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빛이 넘실거리는 미온강의 물결.
그 위에 사람의 손으로 세워진 거대한 철골은 자연을 거스르는 행위지만 그래도 덕분에 꽤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게 해준다. 거기에....
“♪~, ♪~.”
그녀가 저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을 곁들이면 더 할 나위없는 명작으로 남을 수 있겠지.
아아, 담아두도록 하자. 이 광경을.
그렇게 생각하고서 조용히 인식장해가 달린 수정구를 흘려보내며
앞서서 춤추듯이 사뿐사뿐 걷고 있는 마르그릿트의 즐거워 보이는 모습을 지켜보며 따라 걷는다.
───이전 잠에서 깨었을 때, 자신의 고백을 받은 마르그릿트는 매우 부끄러운 듯이 잠시 얼굴을 붉히고서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이내 약간 고심하는 표정으로 이쪽의 고백을 받아들여 주었다.
그것을 받아들여주는 표정은 완전히 납득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에 무언가 의미가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것처럼 그 흔들림 없는 늠름한 시선을 마주하고서 자신이 너무 성급하게 고백을 꺼낸 것이
아닌지 잠시 고민이 되었다. 일방통행적인 사랑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사랑인가?
그리고는 마술과 명예, 오로기 기지감을 타파하고 미지를 추구하였던 자신이 이렇게 이상하게 바뀌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속으로 쓴 웃음을 흘린다.
여전히 자신의 뇌리를 관통하는 기지는 잔재하지만, 그래도 그녀에게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한 덕분인지, 아니면 그녀가 표면적이나마
자신을 받아들인 것으로 약간의 불쾌감은 해소되는 것 같다.
“♪~, ♪~.”
────아니면, 자신.......아니, ‘칼 로렌츠 크래프트’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의미일지도 모르지.
...생각에 잠기었다가, 마리의 콧노래 소리에 이내 정신을 차리고 어느새 약간 거리가 벌려진 것을 확인 후 발걸음을 옮긴다.
.......뭐어, 그런 의미에서 고백한 것에 딱히 후회 같은 감정은 생기지 않는다.
자신으로서 후회라는 것은 이 짧은 삶에서 그리 깊게 생각해 본적이 없으니까.
아무튼 오늘은 고백한 김에 마르그릿트가 좋아할 만한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며 도시 순회를 주로 하였다. 자신으로선 크게 흥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와 함께 거리를 걷는 동안은 기지감이 잠시 동안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이 유익한 시간이었고, 무엇보다 그녀가
좋아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꽤 여럿 획득할 수 있었으니. 후후......
그렇게 작게 웃음을 흘리며 따라 걷고 있던 도중,
어느 새 멈춰 선 것인지 뒤돌아서 자신을 쳐다보는 마르그릿트를 확인하고서 살짝 놀란다.
이런이런, 아무래도 오늘의 사귐으로 인해 나도 조금 헤이해진 것 같군.
“......칼?”
“음? 왜 그러지, 나의 사랑스러운 마르그릿트?”
그런 생각을 머릿속으로 흘리며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어째선지 자신으로선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으로 이쪽을 지긋이 응시한다.
그 시선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오늘 그녀와 함께 거닐었던 거리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기쁨, 놀람, 만족 등의 긍정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어째서인지 혼란, 그리고....불안함?
“칼, 그대가 내가 모르는 어떤 사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짐작이 간다.
......하지만, 왜 그런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사람처럼 웃는 것인가?”
“..........”
잠시 약간의 놀라움을 느끼고서 그녀를 직시한다.
자신의 고백이 있은 후 이쪽의 이상성을 설마하니 이렇게 빠르게 눈치 챌 줄이야, 이건 반성해야겠군.
자신이 확실히 해이해졌다는 것을 속으로 가볍게 자책하면서 그녀에게 대답해준다.
“이런, 본의 아니게 심려를 끼친 것 같군. 혹여 그대의 마음이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네, 아름다운 꽃이여.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대가 궁금해 하는 듯하니, 그대를 위해 그 고민을 친히 해소하도록 하지.”
그리고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걸음을 옮겨 그녀의 옆자리에 서서 말한다.
“....일단, 그대에게는 조금 지루할지도 모르지만 약간 긴 이야기이기 때문에 걸으면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그대의 하늘과 같은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기를 부탁하네.”
“음. 그렇지 않다, 칼이여. 그대는 나를 소환한 자이자, 내가 신뢰하는 동료이자, 소중한 전우.”
“마르그릿트, 그대가 그렇게 여겨준다니 이 보잘 것 없는 자로선 고마움을 감추지 못하겠군. 후후......”
그녀의 말에 웃음을 흘리고선 멀고먼 수평선, 그 끝을 향해 점점 사라져가는 태양을 텅 빈 항구의 부둣가에서 말없이 지켜본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마르그릿트, 그녀는 이야기를 시작하고 끝날 때 까지 어떤 말도 꺼내지 않고 묵묵히 경청한 후 이 자리에서 가만히
바닷가를 지켜보고 있다. 아마 그녀로서는 심정이 복잡할 것이라 느낀다.
그리고 무언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차릴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이야기한 사실에서 몇 가지를 이야기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에이비히카히트 (Ewigkeit)
마법의 영역에 가까운 대마술을 그녀를 만나기 위해 최초의 자신이 그것을 행동에 옮기었고,
그것을 위해 과거 평행세계의 수많은 자신, ‘칼 로렌츠 크래프트’는 그것을 실행에 옮기던 도중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이라는 존재 개체가 버틸 수 있는 한계점이 얼마 남지 않았고,
에이비히카히트 술식을 당장이라도 파기하지 않으면 자신과 더불어 근원의 틈을 통해에 연결되어있는
모든 ‘칼 로렌츠 크래프트’가 전부 소멸된다는 사실.
......이 두 가지를 그녀가 알게 되면 마르그릿트, 그녀는 분명히 슬퍼할 것이다.
자신의 어리석은 고행에 슬퍼하면서도, 자신이 뺏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수많은 ‘칼 로렌츠 크래프트’의 목숨에 자신을 비난하겠지.
