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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패스파인더4

2008.10.24 07:44

azelight 조회 수:294

한참을 달리던 야예이는 멈춰 섰다. 추적자는 없어 보인다. 급하게 도망치느라 흔적을 많이 남기긴 했지만 애초에 산적들에게 그를 추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리 만무하고... 만약 그 모험가들이 쫓아온다 해도 이미 상당한 거리를 벌렸을 테니 지금부터라도 흔적에 주의하며 이동하면 되었다. 물론 쫓아올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뒤를 돌아보니 토른이 야예이의 뒤를 쫓아와 있었다. 그는 얼굴에 붙은 나뭇잎을 앞발로 떨어뜨려내고 있는 중이었다. 야예이는 그런 토른을 보고 웃고는 흔적에 주의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큰 부상은 없었다. 단지 화살이 몸의 군데군데를 스쳐서 상처가 나 있을 뿐이었다. 20명이 넘는 상대와 싸워 이 정도의 상처밖에 입지 않았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야예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약초를 주머니에서 꺼내어 그것을 씹었다. 그리고 충분히 잘게 씹힌 약초를 상처부위에 가져다 붙였다. 상처가 쓰라렸지만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잘게 씹은 약초를 상처에 붙이고 야예이는 줄 곧 후회했다.

자신은 왜 그렇게 다급하게 물러난 것인가? 분명 위기였기는 했지만 차분히 산적들을 견제하며 도움을 기다렸다면 도망칠 필요 없이 산적들을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모험가들과도 접촉할 수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야예이는 자신이 어째서 그들을 피했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자신감의 부재이다. 결국 얼마 전 까지 사람들에게 거부 받던 경험이 그가 모험가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자신은 또 다시 외양 때문에 사람들에게 배척당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거기에다 이젠 에크로반도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물론 에크로반은 하프오크가 배척받지 않고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존재한다고 분명 말했지만 야예이는 회의적이었다. 야예이가 직접 그런 사회를 본 것도 아니고 그가 봐온 대부분의 인간들은 야예이를 단지 오크의 피를 이었다는 이유로 미워해왔으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에버런스 게이트를 들어가는 일조차도 막막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설마 성문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전박대 당하지는 않겠지라는 생각도 들지만 결국 당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다. 애초에 그가 살던 올트 마을은 에크로반이 없었다면 접근했다는 사실만으로 야예이를 살해했을만한 곳이었다.

그러다보니 야예이는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여의치 않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갈색산맥을 넘어오느라 신경 쓰지 않았지만 막상 에버런스 게이트가 가까워지자 슬슬 걱정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깨달은 것은 바로 지금이었지만 말이다.

야예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했다. 이래서야 관문을 통과하러 내려가는 것도 껄끄럽다. 특히나 하프오크이기 때문에 의심받을지도 모르는데 주뼛거리며 걸어가서야 더욱 수상해 보일 것이다. 그렇다고 성벽을 넘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니 숨어들어봤자 하프오크란 워낙 눈에 튀는 외모를 지니니 의미 없을 것 같기도 하다.

한참을 고민한 야예이는 일단 에버런스 게이트로 가보기로 했다. 에크로반의 서신을 전달하려면 에버런스 게이트를 통과하는 수밖에 없다. 이후부터는 아무리 야예이라고 해도 쉬이 오갈 수 없는 바위산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결국 란고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도 어차피 사람들하고 접촉할 수밖에 없다.

당당하게 행동한다면 괜찮을 것이다.

에크로반은 말했다. 하프오크도 받아들여지는 곳도 있다고 말이다.

굳이 브리잔드 변경백령이 올트 마을처럼 하프 오크를 경계하거나 천대하다 못해 적대하는 분위기라면 이곳으로 가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용기가 생겼다.

야예이는 주먹을 불끈 쥐며 각오를 다진 후 다시 도로를 향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몸이 뻣뻣해지는 것을 야예이는 느꼈다. 왠지 계속 뒤로 돌아서고 있는 느낌도 받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의 뒤에서 졸망졸망 따라오는 거대한 늑대를 보고는 힘을 얻었다. 에크로반에 대한 기억들에 대해서도 말이다.

야예이는 경사를 타고 내려와 도로 까지 내려섰다.

 

'어울리지 않는 군.‘

속으로 생각했다.

반은 오크의 피를 이은 덕에 험상궂은 얼굴과 비대할 정도의 근육을 가진 남자가 이런 소심한 생각이나 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더 부끄럽다. 야예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의 한심함에 한숨지었다.

그래도 그런 생각이라도 해서 그런지 조금 마음이 편해진다.

에버런스 게이트까지 걸어가는 일에는 좀 더 시간이 걸렸지만 그 동안 야예이는 긴장하면서도 자신을 다스리려고 애를 썼다. 에크로반은 야예이가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그 가르침 덕에 야예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활을 쏠 수 있었고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냉정히 상황을 읽고 행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은 그런 냉정함을 발휘할 수 없었다. 야예이는 곤혹스러워 하면서 게이트로 다가갔다.

