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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파인더38

2008.12.30 18:57

azelight 조회 수:408

또 잘 안써지기 시작...(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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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긴가?”

 고삐를 쥐고 마부석에 앉아 있던 야예이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세계의 지붕’이 존재하는 고대의 산맥의 앞마당인 ‘회색의 평원’에 존재하는 도시 알케스트의 끄트머리가 흐릿하게 야예이의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 월등히 좋은 시야를 가진 야예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지 옆에 같이 앉아 있던 낸시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뭐가? 어디?”

 낸시는 야예이가 같이 눈살을 찌푸려 보였지만 오랜 독서로 시력을 어느 정도 손상한 그녀로서는 무리였다. 그렇기에 야예이는 손을 들어 한 방향을 가리켰고 낸시는 그게 다 보이는 야예이가 신기하다는 듯한 눈길을 보냈다.

 “신기하다.”

 실제로 낸시가 그렇게 말하자 야예이는 “험.”하고 헛기침을 한 다음...

 “수련하면 돼.”

 라고 진지하게 말함으로서 낸시가 웃게 만들었다. “까르르르르”하고 웃던 낸시는 천막 안쪽으로 고개를 들이밀며 안에 앉아 있을 탬퍼와 로딘, 키엘리니에게 알케스트에 거의 다 왔음을 알렸다.
 그 동안에도 야예이는 알케스트를 주시하고 있었다. 전성이자 슬픔의 성채이며 겨울의 도시라고 불리는 란도스와는 달리 미관적으로 훨씬 깔끔하고 훨씬 밝게 보이는 도시였다. 야예이는 그런 색다른 분위기에 재미있어하며 도시의 외관을 감상했다. 물론 그는 이 색다른 분위기가 사실 평범한 분위기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런 평원에 서있는 저런 성의 모습은 그에게 있어 무척 낯선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그가 지금까지 본 성이라고는 먼발치에서 한 번 본 노르윈과 란도스 뿐이었으니까.
 그렇게 야예이가 색다른 감상을 가지고 알케스트를 바라보고 있을 때 마부석 옆에 앉아 있던 낸시는 다른 의미로 알케스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협회의 마법사로서 타크라탄에 대한 보고의 의무를 그녀가 져야하기 때문이었다. 힘든 일은 아니었지만 꽤나 귀찮은 일이었다. 협회의 전용 용지에다가 보고서를 작성하고 질의를 하려면 꽤나 많은 절차를 거쳐야하기 때문이다. 아니, 그전에 협회의 마법사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부터 상당히 엄중한 절차를 요구한다. 몇 개의 암호와 손짓, 마법적인 신호와 인증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그부터가 상당한 귀찮음을 수반하게 되는 일들이었다.

 “아, 이제 보이기 시작한다.”

 낸시는 점점 다가오는 알케스트를 보며 휴식에 대한 기쁨과 보고에 대한 귀찮음이 뒤섞인 불균형적인 감정으로 빠져 들어갔다. 보는 이가 웃기 좋아 보이는 불균형적인 표정을 만들어 보이고 있는 그녀를 보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점이 상당히 아쉬운 일이었다. 동석하고 있는 야예이의 경우에는 처음 해보는 마부 노릇에 주변에 할애할 주의가 부족한 상태였고 나머지 일행들은 나 마차 안에 있었으니 말이다.
 낸시는 절묘한 좌우비대칭의 표정을 지으며 머릿속으로 보고서의 내용을 정리하고 협회의 인증 방법과 절차들을 되새겼다. 아마 협회로 찾아 가는 것은 여관을 잡은 이후가 되겠지만 지금부터 미리 되새겨 나야 그나마 실수를 안하게 될 것이다. 협회의 절차는 워낙 까다롭고 수가 많아 어지간히 노련한 자라도 한번쯤은 실수를 하게 되어 있었고 실수의 대가는 더 긴 절차와의 조우였다. 그러고 나면 남는 것은 끔찍한 피로감과 두통뿐이다. 워낙 사칭이 많기 때문에 그런 인증 절차가 생긴 것이겠지만 이래서야 사칭하는 자를 잡기 위한 것인지 그냥 협회의 건물을 오가는 모든 마법사들을 잡으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결국 낸시의 좌우비대칭 표정은 알케스트의 경비병들이 가까워짐에 따라 누구의 눈에도 띄지 못하고 평상시 모습으로 돌아갔다. 적어도 자각은 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알케스트는 란도스와는 달리 통행세를 걷지 않았다. 야예이는 어리둥절했지만 그런 것은 각 지방을 다스리는 영주에 따라 틀리다는 이야기를 탬퍼에게서 듣고는 납득했다. 검문역시 중요한 군사적 요지인 란도스와는 차이가 있는 모양인지 훨씬 간소했다. 무장인원이 다섯이나 들어가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간소한 검문인지라 야예이로서는 조금 불안할 지경이었다.

