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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 끼적끼적

로하《이브》 2012.08.01 14:12 조회 수 : 0






옛날 옛적에, 하얀 이가 있었습니다. 까만 이가 있었습니다.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이들은 어느 날,

무언가를 떠올렸습니다. 이상적인 인형을 만들어보자. 가장 완벽한 인형을 만들어보자. 



하얀 이는 말했습니다. 색욕의, 식탐의, 질투의, 탐욕의, 나태의, 교만의, 분노의 감정이 없는 완벽한

마음을 주겠다고. 그러자, 까만 이는 지지 않겠다는 듯 대답했습니다. 자신은 하늘의 천사들조차도

부러워할 영원한 아름다움을 주겠다고. 하얀 이가 잠시 말을 멈추자, 잔뜩 뽐내며 까만 이가 덧붙였

습니다. 나는 이 인형에게, 자신만큼의 재능을 주겠노라고. 이제 지혜와 선함과 미를 갖추게 된 

인형을 보고, 하얀 이는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가족을 주자. 누구보다도 이 

아이를 잘 이해하고, 꼭 닮은, 그런 형제를 주자. 세상에 단 하나뿐인 보물을 주자.



그들은 내기를 했습니다. 이것은 실험이면서 또 도박. 이 인형의 결말을, 이 인형의 선택을. 누구의 선물이

선택받을까.



───그리고, 멀리 흰 도성이 내다보이는 모래 사막에서. 동생의 손을 꼭 잡은 채의 소녀가 서 있었습니다.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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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1891년』『프랑스』『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약간 떨어진 곳. 언뜻 보기에는 파리 오페라 하우스를 닮은 저택은 이미 하늘이
짙푸른 쪽빛으로 가득 찼음에도 환하게 빛났다. 촛불도, 전기도 눈부실 정도로 어둠을 수놓고 있었다.
멀리 물랑 루즈에서 울려퍼지는 음악소리가 희미하게 맴돌 것만 같은 그런 야회의 밤.


시선의 중심에서, 소녀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희미한 미소를 띈 얼굴로, 적당히 모든 이들의 말에
맞추어주며. 그 자리의 어느 누구도 소녀를 몰랐지만, 애당초 이 세상에서 중요한 건 그런 것이 아니다.
풍요와 문명과 빛으로 가득찬 이 시대에. 모르는 이들도, 파티에서 처음 만났음에도 십년지기처럼
서로를 대하는 이 시대에. 아름답고 영리하고 우아하다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으니.


"──────"


그런 휘황찬란한 조명 밑에는 시선 한 번 던지지 않고, 소년은 테라스 구석에 걸터앉은 채 멍하니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털썩, 옆에 누군가가 앉는 소리가 났지만, 표정에는 미동조차 없었다.


"안녕?"


".........."


"여기서 뭐 해?"


".........."


작은 체구의 소년은 여전히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언뜻 보기에는 그저 멍해보일 뿐, 물론 제대로 본다면
그 작은 얼굴을 무표정하게 굳힌 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두어 마디 말을
걸었던 소녀 역시 그 사실을 눈치챘는지, 작은 미소를 흘리며 가만히 고개를 돌렸다. 잠시 침묵.


"트와이스에게 무슨 볼 일이 있나?" 


아무런 말도 없으면서 가만히 앉아 있는 소녀를 '인식'은 한 것인지, 그녀는 살짝 놀랐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지금 소년의 말에서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재미있다는 듯 살풋 웃으며 입을 열었다. 


"헤에, 완전히 자기 세상에 빠져 있는 줄 알았는데. 그렇게 생각한 걸 사과할게." 


묵묵부답. 


"───흐응. 그럼, 다시 질문 : '트와이스는' 여기서 뭘 하고 있던 건지 물어봐도 될까?"


소년은 물끄러미 소녀를 쳐다보았다. 에메랄드빛 눈동자에, 뜻모를 미소를 띈 푸른 눈이 오롯이 담겼다. 


"트와이스가 하는 일은 오로지 하나다. 언제나, 그렇다." 


"그래? 그럼 트와이스가 하는 일이 뭔지 궁금한데. 알려줄 수는 없을까?"


소년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살짝 고개를 갸웃한 소녀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고개를
돌릴 즈음, 툭, 한 마디를 내뱉었다.


"───너는 마술사인가?"


소녀는 하늘빛 눈동자를 몇 번 깜빡였다. 흐응, 하며 무언가를 곰곰히 생각하는 듯 했던 소녀는 서서히, 조금 고개를 
기울이며 대꾸했다.

