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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프레이-1

2008.10.21 01:19

azelight 조회 수:246


중편이 프레이입니다.
느린 연재를 보장합니다.
그런 재미있게 읽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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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깜빡 하고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합니다.

사람으로 치면 홍채에 해당하는 렌즈들을 조절하여 적당히 시야를 조절한 저는 저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습니다.

각부 상태 확인. 상태는 모두 정상.

몸 상태를 완전히 점검한 저는 기동을 시작합니다. 에밀리오네식 소형 축퇴로의 상태도 완벽합니다.

제게 사용된 이 에밀리오네식 축퇴로는 200여 년 전이나 된 골동품입니다. 안타깝게도 현재 자원은 고갈 된 거나 마찬가지의 상태였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없으셨던 주인님께서는 제게 남아있는 것을 다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낙원에 남아있던 것들 중 가장 온전한 것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아, 참고로 말하자면 낙원은 우주에 존재하는 거대한 우주 거주구입니다. 현재 인류는 멸망했고 자원은 고갈되었으며 이 태양계 내에서 생명은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이 낙원에도 현재 사람들은 살고 있지 않습니다. 없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 이 낙원의 밑바닥 빙해에서 잠들어 있을 뿐입니다. 낙원이 존재하는 만큼 그들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쉽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낙원 역시 자원이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이니까요. 빙해에 잠들어 있는 사람들의 수는 2억 7천만. 낙원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훌쩍 넘은 숫자입니다.

물론 사람들을 일부만 깨우고 잠재우고 하는 식으로 낙원의 정원에 맞는 숫자를 유지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낙원의 정원이 유지된다하더라도 결국 자원이 따라주지 않을 테고 사람들은 부족함에 허덕이에 될 것이겠지요. 그러리 그것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미 멸망해 버린 세계에서 사람들은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빙해 속에서 잠든 상태로 승천의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 주인님은 바로 그 승천을 이루기 위해 모두가 잠들어 있는 지금도 깨어계십니다. 그리고 저는 승천의 준비 외에 다른 일을 하지 못하고 계신 주인님을 대신해 잡다한 일들과 낙원의 관리를 맡고 있습니다.

뭐, 그렇다곤 해도 낙원의 관리란 인공지능이 대신해 주고 있기 때문에 제가 하는 일이라고는 그 인공지능의 관리뿐입니다. 요컨대 한직이라는 말이지요. 그 외의 일이라고는 식사를 준비하거나 주인님의 말상대를 하거나 할 뿐이니까요.

하지만 그것도 오늘까지입니다. 오늘부터 주인님 외에 모셔야 할 분이 한분 더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주인님께서 승천을 위해 창조하신 새로운 존재. 저의 또 다른 주인님이 되실 이 분은 아우렌시아라는 이름을 가지시게 될 것입니다. 물론 아우렌시아님은 깨어나실 때부터 자신이 아우렌시아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겠지요.

저는 이미 깨어나 계실 주인님을 찾아갔습니다. 현재 배양기에서 최종 공정을 막 벗어났을 아우렌시아님을 데리러가겠다고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낙원에 접속해서 알아보니 주인님은 저택의 2층의 발코니에 계신 것 같았습니다. 저택은 현재 사용되고 있는 유일한 건물로 주인님과 제가 머무르고 있는 곳입니다. 해안이 보이는 멋진 곳이랍니다. 제 8세기에는 사람들이 부적거릴 만큼 유명한 피서지였다고 하는데 지금 텅 빈 곳입니다. 저 인공바다에는 미생물조차도 살지 않고 있습니다.

이 낙원에서 살아 움직이는 존재가 있다면 그건 오직 주인님뿐일 것입니다. 당연히 저는 생물이 아니니까 예외이고요.

주인님은 2층 발코니의 의자에 앉아 인공태양의 태양빛과 바람을 받으며 책을 읽고 계셨습니다. 달아오른 쇠와도 같은 적광의 머리칼을 뒤로 묶으신 주인님은 해변가 쪽을 향해 앉아 계셨답니다.

저는 주인님을 불렀습니다.

 

“주인님.”

