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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마 2012.12.31 01:48 조회 수 : 6

[캡틴] 2일차 밤 22:17 ...Fire?
 
[현재 시각. 22:17]
 
기승.
무언가를 타거나 길들이는 능력. 성배의 도움으로 추가 지식 없이도 현대의 운송수단까지 다룰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살았을 적에 해당 탈 것을 다루어본 경험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성배전쟁에서는 세이버와 라이더에게만 존재하는 희귀한 고유 특수능력인 것이다. 그런 점으로 보아서 에델린은 자신의 서번트가 세이버나 라이더일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혹은 생전에 서커스 광대를 직업으로 삼았거나.
 
“요호~! 요호~! 요호~! 발사, 발사, 발사! 돌격, 돌격, 돌격이다, 티이이버어어!”
 
“....!”
 
에델린은 눈가에 배인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 무언의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거대한 그리즐리 베어(불곰)의 등에 올라탄 서번트의 허리를 꽉 껴안고 있었다. 얼굴을 날카롭게 때리는 바람이 그녀의 공포를 배가시켜 주었다. 티버가 두 다리를 불규칙한 달음박질을 할 때마다 에델린은 작은 신음성을 흘리며 캡틴에게 달라붙었다.

엄살이 심한 거 아니냐고? 혹 누가 나중에 지금의 상황을 듣는다면 오토바이 뒤에 타는 것과 다를 게 뭐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른다. 물론 맞는 말이다. 에델린 역시도 현 상황의 위험도는 오토바이를 타는 정도로 밖에 안 느껴지긴 했다. 단, 일반적으로 ‘앉아서’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아닌, ‘서서 타기’는 것을 전제로 해야겠지만.
 
그렇다. 캡틴과 에델린은 거품을 물고 눈을 뒤집은 티버의 등 위에서 꼿꼿하게 두 다리로 서서 타고 있었다. 캡틴은 놀라운 균형감각으로, 에델린은 처절한 생존본능으로.
 
“꼬맹이, 손 놓지 말라고!”
 
“너어어어어! 꼬오매애앵이이이 아아니이이라아아아고오오오, 내리이고오오오 보오오자아아아!”
 
“하하하, 뭐라고!? 티버가 너무 빨라서 잘 안 들리는 걸!”
 
“크엉! 크엉! 크엉!”
 
겁에 잔뜩 질린 티버가 울부짖으면서 여기저기로 뛰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펄쩍펄쩍 뛰는 모습이 마치 곰이 아니라 개구리를 보는 듯 했다. 하지만 티버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단은 살아야 한다는 일념 하에 여기저기에서 떨어지는 포탄을 피하려면 이런 움직임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포탄.
 
그것은 캡틴이 부른 것이었다. 지금 그가 들고 있는 작은 권총을 신호로 해서.
 
런던 밤하늘을 가르는 한줄기의 신호탄. 불과 몇 초 지나지 않아 램버스 궁전으로 거대한 포탄들이 거센 철의 비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그로인해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램버스 궁전이 파괴되어 버렸다.
 
멋들어진 맛을 자랑하던 성루가 무너져 내렸다.
신을 모시던 성공회 교회가 박살이 났다.
성 외각을 장식하던 붉은 벽돌들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렇게 램버스 궁전은 폐허로 변했다. 물론 근처에서 서로 싸우던 많은 수의 적들 (다른 서번트라거나 마스터라거나) 역시 미처 피하지 못하고 소멸 혹은 사망. 램버스 궁전과 함께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요호~! 요호~! 요호~! 돛을 펼쳐라! 냄새, 냄새, 냄새가 난, 난, 난다네!”
 
캡틴은 신이 났는지 권총을 손가락에 걸고 빙글빙글 돌렸다.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쓰고 있던 헤어진 모자를 들고 휘저으며 즉석에서 만든 노래를 불러재꼈다. 격한 팔의 움직임 때문에 캡틴의 상체가 슬쩍 좌우로 흔들거렸다. 그러자 에델린은 기겁을 하며 캡틴의 허리에 매달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캡틴의 꼴사나운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의 두 다리는 티버의 등에 원래부터 붙어 있었던 것 마냥 단단히 고정되어서 떨어지질 않았다.
 