그렇기 때문에 이 사실은 일부러 숨긴 것이다. 이 성배 전쟁이 끝날 때까지 만은 이 비화(秘話)를 감추고,
에이비히카히트 술식을 제거하기 위해 혼과 연결된 마술각인을 완전히 제거한다.
그 후에는 극동에 숨어있다고 알려져 있는 마법사를 배출하는 가문의 뛰어난 인형술사에게 각인을 대가로 거래를 할 생각이지만,
그 부분은 자신이 거기까지 마르그릿트와 생존과 승리를 쟁취한 후에 생각할 일.
숨긴 사실에 대해선 그 후 확실하게 그녀에게 털어놓을 생각이다.
그녀가 원한다면 어떠한 대가라도 치르도록 하자.
설령 이 목숨을 또 다시 잃는다고 해도, 그녀가 살아서 행복을 누린다면 나는 무엇이라도......
언젠가는 그녀에게 말해 줄 비밀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던 중 갑작스럽게 난간 위를 뛰어넘는 마르그릿트의 행동에 사색에서 빠져나온다.
갑작스레 움직인 그녀는 깊게 숨을 쉬고서 무언가 확실히 정한 듯이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곧은 시선을 이쪽에 향했다.
"칼."
그리고, 순간 바람이 조금 강하게 몰아치며 자신을 등지고 바다를 쳐다보는 그녀의 머릿결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그리고, 그 모습에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이 짦은 생을 통틀어, 그리고 이 세상의 그 어떠한 것보다도 고귀하고 소중하다고 여겼던 그녀.
어색하지만 나쁘지 않은 간격으로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기 전에 그녀와 함께 거닐었던 해질녘의 거리.
백금과도 같았던 그녀의 모습.
무엇보다 고왔던 그녀의 목소리.
....언젠가, 황혼의 거리에서 보았던 진심으로 행복해보였던 미소.
───아아, 어찌하여 잊고 있던 것인가.
어째서 지금에서야 간신히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인가.
가장 고귀하고, 유일한 것이라 여겼으면서도 자신은 어리석게도 그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많다."
그녀의 말을 귀에 담으며 생각한다.
마르그릿트, 그녀는 너무나도 상냥한 자이지. 자신이 정확히 알지 못하는 그녀의 과거에는 분명 그녀가 소중하게 여겼던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자신보다 먼저 그녀를 발견하여 따른 자들이라면, 그녀의 사랑과 관심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현세에서 만큼은 절대로 그녀를 넘길 수 없다.
"에리는 말은 다르게 할지언정, 분명히 좋은 사람이다. 목소리가 굉장히 예쁘고, 검을 우아하게 쓴다.
소우지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집이고, 고집일지는 모르나 이 광기의 무대에서 만난 자들에게 그녀를 더럽힐 수는 없다.
순수한 호의로 마리를 접하려하는 자들도 아주 극소수 있을지 모르나, 불순한 의도를 가진 광대가 더 많다면 어쩔 수 없는 일.
"......역전 카페의 여주인도, 공원에서 매일 나와 고양이들과 놀아주고 내 인사를 받아주던 노인도, 번화가 고서점의 주인도,
저번에 보았던 신부도, 전부 다 좋아한다. 마치 기적과 같은 일이 아닌가. 만났다는 것 자체가. 하지만 그 중에서도...."
그녀가 아무리 다른 이들을 좋게 말하려고 해도, 그 부분에 관해선 이쪽이 허용할 수 있는 범위는 정해져 있기에 가만히 그녀의 말을 듣고 있자,
"가장 좋아하는 건 역시, 칼, 그대다."
그 말에, 순간 사고가 멈추었다.
자세를 바로하고 가녀린 어깨를 피며 대답한 그 말에 잠시 자신답지 않게 사고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느끼고 있자,
이 심정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그녀는 여전히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고서 이어 대답했다.
".......그러니까, 내가 그대의 부름에 응한 이유는, 아직은 비밀이다."
그녀가 자신의 소환에 응한 이유, 그 말에 약간 혼란스러운 시선으로 이쪽을 등지고 선 그녀를 쳐다본다.
분명 자신이 그녀를 소환해 낸 것은 촉매를 통해 소환해낸 기적과도 같은 우연, 이라고 여지껏 판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발언은 마치 자신이 그녀를 찾았기에, 그녀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소리가 아닌가?
"............"
잠시 눈을 감으며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가다듬고 있자 작게 키득거리는 웃음소리에 다시 눈을 뜬다.
수평선 너머로 천천히 가라앉아가는 태양 속에서 뻗어지는 가녀린 손길.
그 붉은 노을이 수면 위를 금빛으로 물들이는 모습을 배경으로 자신을 향해 손을 내밀며 미소를 흘리는 마르그릿트.
───아아, 자신은 역시 반론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하게 그녀에게 반해있구나.
그런 생각을 머릿속으로 흘리며 내밀어진 그 작은 손을 조심스래 마주 잡는다.
다시는 이 손을 놓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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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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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하
2013.08.20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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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하
2013.08.20 22:24
세이버 마리
치명(공격) 치명(공격) 치명(공격)강타 반격치명(공격) 치명(공격) 치명(공격)치명(공격)치명(공격) 치명(공격) 치명(공격)반격 맹공치명(공격) 치명(공격) 치명(공격)치명(방어)치명(공격) 치명(공격) 치명(공격) 강타 맹공반격 반격 반격 반격 (행운)치명(공격) 치명(공격) 치명(공격)반격 맹공치명(공격) 치명(공격) 치명(공격)치명(공격)치명(공격) 치명(공격) 치명(공격)강타 반격치명(공격) 치명(공격) 치명(공격)치명(공격)보구 : 지옥에 피는 광휘의 꽃(이반 그로즈니) 보구 : 금작화의 활 ( Planta Genista )
DMG = 6 + 6 +
6 + 6(???) : 총 12점??? 아처방어강타반격맹공방어방어강타맹공반격(dmg HP 3): ??? (스킬)방어강타반격맹공방어방어강타맹공맹공(dmg HP 3): ??? (스킬)방어강타반격맹공맹공강타치명-방어(dmg MP 2)방어강타반격맹공맹공반격방어방어방어방어 방어 방어 방어반격마스터 ??? 칼마술 (dmg HP 32 -4) 대기 -
로하
2013.08.20 23:10
- 전투 중단 ( 휴전 ) 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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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의 행동에 화들짝 놀라더니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를 뿌리칩니다.
