름꽃의 이름을 딴 세례명. 


   형제자매로는 배다른 누이인 쿠시의 이사벨라, 그리고 친형제인 장자 에드워드, 그리고 그녀 아래에 라이오넬, 존, 에드먼드,

토마스가 있었다. 부왕과 정부 사이에도 자녀 셋이 있었지만, 가장 큰 아이가 마르그리트 사망 2년 전에 탄생했으므로

사실상 가족으로서의 연은 없다. 굉장히 사이가 좋은 형제들이었고 사랑받는 아이였지만, 특히 존경하며 따르던 것은

장자인 에드워드. '진짜' 흑태자, 우드스톡의 에드워드 플랜테저넷 왕자. 그녀와는 7세 차이로, 1330년 생. 그가 역사상

기록이 남은 에드워드 왕세자다. 


   아름다운 용모도 누구보다도 고결한 혈통도 풍요로운 재산도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린 마리가 바랐던 것은 

자유롭게 사는 삶. 십대 중반이 되면 시집을 가 아이를 낳고 단지 그것만으로 끝나는 삶은 정말로 싫었다. 바다 너머

펼쳐진 땅의 이야기, 저 멀리 비단옷을 입고 붉은 기둥의 집에 산다는 전설 속의 사람들. 향료와 신비한 새들과

살며 이상한 글자를 쓴다는 동방의 땅. 태양이 모든 것을 불태워버릴 듯 타오른다는 역사 속 카르타고의 땅. 검을

들어보고 싶었고, 형제와 함께 등을 맞대고 싸워보고 싶었고, 백성을 이끌고 싶었고, 무엇이든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공주 신분으로 태어난 소녀에게 전술이나 검술, 정치 따위를 배울 기회는 주어질 리 없었고, 그런 마르그리트는

몰래 대련장에 숨어들어가거나 간밤에 몰래 도서관에서 가져온 책을 이불을 뒤집어쓰고 읽는 등 비밀스럽게 어떻게든

노력했다. 어느 날, 형인 에드워드에게 들켜버렸지만, 그는 당돌한 여동생의 말에 결국 그녀에게 몰래 지식도 검술도

그리고 모든 것들을 가르쳐주었다. 마리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은인이며, 모든 것.


  그러나, 크레시 등 프랑스와의 전투에서 연승하던 중, 에드워드 3세는 아들 에드워드에게 프랑스를 맡기고, 그 본인은

스코틀랜드를 맡아 방향을 나눈다. 전사 왕Warrior King은 승리했지만, 스코틀랜드 내의 과격파는 음모를 꾸며 스물 세 

살이던 아들 에드워드를 참혹하게 암살하는 것에 성공한다. 그의 참살은 절대 기밀로 부쳐져 시신은 가장 충성스러운

기사들의 손에 의해 윈저로 옮겨졌으며, 왕과 측근들은 애통해하는 동시에 방침을 고민한다. 잠긴 문을 열고──

"그대가 감히 제일 왕녀Margueirte Plantagenet의 명에 거역하는가, 문을 열라!" 이는 마리가 거의 처음으로 내뱉은

일방적이고도 고압적인 태도의 명령이었다── 뛰어들어온 마르그리트는 피가 그대로 묻은 채의 옷, 눈만 감겨진 채의

존경하는 형제를 보고는 멍하니 정신을 놓은 사람처럼 사라지고, 하루 후 되돌아온다. 마치 소년처럼 머리를 내려 묶고,

귀족 영식의 복장을 한 채, 소년 기사의 예법으로.


"에드워드가 부왕을 뵙습니다." 


  이게 무슨 짓이냐고 외치는 왕에게, 마르그리트는 차분히 말했다. 흑사병이 돈 지 채 10년도 되지 않았을 때, 공주가 병으로

죽었다고 하는 것은 무리가 없으리라고. 물론 신민은 슬퍼할 터이나, 중요한 것은 에드워드. 잉글랜드의 미래를 이끌 왕자이며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전승의 사령관. 여기서 에드워드가 죽었다고 한다면 군의 사기는 참혹하게 꺾이고, 스코틀랜드와 프랑스가

기뻐할 뿐인 일. 변한 외모에 대해서는 적당히 덧붙이면 된다. 에드워드 또한 병에 걸렸었으나, 잉글랜드의 군을 이끌 사명을

버리지 않고 병과 싸워 기적적으로 일어났다고. 외모가 이렇게 변해버릴 정도로 힘겨웠지만, 떨쳐내고 일어나고야 말았다고.

