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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마 트와이스

강철허수아비 2012.08.08 14:47 조회 수 : 4

 

"그러고보니." 소파에 앉아 모닝 커피를 홀짝이며, 신문을 읽고 있던 트와이스가 말했다. "여기 후유키 시에 초대형 카지노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으응─?" 길게 늘어지는 말꼬리. 아침에 약한 이브의 대답이다. 반사적으로 대답을 했을 뿐, 실제로 말의 의미를 이해한 것은 아닐 테지. 힐끗 침실께를 보니, 눈도 아직 덜 뜬 젖먹이 아이처럼 무방비한 모습으로 침대에 몸을 완전히 내맡기고 있었다. 아침햇볕을 받아 윤기가 도는 피부가 눈부시다. 밤의 깊은 색이 깃든 흑발과도 멋진 대비를 이룬다. 한숨에 가까운 감탄을 입 밖으로 내곤, 트와이스는 다시 신문의 활자로 시선을 돌렸다.

 

"한 잔 더 드릴까요?"

 

곁에서 들려오는 권유. 말없이 잔을 기울이자 달 빛깔 머리색의 소녀가 미소를 담아 잔을 채워주었다. 식히지 않고 그대로 들이킨다. 아르는 언제 어디서건 상대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으니까. 맛을 극상으로 우린 것은 당연하고, 온도 또한 곧바로 마실 수 있는 최적온도로 맞추지 않으면 오히려 본인이 못 견뎌한다. 어느 정도냐면, 네 명이 마실 차를 각각 끓여 온도까지 각자의 취향에 맞춰 달리 내놓을 정도다. 트와이스는 커피(블랙), 버서코는 홍차(브랜디 첨가), 이브는 최근에 맛을 붙인 녹차. 그리고 아르는 차이. 과연 인도 출신이다 (의미불명).

 

3인용 소파에 드러누운 버서코에게 아르가 차를 건네자, 촉수가 대신 찻잔을 건네받았다. 다른 촉수가 항상 감사하다는 듯이 그 끝을 살며시 숙이자, 아르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여 답례했다. 이 무슨 초현실적인 광경이람. 버서코는 비척비척 상반신만을 세우며 하반신을 끌어당기고 차를 입으로 옮겼다. 반쯤 트와이스에게 기대는 듯한 자세가 되었지만 둘 모두 신경쓰지 않는다.

 

찻쟁반을 두 손으로 모아쥐고 그 광경을 어딘가 흐뭇한 눈초리로 바라보던 아르가 말했다.

 

"그럼 슬슬 이브를 깨우도록..."

 

커피잔을 든 손을 저어 만류한다.

 

"아냐. 좀 더 자라고 놔 두지. 어차피 어제 트와이스가 먼저 잠든 후에도 한참 더 마셨을거라 생각하는데."

 

아르가 씁쓰레한, 반쯤 체념한듯한 웃음을 지었다. 안 봐도 뻔하다. 이브는 의외로 호주가니까.

곤란해하는 아르는 제쳐두고, 버서코와 거진 승부하는 기세로 마셔댔겠지.

 

"그래서 어제의 승자는 누구였나?"

"글쎄요? 저도 중간에 필름이 끊─ 크흠. 자릴 떠서 잘은. 마지막에 촉수가 흡수하는 건 반칙이라느니 뭐라느니 하며 다투던 모습은 기억납니다만."

"필름이 끊기고도 제일 먼저 일어나서 모닝 티 준비를 했단 말이군."

 

묵묵부답. '그 이상 캐묻지 말아주세요─' 라고 쓰여있는 듯한, 눈도 귀도 입도 꽉 닫은 새침한 표정을 짓는 아르.

 

"...귀엽군."

"에!? 에!? 지금 뭐라고!?"

"아니, 아무 말도 안 했다."

 

서번트의 청력으로 못 들었을 리가 없지만 그렇다고 해 둔다. 홍당무처럼 달아오른 얼굴이 그 머리색과 대조되어 벌겋게 떠 보인다. 과연, 과연. 에어새신이 남들 괴롭혀대던 기분을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로군.

 

그때껏 멍하니, 저혈압이나 빈혈끼처럼 휑한 표정만 짓고 있던 버서코가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건 명실상부한 내 승리야. 피부를 통한 알코올의 직접 흡수나 다름없는데 어드밴티지를 적용시켜 줘야지."

 

그에 대한 트와이스의 대답은 심플했다.

 

"버서코. 혹시 술이 덜 깼나? 숙취가 괴롭다면 해소제도 있다."

 

버서코는 잠깐 씨근거리며 뭔지 모를 말을 중얼거리다 이내 다시 입을 다물었다.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아르의 표정이 싱숭맹숭하게 변하는 걸 보면 못 들었어도 상관없는 말이로군.

 

"그리고..." 다시 화제를 처음으로 돌린다. "오늘 밤에도 늦게까지 잠들 수 없을 테니, 지금 자두는 편이 좋겠지."

"음, 그 말씀인 즉...?"

"소문의 카지노에 가볼까 해."

"하지만 괜찮나요? 제 입으로 말하기도 뭐하지만, 이브는... 저, 대단히 자유분방한 사람입니다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단 쪽이 옳지 않아?"

"뭐, 그렇지."

 

버서코의 반론에 트와이스가 아무렇지도 않게 동의했다.

 

"그러니까 일정을 미리 정해놓으신다고 해서 이브가 같이 행동할지는...?" 의문형.

 

확실히 성실한 아르로서는 이브의 의향을 다 파악하기란 힘들겠지. 그러나─

 

"아니, 갈 거야."

"네?"

"이브는 도박을 죽을 만큼 좋아하거든."

 

인간의 오만가지 소망과, 칠정육욕 모두가 하룻밤 새에 꿈결처럼 낱낱이 드러나는 그 군중극을 이브는 너무나도 사랑하거든.

카지노란 이름의 무대 위에 설 배역으로 이브 이상의 주연을 찾기가 더 힘들걸.

 

그 이상 말없이 커피를 들이키는 트와이스를 잠깐 모르겠단 얼굴로 보다, 아르는 그냥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꾸벅였다. 저와는 쌓아올린 시간이 다르다는 것이겠지요. 왠지모를 시샘이 고개를 살짝 드는 걸 느끼곤 피식 웃은 뒤, 아침식사를 준비하고자 조리대로 돌아가는 아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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