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검수용-2

린즈링 2013.01.03 23:51 조회 수 : 3



/ 0



얼음장같이 차가운 바람이 소녀와 소년을 향해 몰아치고
소년은 만신창이가 된 소녀를 안은 채, 달려간다.

깊은 침묵과 거친 숨소리만 조용히 울릴 뿐
그 어떤 감정도 대화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 그저 기분이라면 수십 년은 지났을 시간이 흐르고
천천히 소녀의 입술이 열렸다.


" …은발군, 그거 알아? 우린 지금 한번 …죽었어. "
" 방심했을 뿐이야, 다음은 이겨. "


소년은 갑작스러운 소녀의 말에 움찔했지만, 이내 강한 어조로 확신했다.


" 그저, 운이 안좋았던거야. "
" 흐흥……. 뭐,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진 건 …진거야. …그리고 우리가 죽은 것도 …맞는 말이지? "
" 전부 부정할 순 없네, 하지만 긍정도 못하겠는걸. "


소녀는 억지를 부리는 듯한 소년의 말에 살짝 미소 지으며 눈을 감았다.


" 그래, 우린 여기서 …죽진 않았어, 져버렸지. 그리고 이건… 전쟁이야.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어? "
" 별로 알고 싶진 않지만,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진 알겠어. "


소년은 다소 뾰로퉁하게 소녀의 말에 답했다.
분명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 누가 뭐라 해도 그는 칭송받았던 영웅이니까.


" 죽은거야. …져서, 죽어버렸지. 여기서 한번 더 싸운다면…. 내가 너무나도… 성배가 갖고 싶은 거뿐이야. "
" …그건 나도 그래, 린즈링이 신경 쓸 필요는 없어. "


굳게 닫힌 소녀의 눈동자 속에 서서히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어째서? 이유는 모르지만, 소녀는 너무 슬펐다. 억울했다. 분했다.
 
또르르, 들리지 않을 소리가 들리고 랜서는 가던 길을 멈췄다.


" 그렇지, 은발…군도 성배 필요했었지…. "
" 필요하지 않았다면, 내가 나왔을 리 없어. 네가 매개물로 썼던 그 성유물은 나 말고도 충분히 가능하니까. "
" 응, 고마워. "
" ……별 것도 아닌걸. "


소년의 대답에 소녀는 가볍게 웃으며 조용히 눈감았다.





/ -1


내가 이 전쟁에 참여한 이유는 너무나도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이유였다.
차라리 누구라도 생각해낼 법한 부자가 되는 소원이나 행복해지는 소원이었으면 좋았다.

하지만 자신의 소원은 하나.

자신이 배운 모든 학문의 끝을 보고싶다.
야매라는 소리는 이제 싫다.

그런 자기만족을 위한 소원을 위해 참여했다.

다른 참가자들은, 마스터들은 얼마나 간절하고 소중한 소원이 있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다시 만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런 멋진 소원들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데.

자신은 오로지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소원을 빌기 위해 참전한 것이다.

처음에는 분했다.
나도 그런 소원 없는 게 아닌데, 나도 있는데.

하지만 그런 마음보다. 자신이 가진 이 기술의 끝을 보고 싶었다.
어떤 이는 이런 소원을 보고 비웃겠지, 노력이나 해봤느냐고.

이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건 노력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알게됐다.

아, 나의 한계는 여기구나, 라고.

더 이상 노력해도 그 노력은 쓸데없는 노력이다.
더 이상 공부해도 이 이상 올라갈 수 없어.

포기? 아니 다르다. 이건 본능적인 감이다.
여기가 끝이라고.

벽? 틀려, 이건 벽이 아니라 끝이 안 보이는 나락이다.
가로막고 있는 게 아니라 길 자체가 나락으로 변해있다.

그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이상 나아갈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확실히 인지했을 때, 나는 펑펑 울었다.
너무 분하고, 너무 화가나서 온종일 울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파파를 위해 노력했을 때도 이렇게 슬픈 적은 없었다.

그렇게 펑펑 울면서 나는 생각했다.
아, 나는 너무나 이기적인 인간이구나-하고






/ 1


" 그래, 나는 그랬었지. "

소녀는 여전히 소년의 품에 안긴 채 꿈인지 모를 과거를 회상하며 중얼거렸다.