"승자는 너야. 네 마음대로 하지 그래?
......하지만 마스터를 잃은 서번트를 그대로 내버려두다니 마무리가 어설픈 걸.
잊지 마. 언젠가 그 상냥함이 당신의 소중한 누군가를 불행하게 만들 거라는 사실을."
그리고 바깥에 있는 칼에게 '사바충 폭발해라'는 곁눈질을 보낸 뒤,
교회 밖에 대기시켜둔 자신의 늑대 위에 올라타고 그 자리를 이탈합니다.
"아무래도 난 오늘 밤의 배우로써 역부족이였던 모양이야.
그러니 패배자는 패배자답게 쿨하게 떠나도록 하겠어."
라고 마리의 제의를 받아들인다고 전해주세요. : 라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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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하
2013.08.27 15:31
강물은 서녘으로 기우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넘실거렸다. 겨울의 바람도 생각만큼 매섭지는 않은 날이었다. 어쩌면, 그저 비교적 남쪽에 위치한 이 지방의 위치 탓인지도 모르지만. 마르그리트는 가벼운 콧노래마저 흥얼거리며 강의 둔치를 따라 걸었다. 간혹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했고, 스텝을 밟듯 우아하게 빙그르르 돌아 치맛자락이 나풀거려 - 누군가 봤다면 애간장을 태웠을 - 조금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소녀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실제로도, 크게 걱정하거나 신경 쓰이는 일은 없었으니까.
아. 아니었다. 단 하나, 있었다.
──당신에게 사랑을 했다, 마르그리트 . 그녀의 동료이자 마스터인 칼 크래프트의 한 마디. 연정이나 고백을 들은 것은 결코 새로운 경험이 아니었다. 온갖 화려한 수식어로 치장된 지루하고 장황한 일장 연설에 가까운 느끼한 것부터, 몰래 놓아두고 달려간 꽃다발이나 더듬거리며 시선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 던지듯 외치고 간 것까지. 거기에, 비록 외모는 그저 아름답게 생긴 소녀와 다를 바 없었으나, 마르그리트는 그것이 몇 년간의 생이든 이미 한 번의 삶을 끝낸 존재였다. 외모 그대로 십대 중후반에 요절했을지도, 혹은 한창 피는 스무 대의 나이에 죽었을지도, 아니면 장수하여 온갖 희로애락을 다 겪은 후 세상을 떠난 자인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이미 죽음이라는 '끝'까지 겪어본 자. 어지간한 것으로는 정말로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을 이끌어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그녀는 이미 그녀의 마음 모두를 오롯이 바치기로 결심한 대상마저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양 볼이 달아올랐던 것은 그 짧은 한 마디 속에 담긴 감정이 감히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었기 때문일까.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정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감정이 가득 담긴 말로 들어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마르그리트는 순간 잠시 놀랐었으나, 아니. 조금 얼굴이 화끈 달며 부끄러워졌으나, 곧 상황을 그녀 나름대로 이해하고 곧게 칼을 마주보았다.
그가 읊은 것은 『그의 여신(Marguerite)』을 향한 것인가, 『마르그리트라 불리는 소녀(Servant)』를 향한 것인가.
무조건 후자라 단정지을 것은 없었다. 그녀에게 마리, 라는 이름을 붙여줄 때 그의 표정은 분명 '그의 마르그리트'를 향한 감정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처음 소환된 마리조차도 알 수 있었던 것이었기에. 그가 마치 대답을 기다리는 듯 보였을 때엔, 자칫 후자라 결론을 내릴 뻔 했지만, 마르그리트는 성급하게 그럴 일 없이 약간은 얼떨결에,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만약 전자라면, 음, 역시, 그대를 응원한다, 칼. 후자라면, .... ..... ..... 나중에 생각하면 될 일이다. 아,아마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대상이 지금 생각하는 마리 본인이냐, 아니면 칼 크래프트만이 알고 있을 '마르그리트'냐의 문제를 떠나, 마리가 그 말을 한 이후의 칼을 더욱 신경쓰는 이유는 또 다른 것이었다. 그 전에도 문득문득 느껴왔지만, 그 이후로는 확연히 느꼈다. 이 순간순간, 그렇게 알아채고 있어. ...처음에는, 어떠한 사정이 있으리라고. 물어서는 안 되는 개인의 영역이라고 판단했기에 모르는 척 넘어갔다. 그는 소중한 동료이며 이 세상에 다시 없을 그녀의 유일한 마스터지만, 숨길 비밀들은 있는 법이다. 현대어로는 프라이버시, 라고 하던가. 하지만 더 이상 그렇게 넘어갈 수는 없었다. ──걱정이 되어, 어쩔 줄 모를 정도가 되어버렸다.
작게 결정을 내린 소녀는, 발을 탁 멈추고는 빙그르르 몸을 돌렸다. 칼을 곧게 올려다 본 채, 그녀는 입을 열었다.
".....칼..?"
"음? 왜 그러지, 나의 사랑스러운 마르그리트?"
".... 칼, 그대가 내가 모르는 어떠한 사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짐작이 간다. 헌데.. 어째서. 어째서 그런,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사람처럼 웃는 것인가?"
마리는 칼이 순간 분명히 놀랐으리라 알 수 있었다. 전혀 알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녀를 너무 얕본 일이다. 그녀는 내심 조그맣게 뺨을 부풀렸다. 그것이 그의 감정과 같은 부류라 장담할 수는 없으나, 마르그리트에게 있어서 또한 칼은 분명히 소중한, 정말로 정말로 너무너무 좋아하는 동료. 그런 이의 이상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바보는 아니다. 마리가 조금 뾰로통해진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칼은 곧 예의 그 나긋나긋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이런. 본의 아니게 심려를 끼친 것 같군. 혹여 그대의 마음이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네, 아름다운 꽃이여.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대가 궁금해하는 듯 하니, 그대를 위해 그 고민을 친히 해소하도록 하지."
