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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는 최강이라구! (집중선)

로하 2013.05.27 12:17 조회 수 : 0






1987 . 03 . 21



『국제 뉴스입니다. 스웨덴, 비스뷔 근교의 마을에서, 일가족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피해자는 부부와 자녀 한 명으로, 또 

다른 자녀는 현재 행방 불명인 상황입니다. 스웨덴 경찰청에서는 이를... 범인으로 추정되는 자는 러시아 계통의 억양을... 』


톡.


창 밖을 때리는 빗줄기 한 방울에, 여자아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삐걱, 삐걱. 마치 오래 된 인형이 꺾이는 양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붕대로 칭칭 동여맨 한 쪽 눈과 팔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소녀는 창 밖을 내다 보는 것을 그만두었다.







00/





금방이라도 천둥이 내리칠 것처럼, 구름이 가득 낀 어둑어둑한 밤하늘이었다. 이건 마치 영국 같은데. 그러고보니 저 가고일 상

(Gargoyle)은 노팅엄 성의 외벽에 매달렸던 것과 비슷하게 생겼던가. 아니. 어차피 비슷한 시대에 만들어진 비슷한 조형의 같은 생물.

닮지 않은 쪽이 이상하겠지. 그런 것에 시선을 두었던 자신이 평소와는 조금 다른 것이라고, 소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이델베르크 성에도, 

뮌헨 시청사에도 비슷한 것을 보았으면서. 쓸데없는 것에 신경을 쓴다고 생각했다. 


체코. 프라하. 


프라하 성 근방, 소녀는 성 비타 성당 (Katedrala sv. Vita)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당 앞 광장에 놓인 건물의 지붕에서. 11월의 밤은

적막하다. 지붕 위에 누군가 앉아 있더라도, 속을 에이는 바람이 부는 이 밤에 텅 빈 거리에 나올 괴짜는 없을 것이다. 낮에는

관광객들과 몇 주 후의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가게 주인들로 소란스러웠을 광장은 고요했고, 그것을 내다보는 고딕 양식의 

예배당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름답다기보다는 을씨년스러웠다. 


그리고 그런, 희미한 가로등 불빛만이 흔들거리는 자정의 프라하 성. 겨울 밤의 바람이 한바탕 거칠게 몰아치고, 소녀는 희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통증이 찬바람을 맞고 칼로 베이는 듯한 고통을 주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머리칼이 

제멋대로 흩날려 시야를 가리는 것이 불편했을 뿐이니까.



".....?"



밤하늘 아래서나마 성당이 세워졌을 그 옛날과 같았던 거리의 풍경. 그것을 지운 것은 소녀가 꺼낸 휴대폰이었다. 중세의 건축물.

흐릿한 가로등. 앵그르의 작품에나 나올 법한 소녀가 이루던 중세의 밤은, 그 순간 지워졌지만 소녀는 여전히 무심한 표정이었다.

다소 기계적인 동작으로 블랙베리의 액정을 확인하고는, 가벼운 한숨과 함께 전화를 받았다.



"... Hallo."


『──웬? 나야, 릴리.』


"응. 아마릴리. 스승이 이동했어?"


『아, 응... 아침까지만 해도 약속한 대로 벨기에 안트베르펀(Antwerpen, Antwerp)에 있었는데. 오늘 티 타임에 약속이 있다며

잠깐 나갔다 오더니 바로 이동해야 한다고.』


"어디로? 이탈리아? 이집트? 프랑스? 아니면 아시아나 북미?"


『으응, 그게. 멀지는 않아. 일단은 유럽..이니까. ..웬, 우린 지금 키프로스에 있어. 아, 여긴 경유지로...』



웬, 이라고 불린 소녀는 한숨을 내쉴 것도 없이 적당히 대화를 끊었다. 소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차가운 겨울 바람이 폐부를

뒤흔들었고, 온 몸이 욱신거렸지만 머리만은 맑아진 기분이었다. 정말이지 멋대로 움직이는 것은 익숙해졌지만, 출발할 때도

아니고 경유지에서, 자정에 전화하다니 그것은 유석에 약간 어이가 없어질 내용이었다. 무엇보다도, 언제나 그랬지만 일방적인

통보인가. 그나마 다른 사람도 아닌 아마릴리가 전화를 걸었기에 이 정도로 끝난 것이겠지. 스승 본인이나 또 다른 사용인이었다면

'약속 장소 변경.' 이라는 세 단어에 도시 이름을 합쳐 네 단어. 이것으로 일방적으로 끊겼을 것이다. 사실 이미 아무래도 좋은

일이긴 하지만,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소녀는 가볍게 일어섰다. 토옹, 구둣발이 가볍게 지붕 위에서 튕겼다.