“빠아알리이이 아아안세워어어어어? 이제 끝나아았잖아아아아!”
 
“매캐한 화약! 비릿한 바다! 그 냄새가 진동을, 한다네!”
 
“크엉! 크엉! 크엉!”
 
포탄이 비가 되어서 내리는 밤.
실성한 곰은 울부짖고, 뱃놈은 노래하고, 소녀는 애걸했다.
 
기묘한 조합. 도무지 끝날 것 같지가 않던 그 놀음은,
 
퍽!
 
“”“?”“”
 
어처구니없게도 캡틴이 눈 먼 포탄에 뒤통수를 맞고, 볼링공에 맞은 핀처럼 튕겨서 나가떨어지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불의의 습격을 당한 캡틴은 내팽겨진 장난감 마냥 땅바닥을 몇 번이나 구른 뒤 반쯤 무너진 성벽 아래에 처박혔다. 땅바닥과의 열정적인 키스를 끝낸 그의 얼굴은 온통 흙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멍청한! 물개, 자식들!”
 
캡틴은 곧바로 팔과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서려고 노력했지만 좀처럼 생각대로 되질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이나 쓰러진 끝에 간신히 일어선 캡틴은 허리를 굽혀 땅에 떨어져 있던 자신의 헤진 모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모자를 머리에 꾹 눌러 쓴 뒤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신기하군. 땅이 울렁거리는데? 지진이라도 난건가?”
 
거기까지 말한 캡틴은 그만 핑그르르 돌면서 쓰러져 버렸다. 마찬가지로 튕겨져 나간 에델린이 너덜너덜한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캡틴이 눈을 뒤집고 기절한 뒤였다.
 
 
 
//
 
초침이 멈춘다.
 
그와 동시에 태엽이 역회전을 시작한다.
 
끼릭거리는 불쾌한 소음. 시계추가 잠깐 기우뚱 하더니, 왔던 행로를 다시 되밟는다.
 
그리고 시작된 역주행.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의문은 금세 사라진다.
 
아, 그래. 그렇구나.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흔히들 말하던
 
기적.
 
째깍째깍. 시계가 다시 움직인다.
 
 
//
 
[현재 시각. 21:58]
 
한껏 일그러졌던 얼굴이 풀어졌다.
수려한 외모를 여태껏 가렸던 분노가 그에게서 사라진 것은 너무나도 갑작스러워서 그도, 그의 마스터도 순간 깜짝 놀랐다.
 
“어째서. 정신이 돌아 온 거지. 버서커. 광화가 풀렸어.”
 
버서커라 불린 분노를 잃은 청년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캐스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저쪽에 있는 여성 서번트를 보고 정신을 잃었어. 그리고 전투 돌입. 근처에 있던 저 은발은 상황을 지켜보다가 유리하다 싶었는지 도중에 싸움 난입.”
 
캐스퍼는 무표정한 얼굴로 한숨을 내뱉으며 멀찍이 떨어져 있는 다른 두 서번트를 가리켰다. 한 명은 섬뜩하리만큼 음란한 체형을 가진 여성이었고 다른 한 명은 차가운 눈을 가진 은발 소년이었다. 무심결에 그들을 바라본 버서커는 여자 서번트를 보고 놀라서 급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하지만 그에게 늘 함께하던 현상이 어째서인지 지금만큼은 나타나지 않았다. 버서커는 의아해 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게 다인가? 그 외에는...?”
 
“그 외에는 전무. 저쪽 은발의 마스터가 여자아이라는 것만 빼곤.”
 
버서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저게 끝이 아니야. 분명히 더 있었어. 그 녀석은...
 
“그럼, 내가 보았던 건 도대체 뭐지?”
 
중얼거리는 버서커를 향해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왔다. 템즈강에서 불어온 바람이 땀에 젖은 청년의 분홍빛 머리칼을 천천히 흔들었다.
 
“철수하자. 아무래도 느낌이 안 좋아.”
 
