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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씬 관련

Sigma 2012.08.04 14:39 조회 수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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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두어 걸음 하늘하늘 물러났다. 제 몸에서 흘러나온 염료로 물드는 케이프 코트에 샘의 진원지처럼 검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무채색의 옷을 적시고 소매를 넘어 손가락 끝으로 뚝뚝 방울져 떨어지는 피가 놀랍도록 선명하다.

  그것의 회색빛 눈이 크게 뜨였다.

  그것은 제 오른쪽 어깨를 감싸쥐며 허물어지듯 상체를 숙였다.

  빗나갔군. 아엘리온은 냉정하게 상황을 살폈다. 노린 것은 심장부근이었지만 표적이ㅡ본능이었는지, 단순한 요행이었는지ㅡ몸의 방향을 튼 탓에 총알은 어깨에 박혔다. 아엘리온이 그 부상이 당장 목숨이 끊어질 정도의 치명상이 아니라고 판단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요행이라고 해야할까, 표적의 의식은 기습과 통증으로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사실 그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옷차림새와 얼굴로 추정컨대 표적의 나이는 많아야 십대 후반이다. 분쟁 지역에서 살았거나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았다면 쉽게 평정심을 되찾을리 없었다. 그리고 표적이 둘 중 하나라도 해당될 확률은 현저하게 낮았다.
  물론 총알은 물리적 충격 뿐만 아니라 정신적 충격으로도 상대를 죽이거나, 하다못해 일시적으로나마 기절시킬수도 있다. 아엘리온은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될지 자신할수 없었다. 그러나 아엘리온은 그것이 공황 상태에서 빠져나와 반응을 보일 때까지 기다리는 바보짓은 하지 않기로 했다.

 

 

 

  "……."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했는지 그것은 몸을 들어 아엘리온을 바라보았다. 회색 테 속의 동공이 그의 황색 눈을 똑바로 담았다. 공황과 고통 위에 체념과 분노가 어리고. 그리고,
  아엘리온은 방아쇠를 당겼다.

 

 

 

 

 


/2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송이는 마치 나비 같았다. 유우는 손을 내밀어 눈을 받기 위해 가볍게 움직였다. 하지만 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눈은 자꾸만 닿을듯 닿지 않을듯 손바닥을 스치기만 했다. 유우는 눈을 찡그리고 계속 손을 움직였다. 수회의 시도 만에 겨우 손바닥 위에 눈이 닿았다. 유우는 빠르게 손바닥을 끌어당겼으나 눈송이는 그 사이에 녹아 물이 되어 있었다. 유우는 잠시 물기를 보다가 손을 옆으로 세웠다. 물이 주르륵 손금을 따라 흘러내렸다.

 

 

 

  "눈을 처음 보는 것 같구나."

 

  "아, 랜서."

 

 

 

  유우는 빙글 몸을 돌렸다. 어느샌가 랜서가 뒤에 서 있었다. 랜서는 빙긋 웃으며 들고 있던 케이프 코트를 내밀었다. 유우는 그것을 받아들어 몸에 둘렀다. 목부분을 좀 더 여미기 위해 리본을 묶고 그녀는 다시 랜서를 보았다.

 

 

 

  "처음은 아니예요. 그렇게 보였어요?"

 

  "음. 석상이 되어버리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눈만 보고 있길래, 혹시나 해서 말이다."

 

 

 

  유우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창피함과 당혹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랜서는 껄껄 웃었다.

 

 

 

  "농이었느니라."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랜서는 버드나무 가지 같은 눈썹이 비스듬히 서고 입술이 삐죽이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소환 직후, 더 정확히는 성배 전쟁이 시작하기 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전날 낮에 그가 세이버와 그의 마스터를 그냥 남겨두었던 일이 조금 심대한 영향을 미친 듯하다. 물론 오스만의 장엄제답게 랜서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품위 있게 넘어가기로 했다. 랜서는 말했다.

 

 

 

  "…뭐, 그건 그렇고. 정말 학교에 갈 생각인게냐?"

 

 

 

  유우는 표정을 금방 거두어들였다. 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계속 신경 쓰여요. 학교에 마력이 남아있다는 건 그곳에 마술사가 있다는 뜻이겠지요. 지금 후유키에 있는 마술사는 마스터일 확률이 높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그 사람이 원래 이 곳에 있던 보통 마술사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건 토지관리자에게 문의하면 되지 않느냐?"

 

  "그것도 생각해 봤는데, 아무리 토지관리자라도 그 사람이 마스터인지는 모를것 같아서요."

 

  "흠, 그도 그렇구나. 하긴 비밀로 하면 그만이니 말이다."

 

 

 

  랜서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수긍했다. 하지만 랜서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허나 그 사람이 보통 마술사라면 모를까, 마스터라면 혼자 가는 것은 위험하지 않겠느냐."

 

  "잠깐 확인만 하고 올게요."

 

  "확인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느니라. 싸우게 되면 어쩌려고 그러는게냐."

 

 

 

  유우는 입을 다물었다. 이리저리 떠다니는 눈을 바라보던 유우가 갑자기 말했다.

 

 

 

  "그 경우엔 싸워야겠죠. 저도 '마스터'중 한 사람이고, 계속 피할 수는 없을 테니까. 정 안되면 령주도 있고요.
  …게다가 오늘 이브 대목 기대하고 계셨잖아요."

 

 

 

  랜서는 원래 하려고 했던 말을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랜서는 그 말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리기에 앞서 잠시 동안 청각에 문제가 있던게 아닌가 진지하게 고찰해보았다. 내리고 있는 함박눈이 소음을 덮어 세상은 고요했다. 어쩌면 정말로 귀에 문제가 생겼을지도…….

  ……무리였다. 랜서는 그냥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 그의 마스터는 그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서 혼자 가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랜서는 이마를 짚었다.

 

 

 

  "짐의 마스터들은 다 왜 이럴꼬. 보다 보면 줄 위에서 걷는 것 같아서 위태위태 하구나."

 

  "……?"

 

 

 

  유우는 고개를 들어 랜서를 올려다보았다.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이었지만 랜서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유우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유우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가볍게 톡톡 누르면서 랜서는 말했다.

 

 

 

  "그렇게 의견이 확고하니 더 이상 말리지는 않으마. 다만, 짐의 말은 들어줬으면 좋겠구나."

 

  "에… 뭔데요?"

 

  "기습을 조심하거라. 특히 저격 받지 않도록 주변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도록 해라. 만약 총알이 날아오거든, 맞든 맞지 않든 바로 령주를 써서 짐을 불러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그렇게 눈으로 말하며 랜서는 손을 떼고 유우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또다시 입술을 삐죽이고 있을 것이라는 랜서의 예상과는 다르게 유우는 생소한 상황에 처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랜서가 이유를 묻기 전에 유우는 퍼뜩 정신이 든 듯 싱긋 웃었다.

 

 

 

  "그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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