소환자는 나즈막히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발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일단, 그대에게는 조금 지루할지도 모르지만 약간 긴 이야기이기 때문에 걸으면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그대의 하늘과 같은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기를 부탁하네."
"전혀. 그렇지 않다, 칼. 그대는 나를 소환한 자이자, 내가 신뢰하는 동료이며, 소중한 전우."
"마르그릿트, 그대가 그렇게 여겨준다니 이 보잘 것 없는 자로선 고마움을 감추지 못하겠군. 후후......"
가볍게 쿡쿡 웃음을 흘린 남자는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 마리는 가만히 강가의 난간에 기대어 선 채, 해 지는 서녘 하늘을 바라보며 대답 없이 가만히 들을 뿐이었다. 비록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그녀는 상당히 복잡한 기분이었다. 평소의 그녀와 비교해 본다면, 뒤죽박죽이라고 해도 좋았다.
처음에 든 생각은 경악. 그녀는 캐스터가 아니었기에 마술에 대해서 극에 달한 학식을 가지고 있다고, 까지는 할 수 없었으나 나름대로의 지식은 가지고 있었다. 그 양을 많다 적다 판단하는 것은 사람 나름이겠으나,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칼 로렌츠 크래프트가 한 일은, 절대 다수에게 있어 그야말로 미친 짓과 같다는 것. 하나의 목표를 위해 같은 삶을 나유타 - 그야말로 영겁과 같은 시간으로 반복하다니. 인간의 삶을, 한계를 가졌으면서도 자신을 세계와 세계 틈새에 이어지는 현상에 가깝게 만들어버리는 것은 마르그리트에게 있어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것이었다. 아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무한한 시간이라는 영원. 그것을 반복하는,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을 행위. 어느 정도의 각인이 그 마음에 새겨졌기에 그런 일마저 해낼 수 있게 한 것인지, 마르그리트로서는 그 만 분의 일조차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음에 든 생각은 연민. 어째서, 이 찬란한 세상에서, 바로 고개만 돌리면 온갖 놀라움과 기적이 가득한 이 축복과도 같은 세상에서 그는 보통의 삶으로서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닿지 못할 마음을 갖게 된 것인가. 이 모든 순간이 마치 선물과 같건만. 하고보니, 캐스터가 그에게 흥미를 가졌던 듯 보인 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그 남자 또한 이 세상 모든 지식의 끝에 결국 그 무언가의 공허감을 이기지 못하고 내밀어진 손을 잡았던가. 다른 듯 보여도 분명 무엇인가 이어지는 가는 실이 존재했다. 연민이라 하여도 단순히 안타깝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 힘들고 지칠 여정이 안쓰러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마리라고 불리는 소녀에게 있어서도, 그는 소중한 - 다시 없을 동료. 수백 수천의 시간을 뛰어넘어 다시 만난, 확률로 말한다면 그야말로 기적. 그런 그가 그토록 괴롭고 반복되는 삶을 산 것이, 그녀는 슬펐다. 소중한 사람이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마지막으로는, 바램. 칼이 지금 알아챘을지 알 수는 없었으나, 마르그리트는 어렵지 않게 깨달았다. '한 번의 실패도 없이 바로 그 정도의 대마술이 성공했을 리는 없다', '여태까지 반복되어 왔던 "실패한" 칼 크래프트의 결말은?', ──무엇보다도, 그 한계가. 신조차 때때로 영원하지 못하거늘, 아무리 그 한계를 뛰어넘었대도 그것의 시작이 사람인 이상 언젠가 한계가 닥쳐오리란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 한계 이후가, 실패한 반복들의 결말이. 무엇이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눈으로 보듯 뻔히 알 수 있는 일이다. 그것도, 현대처럼 대부분이 평화 속에 가라앉은 세상이 아닌 아득한 과거의 존재인 그녀에게는.
거기에, 방금 들어버린 것이다. 설마 설마 하면서도, 이미 어딘가에서는 눈치 채고 있었을 것임에도 확실함을 위해 생각을 미루던 것의 답을, 들어내고야 만 것이다. 그가 그 『영원』을 살게 되었던 '원인'이 그녀였다는 것을. '마르그리트'가 그녀였다는 것을.
그렇다면, 그가 아예 그녀를 만나지 못한 세상은 차치하고서라도, 그녀를 만났음에도, 더해서 그녀를 '마르그리트'라 인식했음에도 또 반복하게 되는 결과를 낸 것이라면,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마르그리트의 책임이었다. 눌려오는 죄책감의 무게. 그럼에도 그녀는, 하기 위해 하여 그의 부름에 답한 것이다. 오만함도, 이기심도 정도가 있다. 드러나지 않게, 마르그리트는 살짝 손끝에 힘을 주었다.
그래. 분명히 그녀의 호감과 그의 호감이 같은 종류인지 그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누구도 어떠한 감정은 어떠한 것이라고 알려준 적 없었으니까. 겪어보지 못했으니까. 그렇지만, 다른 것이 있었다. 이제 확실해진 것은──
마르그리트는 기대던 난간을 훌쩍, 가볍게 넘었다. 물이 발 바로 앞에서, 삼킬 듯 흘렀다. 그렇지만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다. 마르그리트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는 책임감이 없는 인간이 아니다.
그녀는 정말로 소중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자기 몸을 아끼는 인간이 아니다.
그녀는 그것이 진심이라면, 거짓으로 답을 돌려주는 인간이 아니다.
하물며, 그의 바램은 그녀의 바램과 같다.
──사실을 말한다면, 그의 바램을 이루는 것 자체가 그녀의 바램. 그녀가 그의 부름에 답한 이유.
──누구인지는 보이지 않았다.