    피에로
"『기술사』의 의미로서도. 『과학으로도 가능하지만 그 방식이 다른 수단』의 의미로서도. 어느 쪽으로 물어봤는지는 
모르겠지만. 둘 다 맞아. 아니, 셋이라고 해야 하나? 아, 아니구나. 그건 '마술'이 아니니까."


보통 사람이 듣기에는 그저 수수께끼 같은 소리였지만 소년은 무엇인가를 납득한 것 같았다. 마지막에 덧붙인 말에서,
희미하게 한 쪽 눈을 찌푸린 것 같았지만.


"트와이스는 마지막 말의 의미를 알 수 없다."


"음...? 아아, 괜찮아. 모르는 게 당연해. 뭐랄까, 나도 처음에 저 마술이란 걸 알게 되었을 때 그랬으니까. 어째서
마력이 소모가 된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거든. 그런 건, 숨을 쉬듯 자연스레 몸에서 도는 게 당연하잖아? 정말로,
놀라울 정도로 너무나 다른 개념이었는걸."


"트와이스는 네 말을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면 너는 그것을 소모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소모라는 개념이 없으니까. 아마도 정답. 내게 있어 그건 숨 쉬고 살아 있으면 자연스레 알아서 유지되는
존재인 걸. 뭐, 어느 정도 내가 '의식적으로', 즉. 일부러 컨트롤 할 때도 있지만."


소년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서서히 한 마디를 내뱉었다.


"너는 『무엇』인가?"


"어라. 나, 무엇 취급 받은 걸까? 후후, 별로 상관 없지만. 글쎄──무엇일까. 생물학적인 구조로 따져본다면
아마도 인간이겠지?"


"너는... 그렇군."


소년은 약간, 망설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니, '망설인다'보다는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이 더 어울리는
표현일까. 어린 아이의 말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무미한 어조로, 천천히 덧붙였다.


"그렇군. 그래."


흐응. 소녀의 눈동자가, 서서히 빛을 담기 시작했다. 저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보다도, 네가 더 재미있을
것 같아. 물론 고갱 같은 사람들도 나쁘지 않았지만. 예술가 타입 중에선 그들보다 훨씬 더 독특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렇지만, 너는 아니야. 응, 그래.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여태까지 봐 왔던 사람들 절대 다수에 비하면 
'완벽하리만큼' 다른 존재라고 생각해. 어느 방향인지는 모르겠지만.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 의미는 이해했다."


"헤에. 의외인 걸. 물론 이 정도나마 알려줬던 적도 손에 꼽을 정도지만. 뭐, 아무래도 좋을까. 별로 재미 없는
이야기니까."


폭 한숨을 내쉰 소녀는 일어나 지나가던 사용인이 든 쟁반에서 조금의 핑거푸드와 샴페인 한 잔을 집어들었다. 
구두 따윈 마치 신지 않은 것처럼 춤추듯 돌아와, 소년이 앉아 있던 테라스에 다시 살짝 걸터앉았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 같던데. 따로 저녁 식사를 한 게 아니라면 조금 먹는 게 좋아."


귓가에서, 네가 그걸 말하냐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녀는 철저히 무시했다. 방긋 웃으며
내민 손끝에서 작은 접시를 받아든 소년은 기계적으로 음식을 입 안으로 옮겼다. 정확히 다섯 입으로 동이 났지만,
초시계로 재도 오차가 없을 만큼, 마치 딱.딱.하는 초침의 소리가 들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후아. 이제 좀 시원하고 조용하고... 훨씬 낫구나."


파티를 즐기기 위해, 그 중심이 되기 위해 살았다고 해도 믿을 법한 모습이었건만, 본인은 그다지 즐겁지 않았던
것일까. 오히려 지겹다는 듯한 얼굴로 소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희미한 음악 소리가 닿았고, 환하게 밝혀진
밤의 도시만이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여긴 '아직도' 별이 많네───"


여전히 아무런 대꾸도 없이, 아니. 듣고 있는지조차 모를 반응이었지만 소녀는 신경쓰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그 편이 더 낫다는 듯, 툭툭 말을 뱉을 뿐.


그래. 여긴 아직도 별이 많아. 그러고보니...
벌써 그만큼 되었네. 아직도 정말로 엊그제 같은데. 