 “검문이 너무 간소한 것이 아닌가 싶군.”
 
 야예이가 말하자 낸시는 귀를 쫑긋 세웠다. 아까 “수련하면 돼.” 이 후로  야예이가 처음 꺼내는 말이었다. 조용히 있는 것을 좋아하는 야예이와는 달리 수다쟁이 본성을 지닌 낸시는 야예이가 말을 꺼내자 반가운 듯이 대답했다. 어지간히 심심했나 보다.

 “란도스랑은 틀리지? 란도스는 군사요충지였지만 여기는 그냥 상업 도시 거든. 오가는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고. 아까 뒤에 줄서있던 사람들 봤어?”

 야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간소한 거야. 꼭 필요한 것들만 하는 거지. 안 그러면 저 사람들이 도시로 다 들어가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어. 대신 도시 내부에서 사고 치면 얄짤 없어. 벌금도 엄청나고. 인구 대비 경비대의 수도 다른 도시보다 훨씬 많아.”

 낸시는 그러면서 여기저기 인파들 속에 섞여 있는 경비병들을 가리켰다. 야예이는 타고나느 예리한 시야 덕에 그들을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도 엄청난 인파다. 야예이는 현기증이 일 것 같은 사람들의 수에도 감탄했다. 그리고 지금 주변을 살필 여력이 없다는 사실에 아쉬워했다. 그는 지금 마차로 사람을 치지 않는 것만을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었다.
 그 때 구원이 나타났다. 탬퍼가 마차 안에서 마부석으로 나오며 교대해준 것이었다. 그리고 지도를 보며 길 안내를 해야 하는 낸시와 마차를 모는 탬퍼 외에는 마부석에 앉을 수 없었기 때문에 야예이는 천막을 들치고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담요로 몸을 감싸고 앉아 있는 로딘과 마차 뒤편의 천막을 열고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 키엘리니의 모습이 보였다.

 “어땠나? 처음 몰아 본 감상은.”

 바위같이 앉아 있던 로딘이 야예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타크라탄과의 전투 이후 아직 몸이 약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로딘은 어떤 일을 할 수도 없었다. 그는 낸시가 온기를 부여하는 마법을 걸어줘야 했고 식사하는 시간을 빼면 대부분의 시간을 담요 속에서 지내며 온기를 보존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뼛속까지 시리게 만드는 마법적인 냉기에 고통을 느꼈다.
 덕분에 그는 현재 어떤 잡일도 하지 않고 있었다. 로딘은 그 사실을 미안해하는 듯했다.

 “아직은 모자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몸은 좀 나아 졌습니까?”

 야예이가 묻자 로딘은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일방적이었을 것임이 분명한 패배와 약해진 육체가 그에게서 기력을 앗아간 듯 보였다.

 “괜찮아. 낸시의 말로는 알케스트에 있는 마법사 협회에서 원기분쇄를 시도해 볼 거라고 하더군. 잘 끝나면 괜찮아 질 거야.”