 
 
퇴각하는 버서커의 시야에 전장에 남은 여성 서번트와 소녀 마스터가 들어왔다. 캐스퍼는 그가 또 정신을 잃을까 걱정했지만 버서커가 다시 광기에 빠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자만 보면 머리를 미친 듯이 울려대던 누군가의 목소리가 지금은 들리지 않았다.
 
-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버서커는 방금 전 자신이 겪었던 일과 겪지 않았다고 하는 일들을 곱씹으며 다시 한 번 생각에 잠겼다.
 
 
//
 
[현재 시각. 22:03]
 
화들짝 놀란 카이엔은 창가에서 떨어져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만들어진지 수백 년이 넘은 복도가 덩그러니 카이엔을 감싸고 있었다. 이마에서 나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벽에 등을 기댔다. 카이엔은 떨리는 손으로 품속에 있는 담배갑을 찾아서 꺼냈다. 그리고 한 개 피를 꺼내 입에 물었다. 비록 연기를 감지하고 화재경보시스템이 울릴지도 몰랐지만, 지금 카이엔은 그런 세세한 것 따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당장의 마음의 위로가 필요했다. 라이터가 켜지고, 입에 물린 담배가 자신의 몸을 태워나가기 시작했다. 코 속으로 들어오는 매캐한 연기가 방금 전에 본 끔찍한 광경을 천천히 끄집어냈다.
 
광전사. 그리고 은발의 창병. 과연 영웅이라 불릴만한 전사들이였다. 하지만 자신의 서번트 역시 훌륭한 실력으로 그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승기를 잡을 찰나. 갑자기 한 남자가 나타났다. 어처구니없게, 곰을 타고서. 그 뒤에는...
 
“하늘로 총을 쐈지. 그리고 포탄이 쏟아졌어.”
 
피할 사이도 없이, 램버스 궁전은 초토화가 되었다. 흉악한 위력. 아마도 그건 그 서번트의 보구겠지. 문제는 그것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 포탄에 휘말려서 세 서번트 뿐만 아니라, 지금 자신이 숨어있는 한쪽 성루마저도 무너지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분명, 자신은 무너진 천장에서 떨어져 내린 돌에 깔려 죽었다. 아마도.
 
“이걸 뭐라더라. 데자뷰라고 하던가?”
 
아낌없이 한 몸을 희생한 담배필터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복도 바닥에 떨어졌다. 카이엔은 구두굽으로 담배필터를 밟아서 꾹꾹 비볐다. 전날 런던시내를 서성거리며 담배를 피다가 경찰에게 벌금 먹은 원한까지 담아서.
 
“빌어먹을 금연 정책. 런던에서 필 곳이 없어.”
 
투덜대는 카이엔의 시선이 창 너머로 향했다. 어째서인지 광전사가 퇴각하고 있었다. 분명 이건 기억과는 다른 상황. 하지만 어찌되었든 그 무지막지한 결과는 변하지 않겠지. 카이엔은 귀에 걸려있는 작은 헤드셋을 만지작거렸다. 자신도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 정체모를 기억을 신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 하는 카이엔의 입술 끝이 올라갔다. 어느 정도 여유를 찾은 것일까. 피식하고 웃음이 튀어나왔다.
 
“정말 죽을 때가 됐나. 헛것을 다 보고 그러네.”
 
카이엔은 헤드셋에 달린 송수신 버튼을 켰다. 전날 다친 팔이 지끈거렸다. 지랄 맞은 교훈은 한번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하며, 카이엔은 입을 열었다.
 
“퇴각한다. 캐스터.”
 
//
 
[현재 시각. 22:11]
 
“뭐어~? 카이엔 님. 지금 뭐라고 그랬어? 도망간다고!? 있잖아, 마스터. 그건 좀 이른 판단 아닐까아? 잠깐 잠깐만. 야, 야, 야, 인간!! 너, 돌아가면...!”
 