──어떤 자의 목소리인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간절히, 무언가를 너무나도 간절히 바라는 - 비통할 정도로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촉매라는 것을 통해 그녀에게 들렸고. 그녀는 무심코 바란 것이다. 그녀 정도가 감히 바랄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부디, 그렇게 외치는 그대가. 이리도 간절히 바라는 자가,
『행복해지면 좋겠다』
그렇게 되길 바랬다. 그 목소리가 너무도 외로워서, 손을 뻗어 잡아주고 싶다고 생각했기에. 비록 약하디 약한 그녀임에도, 저 기원을 이루는 것을 도울 수 있다면. 자신과 같은 자도 이렇게 있는데, 저 사람이, 끝도 깊이도 모르는 고통 속에서 계속 헤매일 이유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그렇게 그녀는 손을 내밀었고──
"칼."
조금, 강하게 몰아치기 시작한 강바람에 머리카락이 마음대로 춤추었다. 상관 없는 일이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의 행복이 그대의 행복이 되며, 그대의 행복이 내 행복이 된다면.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지? 동료로서, 감히 바랄 수도 없을 정도의 '이상'. 그녀 같은 자에게 있어, 과분할 정도의 행복.
"나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많다."
뜬금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자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람들이어도, 당장, 한 시간 후에 사라질 사람들일지라도. 분명히 진심이었다.
"에리는 말은 다르게 할지언정, 분명히 좋은 사람이다. 목소리가 굉장히 예쁘고, 검을 우아하게 쓴다."
"소우지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무심한 척 굴지만 이쪽 또한 착한 사람이다. 그대를 제외하고 본 현대인 중, 가장 지식이 깊다."
"쿠-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간절히 외친다면, 외면할 사람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역전 카페의 여주인도, 공원에 매일 나와 고양이들과 놀아 주고 내 인사를 받아주던 노인도, 번화가 고서점의 주인도, 저번에 보았던 신부도, 전부 다 좋아한다. 마치 기적과 같은 일이 아닌가. 만났다는 것 자체가. 하지만, 그 중에서도."
마리는 조금, 자세를 바로잡았다. 가녀린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섰다. 여전히 뒤돌아 본 상태였기에, 칼의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가장 좋아하는 건 역시, 칼, 그대다."
일전에 말했었지 않은가. 마르그리트는 살짝 어깨를 으쓱했다. 같고 다르고의 문제를 떠나, 마리라는 소녀는 자신의 기준에서는 확실하게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러니까, 내가 그대의 부름에 응한 이유는, 아직은 비밀이다."
아마도 조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일 것이다. 상상하고, 마리는 작게 키득거렸다. 여태까지 저렇게 중요한 이야기가 있었음에도 비밀 투성이로 행동했고, 지금도 그녀가 알아챈 문제에 대해 숨겼던 것에 대한 그녀 나름의 작은 복수. 그렇지만 대신, 조금의 힌트를 주자.
"그리고, 나는 분명히 해질녘의 시간도 좋아하지만, 새벽은 더 좋아한다."
지친 자를 감싸안는 해질녘이 끝나면, 고요한 밤이 가고, 곧 새로운 날이 온다. 온화한 황혼과 찬란한 서광. 하루의 어느 때를 싫다 말할 수 있겠냐마는, 적어도 마리가 새벽녘 어슴푸레한 하늘과 해질녘 가라앉는 해를 좋아하는 것은 그런 이유였다.
"그렇지만, 그대에게 있어서는 그 '황혼'이 더 각인되고 중요시되는 것 같구나."
계속, 흐르는 강만을 내려다보며 마리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해질녘만큼이나 새벽 어스름도 아름답다는 것을, 내가 보여주겠다."
지금 보이는 저 태양이 마저 가라앉으면, 밤이 찾아오겠지. 또다시 밤이 내리겠지. 그리고, 기나긴 밤이 지나면── 소녀는 빙글, 몸을 돌렸다. 보기 드물게 긴 금빛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고, 비취색 눈동자가 똑바로 마주보았다. 그러니까, 함께 가자꾸나. 함께 나아가서, 밤의 어둠이 끝날 때까지 함께 걸어서. 그 끝에.
"가장 아름다운 '새벽'을, 그대 눈 앞에서 보여주겠어."
똑바로 서서, 마주본 채 말하는 소녀의 산호색 눈동자는. 바람에 춤을 추는 금빛의 머리카락은. 소녀가 내민 작은 손은──
여직 아무도 보지 못했던, 어느 때보다도 찬란한──
따스하고 눈부신, 황혼에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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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는 서쪽 끝의 나라에서 태어나 동쪽 끝에서 떠오르는 해를, 새벽을 그리는 아이.
'함께' 보는 것. 혼자서는 소용 없는 일.
-
로하
2013.09.15 00:30
뚜벅. 뚜벅. 뚜벅.
울리는 발걸음에 여자는 비명을 질렀다. 칠판을 긁는 것처럼 날카로운 소리가 밤공기를 찢었다. 여전히 구둣발 소리는 계속 울렸으며, 여자는 뒷걸음질마저 치지 못하고 발이 꼬여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다가오는 그림자는 멈추지 않았다. 은빛 날붙이가 새하얗게 빛났고, 입가에 머금은 미소만이 또렷이 보였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막으려 시도했지만, 순간 무엇인가 아래쪽에서 확 뻗어나와 그녀의 팔목을 덥썩 잡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내려다보면 안 된다고, 시선을 돌리면 안 된다고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그녀는 바들바들 떨면서도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녀의 양 눈에 비친 것은, 양 눈이 없고 입가가 쫙 찢어진 피투성이의───
『삑.』
"꿀꺽.. ..?! 무, 무, 무슨 짓인가, 칼! 지..지금 마악 귀신이 나오려던 참이었는데..!"
"아름다운 꽃이여. 나는 그대가 무엇을 하고 싶던 그것을 막을 생각은 거의 없네만, 저런 것은 그대에게 좋지 않다네. 여러 가지 의미로."
"... .... ... 우...."