밝게 웃던 아이들. 
모든 것이 끝나가던 땅.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
다른 것들로 가득했던 세계.
그리고 황금빛 풍요로웠던 그 너른 땅에는───


상념을 지우듯 눈을 감았다. 서서히, 나비가 깨어나듯 파들거리며 눈꺼풀을 들어올린 그녀는, 평소의 목소리로
아무렇지 않게 내뱉기 시작했다.
 

"아아. 나는 도시 자체로서는 로마, 정확히 말하자면 바티칸이나 피렌체도 상당히 좋아하지만, 역시 가장 밤이
아름다운 건 여기구나. 그렇지 않아? ...음, 뭐. 대답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확인하듯 물어본 소녀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한 마디를 덧붙였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웃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정말로 대단해. 『아무런 힘』도 없는 보통의 인간들이 이만큼이나 이루어냈어. 하나하나의 작은
개미들이 영겁의 시간을 거쳐 일구어낸 결과물이라면, 진심으로 경탄해야 마땅하겠지."


어쩐지, 당신과 같은 인간이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빤히 쳐다본 소년을 보며 그녀는 오히려 어째서 그렇게
묻냐는 듯 작게 꺄르르 웃었다. 유쾌해서 어쩔 수가 없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설명했다.

                                                                    잠재력
"음? 아하하, 이상할 건 없어. 난 천재는 좋아하고, 재능은 사랑하고, '별난 것' '재미있는 것' '신기한 것'은 누구보다도
즐기는 사람.. 말하자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는 실격감이지만 피땀 흘려 노력한 것에 대해서는 나름의 경외심
정도는 가지고 있는 걸. 뭐랄까, 그것 또한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일종의 실력이니까."


──그리고, 나는 결코 그런 것을 할 수 없을 테니까. 그 끝이 보이지 않는 푸른 눈동자의 소녀는 결론을 내듯 중얼거렸다.
마치 연극 무대에 선 것마냥, 우아하게 허리를 굽히는 동작까지 해 보이며. 소녀는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고 화려하게 미소짓는다.


"───무엇보다도, 그리 오랫동안, 그리 노력한 배우들에게 칠 박수를 아껴서야, 좋은 관객도 좋은 감독도
될 수 없잖아?"


잠시금, 소녀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다시 조곤조곤 내뱉었다. 언뜻 듣기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소년에게
소녀 혼자 계속 말하는 광경으로 보였겠지만, 자신의 말을 흘리는지 듣는지조차 모를 만큼 바보같은 소녀는
아니다. 그리고, 자신의 말에 일말의 가치도 부여하지 않고, 그냥 완벽하게 흘려듣는 상대에게 반응이 바뀌지도
않을 말을 계속해서 떠들만큼 남을 완전히 무시하는 인간은 아니다. 일단은.


"...단지 조금 안타까운 건, 저 정도로 살아왔어도 대부분 인간의 소원이 불로장생이나 부귀영화 따위에 한정
된다는 점이겠지. 아마, 그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기에 겨우 그 정도를 꿈꿀 뿐이려나. 우물 속 개구리란
말이 딱 어울리는 걸. 무엇, 길어봤자 한 백 년 살고 환생이든 사후세계든 소멸이든 하여튼 '자신'으로서의
의식을 잃어버린다면 그 정도가 적당히 좋을지도 모르지만."

                   부러운
아아. 그래도 안타까운 일이다. 어찌보면 연민. 이브로시아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기에 그에 대한 나름의 보상을 받는 걸까. 앞으로 이어질 세상의 한
디딤돌로. 정확히 말하자면 그 안의 티끌과 같은 작은 존재겠지만."


그렇지만 그 대신, 대부분은 다들 자신을 잃어버리지. 허황된 것이라고 치부하고는 꾸던 꿈을 잃고, 어느샌가
'자신' 대신 '사회의 일부'란 개념으로 살아가는 것이 대다수. 특히, 여기에서는.


"──근원이라던가 하는 것도, 의외로 알고 보면 별 것 아닐지도 몰라. 사실 개인적으로는 그것에 그만한 
가치를 두어야 하는지 의문이니까. 마술이란 것에서도, 아예 알고 있던 상식을 뒤집어 엎는다는 방식으로는
왜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일까. 새로운 것을 창조했다느니, 파격적이니 뭐니 해도, 결국은 룰에 얽매여 있는 게 
절대 다수인 걸. 뭐, 그렇게 계속 노력하면 먼 언젠가엔 목표를 이룰지도 모르겠지만."