잠깐사이 급격한 감정변화를 보여주던 여인은 끝내 마지막에 가서는 귀에 걸린 이어폰을 사납게 빼낸 뒤 땅바닥에 내팽겨 쳤다. 그리고 발로 여러 번 쾅쾅 밟아서 그 자리에서 분쇄. 그제야 분이 풀렸는지, 씩씩거리던 숨을 가라앉히고는 눈앞에 있는 적들을 향해서 혀를 살짝 빼물고 웃었다.
 
“어라~ 저쪽에서 먼저 끊어버렸는걸~.”
 
그렇게 먹히지도 않는 핑계를 댄 여인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보란 듯이 한숨을 내뱉었다.
 
“재. 미. 없. 어. 좋아. 나도 여기까지 할래. 은발머리 꼬마야. 넌 어쩔래? 흥이 가셨지만, 네가 조른다면 좀 더 예뻐해 줄 수 도 있는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여인의 몸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던 옷이 바람에 흔들려 살짝 어깨 아래로 내려왔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기묘한 타이밍. 린즈링은 그런 그녀를 보면서 콧방귀를 뀌었다.
 
“저 행동이 의도적이라는데 300 위안 걸겠어.”
 
하지만 정작 그녀 곁에 있던 은발머리 소년의 눈동자는 어지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린즈링은 그런 자신의 서번트를 보곤 내심 어이없어 하며 뭐라 한마디를 던지려는 찰나. 소년이 그동안 꾹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당신은 못 본 건가?”
 
“뭐얼~?”
 
여성 서번트는 애교스러운 대꾸를 했지만, 소년은 원하던 대답이 아니었는지 작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겨누고 있던 창을 내렸다. 그러자 소년의 주변에 서려있던 하얀 얼음 꽃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마스터. 빨리 빠져나가야겠어. 이곳은 위험해.”
 
“어째서?”
 
린즈링은 갑작스런 퇴각건의에 의아해 하며 되물었지만, 소년은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린즈링의 다리와 목으로 자신의 팔을 옮긴 뒤 덥썩 그녀를 안아 올렸다. 순식간에 서번트에게 안긴 린즈링은 당황해하면서 팔을 흔들어 소년의 어깨를 밀었다.
 
“잠, 깐. 뭐하는 거야! 나도 두 다리가 있다고, 빨리 내려놔!”
 
“시간이 없어. 미안해. 가면서 설명해 줄게.”
 
은발머리 소년은 차가운 금색 눈동자로 이제는 적의가 없는 상대 서번트를 바라보았다. 상대는 그런 소년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오른손을 들어서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작별의 인사인가. 소년은 그녀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빠르게 램버스 궁전을 빠져나갔다.
 
떠나는 소년의 뒷모습을 보던 여인은 소년과 소녀가 완전히 빠져나가고 나서야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걸었다. 여기저기 전투의 여파로 땅이 패인 곳이 있기는 했지만 이 정도라면 시계탑에서도 어느 정도 넘어가 줄만한 수준이었다. 그녀의 걸음을 따라서 또박또박 나던 굽소리 갑자기 멈췄다. 그녀의 발 앞에는 평범한 작은 돌맹이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녀는 발을 움직여 돌맹이를 살짝 걷어찼다. 또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돌맹이가 저만치 굴러가 버렸다. 그녀는 그런 돌맹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부루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의리 없는 남자들 같으니. 여자를 혼자 남기고 다 가버렸어. 매너가 빵점. 정말 실망이야.”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그녀의 입가엔 어째서인지 쓸쓸한 미소를 걸려있었다.
 
//
 
[현재 시각. 22:17]
 
에델린은 허리를 숙여 자신의 서번트를 한심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바보같이 흥분한 결과, 불의의 사고를 당해서 기절해버린 그의 멍청한 모습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혼자서 기절해버리는 서번트라니. 영령...맞아?”
 
그렇게 중얼거렸을 때, 갑자기 캡틴이 눈을 번쩍 떴다. 에델린은 움찔하고 놀라서 한 발자국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이내 그런 자신의 모습이 조금 부끄러웠던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눈을 뜬 캡틴은 쓰러져있는 상태에서 일어나지는 않고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면서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 위에 굵은 나뭇가지가 늘어져있는 것을 발견하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성벽 근처에 나무가 있었던가...?”
 