 

“밀레니아? 아우렌시아를 데리러 가지 않는 거야?”

 

저의 부름에 주인님은 책에서 시선을 때고 고개를 돌려 조를 바라보셨습니다. 예리한 눈매 사이로 불꽃이 일렁이는 것 같은 눈동자가 저를 직시합니다.

 

“그 전에 간다고 말씀드리려고요.”

 

“그래? 굳이 알리러 오다니. 좋아, 오히려 잘한 것 같아. 나중에 아우렌시아가 깨어나면 빙해로 데려와 주렴. 조금 있다가 갈 생각이거든. 오래 있을 것 같으니 부탁할게.”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주인님께 인사하고 저택의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저택의 지하에는 낙원의 지하로 직통하는 승강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이 낙원의 지배자인 주인님을 위한 것이지만 지금은 저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버튼을 누르고 잠시 기다리자 승강기가 종소리를 내며 도착했음을 알렸습니다. 저는 승강기에 올라탄 후 가야할 층을 입력했습니다. 그와 함께 승강기의 문이 닫히고 빠른 속도로 하강하기 시작합니다. 몸이 가볍게 뜨는 것 같은 느낌이 날 정도로 빠른 속력으로 말입니다.

승강기가 목적지에 도착하자 다시 종소리가 울렸습니다. 승강기의 속도와는 상반되게 느릿하게 열린 문을 나선 저는 배양기가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절전상태인지라 조명이 제한적이었지만 제게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빛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도 사물을 구분할 수 있는 기능도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조금 불편하기도 합니다. 저는 어두운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특히 이런 절전 구역은 너무 적막해서 일이 있지 않으면 절대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배양기가 있는 곳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이곳이니 오늘만큼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죠,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저는 긴 복도를 걷고 몇 개의 구획을 지났습니다. 이 구역을 지나는 것은 상당히 오랜만입니다. 하지만 100년 가까이 내버려뒀는데도 여전히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 거의 차이가 없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합니다. 이 구역에는 자율형 청소기도 오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이동한 끝에 저는 배양기가 있는 방까지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한 때 그저 시설이라고 불리던 곳입니다. 제가 입장하는 것은 처음입니다만... 인류의 몰락 전에는 제법 중요한 장소였기에 어떤 장소였는지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이곳은 왕을 탄생시키는 곳. 예전 이 곳에서 주인님이 태어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님의 뜻에 의해 승천을 이룩할 3명의 존재가 이 시설 속에 잠들어 있습니다. 그 3분들의 이름은 3번째 주기에 추앙받던 3명의 여신에게서 이름을 따서 지어졌습니다. 아우렌시아. 이소니움. 에르메스. 그리고 지금 제가 맞이하러 가는 분은 아우렌시아님이십니다.

저는 배양기가 있는 시설의 문을 열었습니다. 강중력장에 의한 피해에도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이 시설의 장갑만큼 두터운 문이 육중한 소리와 함께 열렸습니다. 무슨 기밀 시설 같아 라고 말하고 싶지만 실제로 기밀 시설입니다. 일반인 출입금지 장소이지요. 이 시설에 들어올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주인님을 제외하고도 30여명 정도뿐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인구가 2100조 정도에 달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적은 숫자입니다. 오직 그들만이 이 시설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제는 저 같은 것도 드나들 수 있지만 말입니다. 아직 이 세상에서 움직이는 존재는 오직 저와 주인님뿐이니까요.

저는 배양기 중 하나에 다가갑니다. 아우렌시아님이 담겨 있는 것이지요. 남은 두 개에는 에르메스님과 이소니움님이 성장 중에 있습니다.

배양기에는 수천 개에 이르는 전선들이 뻗어 나와 주변의 기계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것들을 피해 조심조심 발을 옮깁니다. 본래라면 훨씬 깨끗한 곳이었는데 몇 개의 설비를 증설하면서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래저래 공사를 해보려고 해도 저 3분을 만들어내는 것만도 빠듯한 상황이니 별 수 없지요. 자재도 일손도 모두 모자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3분들 한분 한 분한테 행성 1개분의 자원이 필요하니 말입니다.