 “다행이군요.”

 “다행이지.”

 로딘은 그렇게 대답했다.
 키엘리니가 복원의 기도를 올렸지만 로딘의 몸은 결국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타크라탄에게서 전염된 강렬한 음기가 그의 육체에 여전히 잔류해 있는 것이다.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겠지만 모험가인 로딘으로서는 재기불능에 가까울 만큼 치명적이었다. 키엘리니는 제대로 정양을 하고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다행히 낸시가 협회에서 조치를 받으면 바로 제기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로딘으로서는 꽤나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야예이는 자리에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고 어색한 침묵만이 남았다.
 그 덕에 야예이는 말재주가 없는 자신을 탓했지만 로딘 역시 별로 더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지 눈을 감고는 고개를 앞으로 숙이고는 졸기 시작했다. 그는 몸이 약해진 이후 잠이 상당히 늘어났다. 피곤을 빨리 느끼는 것도 그렇지만 키엘리니가 회복을 위해 이런저런 기원을 걸어두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신체의 회복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강제적으로 잠에 빠져드는 것이었다.
 야예이는 로딘이 잠드는 것을 확인하고는 키엘리니 쪽을 보았다. 키엘리니는 천막을 덮고 오히려 야예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드셨나 보죠?”

 야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키엘리니는 양 다리를 모아 앉고는 바람이 불어오는 틈을 몸으로 가렸다. 원래라면 항상 이렇게 하고 있었겠지만 로딘이 바깥을 보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천막을 열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키엘리니는 이상한 곳에서 고집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곧 그런 사람이라고 이해했다. 오히려 걱정을 하는 것을 더 모욕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데 로딘이 그런 부류의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다. 자존심 강하고 굳히는 것을 싫어하고 자신의 능력에 자신이 있는...
 눈앞에 있는 야예이와는 반대라고 생각했다. 야예이는 자신이 없고 사람을 두려워하면서도 가까이 하고 싶어 하고 능력을 굳이 보이기보다는 숨기려고 하는 편인 사람이었다.
 물론 두 사람에는 말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키엘리니는 그렇게 생각하며 야예이에게 위로의 말을 건냈다. 그가 뭔가 걱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로딘과 대화를 나눴으니 아마 로딘에 대한 것이지 않을까하고 짐작했고 그에 맞춰 꺼낼 말을 짜냈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요. 일시적인 것일 뿐이니까요. 그의 자신감도 약해지긴 했지만 그 역시 육체가 회복되면 다시 돌아올 거예요.”

 “알고 있습니다.”

 야예이는 조금 심드렁함을 담아 말했다. ‘어라... 이게 아닌가?’하고 키엘리니는 야예이의 반응을 보고 생각했다. 그녀 역시 감정을 읽어낼 뿐 그 진실 된 심중까지 일어내는 것은 아니다 보니 실수를 할 때도 있긴 했다.
 애초에 야예이의 고민은 그런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로딘을 걱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는 최근 자신의 일에 대해 더 큰 고민을 안고 있었다.
 키엘리니는 여전히 그가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었기에 뭐라 말을 해보려고 했지만 그 전에 야예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런데 그 타크라탄인가? 마법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요?”

 꽤나 예상외의 질문이었기에 키엘리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는 그의 곁에 바로 붙어 있었기 때문에 그가 낸시와 나누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낸시도 듣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데. 그는 죽기 전에 ‘우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그 외에도 같은 자가 더 있다는 말인가요?”


 “거기가진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아마 낸시도 눈치 채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야예이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키엘리니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

 “그렇다면 반드시 찾아내야 합니다. 적어도 그들이 같은 짓을 벌인다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될지 알 수 없어요.”

 강한 어조로 말하는 키엘리니를 보며 야예이는 화제를 돌리기 위한 말을 잘못 선택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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