운이 없다면 다람쥐 챗바퀴마냥 끝날지도 모르겠지만 말야. 소녀는 가볍게 덧붙였다. 


"그래도, 역시 조금 궁금하기는 할까. 한 세상이라는 게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그렇군. 하지만 무의미하다."


소년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브로시아는 흘끗 소년의 녹색 눈동자를 쳐다보았다. 끝까지 말 없을 
거라고는 생각치 않았지만. 예상보다는 빠른 대답이다.


"헤에. 그럼 트와이스 군이 바라는 건 뭘까?"


그녀는 무언가를 떠올리려는 듯 살짝 미간을 좁혔다가 풀고는 물었다.


"너도 제 6법이란 걸 추구해?"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에 준하거나 비슷하다." 


이브로시아는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재미있는 아이.


"흐응. 그게 다는 아닌 것 같은데?"


"뭘 묻고 싶은 거냐."


소년─트와이스는 살며시 왼쪽 눈살만을 찌푸리고는 답했다. 어린아이에게는 절대로 상상도 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애초에, 왜 묻는 건가."


오히려 그 대답에 갸웃한 것은 이브로시아 쪽이었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갸웃, 조금 놀랐다는 표정을 
짓고는 이윽고 당연하지 않냐는 듯 대꾸했다.

                            알고
"그거야 당연히 '널 이해하고 싶으니까' 그렇지."


트와이스는 잠시 침묵이었다. 설마, 말문이 막힌 걸까. 그것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보통 사람의 감정이라면 쉬이
유추가 가능하지만, 이 소년은 보통의 범주에 묶기에는 너무나 다르다. 그렇기에 불과 20여 분의 시간으로 이
소년을 파악하는 것은 아직 섣부른 일.


".....그 먼 미래도, 언젠가는 더 나아갈 수 없다. 그들은, 전부. 멈추게 되어 있어."


이브로시아는 눈을 깜빡였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바보는 아니었다. 또한, 그건 누구나가
'막연히' 생각하는 당연한 사실이었으니까. 시작이 있다면 끝도 있다. ...자신에게 그게 통용되는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그 사실 자체를 갖고 이렇게 말하는 걸까.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아, 어쩌면── 이브로시아는 입을 열었다.


"너는 알 수 있니?"


알 수 있다. 담긴 선택지는 수없이 많다. 보았다. 읽었다. 들었다. 연구했다. 추측했다. 겪었다. 그 외 수백, 수천가지의 답들이
그 손을 뻗고 있지만, 이브로시아는 굳이 더 이상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완전히, '지금의' 모든 관심을. 시선을
소년에게 향했고, 그 단어의 뜻 따위는 먼저 멋대로 추측해서도 안 되고, 또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한낱 낱말일 뿐이었으니.


"그래서? 네가 원하는 것은 뭔데? 머나먼 미래의 언젠가, 인류 멸망을 어떻게든 회피하고 싶어?"


회피. 일부러 사용한 표현. 완전히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언제인지 모를 정도로 머나먼 일이라. 이브로시아는 한 번도
그런 것을 생각해본 적 없었다. 그렇기에 상당히 새롭게 느끼는 걸까. 아무튼, 이 애가 바라는 게 무엇일까. 소녀는 수만 개의
가설을 머릿속으로 짜내었다. 의식적으로 할 필요 따위는 없었다. 그녀에게 그 정도는 숨 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 그리고,
불과 수 초 만에, 말이 따라 흘러나왔다.


"아니면 너는────"


녹색 눈동자가, 약간. 아주 약간 흔들린 듯 보인 것은 착각이었을까. 아니, 그럴 리 없어. 그래, 이게 정답.  이브로시아는
가볍게 미소지었다. 이런 '인간'은 처음 보았기에, 느껴지는 것은 두근두근, 새로운 것을 보는 설렘. 그리고, 방금의 말로
그가 어떤 인간인지, 어떠한 존재인지 대강 파악했을 때에는──


눈을 내리깔았다. 