"『양들의 침묵』같은 것은 비록 내키지는 않으나 납득할 수 있는 선이지만, 저러한 것은 그저 저급한 삼류일 뿐. 저것은──"
칼 크래프트는 입을 다물었다. 사실 그가 영화에 관한 정보 따위에 깊은 흥미를 갖고 볼 것은 없었지만, 바로 펼쳐 보고 있던 신문에 특집 기사로 저 감독과 그 영화들에 대해 구구절절 나와 있음에도 그가 마르그리트에게 저러한 것을 보게 할 일 따위 없었다. 불과 사흘 전 스너프 필름 촬영으로 잡혀들어갔으며, 그 전의 영화들에도 온갖 잔혹한 장면과 기괴한 것들, 심지어 정신 상태가 의심스러울 정도의 문란함 따위를 집어넣었다고 신문은 말하고 있었으며, 그 일로 인해 온라인 상에서는 제법 시끄럽다고. 하지만 화제성에서는 보장이 된다는 점 때문인지, TV의 영화 채널에서는 그의 영화 전편을 연속 상영하는 만행을 저지르는 중이라고 했다. 제한 상영가나 아예 상영금지 처분을 받은 것들을. 그 따위 것을 그의 여신의 눈에 들게 냅둘까 보냐.
물론 마르그리트는 꿀꺽 침을 삼켜갈만큼 집중하여 영화-아직은 그나마 B급 호러무비 수준의 진행이었다-를 보고 있었으나, 그것은 그녀가 딱히 그러한 종류의 것을 즐긴다던가라기보단 그저 타고난 호기심 때문이란 것을 칼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잔혹한 장면 같은 것이 본격적으로 나온다면 눈살을 찌푸릴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아무리 모형이나 CG라 한들 생명 존중 인권 보호 따위는 이웃집 개에게나 줘 버린 것 같은 묘사들을 그녀가 반길 리 없었다.
"마르그리트. 대신 오늘은 후에 밖에 나갈 때 그대가 좋아하는 롤 케이크를 구입하도록 하지."
"!!! 정말인가, 칼!"
"아아, 그렇다네. 한정판 마론 블루베리를 예약해 두었으니."
마르그리트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후후, 기뻐하는 모습 또한 이 지루하기 그지없는 삶에 빛을 주는군, 칼은 가만히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반응과는 별도로, 마르그리트는 딱히 탐식하는 성품은 아니었다. 자리에서 과식하는 것도 없었으며, 음식이 없는 시간에 먹을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 가라사대 "시대의 발전과 국가의 교류에 따른 식문화의 진화" 때문. 이른바 일종의 컬쳐쇼크라는 것이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칼 또한 이해하고 있었다. 하다못해 세계 대전기나 그 이후의 사람일지라도 2000년대의 음식은 꽤나 다를 터인데, 그 이전의 존재인 그녀가 어떻게 느낄지 생각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녀에게 있어 삼 분만에 끓여지는 컵라면 같은 것은 그야말로 인류의 혁신처럼 보인다고 일전 마르그리트는 말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덧붙였다, 사실 식문화니 어쩌니 하는 거창하고 그럴듯한 단어지만, 사실은 그저 맛있으니까, 라고. 그녀의 지론에 따르면, 달콤한 것을 - 적어도 그 정도만 다를 뿐 - 전혀 싫어하는 여성은 없다나. 사실 다른 여성 따위 뭘 먹고 뭘 좋아하든 칼에게는 관심이 없는 것을 떠나 전혀 알 바 아니었으나 그저 그의 여신이 말하는 것이니 무조건 수긍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사와서 함께 먹는 편이 좋겠구나! 음, 비스코티를 조금 구워 함께 먹는 것이 좋을지도. 아, 그대가 즐기는 커피라는 것도 준비하겠다!"
"후후. 그것은, 영광이군. 나의 보석이여."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전까지 칼 크래프트는 커피란 것에 어떠한 감흥도 취미도 없었지만, 마르그리트가 그에게 한 잔을 따라 준 순간부터 그것은 그가 제일 즐기는 음료가 되었던 것이다. 단연컨대, 아마 마르그리트가 직접 따라준다면 그것이 커피가 아닌 양잿물이어도 그는 기쁘게 마실 가능성이 있었다. 아니, 거의 확실했다.
빙그르르 돌아보며 만개한 꽃처럼 환히 웃는 소녀의 표정 - 그 아름다움을 수정구가 백 만 분의 일이라도 담아낼 수 있기를 바라며 칼은 언제나처럼 나즈막하게 쿡쿡거렸다.
마르그리트는 어느새 복장을 다 갖춘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커트라던가 진즈를 착용하는 법을 알려주었을 때가 불과 며칠 전인데, 이제 현세에 잘 적응하며 세상을 마음에 들어하는 듯한 그녀를 보면 보람마저 느낀다. 산호색 눈을 또르르 향해 자신을 볼 때면(이하 생략)
그는 발걸음을 옮기며 한바퀴 실내를 둘러보았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분명히 살아 있는 사람이었을 그 자신이 혼자 지냈을 때에는, 오히려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적막하기 짝이 없던 공간이, 아득한 과거를 살아나간 소녀 : 마르그리트가 내려온 이후 온갖 것들이 생기며 활기를 되찾았다. 누군가 '집'으로 삼는 공간 특유의 온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약간이지만 잡동사니 같은 것들도 들여놓게 되었고, 수십 벌의 옷가지 - 그는 마르그리트를 위한 것이라면 돈 같은 건 티끌인 양 아낌이 없었다. 그의 여신을 위한 것인데 그 따위 종이쪼가리의 가치를 비할 소냐 - 와 신발들,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찬 찬장.하다못해 창가에 둔 화분까지.
"음? 칼?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 ...아아. 아무것도 아니라네."
모순된 표현이지만, 새로운 기지감. 그러한 온기는, 비록 흐릿하게나마, 미약하게나마 그가 혐오하는 기지란 것에 들어가는 것에 틀림 없지만,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느낌이라고, 무심코 생각했다.
* * *
"칼. 칼. 저어기, 저길 보아라. 무언가 이상한 기척..아니, 그냥 감이지만, 이상한 느낌이 든다."
"흐음?"