곧 에버런스 게이트의 모습을 야예이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5m에 달하는 거대한 석벽이 새워져 있고 그 중심에 성문이 존재했다. 짐마차들도 빠져나갈 수 있게 3m정도의 커다란 나무문은 도개교의 역할도 해서 두 산등성이 사이에 성벽을 따라 만들어둔 깊은 고랑을 넘어 유료도로와 에버런스 게이트를 연결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도개교의 양 옆에 한명씩 경비병들이 서 있었고 그 오른 편엔 야예이가 살던 오두막의 2배는 될법한 길이의 막사가 서 있었다.

야예이는 긴장했지만 그들은 야예이가 도개교를 넘어 올 때까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야예이가 도개교를 넘어선 순간 경비병이 야예이를 소리쳤다.

 

“멈춰서라.”

 

그에 야예이는 뻣뻣이 굳은 듯 멈춰 섰다. 경비병은 창을 겨두고 가까이 다가오더니 안심했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뭐야, 하프오크였군. 사냥꾼인가보지? 이 에버런스 게이트로의 방문 목적은? 그리고 이름도 말해보게.”

 

야예이의 걱정과는 달리 경비병들은 야예이를 박대하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하프오크가 익숙하지는 않아도 드물지는 않게 접한 것처럼 보였고 그 덕에 야예이는 조금 자신감이 생겼다.

 

“저는 야예이라고 합니다. 란도스의 엘리엔이라는 분에게 서신을 보내려고 올트 마을에서 왔습니다. 서신은 이겁니다. 제 스승인 레인저 에크로반의 유서인데 그 분께 전해주라고 하더군요.”

 

긴장한 야예이는 간신히 더듬거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래도 일단 불안했기에 최대한 저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그의 노력과는 달리 경비병의 얼굴은 크게 놀란 얼굴이 되어 있었다. 야예이는 혹시나 뭔가가 잘못되었나 싶어 마음을 졸였지만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엘리엔님으로부터 이미 전언이 있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오늘따라 특이하신 분들이 방문하는 군요. 처음에는 하프 세레스티얼이 온데다가 이번에는 하프오크 라니. 엘리엔님도 참 사람을 놀라게 하는 군요. 음. 좀 무례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전 당신을 의심했습니다. 보통 하프오크들은 불한당에 야비한 놈들이 많으니까요. 어쩐지... 그래서 엘리엔님이 그 분을 위한 서신을 가지고 오는 자가 있을 거라고 공지해 주셨군요. 그럼 잠시 기다려 주시길 바랍니다. 엘리엔님이 당신을 위한 신분증명패를 보내두셨습니다.”

 

경비병이 그렇게 말하고 서둘러 막사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와 금빛으로 빛나는 패를 야예이에게 건네주었다. 야예이가 패를 바라보자 패의 금빛이 무지갯빛으로 반짝였다. 분명 마법적인 기운이 서려있는 듯 했다.

 

“그 패를 가지고 이노의 여관으로 찾아가시면 됩니다. 그곳에 간다면 공짜로 당신의 숙식을 봐줄 것입니다. 이노의 여관은 이 도시의 북서쪽에 있습니다. 광장을 찾으신 다음 모르가의 약국 외편에 나 있는 골목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혹시 못 찾으시겠다면 그 패를 보이고 주변에 보이는 경비병에게 안내를 부탁하십시오.”

 

정중한 자세로 말하는 경비원의 행동에 야예이는 떨떠름하면서도 스승의 친우의 영향력에 놀랐다. 그렇게 한참 설명하던 경비병은 야예이의 옆에 앉아 있는 늑대를 발견하고 질문했다.

 

“아, 그리고 그 늑대는?”

“이 늑대는 제 동료입니다. 데리고 들어가면 안 되는 것입니까?”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가끔 사냥개들을 데리고 들어오는 사냥꾼들도 있으니까요. 다만 혹시나 문제가 될 경우 책임은 지셔야 할 겁니다. 그리고 이노의 여관에는 말을 포함한 동물들도 돌봐주니 문제없을 겁니다. 대체로 모험가들이 잘 묵는 여관이니까요.”

경비병의 친절한 설명에 야예이는 잠시 속으로 감동했다. 비록 스승님의 친우의 이름 덕이긴 하지만 그가 이렇게 환대를 받아보는 일은 처음이었다. 거기다 이곳에서는 울트 마을처럼 하프 오크에 대한 과도한 적개심은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어쩐지 있을 곳은 찾은 듯한 느낌이었다.

 

“친절히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늑대에 대해서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시길...”

 

야예이는 정중히 인사를 하고 토른과 함께 게이트를 통과했다. 왠지 조금 이 여행에 대해 길한 느낌이 느껴졌다. 적어도 처음으로 하프오크라는 이유로 괴롭힘 받지 않은 것이다. 물론 모든 이들이 그렇다고 할 수야 없겠고, 하프오크에 관한 편견은 어디에든 깔려있다는 것을 야예이도 알고 있었지만 한결 부담이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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