자신이 바보같다는 사실마저, 미쳐간다는 사실마저 어느 새 '잊는 척' 하는 자신을 떠올리고는 희미한 비웃음. 묘하게
씁쓸한 기분이다. 이 소년의 결말이, 어느 정도든 보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주 조금이나마 자신의 모습을 겹쳐 보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너는 너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구나, 사랑스런 우리 아가씨. 바보 같기에 가엾고, 누구보다도 빛나는 나의 인형.』


당연한 듯 나오는 답이다. 이 소년은 변하지 않는다. 또한, 그 길의 끝은 허망하게 찢어진 책장이 남을 뿐. 아니. 이브로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다를지도 몰라. '처음으로 본 이러한 타인'이다. 그 결말이 어떠할 것이라고는 99%는 예상 가능해. 하지만,
1%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인간은 대부분, 본 대로의 답을 보여주지만. 그 사실에 질릴 때 즈음에는, 반드시
그 예상을 뒤집는 이레귤러가 나와.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능력.


아니. 그가 꾸는 꿈의 답은 아마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유감스럽게도, 변할 리 없는 '사실'. 단지, 이것은 그가 어떠한 
인간으로 자랄지에 대한 호기심. 그래.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호기심일 뿐이니까. 결코, 겹쳐보지 않아. 결코, 가엾게
여기지 않아. 결코, 나는......... 살짝, 바람이 귓가를 스친다.


하지만. 그 답이 '변할 리 없는 전제'라 하더라도. 동시에 이브로시아는 자신이 바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전제'란 것을
깨뜨리고, 저 소년이 정말로 기적과 같은 확률로, 그걸 실현하지 않을까. 하는. 


『──놀랍구나. 네가 그걸 '바라는' 거니?』


아니. 나도 잘 몰라. 아마도 아니겠지. 하지만, 기왕이면 그래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 여태까지, 백만분의 일에 해당하는
이레귤러가 나왔다면. 이제 백억분의 일에 해당하는 특이한 예가 나와주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그야말로 앞으로 다시없을
구경거리니까.


『흐응, 뭐. 그렇다고 해 두자. 그래서? 그래도 저 애가 이룬다는 게, '불가능과 동일'한 것이라곤 알고 있잖아? 그 전에, 솔직히
일개 인간으로서 저런 꿈을 꾼다는 건 상당히 오만한 짓 아니야?』


시끄러워. 이브로시아는 싸늘하게 잘랐다. 아마, 신의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오만방자한 생각이겠지. 하지만, 그녀는 관찰자.
현상과는 관계 없는 기적이란 것을 만들 수 있음에도. 모든 것에 티끌보다 작은 것이라도 가능성을 보고, 미래를 보고,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그녀는───


아아. 그래. 이브로시아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할 필요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서서히
입을 열었다.


"확실히. 네 소망은 새롭구나. 보통 사람들이 그걸 알고 연상하는 반응과는 상당히 달라. 뭐, 나에게는 그 '보통의 반응'이란
것도 그다지 와닿지 않지만. 내게 중요한 건 지금, 아니면 기껏해야 미래의 10여 년 정도니까."


그것은 변하지 않을 사실. '이브로시아'는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 


오히려, 그런 그녀의 말에 눈을 깜빡인 것은 소년 쪽이었다. 무슨 말을 하냐는 듯. 어머나, 이건 설마. 부정하는 말을 예상했던
걸까. 완전히 미친 거 아니냐던가. 그런 게 가능할 것 같냐던가. 아아, 이렇게 보니까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 같잖아.
이브로시아는 나즈막히 웃었다.


"어머나,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는 얼굴이네?"


물론, 아마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전부가 '도대체 어딜 봐서 그런 얼굴이냐'고 할 만큼 변화 없는 표정이지만. 희미하게, 파악이
되기 시작했으니까. 폭, 한숨을 가볍게 내쉬고. 이브로시아는 고개를 두어 번 설레설레 저은 뒤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영문을 몰라하는 것 같은 트와이스 군을 위해 설명하자면, 나는 별로 네가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


노래하듯 감고 있던 푸른 눈을 뜨고, 이야기를 잇는다.


"생명을 가진 것으로 태어난 이상, 언젠가는 끝을 맞겠지? 물론 당장 그를 막기 위해서, 혹은 미루기 위해서 적어도 임시방편으로
3만 7251개의 방법이 있겠지만, 그래. 언젠가는 피할 수도, 미룰 수도 없는 때가 오겠지. 그리고 그게 그 때라면, 너의 선택은 
모두에게 최선이야. ───그래, 말하자면, 나는 '트와이스는 옳다'고 하는 거야."


이브로시아는 스스로에게 말하듯, 가만히 중얼거렸다.


"나는 네 생각을, 그리고 그 가치를 인정해."


