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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패스파인더34

2008.12.25 23:00

azelight 조회 수:470

 폭풍 같은 바람과 함께 제련소의 지붕이 날아갔을 때까지만 해도 탬퍼는 그리 놀라고 있지 않고 있었다. 숨을 끊을 듯한 기괴한 소리와 함께 낸시가 마법적인 수호를 걸어 놓은 벽이 파괴되고 그림자들이 덤벼들었을 때도 그는 여전히 침착했다.
 그러나 야예이가 외친 전투 함성을 들었을 때 탬퍼는 움찔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는 놀랐다. 피를 얼어붙게 만들 것 같은 섬뜩한 위협의 외침이 울려 퍼지자 반사적으로 시선이 야예이의 쪽으로 향한 것이다. 동시에 탬퍼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적을 코앞에 두고 시선을 돌리다니... 그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순간 로딘이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로딘은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건 신경 쓰지 않을 듯한 예리한 집중력으로 자신을 무장하고 로딘은 두 자루의 소검을 빼들었다.
 탬퍼는 그런 로딘의 모습을 보고 재빨리 자신을 되찾았다. 다행인 것은 주춤한 것이 그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두려움이라고는 없을 것 같아 보이는 그림자들도 야예이의 외침에 한 박자를 놓친 것이었다. 그리고 야예이는 그런 그들을 맹렬한 동작으로 베어 들어가고 있었다. 탬퍼는 재빠르게 둘의 뒤를 쫓았다.
 아직은 괜찮았다. 탬퍼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울을 들었다.
 마울에는 은은한 백광이 파문처럼 퍼져 나오고 있었다. 왜곡된 의지를 격파할 신성한 힘이 강림한 마울은 새벽의 여명과도 같이 검고 어두운 그림자들의 몸체를 분쇄했다. 탬퍼는 다고스의 영광됨을 외치고 벽처럼 서서 그림자들의 쇄도를 막았다. 키엘리니의 축성 덕인지 그림자의 손길이 그의 육체를 관통함에도 그들은 그의 생명력을 앗아가지 못했다. 그랬기에 훨씬 많은 수와 대적하면서도 탬퍼를 포함한 일행들은 그림자들에게 맞설 수 있었다.

 “다고스여!”

 투쟁의 신의 이름을 다시금 외치며 탬퍼가 내뻗은 주먹이 그림자를 후려 쳤다. 그는 처음 서 있던 위치를 고수하곤 모든 힘을 다해 싸웠지만 곧 그림자들의 수가 별로 줄어든 것 같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보다 늘어난 듯 쉽기도 했다.
 탬퍼는 그림자들의  차가운 손길이 닿을 때마다 그 부분들이 얼어붙는 듯한 느낌을 느끼면서도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그의 육체에 닿는 손길이 늘어났다.
 탬퍼는 이를 악물었다.