또한 소문을 퍼뜨려 마녀가 질투하고 저주를 걸어─지독히도 그러한 소문에 민감한 시기였고 또 사람들은 쉽게 믿었다─ 병을

준 탓에 저 정도로 조금 바뀌어 버리고 말았다고. 애당초 대부분의 민초와 군사들은 왕자는 커녕 고위 귀족의 얼굴도 제대로 보기

힘든 시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최측근이 아닌 일반 귀족의 문제도 있었지만, 당시 에드워드 3세가 연승과 수 년 전 섭정 모후 

이사벨라를 축출했던 이후 강력한 왕권을 유지하던 덕에 입막음을 하는 것이 가능했다. 문제는 그 승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암묵적 조건이 붙은 것이었지만.


  우려를 불식시키듯, 일 년 후 ( 故 왕세자가 24세. 마리가 17세 ) 푸와티에에서 마르그리트는 대승을 거두고, 그 기세를 이었다.

그렇지만, 애당초 몸이 튼튼한 체질은 아니었으며 '에드워드'가 되기 전까지는 아무리 무예를 닦았다 한들 기껏해야 왕실 사냥터나 근처의

궁성이나 가 본 것이 이동의 전부였던 마르그리트는 서서히 병이 들기 시작한다. 처음 몇 년간은 브레티니 조약으로 인해 

공식적 싸움이 없었으므로 어떻게든 숨겨올 수 있었지만 1367년, 유년기에 약혼자가 될 뻔했던 카스티야의 페드로가

구원 요청을 할 때, 이미 그녀는 병색을 숨기지 못할 정도의 상태였음에도 무리하게 군을 이끌고 출병. 기대 그대로 적을 격파하지만,

그것은 결국 건강에 치명적이었고, 그녀는 곧 29세의 나이로 ( 1367년 ) 에 병으로 요절한다. 하지만 역사상의 에드워드 왕세자는

1377년 사망. 이는 물론 대역 사용으로 이어졌고, 그 뒤를 이은 동생 라이오넬의 엔트워프는 리모주 학살, 프랑스 왕의 출두 명령에 대한

'군을 이끌고 출두하겠다'는 답변 등을 돌려주며 그의 이름 아래 살다 1377년에 죽는다.


   말 그대로 16세 이후로는 '마르그리트'로서의 삶은 전혀 누리지 못한 소녀였지만, 그 점에 대해 원망은 없다. 애당초 본인이 선택한

운명이었을 뿐더러, 얌전히 시집가 후계나 낳고 사는 삶 '대신' 선택한 것이었기에 희생해야 하는 점이 당연히 있을 것이라 각오한

일이었으니까. 오히려, 적어도 아군에 대해 자신이 무엇인가를 해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기뻐하며 노력한 아가씨. 잠시나마

실제 역사대로,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한 적도 있었다. 초기 잉글랜드 군의 주요 전술 중 하나였던 약탈에 대해서는, '마르그리트'

본인의 성품으로서는 정말 싫었지만 '에드워드' 며 동시에 영국군의 지도자였던 입장에서는 그것이 필요하며 또 효율적이라고 

이해하고 있었기에 명령할 수 밖에 없었다. 대련은 정말 좋아하지만, 전쟁은 아무리 해도 좋아지지 않았다. 능력과는 별도로,

죽어가는 군사들을 보며 몰래 손을 꽉 쥐는 것 밖에 하지 못했지만. ( 단 한 번이지만 등장했던 '손바닥에 있던 작은 흉터'는 이 탓에 등장 )

본인 曰, 다시 생각해 보면 정말 어리석은 결정도 많았고 더 잘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했었기에

후회는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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