퍼뜩 놀란 캡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여기가 어디지!? 적은!? 화약 냄새는!? 포탄은!? 내 럼주는!?”
 
캡틴은 두리번거리며 지금 주변에 있어야 할 것들을 찾았다. 마지막 하나는 조금 미묘했지만.
앙상한 나무들이 늘어서 있는 공간. 그 곳은 분명 캡틴이 알던 장소와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에델린은 땅에 떨어져있던 캡틴의 모자를 던져주면서 대답했다.
 
“램버스 정원. 자기가 오자고 해놓고 까먹은 거야? 무언가 느껴진다면서 막무가내로 끌고 온건 캡틴이었어.”
 
“램버스 정원?”
 
모자를 눌러쓴 캡틴은 미간을 모으며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궁전이 아니라 정원?”
 
“무슨 소리? 램버스 궁전은 저쪽이라고.”
 
에델린은 손가락으로 정원 끝을 가리켰다. 그 곳에는 밝은 조명아래 램버스 궁전과 교회 첨탑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캡틴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입을 살짝 벌렸다. 그리고 무언가 믿기지가 않는지 오른손을 이마에 대고 연거푸 궁전을 살폈다.

“아니! 뭐야! 멀쩡하잖아? 도대체 언제 고친거지?”
 
그런 캡틴의 모습에 에델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벌써부터 술주정? 그러게 술 좀 작작 먹고 다니지.... 아까 코앞에 있는 나뭇가지를 못보고 걸려 넘어간 것도 사실 술 취해서 그런 거잖아? 영령인 캡틴은 어떨지 몰라도, 난 정말 위험했다고. 교통사고급이라고!”

에델린은 아까의 그 위험한 드라이빙(?)을 떠올렸는지 살짝 몸을 떨며 캡틴에게 소리를 빽지르며 답했다.
 
“나뭇가지에 걸려 넘어갔다고?”
 
“응, 저 곰을 타고 가다가.”
 
에델린은 눈짓으로 나무 뒤편을 가리켰다. 그 곳에는 거대한 불곰 티버가 엎드려서 고양이처럼 자신의 앞발을 열심히 핥고 있었다. 캡틴은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는 표정으로 에델린을 돌아봤다. 그런 캡틴을 향해 에델린은 차가운 눈빛을 보내며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그 ‘무언가’. 지금도 느껴져? 적 서번트가 근처에 있는 거야?”
 
캡틴은 그녀의 질문에 인상을 쓰고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다가, 표정을 풀고 씩 웃으며 대답했다.
 
“음....아니!”
 
“뭐야... 도대체 여긴 왜 오자고 한 거야? 허탕만 쳤네.”
 
“그게 말이지. 정말 이상한데 말야.”
 
거기까지 말한 캡틴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빠졌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캡틴은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권총을 꺼내서 오른손에 움켜쥐었다. 그리고 왼손으론 한쪽 귀를 막고 총구를 땅바닥을 향해서 조준 하였다.
 
“확인해 보면 알겠지.”
 
그리고 격발. 하지만 방아쇠가 딸각 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권총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더 요상하군. 탄이 없어?”
 
“뭐하는 거야?”
 
“음, 꼬맹아. 그러니까 말이다. 넌 모르겠지만 사실 본 선장이 미리 사전에 준비해 둔 게 있었다, 이 말씀이야. 그리고 그 준비된 걸 사용하려면 말이지, 이 총으로 이렇게 신호를 해야 되는데..."

“하아... 꼬맹이 아니라고.."

에델린은 캡틴이 자신을 자꾸만 꼬맹이라고 부르는것에 불만을 가득담은 표정으로 항변했지만 캡틴은 그런것쯤 신경도 쓰지않는다는듯 총구를 하늘로 올린 채 방아쇠를 여러 번 당겼다. 딸각 딸각.
 
“봐봐, 총이 발사가 안 되잖아? 난 분명히 신호탄을 넣어놨는데 말야. 그렇다면 내가 이 신호탄을 썼다는 말인데...”
 