너의 소원을 부정하지 않아, 이브로시아는 싱긋 웃었다. 그리고 무엇인가 떠올랐다는 듯, 아, 하는 표정을 짓고는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기왕이면, 그걸 부디 이루는 걸 보고 싶네. 확률로는 불가능과 동일하다고 보는 게 낫겠지만. 그래도 말이야."


──어디까지나 '불가능과 동일한 확률'일 뿐이잖아? 자신이 생각해도 모순 덩어리다. 자신의 말과 행동은. 
불가능이란 것을 알면서도 응원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도 소년이 그 '이룰 수 없는 것을 해내길' 바라고 있다는 걸까. 어째서?
스스로에게 의문을 가진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자신이 바라고 있다는 것도. 어느 것도 거짓은 아니다.

                 상식
"나, 그렇게 전제를 깨뜨리는 건 정말로 좋아하거든."


이걸 어쩔까, 만약 네가 그걸 정말로 해낸다면, 나. 진심으로 네게 반할지도 모르겠는 걸? 이브로시아는 키득거렸다. 


"그래도, 네가 누구인지. 구상하는 방법이랄까 계획이 뭔지, 그런 것은 역시 궁금하네. 하긴, 긍정했으니까 당연히 궁금한
것이려나?"


"트와이스는 트와이스다."


"어머나, 그거야 당연한 사실이지? 아니면 설마 이 소년, 영매 체질이라던가. 뭐 그런 거야? 그래서 트와이스가 씌이기라도
한 걸까? 에에. 이러면 완전히 유령 취급이네, 취소. 취소!"


어린아이마냥 꺄르륵 웃는 소녀가, 웃음을 멈추고는 소년의 귓가에 입을 가져간다. 무엇인가를 소곤거린다. 그리고는 다시 
몸을 제자리로 돌리고 묻는다.


"으응, 지금 내가 한 말, 혹시 정답? 상당히 포괄적인 질문이긴 했지만."


"트와이스는 네 말을 부정하지 않는다."


"헤에, 그렇구나. 뭐, 더 이상 자세히는 물어보지 않을게. 그냥 주술이라던가, 그런 특이한 방식을 사용하는 이능력자로는
보이지 않아서 물어본 것 뿐이니까. 아아, 그러니까 굳이 내게 말해줄 필요도 없어. 자세한 게 어찌 되었든, 너는 '트와이스'. 그
외에 만약 네가 다른 무언가거나, 다른 누군가여도, 지금의 나에게는 아무 상관 없으니까."


꿀과 같이 달콤한 목소리로, 이브로시아는 속삭였다.


"흐응, 그래도. 네가 구상하는 길은 제법 궁금하긴 해. 그건 '진심'이야. 그래서, 6법과 비슷한 방법이라면 무엇일까───
아, 아니지. 6법과는 '같은 맥락'이되 '유사'하지는 않고, '다르지는' 않으면서 '그 아래의 개념'도 아니라면 무얼까나..."


갸웃, 소녀는 짐짓 순진한 얼굴로 고개를 기우뚱거렸다.


"아니면, 아직 망설이는 걸까? 옳은 방법이라는 확신이, 혹은 더 나은 방법이 나오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없어서? 뭐, 아무래도
좋지만."


──아직, 세상에 어떤 인간들이 있는지 모르니까. 그래서 정확하게 실감할 수는 없다던가, 그런 걸까? 이브로시아는 중얼거렸다.


"사실 어떤 건지, 지금의 나로서는 아직 잘 모르지만. 네가 설령 아무런 문제 없이 나아갈 길을 정했다 해도 말야,
한 번쯤은 이 세상을 직접 보는 건 어때?"


검은 머리칼의 소년이 녹색 눈을 돌렸다. 무슨 말을 하냐는 듯. 소녀는 그에, 당연하다는 듯 덧붙인다.


"어쩌느니 해도 너는 이 세상의 본질에 대해선 전혀 모르잖아.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적도 없고,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간 적도 없고."


──그렇다면, 직접 보는 게 가장 좋은 답이니까.


소녀의 눈매가 홀릴 듯 휘어졌다. 새하얀 손을 내민다. 자아, 대답은? 언제까지 내 손을 무안하게 만들 셈이니? 두근두근. 
선물 상자를 뜯는 아이마냥. 돌아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하지만, 서서히. 희미하게, 이브로시아와 그리 다르지 않은 작은 손 끝이 떨렸다.
손가락을 살짝 뻗었다가, 다시 멈칫. 살짝 움츠리다가는, 다시 조심조심 펼쳐지고. 조금 움직였다가, 다시 움찔. 그리고...