" 저기, 랜서. 우린 함께지? "
" 응? 뭐, 이 전쟁을 할 때까진 함께겠지. "
" 응, 그럼 랜서. 부탁이 있어. "
"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만, 일단 들어는줄께. "


소녀는 여태까지의 미소가 거짓인 것처럼,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랜서, 맹세해! "
" …무엇을? "
" 우리들의 전쟁은 이미 끝났어, 이제 서로의 욕망을 위해 싸울 뿐이야. 명예따위 없어, 쟁취하거나 빼앗기거나. "
" 뭐어, 그 정도라면 이미 결심했어. "


소년의 말을 들은 소녀는 씨익 웃어 보이며, 소년을 마주봤다.
그리고 왼손에 령주가 빛났다.


" 아니, 아직이야. 결정해야 할 건 나의 목숨과 랜서, 너의 목숨. "
" …무슨 소리야, 마스터. "


다소 뜬금없는 소녀의 말에 소년은 목소리를 낮추며 되물었고
소녀는 그런 소년의 반응에 조금 더 미소가 깊어졌다.


" 난 보시다시피 너덜너덜해. 최속이라 칭해지는 랜서의 클래스인 네가, 령주를 발동할 순간 날 죽이는 건 아주 간단한 일인걸? "
"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야."


자연스럽게, 천천히 랜서의 품에서 내려온 소녀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소녀와 소년의 눈동자가 마주치고 불안한 느낌이 든 소년이 먼저 입을 열었다.


" 무슨 짓을 할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그만둬. "
" 싫어, 나는 조금 이기적이고 제멋대로거든. "


소녀의 말에 소년의 인상을 찌푸려졌다.
아직 소녀가 할 행동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좋은 건 아니었다.


" 마스터, 다시 생각해봐. 네가 지금 무슨 일을 하려는 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해. 하지만 그 일이 꼭 필요한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게 좋아. "
" 미안해, 은발군. 난 네 생각보다 조금 더 이기적이고 약간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아이야. 원하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서 내 손목을 베고 다른 마스터에게 들고 가. "


소녀는 슬프게 미소 지었고 소년은 무언가에 배신당한 표정이었다.


" 물론, 그러면 원망할 거야. 죽으면서 저주할 거야. 이기적이라고 욕해도 좋아, 난 원래 이런 아인걸. "
" 린즈링! "


시야를 잠식하는 붉은빛이 주위에 퍼지고
구속의 맹약은 그 둘을 운명의 붉은 실로 묶어버리기 시작했다.


" 령주에 명한다! 랜서, 내가 죽으면 자해해. 그리고 네가 죽는다면 나도 죽겠어. 이 령주의 구속으로! "


그렇게, 린즈링의 첫 번째 령주는 서로의 심장을 옭아맸다.


"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지옥 끝까지 쫓아와. 나도 쫓아갈 테니까. "
" …무슨 의미가 있었지 마스터, 무엇을 얻을 수 있는거야? 너와 나의 거짓된 신뢰관계인가? "
" 글쎄, 나는 이제 상관없어. 내가 갈 수 있는 길의 끝까지 와버렸으니까. 더 이상 갈 수 없다면 이대로 죽는 것도 괜찮아. 그러니까 야. "

" 그런가, 나는 별로 이해할 수 없는 이유군. "


소년은 씁쓸하게 내뱉으며 소녀를 안고 자신들의 거점으로 이동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기존 기록 보관 장소 카와이루나링 2012.11.20 1876
공지 이 곳은 팀 회의실 입니다. [1] 카와이 루나링 2012.02.20 1157
117 사랑의 보금자리 니트 2013.05.07 22
116 꽁냥꽁냥 [10] 로하《리델》 2013.05.03 4
115 흠냥흠냥 file 카구라 2013.05.01 8
114 임시 [10] file Sigma 2013.04.21 9
113 로하로하로 비밀비밀 [2] 로하《리델》 2013.02.16 39
112 01 로하《리델》 2013.02.08 1
111 얼간이와 식충이 [2] 4/INSURA/2 2013.01.24 1
110 00 로하《리델》 2013.01.13 10
» 검수용-2 린즈링 2013.01.03 3
108 1일차 낮 쿠마 2012.12.31 1
107 1일차 밤... 쿠마 2012.12.31 1
106 1일차 낮.... 쿠마 2012.12.31 1
105 수정본 쿠마 2012.12.31 6
104 2일차 밤. kisone 2012.12.30 1
103 비밀글 Reiarine 2012.12.30 4
102 호이호이 42 2012.12.22 2
101 fkjenfkef 아아아노 2012.12.08 343
100 메데군vs누님 누님 2012.12.08 5
99 흐무흐무 [5] 로하《리델》 2012.12.05 2
98 ㅇㅂㅇ- 모노쿠마 2012.12.02 1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