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Endless Dream - 끝나지 않는 꿈 - 04화
2008.09.23 21:15
"역시, 공주님은 못 당하겠다니까."
뭐가 그리 좋은지, 쥐슬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방과 후 같이 ED를 하러 가자는 이야기가 나온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 흥분은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그 공주님 소리 좀 그만해줘."
계속 자신을 보며 싱글싱글 웃는 쥐슬의 태도가 조금은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실린은 쓴 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자신에게 그런 칭호를 과분하다며 어깨를 으쓱인다.
"아니, 너무 어울려서 탈이지."
그에 아젠은 조그맣게 중얼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쥐슬이 하도 공주님 공주님 노래를 부르다보니 실린이라는 이름보다 공주님이라는 호칭이 그녀의 이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이상할 정도로 위화감이 없는 느낌이란...
거기에 비하면 자신은...
"그나저나 나 어땠어? 괜찮은 실력 같아?"
"아, 저기... 그렇게 말해도..."
어쩐지 서글픈 기분에 다시 한 번 한숨을 삼키는 아젠을 아는지 모르는지 쥐슬은 조금 더 고개를 들이밀며 물었다. 실린은 그 기세에 눌린 듯 몸을 약간 빼내며 말꼬리를 흐린다. 말하기 참 곤란해하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쥐슬은 끝끝내 대답을 듣고야 말겠다는 태도였다.
"..... 그게 15초도 안되서 박살난 녀석이 물어볼 말이냐?"
그런 실린은 도와주려는 듯 옆에 있던 히이로가 쏘아붙였다. 그 한 마디에 쥐슬의 몸이 움찔하고 떨린다.
"... 15초라...."
아니, 사실 10초도 안 걸렸어. 이동 시간 제하면 실제 교전 시간은...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아젠은 피식 하고 웃었다. 그러고보니 오래버티기는 내가 더 오래 버텼잖아? 몸을 사리면서 원거리 공격 위주로 나간 것도 하나의 이유이긴 하겠지만...
레이더에 표시되는 붉은 점의 위치가 가까워진다. 어떠한 속임수도 없는 직선적인 움직임. 말 그대로 정면으로 부딪치려는 듯, 성난 소 처럼 달려들고 있었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겠지.
커맨드 레버를 당긴 뒤 정해진 순서대로 계기판을 조작한다. 차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내려와 있던 커맨드 레버가 다시 위로 올라가고 모니터 구석에는 자신이 사용했던 기술의 이름이 떠오르고 있었다.
기체의 앞에 쏘아보내진 금빛의 고리. 그 고리의 뒤에서 실린의 기체는 오른손을 크게 뒤로 당겼다.
굉음을 내며 회전하기 시작하는 오른팔. 그와 동시에 저 멀리 검은 색의 기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타이밍이다. 붉은 색으로 표시되어 있던 글씨는 녹색으로 바뀌며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딱 맞는 타이밍! 실린의 입에 작은 미소가 걸린다.
- 브로큰 팬텀
실린의 기체인 가오파이가가 주력으로 사용하는 기술. 고속으로 회전하는 주먹을 쏘아보내는 기술로 데미지와 사거리, 공격 반경까지 무엇하나 빼 놓을 것 없는 기술이었다. 단지 아쉬운 것이라면 사용 전의 대기 시간이 조금 길다는 것 뿐이겠지. 하지만 그 정도 단점은 얼마든지 커버할 수 있는 것이 실린의 실력이었다.
금빛의 고리와 함께 빠르게 회전하는 주먹이 쥐슬의 휴케바인을 향해 날아들었다.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공격을 보며 막 라이플을 꺼내들던 쥐슬은 재빨리 레버를 밟았다.
낮은 자세로 땅을 차며 오른쪽으로 몸을 날린다. 저 기술의 무서운 점은 '팬텀링' 으로 인해 비슷한 계열의 공격과는 달리 상당히 넓은 범위의 공격 범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렇기에 쥐슬은 어느 정도 여유를 두기 위해 기체를 크게 움직였으나
'덜컹' 하고 순간 콕핏이 흔들렸다.
"뭣?"
또 다른 공격? 하지만 들어올 틈이 없었을 텐데? 라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쥐슬이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콕핏이 그대로 뒤집혀 버린다.
브로큰 팬텀을 날리자마자 그대로 따라서 휴케바인을 향해 달려든 실린은 자신의 예상이 한치도 틀리지 않음을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실력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너무 움직임이 정직해.
정석 이랄까? 그렇기에 그만큼 상대하기 쉽다는 생각을 하며 그대로 비어있는 왼손을 이용해 휴케바인의 다리를 낚아챈다. 넘칠정도의 출력을 지닌 가오파이가의 힘으로 가볍기 그지없는 휴케바인의 몸을 그대로 메다꽂아버린다.