작은 손과 작은 손이, 살포시 맞닿았다.









02.




"그럼, 이제 어디부터 갈까? 흐응..그래, 세상을 보여준다고 했으니까. 그냥 아예 온 세계를 다 돌아다니자! 그래도...그래,
먼저 한 번. 한 번에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좋아, 결정!"


바로 다음 날 아침이었다. 전 날 밤의 야회에서 나와, 바로 샹젤리제에서 망설임 없이 가장 비싼 트렁크 가방 두 개를 산
소녀는 파리 외곽의 리옹 역에 서 있었다. 그 옆은 작은 체구의 소년이 하나. 


"그럼. 일단, 제일 높은 곳에 가자!"


소녀는 소년을 잡아끌었다. 아쉽게도, '정석적인' 방법으로──즉, 절반 이상을 기차를 타고 가는 것은 꽤나 지루한 일임이
틀림 없지만. 그것은 몸의 문제일 뿐. 매 순간마다 바뀌는 밖의 세계를 보고 있으면,  기차 안의 수많은 이들을
보고 있으면 몇 주일 정도. 못 참아줄 것도 없다. 그녀의 삶 속에서 그 정도는, 그야말로 티끌보다도 작은 하잘것없는 존재니까.


그리고. 소녀는 손을 내밀었다. 잡아줄까? 무감각한 얼굴로 작은 손을 내민 소년을 보고 픽, 한 번 웃은 소녀는 발걸음을
옮겼다.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하얗고 하얗고 차가운 설산이거늘. 차림새는 변함 없는 가벼운 복장이었다. 한 걸음.
어떻게 한 것일까. 순식간에 그들은 까마득한 절벽 위였다. 두 걸음. 거대한 벽과 같은 새하얀 산이 바로 옆에서 스치듯
마주 보고 있었다. 세 걸음. 뽀드득. 발 밑의 하얀 바닥에서 무엇인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네 걸음. 눈부시게 빛나는
흰 새를 보았다. 헛것일까. 아니. 아닐지도. 신들의 집인데, 저 정도 관상조조차 없으면 곤란하겠지. 다섯 걸음. 바로
눈앞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강한 바람이었다. 그것에 '영향'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걸음을 멈추었다. 귀가 다소 먹먹했다. 얼음도 눈도, 마치 '화창한 날씨의 들판'을 디디고 선 것처럼 이브로시아는
미동도 없이 서 있었을 뿐이었다. 


"이제부터는, 직접 가자. 이 정도는, 걸어주어야 예의겠지."


백 미터보다는 훨씬 가깝다. 한 이삼십 미터 가량. 하지만, 이 거리를 걷지 못해 추락할 이들을 떠올리고는 슬쩍 눈을 내리깐다.
하나. 둘. 희미하게, 손짓을 한다. 순식간에, 눈보라가 강하게 귓가를 때린다. 그리고.


스무 미터. 계속 움직이고. 십 미터. 천천히 걸었고. 오 미터. 숨을 쉬기가 버거웠다. 삼 미터.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섯 걸음.
네 걸음.
세 걸음.
두 걸음.


세상이, 열렸다. 소년은, 땅에 발이 박힌 듯 가만히 서 있었다. 멍하니, 녹색 눈에 새하얀 세상이 담긴다. 까마득한 아래.
그리고 바로 옆에서 팔을 뻗는 듯 내려지른 신의 세상. 불과 몇 미터 아래까지만 해도. 폐까지 채워버릴 정도로 몰아치던
눈보라는 온데간데 없고. 시리듯 푸른 하늘. 순간의 고요. 조용히 뺨에 닿는 맑은 차가움.

                                                                                                   세상
순백과 푸른색으로 가득 차서, 머얼리 아래에 점점이 보이는 어두운 색의 바닥. 저 하늘을 날기 위해 누군가는 오만을 부리고는
땅으로 추락했고, 하지만 누군가는 곧 저 끝없는 화폭에서 인간이 춤출 수 있도록 해 줄. 이 시리도록 하얀 산을 보고 그 옛날
이 땅의 아이들은 신들을 찬양했고, 누군가는 자연에게 빌었고. 조용. 조용. 조용. 얼 듯한 고요와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함께 울린다. 흐름이 내려다보였고 세상 너머는 가까웠다. 하늘에 비는 자연의 노래. 얼 듯 차가운 호흡을 감싸안는 투명한 빛.