저는 전선들을 넘어 배양기에게로 다가가 기계를 조작했습니다. 배양기로부터 붉은빛 배양액이 빠지고 아우렌시아님이 배양기의 바닥에 천천히 내려앉습니다. 곧이어 미지근한 물이 천장에서 흘러내려와 아우렌시아님의 몸에서부터 붉은 액체를 씻어 냅니다.

외부자극 때문인지 아우렌시아님이 눈을 뜹니다. 느릿한 동작으로, 흘러내리는 물줄기 때문에 얼굴에 들러붙은 푸른빛 물결 보다 더 물결 같은 머리칼을 걷어내면서 말이죠. 그리고 아름답게 빛나는 황금빛 눈동자가 든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뭐라고 말씀을 하시긴 했는데 배양기 밖으로는 소리가 전달 안 되기 때문에 저는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아우렌시아님과 저의 사이에 있는 유리벽을 제거해야 했습니다. 아우렌시아님은 유리벽이 움직이자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나셨다가 다시 주저앉으셨습니다. 아직 몸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으실 테니 당연할 일입니다.

저는 유리벽이 사이 타월을 꺼내 왔습니다. 충분히 살균되고 따뜻하게 열이 오른 타월입니다. 만지니 포근한 느낌이 무척 좋네요. 꺼내든 타월을 들고 다시 배양기 곁으로 다가가자 여전히 저를 지켜보고 있던 아우렌시아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이라고 말하셨던 것 같습니다. 굳이 추측을 한 이유는 발음을 잘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처음 사용하시는 발성기관은 아우렌시아님이 원하는 만큼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금방 나아시질 겁니다. 그렇게 만들어 지셨으니 말입니다.

 

“저는 밀레니아라고 합니다.”

 

싱긋 웃으며 말하자 아우렌시아님은 잠시 생각하시는 표정이 되더니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분명 기억 속에서 저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신 것이겠죠. 아우렌시아님이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신 정보는 제 주인님께서 선별하여 이미 각인시켜둔 상태였으니 분명 하인인 저에 대한 것 역시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기억에 있어. 레기스위르나의 하인이구나.”

 

“네. 하지만 저는 동시에 아우렌시아님의 편의 역시 봐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부담 없이 명령해 주세요.”

 

“알겠어.”

 

“그럼 입을 것을 가져올 테니까 잠시 기다려 주세요.”

 

‘어째서 미리 챙기지 않았을까.’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아우렌시아님의 허락이 떨어짐과 동시에 저는 재빨리 움직였습니다. 저는 이래서 문제입니다. 항상 뭔가를 잘 까먹는다고 할까요. 제 양자두뇌를 만드신 주인님께서는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만드신 걸까요? 기왕 자동인형을 만드셨는데 좀 유능하게 만들어 주시지. 일부러 어렵고 복잡한 기술을 사용해 불완전한 존재를 만들어 내다니. 저로서는 잘 이해가 안가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주인님께서 하시는 일이니 분명 무슨 이유가 있겠지요. 저는 쉴 필요도 없는 한숨을 쉬며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시설에는 낙원에서 격리됐을 때를 대비한 방호복들이 있었기 때문에 저는 그것들 중 하나를 골라가지고 왔습니다. 이 방호복들은 사이즈를 타지 않기 때문에 골라도 결국 똑같은 것이지만 말입니다.

저는 진공포장을 뜯어 아우렌시아님께 방호복을 건넸습니다. 아우렌시아님은 방호복을 건네 받으시자마자 펼치신 다음 입기 시작하셨지만 아직 부족한 완력과 아직 익숙치 않은 몸 덕에 제대로 입으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옆에서 도와줘야만 했습니다.

 

“이상해.”

위화감을 느끼시는지 아우렌시아님께서 조금 뾰루퉁한 얼굴로 그리 말하십니다. 저는 작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언제나 그런 법이에요.”

 

“역시 그런가?”

 

“그런 거예요.”

 

아우렌시아님은 납득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리고 팔목을 문질러 보시더니 흥미와 재미를 느끼시는 표정을 지어보이셨습니다.