일순 몸을 움찔하고는 재빨리 근처의 나무 위로 뛰어올라 시야를 넓힌 그녀가 가리킨 것은 허름한 저택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외관 자체만은 그럴듯한 양옥이었지만, 마치 수백 년은 사람이 살지 않은 듯 곳곳에 거미줄 따위가 진을 치고 있었다.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던 듯 마구잡이로 자라난 덩굴은 창을 뒤덮었고, 그늘진 곳에는 이끼까지 끼어있는 듯 싶었다. 마르그리트는 일단 가볍게 나무 아래로 뛰어내렸다. 꽤 높은 가지였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였다. 치맛자락이 바람에 펄럭여 살짝 말려올라갔지만, 남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평소의 그 모습으로 예상한 것과는 너무도 다르다..고 볼 수도 있었지만, 이미 모든 순간을 그의 수정구는 충실히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그것보다는, 예상 외의 강한 바람에 살짝 눈을 크게 뜨고, 앞머리칼이 춤추듯 흔들린 마르그리트의 표정을 놓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그녀의 표정은 매우 다양했고, 따라서 쉽게 바뀌었기에.
"조사해 보는 것이 낫겠는가?"
"마르그리트, 그것은 모두 그대의 마음이 가는대로 결정하면 충분하다네. 꽃이여."
"으─음, 그렇다면... ...역시 들어가 보고 싶다!"
"그렇다면, 그대의 뜻대로."
마치 무대의 배우가 절을 하듯, 칼 크래프트는 우아하게 살짝 허리를 굽혀 절했다. 마르그리트는 평소의 그녀다운 곧은 자세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는 곧 그 뒤를 따랐다.
"흐음. 꽤나 고즈넉한 저택이구나."
끼익, 무거운 철문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천천히 열렸다. 마르그리트가 먼저 언제든 행동할 준비를 하곤 안으로 발을 디뎠고, 칼 또한 그 뒤를 따라 미끄러지듯 스르르 들어갔다. 이미 하늘은 오렌지빛 해질녘을 지나, 검푸른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그들이 발을 내딛자, 바닥에 멋대로 쌓인 낙엽이 파스락,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쾅!』
마르그리트는 순간 몸을 움찔 떨었으나 그 이상의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강한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철문이 제멋대로 닫혔다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했으나, 그것만 가지고는 모를 일이다. 그렇게 대문을 지나, 과거에는 정원이었을 황량한 공간을 지나 그들은 저택의 문 앞에 섰다. 어쩐지, 이것은 그 영화란 것에서 보았던 것 같다고, 마르그리트는 속으로 작게 숨을 들이쉬었다.
"칼, 혹여 안에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 물러나 있어라."
그리고는, 마리는 망설임 없이 문을 활짝 열었다. 잔뜩 낀 먼지가 한 번에 들이닥친 겨울 공기에 놀란 듯 밖으로 쏟아졌다.
"콜록, ..그냥, 낡은 옛집인가."
"흐음... 꽃이여. 더 들어가 볼 생각인가?"
"음? 그렇..다만, 혹 무엇인가 감지한 것이라도, 칼?"
"아니. 아무것도 아니라네."
깜짝 놀라는 그대의 표정 또한 아아, 상상만으로도 사랑스럽기 그지없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칼 크래프트는 뜻모를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의 일이었지만. 마르그리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한 번 갸웃하고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나무로 된 마룻바닥이 끼익거리며 울었고, 매캐히 낀 먼지 덕분에 눈이 매웠다. 마리는 흘끗 벽을 쳐다보았다. 다소 빛이 바랜 그림이 몇 점 걸려있었다. 문득 마르그리트는 무엇인가 이상을 발견한 듯 푸른 눈을 조금 게슴츠레하게 떠 보고는, 곧 그 중 한 그림에 가까이 다가갔다. 새하얀 검지가 그림의 구석을 조심스레 훑었다.
"....이건..."
마리는 곧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홱, 고개를 돌려 조금 빠르게 내뱉었다.
"칼, ...이미 오래 된 것 같아..아니, 무엇보다도 이런 곳을 그냥 내버려 둘 순 없으니 조금 더 들어가 보겠다만, 무엇인가 보거나 감지한다면 바로 행동해 다오. 내 동의는 구할 필요 없다. 여차할 경우 곧바로 자리를 피할 수를 마련해 두어라──"
섬섬옥수란 표현이 걸맞을 손의 끝자락에는, 이미 색이 완전히 죽은 핏빛이 희미한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마르그리트는 계속해서 발을 내딛으며, 가만히 생각하고 있었다. 서번트의 기척은 아니다. 마술사의 잔재주라고도 볼 수 없다. 이 정도로 어떠한 마술의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면 그건 오히려 감탄에 적합할 실력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계속해서 떠오르는 깨름칙한 느낌은 무엇인가. 그것은 적을 눈 앞에 두었을 때의 기분과도, 혹은 반사적으로 느끼는 위기감과도 달랐다. 마치, 이것은...
"..누군가가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마르그리트는 다시 한 번 고개를 홱 돌렸다. 뒤의 복도는 여전히 길고 어둡고 음침하게 가라앉아 빛이 들지 않았고, 있는 것은 오직...
"..칼? ..으음, 기분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 계속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마치, 엿보는 것처럼..."
"으음..? 나로서는 잘 모르겠군, 마르그리트. 내 보잘것없는 능력으로는 이 저택 안에 현재 발동되어 있는, 혹은 걸린 상태의 마술이 없다는 것 정도 밖에 알 수가 없다네."
"...그러,한 것인가. ...아까 본 영화란 영상물들 탓인지도 모르겠군. 음, 서번트가 없는 것도 확실하다고 생각..한다만."
"그대가 그리 느낀다면 그러한 것이겠지. 후후, 옛부터 오래 된 것들이나 장소에는 이러저러한 사념 같은 것들이 흔적을 남기고 있다지 않는가."
"..음, 그렇군."
"...덧붙여서, 나의 여신이여. 엿보는 것이 아니라네."
"...?"
칼은 당당히 볼 뿐, 이라는 뜻모를 말을 덧붙이고는 언제나처럼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마르그리트는 그저 얼떨결에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마리는 그저, 고개를 한 번 갸웃하고는 다시 몸을 움직였다. 뭐, 칼이 잘 알 수 없는 말을 읊는 것은 한 두 번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녀는 보지 못했다. 그녀가 다시 몸을 돌린 사이, 칼 로렌츠 크래프트의 시선이 드물게도 그녀에게서 떨어져, 뒤쪽 복도의 어둠 속을 향했던 것을.