이번에는 권총의 총열을 눈으로 살피는 캡틴. 하지만 별달리 특별한 점을 발견 못했는지 어깨만 으쓱인 뒤 말을 계속 이었다.
 
“더 이상한 점은 분명히 내가 기억하기로는 이걸 쐈단 말이야. 하지만 이게 뭐야. 눈을 뜨고 나니까 세상이 바뀌었어요! 이건가?”
 
캡틴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불가능은 없다는 게 내 신조기는 한데. 이건 너무하는군.”
 
그리고 다시 한 번 총구를 하늘로 돌린 뒤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강렬한 소음과 함께 총구에서 한 줄기 탄환이 뛰쳐나왔다. 그리고 탄환은 거대한 섬광이 되어 꼬리를 물며 런던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깜짝 놀란 캡틴은 고개를 움츠렸고, 곁에서 지켜보던 에델린은 힐난하는 눈초리로 그를 노려봤다.
 
“지금 발사 된 거?”
 
“...단순한 격발 불량이었던 건가.”
 
“저기 있잖아? 그 준비된 거 라는건? 설마...”
 
쾅!
 
둔탁한 소음이 램버스 궁전 쪽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에델린 눈에 무너져 내리는 교회 첨탑이 들어왔다. 에델린은 캡틴을 향해서 오른손바닥을 들어 보인 뒤, 말을 이었다.
 
“아, 됐어. 방금 건 대답하지 않아도 돼. 저건 선장, 당신의 보구겠지?”
 
초탄은 탄도를 조정하기 위한 것 이었을까. 캡틴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잠깐사이에 더 맹렬한 포격이 램버스 궁전 일대를 휩쓸었다. 그리고 그 포격 반경 역시 점차 넓어지고 있었다. 굉음과 함께 멋들어진 맛을 자랑하던 램버스 궁전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성루가 무너지네. 일단 사람들이 모이기 전에 빠져나가야겠는데.”
 
에델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포탄 하나가 근처에 있던 나무 한 그루를 처참하게 찢어발겼다. 그건 본 에델린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리고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캡틴을 추궁했다.
 
“잠깐. 캡틴, 이 포탄들 피해서 갈 수 있는 거겠지? 아무리 그래도 자기 보구인데...!”
 
캡틴은 왠지 뒷통수가 근질근질해 오는 걸 느꼈다. 그는 일단 그녀의 질문에 인상을 쓰고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다가, 표정을 풀고 씩 웃으며 대답했다.
 
“음....아니!”
 
뻔뻔한 대답에 에델린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그런 에델린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캡틴은 권총을 허리춤에 다시 꽂아 넣고 중얼거렸다.
 
“도망쳐야겠군.”
 
“무엇으로부터!? 이거 당신 보구잖아!”
 
“역시나 꼬맹이. 아무 것도 모르는군. 세상엔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는 법이다.”
 
“그게 무슨 헛소리..! 꺄악?!”
 
캡틴은 에델린의 말을 무시하며 짐짝처럼 그녀를 어깨에 들쳐맸다. 에델린은 짜증을 내려고 했지만, 코앞에 떨어져 땅바닥에 박힌 포탄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근처에서 서성이던 티버도 무언가 불안감을 느꼈는지 캡틴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캡틴은 훌쩍 뛰어서 티버 위에 올라탔다. 물론 이번에는 아까처럼 ‘서서’가 아닌, 얌전하게 ‘앉아서’. 그리고 어깨에 맨 그녀를 흘끔 바라봤다.
 
“뒤통수에 뭐가 안 날아오나 잘 봐달라고. 두 번은 사양하고 싶으니까.”
 
“?”
 
눈썹을 물음표로 만드는 에델린. 하지만 캡틴은 가타부타 더 말을 잇지 않고 티버를 출발 시켰다. 티버는 눈살을 한번 찌푸린 뒤 크르릉 거리는 울음소리를 내며 포탄이 떨어지는 램버스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역사의 장소는 실시간으로 폐허로 변해갔고, 뱃사람은 소녀를 업고 곰에 올라탄 채 노래를 흥얼거렸다.
 
“요호~요호~요호~ 어쨌든 수평선. 우린 그곳으로 나아간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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