 

“맞는 것 같아.”

 

“그렇죠? 그런데 어때요? 이제 걸을 수 있으실 것 같나요?”

방금 전까지는 서는 것도 힘들어하신 아우렌시아님이시지만 지금은 언제 그랬었냐는 듯이 똑바로 서 계십니다. 아우렌시아님은 서 계신다는 상황에 대해 적응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걸을 차례입니다.

 

“할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도와주지 않겠어?”

 

“얼마든지요.”

 

저는 아우렌시님이 내민 팔을 잡아 부축하며 오른편에 섰습니다. 아우렌시아님은 힘겹게 한 쪽 발을 때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렵게 몇 걸음을 옮기셨습니다. 하지만 걸음을 옮기실 때 마다 아우렌시아님의 발걸음은 점점 발라지시면서 금세 혼자서 걸을 수 있게 되셨습니다.

장애물을 넘는 동작은 어설프셨지만 주의하면 넘어지지 않을 정도는 되시게 되었죠.

“이대로 주인님을 뵈러 가도록 하죠.”

 

“그러도록 해.”

 

“그럼 따라오세요.”

 

저는 조심스럽게 아우렌시아님이 전선들을 넘을 수 있게 도우며 시설을 빠져나왔습니다. 이제부터 가야할 곳은 낙원의 지하인 빙해입니다. 주인님은 항상 그곳을 방문하지요. 잠들어 있는 선민들의정신을 유지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빙해의 인간들은 육체는 잠들어 있지만 그들의 정신은 여전히 깨어있습니다. 그들은 얼어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육체의 시간만이 느리고 흐르도록 조정되어 있을 뿐인 것이니까요. 그리고 느린 시간의 흐른 속에서 그 정신은 마치 잠든 것처럼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인님이 가진 힘에 의해서 말이죠.

멸망 전의 시기에는 시간조차 조절할 수 있는 기계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소실된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기계였었다고 하는데 저는 실제로 목격하진 못했습니다. 제가 만들어진 것은 멸망이 있은 후로 이미 문명이 물리적으로 소실된 후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인님께선 알고 계실 터이니 아직 잊혀졌다고 하지 못할 것입니다. 주인님께선 이제는 필요 없는 기술이라고 말씀하셨을 뿐이니까요. 그러니 매장 당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요? 머리를 갸웃거려 보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뭐해?”

 

제가 고개를 갸웃 거리는 것이 이상했는지 아우렌시아님께서 물어 오셨습니다. 아아, 쬐끔 부끄럽네요. 워낙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하다보니 이런 모양입니다.

 

“생각할 게 좀 있어서요.”

 

“생각할 거?”

 

저는 방금 전에 제가 생각했던 것을 그대로 아우렌시아님에게 말했습니다. 그에 아우렌시아님은 “우훗.”하고 가볍게 웃으시더니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잠긴 기술이라는 것은 어때? 오히려 더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 아니면 잠든 기술이라던가.”

 

아우렌시아님은 재미있다고 생각한 건지 오른손 검지를 들어 보이며 말씀하셨습니다. 잠긴 기술이라고 하니 좀 독특하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을 뭐라고 부르더라... 딱히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기에 일단 떠오르는 감상을 말했습니다.

 

“시적이시네요.”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손을 휙휙 저으신 아우렌시아님은 말을 이으셨습니다.

 

“지식으론 알고 있었도 이게 또 너무 막연해서 내 것 같지가 않아.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지만 이게 또 말이지.”

 

“그러신가요?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별 수 없지만 제가 보기엔 주인님을 금고에 비유한다면 나쁘지 않은 은유 같아요.”

 

“흠. 그거 그렇게 생각해?”

 

“물론이에요.”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로망인걸. 이제는 다신 만들 수 없는 구시대의 존재라는 것 말이야. 막연하고 먼 것 같아. 손에 쥐고 있어도 흘러내리는 모래 같은 감각이란 이런 것일까?”