* * *
마리는 잔뜩 지친 얼굴이었다. 그럴 만도 한 일이었다. 저택을 둘러보는 내내 갑자기 멀쩡한 창문이 흔들리질 않나, 문이 쾅 닫히지 않나, 낄낄대는 메아리가 들리지 않나, 갑자기 불빛이 어른거리지 않나, 물소리가 들리기도 했고 갑자기 조명이 확 켜진 일도 있었다. 알 수 없는 시선과 느낌은 계속 따라왔지만, 마르그리트는 그것에 어떻게 간섭하면 좋은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에게 위해든 어떠한 조작이든 무언가를 가하려 한 것이라면 영령으로서의 스킬 발동 이전에 그녀 본인이 알아채지 못할 리 없었건만. 그런 것과는 전혀 달랐다. 사실, 그녀에게 의도적인 악의를 향하는 것인지 아닌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만약 하다못해 그것들이 어떤 기척이라도 갖고 있는 것이었다면 당당하게 나오라고 소리쳤을 그녀였지만, 기묘하게도 그런 것은 전혀 없었기에 그녀는 가는 어깨를 조금 추욱 늘어뜨린 채 그런 것들을 기분 탓이라 애써 생각할 뿐이었다.
거기에, 바로 전 연속해서 보았던 조잡한 호러들이 깨름칙한 기분을 부채질하는 것이었다. 그런 것을 보고 진심으로 겁에 질려 숨어버리거나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지만, 그 직후 이런 상황이 닥치면 전혀 어떠한 감상도 가질 수 없을 리는 없는 것이니까. 덧붙여──
'겁에 질린다'까지는 아니었으나, 마리는 생전 처음 본 기묘한 것들 : 입이 쫙 찢어지고 눈이 하나뿐인 여자라던가, 키가 세 층 높이는 족히 되어보이는 남자라던가, 손과 발이 뒤바뀌어 있는 인간 같은 것이 알게모르게 자꾸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심지어 들리는 소리들은 꼭 그 영화란 것들에서 나온 것과 똑같은 것 같았고. 이런 답도 끝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느니 차라리 전투라도 하는 것이 낫겠다고 마르그리트는 무심코 생각했다.
더하여, 그런 것에 신경 쓴달까. 눈치를 채는 것은 오직 자신뿐인 것 같고, 칼 로렌츠 크래프트 - 마리의 마스터는 그런 게 있다는 걸 감지한 어떠한 낌새도 보이지 않은 것이었다.
"에에잇. 답답하다!"
"후후. 나의 빛나는 보석이여, 밖에서 보았던 바 이제 슬슬 이 복도도 끝이 보일 듯 하니, 거기까지만 가 보면 되지 않겠는가. 여기가 꼭대기층이니 말이네."
"──끄응. ...그대의 말이 옳구나, 칼."
여기까지 왔으면서 답답하다고 돌아가 버리는 것은 아예 들어오지 않았느니만 못한 것이다. 전사란 자, 검을 뽑았으면 사과 한 알이라도 찔러야 하는 법! 마르그리트는 기다린다는 것을 상당히 싫어하는 편이었지만, 그와 반대로 인내심 자체라면 나름 떳떳이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편이었다. 양 볼에 공기를 넣고 뿌우, 하는 표정을 지은 채, 조금 뾰로통해진 마르그리트는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빨리 이 - 형언할 수 없는 의미로 - 기분이 나쁜 저택의 탐색을 끝내고 마론 블루베리 롤 케이크를 먹으러 가야지. 해 진 시각과 여태까지 걸어온 시간으로 보아 이제 마악 여덟 시 정도 되었을 것이다. 가게는 열 시까지. 테이크 아웃으로 하여 거처에서 즐기면 된다. 그것을 먹으면 기분도 금방 나아질 테니까.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마리는 천천히 복도의 끝을 향해 걸었다.
"...으,음? ..여기가 끝인가."
"아무것도 없군."
"으으음. ..무엇, 별다른 주의할 만한 이상은 없는 곳 같다만."
여기까지 중얼거리고, 마리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순간, 복도의 끝이라는 것을 알리는 듯 벽에 걸려 있던 낡은 촛대의 촛불에, 갑자기 불꽃이 타올랐다. 얼어붙은 듯한 저택에, 자그마한 온기가 돌았다. 하지만 그 온기를 단순한 따스함으로 받아들이기에는, 그녀가 이 안에서 겪은 자잘한 것들이 너무 많았던 탓일까. 숨을 한 번 깊게 들이키고는, 마리는 칼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그으, 그런데, 칼. 혹..음, 이 저택 안에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는 못했는가? 낄낄거리는 메아리라던가..."
"흐음.. 메아리, 라... 미안하군, 꽃이여. 나로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네."
"...그런,가..?"
"어쩌면 근방..혹은 이 저택에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원념 따위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 ...원념이라면──"
"나는 그런 심령..오컬트적인 것에는 지식이 없지만,"
칼 크래프트는 태연하게 말했다. 분명 독일에 있는 그의 본가에는 그가 통달한 온갖 오컬트나 점성술 따위의 관련 자료들이 그득했었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하잘것 없는 것들일 뿐이었다.
"아마도 마르그리트, 그대가 서번트.. 영령이기에 조금 더 그러한 것에 민감할 수는 있다고 추측해 볼 수는 있겠지."
"...으음, 그런 것인가..."
그리고, 잠시 작은 손을 턱에 가져다대며 골똘히 생각에 몰두하던 마르그리트는 서서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생각을 하는데 위를 쳐다보고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문득 무엇인가의 '이상'을 발견했다.
"...칼, ...으음. .... .....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맞다면, .... .... .... 그대에게, 그림자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만. ... ..."
무슨 말이냐는 듯 쳐다보던 칼 크래프트는 곧 아아, 하고는 예의 그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 이상의 대답은 없었고, 마르그리트의 낯빛은 점점 창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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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ㄹ....! 칼.....! ...아아, 일어났는가. 다행이구나. 너무 곤히 잠들어 어딘가 상태가 조금 불편해지기라도 한 줄 알았다. 안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