 재빠르게 로딘은 빈 곳을 찾아 이동하고 그림자들의 몸을 스치듯이 베고 지나갔다. 아직까지 그는 단 한 번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고 그림자들을 피해 움직이며 적진을 유린하듯이 파고들었다.
 로딘은 지금 이 그림자들을 불러들인 마법사를 탐색하고 있었다. 세상이란 부자연스럽게 힘이 집중되는 일을 거부하기 마련이고 이런 대규모적인 마법의 유지에는 곧 마법 사용자 본인이 힘을 들이고 있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런 마법들의 대부분은 힘의 마법의 주체인 마법사의 부재가 확정되는 순간 파괴되었다.
 애초에 이렇게 많은 적들을 상대로 정공으로 이겨내기 힘들 것이라고 판단한 그는 자신의 감을 예리하게 세우고 그림자들의 사이를 종횡무진하고 있었다.
 때때로 덤비는 작은 짐승들의 언데드를 발로 걷어차기도 하고 그림자들의 손길을 피하기 위해 몸을 내던지며 그는 제련소를 빠져 나왔다.
 사실 제련소에는 이미 벽이라고는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낸시가 걸어놓은 경계의 페시언을 통해 그림자들이 통과할 수 없는 마법적인 장벽이 된 제련소의 벽들은 그림자들의 침입을 위해 박살이 난 상태였다. 이미 지붕은 어디론가 날아가고 없었고 제련소를 외부와 차단하던 돌벽은 무너진 상태였다.
 로딘은 날렵한 몸동작을 살려 무너진 벽을 뛰어 넘어 밖으로 뛰쳐나온 상태였다. 만약 조종자가 있다면 그는 안전한 곳에 있을 것이라는 예측 때문에 한 행동이었다.
 물론 그 조종자는 여전히 자신의 몸이 안전한 곳에 있고 그림자들만을 조종해 보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로딘은 조종자가 왔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림자들의 시선에서는 느낄 수 없는 찌릿찌릿함이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능적인 힘의 정수가 가지는 인식과는 틀린 의지를 담은 시선이...
 로딘은 제련소로 향하고 있는 단 하나의 살의를 느끼며 또 다시 그림자의 손길을 피했다. 그리고 베었다.
 민첩한 그의 발걸음은 검을 휘두르느라 불안정해진 몸의 균형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정면으로 덤벼오는 그림자를 작게 발을 놀려 방향을 틀어 피하고는 빼놓지 않고 검으로 치고 지나가는 그는 제련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상당히 줄어든 그림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마 그들의 대부분은 지금 제련소에서 분투하고 있을 동료들에게 가있을 것임이 틀림없었다.
 그렇기에 로딘은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최대한 빨리 원흉인 조종자를 파괴하고 이 일을 끝내 버릴 생각인 것이었다.
 그 각오와 의지, 노력 때문인지 아니면 조종자의 부주의함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로딘은 곧 조종자를 발견했다.
 그것은 기묘한 것이었다.
 로딘은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조종자로 추정되는 존재는 독특했다.
 그것은 마치 사람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그림자였다. 완벽한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키엘리니의 영향을 엷어진 안개 속에서 기묘한 일그러짐에 휩싸인 체 그는 제련소 쪽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존재만이 색소가 사라진 듯 회색빛의 음영으로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었다. 마치 그림자 같은 비실체감. 동시에 살아있는 생명이 가지는 명확한 존재감이 그 속에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표적을 발견하는 순간 로딘의 발걸음이 재빠르지만 주의 깊어 졌다. 거칠게 놀려지던 다리는 정교한 감각 속에서 움직이고 동시에 로딘은 조종자의 사각으로 숨어들었다. 거칠던 호흡은 강력한 철통같은 의지에 의해 통제되어 길고 느리게 변화했다.
 마치 어둠 속에 숨듯 로딘은 모든 이들의 시선으로부터 사라지려고 하고 있었다. 그는 거의 그렇게 되었다. 그림자들의 조종자인 마법사가 기이한 삐꺽거림과 함께 고개를 돌리기 전까진 말이다.
 마법사는 천천히 움직여 고개를 돌렸고 로딘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사각으로 움직이여 그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그림자들은 더 이상 그들 곁에 없었다. 모든 그림자들이 제련소에 있는 일행들을 파괴하려는 듯이 몰려가 있었다.
 로딘은 초조함을 느꼈지만 자신을 완벽히 통제하려 노력하며 마법사이자 조종자인 자에게로 다가갔다. 로딘은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자신이 실패했는지 성공했는지... 충분히 다가왔지만 마법사는 자신을 눈치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지금 마법사와 1:1의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사각을 여전히 점하고 있었다.
 마법사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 목만을 움직인 것뿐인 것이다. 그렇기에 거의 등 뒤라고 표현해도 상관없을 위치에 있는 로딘은 여전히 그의 시선 밖의 사각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 거의 다가가 있는 상황. 절호조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로딘은 여전히 이상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마법사에게로 다가가고 있었지만 뭔가가 그이 발목을 잡으려 들고 있었다. 로딘은 그 불안감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검을 찌르기 위해 팔을 당겼다.
 그 순간 로딘은 마법사와 눈을 마주쳤다.
 사람의 이목구비를 갖춘 그의 목은 불가능할 정도로 돌아가 있었고 눈이 있어야할 자리에 자리잡은 두 개의 백색 빛이 등 뒤에 선 로딘을 바라보고 있었다.
 로딘은 깜짝 놀라 헛바람을 삼켰다. 그와 함께 마법사의 입술이 달싹였다. “휭!”하고 주변이 어지럽게 밀려났다. 어마어마한 충격에 로딘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그가 바닥을 구르고 있을 때였다. 세상이 어지러이 흔들리고 폐부에서 공기가 토해져 나오기라도 할 듯 기침이 쏟아져 나왔다.
 
 “쿨럭.”

 다행히 피가 나오지 않는 다는 사실을 확인한 로딘은 겨우 양 손을 땅에 디디고 일어나기 위해 몸에 힘을 줬다.