- 쿠웅!
육중한 소리와 함께 휴케바인의 동체가 크게 회전하며 땅 위에 처박힌다. 이 것만으로도 꽤나 큰 데미지를 입었겠지.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고 실린의 가오파이가는 오른발로 휴케바인의 등을 밟아 눌렀다. 동시에 되돌아오는 오른팔을 수납한 뒤 몸을 굽혀 휴케바인의 양 팔을 잡고 그대로 잡아 뽑아버린다.
- 콰드드득!
쇳덩이가 부서지는 소리. 가오파이가의 손 안에서 뽑혀버린 휴케바인의 두 팔은 그대로 으스러지고 양 어깨 부분은 전선과 프레임을 드러낸 채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그 것을 인식한 실린은 등을 밟고 있던 발을 떼어 내며 그대로 콕핏을 향해 주먹을 꽂아넣어 버린다.
.... 그러니까 실제로 쥐슬이 게임을 한 것은 달려들다가 브로큰 팬텀 한 번 피해낸 것 외에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실력에 대한 감상을 말해달라니... 그 질문을 받은 실린은 얼마나 곤혹스러웠을까?
아젠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는 것을 느끼며 앞에 놓인 카라멜 마끼아또를 한 모금 마셨다.
사실.... 딱히 자신도 그렇게 멋진 게임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당히 거리를 유지한 채, 아니 계속 실린의 기체에서 도망다니며 있는대로 사격을 퍼부었지만 결국 유효타가 들어간 것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될 정도였다. 그나마 공격이 적중한 것도 '프로텍트 월'에 막혀버리기 일쑤. '프로텍트 월' 역시 약간의 준비 시간이 필요한 방어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실린은 기가 막힐 정도로 그 기술을 적절히 구사하며 아젠의 공격을 방어해냈고 결국 아젠의 빌리아를 박살내 버렸다.
꽤나 시간을 끌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1분을 간신히 넘겼을 뿐이다.
역시 대회에 나가서 우승한다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아젠은 쓰게 웃으며 ED의 조종석을 빠져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 이후는 예상했던대로의 전개. 결국 실린은 한 게임당 최대 승 수인 10연승을 채운 뒤에야 난 뒤 게임을 종료하고 나왔고, 나오면서 게임 센터 내의 수 많은 사람들에게 박수 갈채와 환성을 받고, 수 많은 사람들의 양보와 도전에 3시간 동안 50명에 가까운 유저들을 침묵시킨 뒤에야 게임 센터를 나올 수 있었다.
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쥐슬의 제안으로 시작된 '오래 버티기'에서 꼴지를 하지 않았기에 게임비와 간식비가 굳었다는 것이겠지.
남은 용돈이 모조리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지만 그 것만은 참 다행이었다고 생각하며 아젠은 피식 하고 웃었다.
"아, 그러고보니 히이로, 너 생각보다 훨씬 잘하더라?"
"응? 내가 뭘. 아직 멀었지."
그리고 히이로가 날린 불의의 일격에 당황해하는 쥐슬의 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웃음짓던 아젠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그런 말을 꺼냈다. 그에 히이로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지만 그 뒤를 이어 실린은 아젠의 말에 동의하며 입을 열었다.
"아니, 잘하던걸? 빈말이 아니고, 왠만한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 수준은 되는 것 같았어."
실린의 말에 아젠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오늘 실린의 수많은 대전 중 가장 화려하고 볼만했던 것이 히이로와의 대전이었으니까. 눈이 돌아간다는 표현이 딱 어울릴만큼 빠르고 박진감 넘치는 게임이었기에 히이로가 게임에서 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환성을 꽤나 많이 받았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럴리가 없어. 난 아직도...."
"너무 그러지 마. 정 못믿겠으면 이번에 대회 하나 열리는 것에 나가보는건 어때? 시 주관으로 열리는 것 같던데."
"아, 다음주 일요일에 하는거? 팀배틀?"
"응, 2인 1조 경기."
맞장구 치는 아젠의 말에 실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러고보니 게임 센터에 포스터가 붙어있던 것 같기도 했었지. 어쩐지 흥이 나는 것 같은 기분에 아젠 역시 히이로를 바라보았지만,
히이로는 고개를 내 저었다. 자신은 나가봤자 망신만 당할 것이라고.
"에이, 그러지 말고 같이 나가보는건 어때?"
"더 나가가 싫어지는걸."
쥐슬의 말에 히이로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쿠악! 하고 소리를 지르는 쥐슬의 모습을 보며 실린은 입을 가린채 소리 죽여 웃고 있었다.
"대회라..."
어쩐지 꿈 같은 이야기였다. 뭐, 자신의 실력으로는 명함도 못 내밀겠지....
그렇지만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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