 

아우렌시아님이 하는 혼잣말 같은 물음에 저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저 평범한 소녀와 같은 존재일 뿐 아우렌시아님 처럼 주인님과 동급의 기능을 사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후 아우렌시아님은 생각에 빠지신 듯 입을 열지 않으셨고, 그 덕에 저는 자신의 상념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구세계의 것들에 대해서, 주인님에 대해서 말이에요.

세상이 멸망했을 때 주인님은 1억 2천만의 사람들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으셨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주인님은 그들을 다스리던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주인님은 다스리는 자가 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였습니다. 오로지 다스리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셨습니다. 항성계에 거주하는 1600조의 사람들을 말입니다.

그런 주인님이셨지만 세계가 멸망하는 것은 막지 못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주인님은 거주구 중 유일하게 오염되지 않았던 낙원을 취하고 지하에 빙해를 만들어 스스로 구해낸 사람들을 잠들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세계는 사람들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정신과 소통하여 승천 계획을 이끌어 냈습니다.

저는 그것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것의 개념은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승천이란 육체를 버리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사람이 사람일 수 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가지는 지도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위신급의 힘을 가진 3체의 유기조제체의 힘으로 어떻게 사람들을 *승화*시키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것들은 제게 허용되지 않은 것들인 것입니다. 왠지 서운한 느낌이 들지만 어차피 들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그려러니 하고 있기도 합니다.

종소리가 울리고 승강기의 문이 열립니다. 시설에서 빙해로 직통하는 가장 가까운 승강기이지만 이 쪽도 반시간을 넘게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 반시간 동안 저와 아우렌시아님은 어색한 침묵 속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대화라곤 주인님과 어쩌다 가끔해 본 잡담이 전부인 저와 태어나서 대화라고 생전 처음인 아우렌시아님이니 이래저래 잡담을 하는 것은 무리였던 것입니다. 아무래도 대화에 대해 공부해둘 필요성을 느낍니다. 여기에 추가로 두 분이 늘어날 것이니 미리 대비해두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승강기에서 또 다시 종소리가 울립니다. 빙해가 있는 지하층에 도착한 모양입니다. 문이 열리자 찬 공기를 저의 감각기가 포착합니다. 간혹 공기 중에 얼음 입자들이 포착될 정도로 차가운 날씨이지만 아우렌시아님은 얼굴이 노출된 보호복을 입고 계신대도 별 문제없다는 표정이십니다. 정상적인 인간이 견디기 힘든 온도이지만 괜찮으신 듯합니다. 하긴 주인님께서는 평상복만 입고 오가시기도 하시지요. 일반인은 견디기 힘든 환경이지만 위신급의 위치에 이르면 그렇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여기가 빙해로구나.”

 

아우렌시아님이 하얀 김을 입에서 내뿜으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아우렌시아님의 주위로 푸른 빛 무리가 약하게 반짝입니다. 그것으로 이 냉기를 막아내고 계신 것인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주인님께서는 중앙에 계세요.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따라오세요.”

 

“응.”

 

아우렌시아님께 주의를 주고 저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합니다. 시커먼 거대한 동공. 점점이 보이는 새하얗지만 작은 하얀 불빛들이 마치 하늘의 별빛 같아 보이는 이 장소의 밑바닥은 거대한 걸음 덩어리입니다.

그 속에는 1억하고도 2천만의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것입니다.

가혹하리만큼 차가운 장소이지만 요람과도 같이 평안하게 잠들어 있는 사람들이 이 아래에 있습니다.

살짝 뒤를 돌아보니 아우렌시아님은 천장을 올려다보고 계셨습니다. 뭔가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신 듯 두 눈을 감고 차분한 표정을 짓고 계셨습니다. 과연 무엇을 느끼고 보고 계신 것일까요?

옛날에도 그랬지만 위신급의 존재들은 이해할 수 없었기에 신으로 추앙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예전에 주인님도 말씀하셨습니다. 기도 한 일보다는 받은 일이 더 많다고 말입니다. 사실상 종교의 소실은 주인님이 존재하고 부터라고 하시니 신의 자리조차 대체 할 정도의 존재라는 의미도 될 것입니다. 당연히 평범한 인간의, 그것도 구세기의 기준의 평범함을 갖춘 저로서는 이해하기엔 분명 무리가 있는 것입니다. 듣는 것도 보는 것도 느끼는 것도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역시 좀 더 유능하게 태어났었음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아우렌시아님이 웃음 섞인 말투로 제게 말하셨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어.”