"...그렇군...이게...이게, 세상인가."


그런 소년을 보고, 푸른 눈동자가 희미하게 휘었다. 아아. 안타깝게도. 이것으로 정말로, 빈말로라도 '말릴 수도' 없게 되었어.
하지만, 멋지지 않니. 이브로시아는 울듯 웃었다. 휘어진 푸른 눈에, 창공이, 설산이, 한가득 녹아내렸다. 정말로 흔하디 흔한,
그런 장소지만. 저 닿는 햇살이, 춤추는 바람이, 내려앉는 공기가 너무나도 그립고, 따스하고, 그런. 그런...


멍하니, 무심코 자신은 무얼 그리던 걸까. 문득 살그머니 자신이 손을 뻗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이브로시아는 가만히 손을
내렸다. 포기한 지 오래인데. 확실히 영산(靈山)은 영산이구나. 이 정도로 흔들리게 하다니. 소녀는, 아직도 못 박힌 듯
가만히 서 있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가만히 그 옆에 걸터앉았다. 까마득한 높이에,
감각을 잃을 추위였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서늘하면서도 고요하게, 평화롭게. 침묵이 흘렀다.





03.



                                                                                                                트와이스
"음, 그럼 이제는 어디를 가는 게 좋을까...그래, 불교 사원이라도 가 보는 게 좋겠다. 너한테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해."


산 밑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마을에서,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보며 따끈따끈한 모모를 한 입 베어물던 소녀는 결정했다는 듯 
단숨에 내뱉었다. 이 세상 끝까지, 가장 높은 곳, 가장 낮은 곳, 가장 끔찍한 곳, 가장 아름다운 곳. 모두를 보여 줄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무작정 돌아다니기만 할 생각은 아니니까. 네 상태도 생각해야겠지.


"어때? 괜찮아?"


"트와이스는 상관하지 않는다. ...."


뒤에 슬쩍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다시 삼킨 침묵을, 이브로시아는 놓치지 않았다. 저 애가 나에게 할 말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아,
그녀는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리고는 잠시 고민. 무어라고 할까. 바로 몇 달 전까지 썼던 말도 안 되는 여주인공 이름을 떠올리며
가볍게 실소를 흘린다. 으응. 그래. 저걸로 하자. 푸른 눈에, 별이 담겼다.


"참, 잊고 있었네. 나는 일단은 흐음....음....그래, 아이사. 아이사라고 불러. 뭐, 원한다면 둘이 있을 때라던가는 평상시대로
불러도 상관 없지만. 주어 없이라던가, 그냥 '너'라던가. 가끔은 이름이 필요할 때도 있으니까."


"이해했다."


"아무튼, 이제는 좀 잠시 짐을 풀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계속 기차만 타고 이동했으니. 이 나라에 오자마자 바로 올라갔고.
일단, 그럼 좀 북부로 가야겠네."


이브로시아는, 멋대로 지껄이는 듯 하면서도 의도적으로 '남쪽으로 간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것을 트와이스가 알았는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아니, 어쩌면 이브로시아 본인조차 자신이 그렇게 말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이탈리아도
영국도 그녀에게는 제법 추억 깊은 땅이었지만.


"..여기서 북부로 간다면...티베트 쪽이려나. ...마을에 섞이는 것보다는 사원 쪽에서 머무르는 게 더 조용하겠지?"


그녀는 흘끗 트와이스를 보았다. 저 성격에 소란스러운 마을 한 구석에서 머무르게 되면 가는 곳마다 히말라야 눈보라를 뿌리고
다닐지도 몰라. 뭐, 그리고. 아마 대부분은 모르겠지만. 이브로시아는 간간히 있는 축제 정도가 아니면 오히려 조용한 것을
상당히 좋아했으니까.


"좋아. 결정했으면 빨리 가야지. 혹시 밤새도록 짐마차를 타고 간다면, 역시 무리일려나?"


물론, 하룻밤새 도착할 거리도 아니지만. 입가를 손으로 가리고 곰곰히 생각하던 소녀는 딱, 손가락을 튕겼다. 그래. 짐마차를 
타고 가되 짐마차를 타고 가지 않으면 되는 거야. 정확히 말하자면, 피로 같은 건 안 느껴버리면 되는 거잖아?


이브로시아는 고개를 몇 번 흔들고는 나즈막히 중얼거렸다. 한 쪽 손으로는 트와이스를 꼭 잡은 채. 좋아. 준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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