 야예이는 거세게 검을 휘둘렀다.
 그 자신은 모르고 있었지만 엘리엔이 그에게 준 마법검은 청색 불꽃을 일렁이며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그림자들은 그 불꽃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검에 맺힌 불꽃은 그 파괴적인 힘을 그림자들에게도 여과 없이 부여하고 있었다.
 검은 태우고 베고 쪼개며 거칠 것 없다는 듯이 움직였고 그 어떤 그림자도 야예이 앞에서 3초 이상을 서 있을 수 없었다. 야예이는 그만큼 맹렬하고 거칠게 그리고 섬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푸른빛의 작은 소용돌이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면서 야예이는 자신의 주변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독특한 공간감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한계에 다다른 육체, 자연과 조화되고자 하는 의지와 수행, 예민해진 감각 그리고 이해. 이것들이 조합되어 돌출되어 나온 이 독특한 감각은 야예이가 일정 영역 내의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통째로 인식할 수 있게 해주고 있었다.
 이 감각을 야예이에게 가르친 에크로반은 이것을 초월적인 직관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표현은 아주 틀린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치 거대한 조류의 흐름을 느끼듯, 바람이 부는 방향을 느끼듯 주변에 흘러가고 있는 일의 방향을 알 수 있을 뿐인 힘이었다. 그러나 그 것으로 야예이는 주변에 일어나는 일을 어느 정도 인식할 수 있었다.
 그리고 훈련으로 쌓은 넓은 시야와 훈련받은 빠르고 날카로운 판단력은 그런 모호한 인식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했다.
 로딘은 제련소의 밖으로 뛰쳐나갔었다. 모르는 이라면 도망쳤다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야예이는 그에게서 명확한 목적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목적성에는 상당한 살기가 담겨 있었다.
 탬퍼는 조금 위험한 상태였다. 마법사인 낸시와 지친 키엘리니를 보호하고자 하는 그는 굳건히 자리르 지켰지만 역시 적이 너무 많았다. 이 늙었지만 강인하고 사제면서 전사인 그는 감당해낼 수 없는 수를 맞아 고전하고 있었다. 하다못해 발을 쓸 수 있어도 한결 상황이 나았겠지만 방패를 자처한 이상 그럴 수도 없으니 막아내지 못한 공격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낸시는 모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완드를 사용하며 그림자들의 공세를 막아내곤 있지만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주문을 외우려는 시도를 하거나 하진 않았다. 마치 뭔가를 기다리는 듯 그낸시는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야예이는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그녀가 3자라도 되는 듯 뒤로 물러선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어젯밤에 본 낸시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키엘리니...
 그녀는 지친 상태이지만 여전히 우아한 검술로 홀리어벤져를 휘두르며 그림자들에게 맞서고 있었다. 그녀의 정신의 힘은 쇠하였으나 육체의 힘은 쇠하지 않은 듯 키엘리니는 잘 버텨주고 있었지만 그녀가 빠르게 지쳐가는 것이 눈에 띨 정도였다.
 야예이는 일단 키엘리니들 쪽을 도와주기로 했다. 그는 그의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적을 해치운 상황이었기에 여유가 생긴 상태였다. 그림자들은 마법사인 낸시와 놀라운 기적을 발현했던 키엘리니를 최대의 위협이라고 판단했는지 그 둘을 향해서만 미친 듯이 달려들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제련소 밖으로 뛰쳐나간 로딘과 키엘리니들에게서 떨어져 나왔던 야예이는 상대적으로 적은 적들을 상대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야예이는 단숨에 그림자들의 등으로 뛰어 들었다. 그들은 등에 눈이라도 달린 마냥 야예이의 공격을 눈치채고 덤벼들었지만 야예이는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단숨에 탬퍼들의 옆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마치 낙엽이 부스러지듯 야예이가 지나쳐온 길에 있던 그림자들이 파괴되었다.
 야예이는 그대로 빙글 돌아 탬퍼의 옆에 섰다. 탬퍼는 힘겨운 듯이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곁으로 다가온 야예이에 씨익 웃는 여유를 보였다.

 “늦었잖나.”
 
 그리고 핀잔을 주듯이 말하는 탬퍼에게,

 “죄송합니다.”

 야예이는 솔직히 사죄한 뒤 굳건하게 검을 세웠다.
 하지만 그림자들은 공격해 오지 않았다. 그들은 이제는 마치 경계하듯이 탬퍼와 야예이가 닿을 수 있는 간격으로부터 한발자국 떨어진 곳에 서서 그들을 조용히 노려보았다.
 야예이는 의아한 듯이 그런 그림자들의 변화에 의아해 하다가 곧 어떻게 된 사태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내뱉듯이 말했다.

 “로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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