 

“네?”

 

저는 아우렌시아님이 무슨 뜻에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우훗. 방금 전에 밀레니아는 자신이 고성능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어떻게 아신 건지 몰라 깜짝 놀랐지만 저는 일단 사실이기 때문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네.”

 

“아! 당황하게 했구나. 그렇군. 레기스위르나는 보인 적이 없나보군. 아아. 내가 경험이 일천해 쓸데없는 일을 해 버렸어.”

 

레기스위르나라는 이름은 제 주인임의 성함입니다.

아우렌시아님이 “끙.”하고 곤란한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도 이해가 안 갔습니다. 이미 이해의 범주를 넘어선 것만 같다고 할까요.

 

“뭐. 그냥 잊도록 해. 그리고 레기스위르나에게는 비밀이다.”

 

빙긋 웃으시는 것으로 얼버무리셨지만 어리석은 저라도 차분해지자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신 것인 진 몰라도 아우렌시아님께서는 제 생각을 읽어 내신 거였고, 지금가지 내색은 하지 않으셨지만 주인님께서도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저는 부끄러움이 느껴졌습니다. 지금까지 주인님 앞에서 온갖 잡생각을 다해왔었는데 고스란히 읽혔었다니. 충격적인 사실입니다. 주인님은 그런 저의 모습을 보며 얼마나 웃고 계셨을 까요. 갑자기 힘이 쫙 빠집니다.

아아. 어이하여 제게 이런 시련을 내리나이까.

잊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 신을 향해 외치며 저는 아우렌시아님을 안내했습니다. 그리고 얼아 안 있어 빙해의 중심에 있는 주인님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주인님께서는 두 눈을 감은 체 집중하고 계셨기 때문에 저는 주인님을 불러야 했습니다.

 

“주인님. 아우렌시아님을 모셔왔습니다.”

 

저의 부름에 주인님은 천천히 눈을 뜨시더니 시선을 저와 아우렌시아님 쪽을 향했습니다.

 

“데려왔구나. 밀레니아.”

 

“네.”라고 대답하고 저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습니다. 아우렌시아님은 제가 물러서자 앞으로 나서시더니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셨습니다.

 

“안녕. 네가 레기스위르나구나.”

 

“그래. 내가 레기스위르나야. 아우렌시아. 태어나서 처음 본 세상의 감상은 어때?”

 

“감상이랄 것 까지 있나? 아직 본거라고 어두운 천정과 앞으로도 한동안은 잠들어 있어야 할 사람들은 본 것뿐인데. 그래도... 인상적이긴 해.”

 

천장으로 오른손을 뻗어 올리며 마치 뭔가를 그 손에 쥘 듯이 벌렸다가 다 쥡니다. 주인님도 저도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신에 도달할 수 있는 육체와 인간을 초월한 이지를 지녔지만 아직 아이와도 감성을 지닌 청색을 이미 어른이 된 적색이 사랑스러운 아이를 바라보듯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우렌시아님은 한 숨을 쉬시고는 손을 내리고 주인님에게로 시선을 돌리셨습니다. 조금은 안타깝고 애틋한 표정을 지으시는 그 분을 주인님께서는 이해할 수 있다는 듯 작게 그리고 슬픈 미소를 지으시며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시는 아우렌시아님을 주인님께서 도닥이며 안아주셨습니다.

어째서 우시는 것일까요?

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마치 소외된 것 같은 외로움이 대기 속에 점점이 숨어있는 투명한 얼음먼지들의 차가움과 위해함처럼 저를 감쌌지만 그래도 저는 이해하지 못했고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저 슬픔을 공유하지 못해서 괴로운 것일까요?

하지만 지금은 제가 뭔가를 질문할 수 있는 차례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해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초월자의 슬픔이란 감히 피조물 중의 피조물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닐 테니까요.

아우렌시아님은 그렇게 생각하실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었지 만 저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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