소녀는 코트의 옷자락을 여몄다. 그리고는 곧게. 똑바로. 눈 앞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마냥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인형과 같은 생김새가 선명히 드러났지만, 그 순간 바로 겨울 바람이 야속하게도 시야를 가렸고, 동시에 소녀는 재빨리 땅을 박찼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지붕이겠지만.


찬바람이 코웃음을 치듯 귀를 스쳤다. 에르웬 클로트 로젠베르크는 밤하늘을 넘었다.







01/





"일은 어땠나요. 너, 지친 표정이군요."



그는 언제나 이런 태도였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우아하게 말하며 그림으로 그린 듯 눈꼬리를 휘며 웃는다. 클라우스 요아힘 폰

로젠베르크라고 자칭하는 청년은 아무렇지 않게 나이프를 뒤집어 내려두었다. 나이프와 포크가 걸쳐진 접시에는 반쯤 으깨어 조리된

스크램블과, 연어 두어 조각만이 남아 있었다. 오늘은 아침을 먹기로 한 날이었나. 에르웬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물론 단지 그 뿐,

그 이상의 반응은 없었지만. 눈 앞에 앉은 백금발의 청년은 단순히 반쯤 취미로 식사를 하는 것 뿐 아니라, 본명이 무엇인지, 실연령이

몇 살인지, 심지어 인간인지조차도 의심스러운 기인인 것이다. 아마도 그와 함께 생활하는 자들이 아니라면, 조금 놀라거나 신기해하는

정도로 끝나지는 않겠지.


모든 소녀들이 한 번쯤 꿈꾸었을 법한 귀족 나으리인 양,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찻잔을 잡아 가볍게 입술로 옮기고. 내려놓은 후

새하얀 린넨으로 입가를 훔친다. 그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소녀는 여전히 꼿꼿한 자세로 서 있고, 그는 앉아서 여유롭게 바라본다.

보통 사람들이 본다면 상식적으로는 기묘한 광경이었으나, 정작 당사자 두 명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태도였다. 한없이 흐를 것 

같은, 평화로운 것 같으면서도 무언가 어긋난 침묵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에르웬이라 불린 소녀였다.



"완료했습니다. 별다른 부상은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다행이네요."



어째서 약속을 바꾼 것이냐 물어볼 법도 하건만, 에르웬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물어도 어차피 알 수 없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고,

무엇보다도 그런 것에 신경을 쓰는 성품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것은 십 년간 클라우스 요아힘 폰 로젠베르크에게 배우고 키워지며

자연스레 몸에 익은 것인지도 몰랐다. 



"에르웬."



투명한 유리창, 커튼의 틈새로 지중해의 햇살이 내리쬐었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소녀는 미동도 없이 복숭앗빛 입술만을 

달싹거렸다. 누군가 본다면, 무심코 숨을 쉬는지 입가에 손끝을 가져다 대 보고, 관절이 있는지 슬그머니 팔꿈치를 보게 할 정도로,

소녀는 마치 인형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너는, 소원이 있습니까?"



소녀는 의아하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긴 속눈썹이 우아하게, 눈가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영문 모를 질문이다. 한 두 번 들은 것은 

아니지만, 그럴 때마다 항상 무심코 조금은 당황하고 말아. 소녀는 침묵으로 대답했다. 없다는 의미였는지, 있다는 뜻이었는지,

아니면 모르겠다는 것인지는 아마 그녀와 그만 알았으리라. 적어도, 그가 이해했다는 것은 확실했는지, 다소 메마른 느낌의 웃음소리가

홀에 울렸다.



"... 웬. 거기 의자에 앉아도 좋아요. 아니, 몇 번이고 말했지만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멋대로 앉고 마음대로 굴어도 좋아요. 그리고 

솔직하게 말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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